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역사 5월25일
중공군의 인해전술 (장진후전투)
▶1950년 ..중국군, 한국전 개입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진격 했지만
10월 25일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투입된다.
이미 26만명이 매복을하고 기다린 상태였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전쟁은 원치않는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중국의 인해전술로 인한 공격으로
미군과 한국군은 계속 밀려 내려오게 되었다
🌹오늘의역사 5월25일🌹
🌳03년 용암포 사건 발생.
🌳05년 서울 남대문 정거장(서울역)에서 경부철도 개통식 거행(3년 3개월 공사)
🌳13년 한용운, 『불교 유신론』을 간행함.
🌳32년 상해 교포들, 안창호를 일본 영사관 경찰에 넘긴 것에 대해 프랑스에 항의.
🌳42년 조선인 군속모집 시작, 미.영포로수용소에 배치
🌳42년 조선인 군속 모집 개시
🌳42년 소설가 이효석 세상 떠남(1907∼).
🌳46년 미군정의 알선으로 김규식·여운형 등이 좌우 합작을 위해 접촉.
🌳50년 남한, 북로당 정치위원회 사건 112명 검거
🌳52년 부산 지역에 계엄령, 이종찬 육군참모총장 군 출동요청을 거부
🌳53년 한강 광진교 복구·개통
🌳55년 북, 재일조선민전 해체, 재일 조선인 총연맹 결성
🌳57년 야당 주최 장충단 시국강연회장에서 테러단 난동
(12.5. 주범 유지광 체포됨).
🌳62년 주민등록 실시
🌳64년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준비위원회 구성
🌳66년 삼분폭리(三粉暴利), 정치문제화. 야당은 정치 자금 염출행위라고 비난
🌳68년 한국복지회 사건 관련 김용태, 최영두 등 공화당 주류파 의원 제명
🌳68년 국민 복지회 사건, 공화당 김용태 의원 등 김종필을
박정희의 후계자로 옹립제명.
🌳71년 제8대 국회의원선거(공화당 113, 신민 89, 기타 2명 당선)
🌳73년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서울서 열림
🌳76년 신민당 주류·비주류 양파의 별도 전당 대회에서 폭력 사태 발생.
세칭 각목대회
🌳80년 광주사태 청년·학생 수습위원 무력항쟁 결의, 최규화 대통령 광주방문
🌳81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8개 정당에 정치자금 4억원을 지급
🌳83년 포항제철, 4기 2차 제철설비 확장공사 준공. 조강 생산능력
연간 900만 톤으로 증가
🌳83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탈주 절도범 조세형 피고에 징역 10년,
보호감호 10년 선고
🌳83년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 초기 철기시대 유적지를 발견
🌳84년 택시운전사 노사분규 시위농성-해고당한 운전사 분신자살
🌳84년 미스태평양 피살-변심했다고 바닷물에 밀어뜨려
🌳84년 제13회 전국 소년체육대회 개막(제주시)
🌳84년 제3차 남북체육회담 개최, 진전없이 끝남
🌳84년 대구의 택시 운전사 400여명, 시내 중심지를 택시로 점거하고
사납금 인하 등을 요구 시위
🌳84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제의 정신대로 끌려가 태국에서 거주해 온
노수복 할머니 일시 귀국
🌳87년 민주당, 박종철 사건과 관련 의원총회를 열고 현정권의 퇴진을 요구
🌳89년 국무회의, 21세기위원회발족을 위한 규정안 의결(통일등 4개분과위원회 구성키로
🌳89년 지휘자 정명훈씨가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총감독에 선임됨
🌳90년 노태우 대통령, 일본 국회에서 「변화하는 세계속의 새 한ㆍ일관계」를 주제로 연설
🌳90년 26개재벌, 제3자명의 부동산 1139만 9000평 신고
🌳91년 김귀정 성대생 압사 사건-시체부검싸고 3주 동안 실랑이
🌳91년 한국은행,우리나라 경제가 건설호황 지속과 수출회복으로
8.9%의 실질성장 기록 발표.
