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아래, 여름 한 자락
여름 한낮, 한옥 마루에 잠시 앉았다. 햇살은 뜨겁지만 처마 아래로 들어서자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오래된 나무 기둥에서는 세월의 향기가 묻어나고, 담장 너머 초록은 한창 깊어지고 있었다. 붉은 능소화 몇 송이가 초록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여름은 그렇게 뜨거움 속에서도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피워내고 있었다.
흰옷을 입은 날이었다. 특별히 여름을 의식해서 고른 것은 아니었지만 한옥에 들어서고 보니 흰빛이 주변 풍경과 잘 어울렸다. 나무의 갈색과 담장의 회색, 나뭇잎의 짙은 초록 사이에서 흰옷은 한 줄기 바람처럼 가벼워 보였다. 옷자락에 촘촘히 새겨진 작은 무늬 사이로 햇빛이 들고 나갔다. 옷에도 여름이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알았다.
마루 곁에는 양산 하나가 놓여 있었다. 먹빛으로 그려진 나무와 산수 무늬가 오래된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양산을 바라보니 문득 옛 여인들의 여름이 떠올랐다. 햇볕을 피해 양산을 들고 돌담길을 걸었을 여인, 대청마루에 앉아 부채질하며 바람을 기다렸을 여인, 장독대 옆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보았을 어머니들의 여름 말이다.
지금의 여름은 빠르다. 에어컨을 켜고 자동차에 오르면 더위를 잠시 잊을 수 있다. 조금만 덥거나 불편해도 우리는 곧바로 시원한 곳을 찾는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여름을 밀어내기보다 견디고 받아들이며 살았다. 처마를 길게 내어 그늘을 만들고, 대청마루에 바람길을 냈다. 모시옷을 입고 부채를 들었다. 자연을 이기려고 하기보다 자연 속에서 조금 덜 덥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양산도 그런 지혜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커다란 양산 아래로 들어가면 햇살이 한 걸음 물러난다. 세상이 갑자기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 위로 작은 그늘 하나가 생긴다. 그 작은 그늘이 고맙다. 사람에게 필요한 위로도 어쩌면 이 정도인지 모른다. 모든 어려움을 없애 주는 거창한 힘이 아니라 잠시 쉬어 갈 수 있도록 내어 주는 한 뼘의 그늘.
살아오면서 그런 양산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앞장서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힘든 날 곁에 조용히 있어 준 사람, 말없이 밥 한 끼를 건네고 등을 토닥여 준 사람, 잘하고 있다고 한마디 건네 준 사람. 당시에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삶의 뜨거운 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내어 준 작은 그늘 덕분이었다는 것을.
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본다. 능소화가 바람에 흔들린다. 꽃은 뜨거운 여름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햇볕이 가장 강렬한 계절에 붉은 꽃을 피운다. 수국도 담장 아래에서 둥근 꽃송이를 품고 있다. 사람은 더위를 피해 그늘을 찾지만 꽃들은 여름 한가운데 서서 자신이 가진 빛깔을 세상에 내놓는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삶에도 계절이 있다. 봄처럼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이 있고, 가을처럼 무엇인가를 거두는 시간도 있다. 겨울처럼 견뎌야 하는 시절도 있다. 그리고 여름처럼 삶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책임은 무거우며 마음까지 지치는 시절이다.
그 시간을 우리는 빨리 지나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뜨거웠던 계절이 사람을 가장 깊게 익혀 놓기도 한다.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열매가 단맛을 품듯 사람도 때로는 삶의 열기를 통과하면서 단단해진다. 어려움이 아름답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견뎌낸 시간 속에는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깊이가 남는다.
사진을 찍으며 잠시 웃었다. 카메라 앞에서 웃는 일은 순간이지만 그 미소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계절이 지나왔다. 기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이 무거웠던 날도 있었고 뜻대로 되지 않아 돌아서야 했던 길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이상하다. 그 모든 시간을 지나고 나면 아픔조차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젊은 날의 미소가 설렘이라면 세월을 건너온 뒤의 미소에는 이해가 담긴다. 조금 잃어도 괜찮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의 미소다. 모든 것을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것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에서 나오는 웃음이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흰옷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흰색은 아무것도 없는 색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빛을 품고 있는 색이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수많은 색깔의 시간을 지나온 뒤 우리는 조금씩 담백해진다. 더 화려하게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자신에게 편안한 모습을 찾게 된다. 다른 사람의 속도보다 자신의 걸음을 믿게 되고,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세월은 사람에게서 젊음을 조금씩 가져가는 대신 다른 것을 건네준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 쉽게 판단하지 않는 여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눈빛 같은 것들이다. 젊은 날에는 몰랐던 아름다움이다. 바람이 불었다. 흰옷 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양산의 살 사이로 햇살이 잘게 부서졌다. 나뭇잎도 흔들리고 능소화도 흔들렸다.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풍경은 평온했다.
흔들린다고 불안한 것은 아니었다. 나무도 흔들리면서 자라고 꽃도 흔들리면서 핀다. 우리도 흔들리면서 여기까지 왔다. 삶이 언제나 반듯한 길만 내어 주지는 않았지만 그 굽이마다 다른 풍경이 있었다. 때로는 돌아갔고 때로는 멈추었으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길을 걸었다.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한옥 처마 아래에서 바라본 여름은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예전처럼 더위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 계절마다 한 번뿐인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올해의 능소화는 올해만 볼 수 있고, 오늘의 바람도 오늘뿐이다. 지금의 얼굴과 지금의 마음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여름이라면 여름답게 살아도 좋겠다. 뜨거우면 잠시 양산 아래 쉬고, 바람이 불면 옷자락을 맡겨도 좋겠다. 힘들면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삶은 늘 앞으로 달리는 사람에게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니까. 마루에서 일어나 양산을 펼쳐 든다. 머리 위로 둥근 그늘 하나가 생긴다. 그 아래 서니 세상의 햇살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남은 삶에는 누군가에게 작은 양산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뜨거운 날 잠시 머물 수 있는 그늘 하나 내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초록이 깊어진 정원 사이로 여름바람이 지나간다. 흰옷 자락에도, 오래된 한옥의 처마에도, 붉은 능소화에도 바람이 잠시 머문다. 양산을 조금 기울여 햇살을 가린다. 여름을 지나며 알게 되었다. 좋은 삶이란 뜨거운 햇볕이 없는 삶이 아니라, 그 햇볕 아래서도 서로에게 작은 그늘 하나 내어 주며 살아가는 것임을. 그날, 양산 아래 머물렀던 것은 한 조각 그늘만이 아니었다. 천천히 익어 온 한 사람의 여름도 그 아래 함께 머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