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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와 중추절
최 순 태
우리 집안은 고려 중기에 경주최씨의 분파로 결성된 전주최씨 송정공파에 속한다. 어릴 때 어머니는 매년 13번의 제사를 지내야 했다.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제때 조상님께 제를 올리는 일은 상당히 신경이 쓰이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선대의 묘소는 문중 선산에 모든 산소가 산재되어 있었다. 다른 집안들과 달리 여러 곳에 묘가 떨어져 있지 않은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한 번 벌초를 하려면 우리 집 남자 형제들과 6촌인 작은집 형님이 적어도 한나절은 걸리는 일이었다.
이즈음이면 객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모두 모여 벌초를 하고, 벌초가 끝나면 간단하게 성묘를 하였다. 벌초를 하기 전 땅벌이나 말법집이 있는지 확인하고 미리 모기약을 뿌려서 벌을 쫓아내고 일을 하였다.
이렇게 해마다 벌초를 하던 어느 날 조상님들의 산소가 소재한 선산 일부분이 장차 인근 김천대학교 학교부지로 들어간다는 도시계획이 발표되었고, 편입지역 외의 다른 장소로 산소를 이전할 필요성이 생겼다.
고향에 계신 큰형님과 구미의 둘째 형님의 주도로 선산 부근에 대체 부지를 선정하고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하여 사전 정지작업을 하고 돌로 축대를 쌓는 등 기본적인 준비를 마쳤다.
어느 정도 정비가 되었을 때 산소 배치도를 작성한 후 각 비석들의 비문과 가족묘 원임을 나타내는 큰 비석의 문안을 큰형님이 작성하고 셋째 형님의 검토를 거치고 여러 형제들의 확인이 끝난 후 비석 전문 업체에 제작의뢰 하였다.
비석 제작이 완료되어 평면도에 따라 배치하고, 길일을 잡아 선산의 산소를 발굴하여 유골을 화장한 후 조상님들의 비석 뒤편에 매장하였다. 당초에는 납골당으로 할 생각이었으나, 습기제거가 어렵고, 후손들이 관리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어서 지금의 방식으로 하였다.
비석이 위치한 묘소 좌측과 우측에 망두석(望豆石)을 세워서 좌측에 다람쥐가 올라가는 모습을 우측에 내려가는 모습을 조각하여 혼령이 들어와서 나가는 모양을 표시하였다. 비석이 설치된 장소 하단에 상석을 설치하고 상석 좌측에 가족묘원임을 나타내는 비석과 우측에 석등을 만들어 놓았다.
이장이 끝나고 제단에 음식을 차리고 조상님께 이장이 끝났음을 알리면서 정성스럽게 제를 올렸다.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유골을 화장할 때 오래 전에 작고한 고조, 증조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소에는 거의 유골이 없어서 검은 흙의 상태이고, 그 이후 돌아가신 조상님들은 유골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었다.
분쇄된 유골을 모시고 이장을 위해 비석으로 갈 때 숙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매장하기 전 잠시 묵념을 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렸다. 이장이 끝난 후 이듬해 묘사를 봉행할 때 정식으로 제문을 작성하여 격식을 갖추어 정성스러운 제를 올렸다.
한 곳으로 모든 산소를 이장하니 우선 벌초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예전에는 모든 형제들이 몇 시간 걸리던 일이 빠른 시간 내에 완료되었다. 요즈음은 고향에 계신 형님들이 초벌 벌초를 해 놓으면 멀리 있는 형제들이 와서 간단한 정리만 하면 되었다.
낫과 갈고리로 하던 벌초를 지금은 예초기를 이용하여 함에 따라 많이 편리해졌다. 한편으로는 조상님들의 노여움을 살지도 모르겠으나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즈음 세태를 이해해 주실 것 같다.
예초기를 사용할 때 돌멩이들을 건드리면 칼날이 손상되어 튀어 오르면 손과 발 등 몸이 다칠 수도 있으니 주의해서 다루어야 한다.
우리 집 묘사는 보통 윗대 조상님들의 제를 봉행한 후 11월 초순경 거행된다. 날씨가 좋으면 산소에 가서 참배하나 비가 올 경우에는 집에서 제상을 차려 시행할 때도 있었다.
풍성한 가을 초순 절기인 추석에는 어린시절 전을 비롯하여 떡, 감주, 수정과, 묵, 두부 등 음식들을 많이 장만하였다. 집안에서 요리를 하는 분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음식 하는 어머니 옆에서 따뜻한 전을 간장에 찍어 먹던 일이 생각난다.
어린아이일 때는 추석 등 명절이 기다려지고 설렘이 있었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들해지는 것 같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하숙, 자취 등으로 심신이 피곤할 때 명절연휴가 시작되면 즉시 고향에 내려오는 것은 밥을 해 먹는 것이 귀찮은 면도 있으나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서였다.
결혼 전 명절 때 부지런히 만나던 친구들도 장가를 가면 우선 본가에서 제사를 지내고 처가로 가는 바람에 잘 만날 수 없다. 자연적으로 자기가족들만 모여서 명절을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이미 성장한 조카들의 모습도 추석에 잘 보기가 어렵다. 못 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명절에 어른들이 결혼, 취직 등을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곤란하고, 그런 질문을 받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어른들은 되도록이면 그러한 일에 대한 질문은 자제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당사자들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결혼은 모든 사람들의 생활에 안정을 가져 올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한다. 명절에 자기 집으로 시집온 여성분들 사이에서 갖가지 일이 일어난다. 여자 동서, 고부간 갈등이 상당히 심하다. 이럴 경우 남편은 중간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안절부절 한다.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와 아내는 다같이 소중한 사람이라서 어느 한편을 들어주기가 상당히 어렵다. 남자들은 이럴 때 처신을 잘 해야 되는데 나는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였다.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는 계절이 되면 나는 적어도 세 번은 고향에 가야 한다. 모친의 생신이 추석 전주에 있고, 그다음 추석, 추석 닷새 후에 아버지의 기일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10월에 한 가지 행사가 더 있다. 매년 11월에 개최되던 초등학교 총동창회 겸 운동회가 추운 날씨를 피해 한 달 당겨졌기 때문이다. 11월에는 묘사를 지내러 김천에 가야 한다. 이래저래 10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최근 우리 집 제사를 5번으로 줄이고 나머지 제사는 묘사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모든 것이 실용적인 면으로 바뀌어 가고 수고하시는 큰형수님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제사상도 상당히 간소해졌다.
명절이 되면 매스컴에서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 등을 많이 보도하고 있다. 서로 낯선 환경에서 자라난 며느리들이 명절날 시댁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고, 이러한 점을 알아차린 시부모들이 아예 아들에게 며느리는 데려오지 말고 손자와 함께 오라고 한단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씁쓰레한 일이나 한편으로는 명절분위기를 망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명절 스트레스로 인해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예 명절날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많다고 한다. 예로부터 지켜온 좋은 풍속을 버린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시대상의 변화에 순응함이 옳다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어떤 것이 좋은가는 개인별로 판단할 문제이다.
공원묘지에 무연고 묘지나 묘소를 돌보지 않는 곳이 상당하다고 한다. 관리사무소는 후손들에게 연락을 하고 있으나, 연락이 되지 않고, 묘지분양 기한이 지나 재계약할 때 관리비를 체납하면 강제 이장할 수도 있으나, 이마저도 민사소송 문제 등 애로사항이 많다고 한다.
우리 세대가 지나고 앞으로 100년 후에도 산소를 돌보는 미풍양속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갈수록 출산율이 저조하고, 해외에 체류하는 후손들도 많기 때문이고, 고유한 미풍양속을 지키려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이제 벌초도 시대상황에 맞게 개선이 필요하며, 장묘문화도 매장이 아닌 화장이나 다른 방식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삼천리가 묘지로 변할지도 모른다.
중추절을 맞이하여 가족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였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려면 집안의 여성이나 남자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명절에 일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의 가치관을 바꾸어야 한다. 옛날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가정이 편하면 나라도 편해지고 모든 것이 술술 풀려나갈 것이다.
본격적인 여성상위시대에 사는 이 세상의 남자들은 요즈음 안팎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겨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어차피 세상은 남자 혼자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댓글 집안 내력과 벌초에 얼킨 이야기며 제사며 조상을 섬기는 일 까지 세세하게 꾸밈없이 쓴 글 잘 읽었습니다. 열흘간의 긴 연휴에 공항은 만원이라 하니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찌 할 말이 없습니다. 시대의 흐름은 어쩔수 없지만 1세기가 더 지나면 모든 것이 한편의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가내 묘소관리와 벌초에 대하여 진솔하게 소개한 글 잘 읽었습니다. 명절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일들 앞날에 예상되는 묘소관리 문제 등 공감하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내용을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걱정과 함께 집안마다 멋진 대안을 세워 실천하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화목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 바랍니다.
벌초. 장묘문화. 추석을 비롯한 명절 지내기 등 고쳐야 하고 지켜야 할 일을 찾아서 고치고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만 쉽지 않은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풍속은 오랜 세월속에서 개선되어 가장좋은 제도가 정착되어 문화가 되어 이어져 온것입니다. 가문의 전통이 잘 이어온것 같습니다. 추석등 명절에 공항이 분벼도 일부인사 들이며 뼈대있는 가문에는 조상을 잘 섬겨오고 우애도 쌓아가고 있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현 시대의 진면을 보는 듯한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뿌리는 잊어서는 않되겠지요
13번에 제사를 치르신 어머님 존경스럽습니다. 저가 어릴땐 증조부모님제사, 6.25때 전사 통지를 받았지만 삼촌이 양자로 가실 제종조부모님제사를 모신관계로 명절까지 총 6번에 제사를 치렀습니다.오빠와 동갑인 오촌이 결혼후 제사를 모시고 갔지만 요즈음과 달리 제삿날은 동네 어른분들과 제삿밥을 나누어 먹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런연유로 저는 명절 증후군이란 단어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형제분과 재종방님과 벌초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가족묘원을 잘 다듬어서 관리하고 계시고 제사도 간소하게 줄여나가는 모습이 좋아보입니다. 벌초와 제사, 중추절의 추억까지 자세하게 글로 써 주셔서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한집안의 벌초 장묘 명절 등 전통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잘 묘사했습니다. 그에 따라 발생되는 사태와 개선 해야될 문제들을 나름데로 정리하신 글 잘 읽었습니다. 잘못된 것은 개선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집안의 내력과 묘소관리등 본 받을점이 많습니다. 시대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개선하시는 점 공감하며 잘 읽였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