🌳91년 상공부, 대만과 프레온 가스를 대체하는 신물질 공동개발에 합의
🌳91년 성균관대생 김귀정씨(25세.불문과 4년)노태우 정권퇴진 시위 도중 경찰의 다연발 최루탄 발사로 20여명이 함께 넘어지면서 사망.
🌳92년 IAEA사찰단, 북한에 대한 본격적인 핵사찰에 착수한다고 밝혀
🌳92년 민주당, 올림픽공원 제2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김대중,
이기택 공동대표를 재선출.
🌳92년 외국인에게 우리 증권시장을 개방한 이후 외국인의
주식투자 액이 1조 397억원을 기록.
🌳93년 북한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최고 당국자들이 임명하는 부총리급특사를 교환 제의
🌳93년 정부, 윤한봉씨 등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81 형선고의
효력을 없애는 특별사면 실시.
🌳93년 이원종 서울시장, 4·19묘역을 3배로 확장하는 등 기본구상 및 계획을 발표.
🌳94년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은 북한 방사화학 실험실 사찰업무를 완료했다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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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5월 25일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결성됐다.
산하단체로는 조총련의 자금원인 재일조선인상공연합회,
조일수출입상사, 동해상사 등이 있다. 이로써 재일교포
사회는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재일거류민단과 조총련으로 양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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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5일...이지스함 진수한 날, 북한 미사일 발사
북한이 25일 동해상 및 서해상으로 사정거리 100~150여㎞의 지대함(地對艦) 및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2~3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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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 송상현 동상과 동래부순절도
1592년 5월 25일 동래성 전투로
동래부사 송상현이 사망하다.
1592년 5월 25일 일본군이 동래성을 포위하며 말했다.
“싸울 테면 싸우고, 싸우지 못하겠으면 길을 비켜달라."
동래부사 송상현이 말했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키기는 어렵다."
결국 일본군에게 동래성은 함락되고 송상현은 전사한다.
고니시는 송상현에 대한 예를 갖추며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왜란이 일어난 지 3일 만에 부산이 함락될 만큼 조선은
전쟁에 대한 준비가 허술했다. 의병과 이순신의 활약이
없었다면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굴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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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5일 최제우가 인내천의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한 동학을 창시하다.
19세기 후반 서양 세력의 침투와 조선 사회의 내재적
위기 속에서 보국안민·광제창생을 내세우면서 등장했다.
당시의 유교는 성리학적 명분주의에 빠져 변화하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고 불교 역시 조선시대
500여 년 간 정책적으로 탄압받아왔으므로
새로운 사회를 주도할 자체의 역량이 부족했다.
또한 서양의 천주교가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사회에
들어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서학의 침투에 대항하는 한편, 새로운 이상세계의
건설을 목표로 하여 등장한 것이 동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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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와 일본의 귀족 소 다케유키의 사랑
이야기는 역사 속 비극과 운명이 교차하는 세기의 로맨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반도의 격변기 속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엮였을까요?
오늘은 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역사 속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덕혜옹주: 운명의 황녀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황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 국권을 잃은 황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일본 유학과 고독한 성장
덕혜옹주는 1925년, 일본의 압력으로 도쿄의 여자학습원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큰 외로움과 고독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굳건하게 학업에 열중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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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윤4월 초파일’ 봉축 법요식인 만큼 행사 풍경도 예년과 달랐다.
예년 법요식엔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을 비롯해 조계사 일대가
1만5000여 인파가 가득차 행사 중간에 이동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날은 대웅전 앞마당에 300석, 주변으로 200석 등
좌석을 1m 간격을 두고 배치하는 등 방역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당초 불교종단협의회는 초청자 중심으로 800명 정도 참석을 계획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참석한 불자(佛子)들이 모여 실제로는 약 15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장 입구에선 마스크 착용과 체온 점검 후 입장시키는 모습이었다.
사찰을 깨끗이 정화하는 ‘도량결계’와 여섯 가지 공양물을 부처님께
올리는 ‘육법공양’으로 시작된 법요식도 축제 분위기라기
보다는 엄숙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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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연세대 앞 철길 아래에서 31년전 1991년 5월 18일 분신,
투신으로 민주화와 통일의 역사를 한걸음 앞으로 밀고 간
이정순 열사의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31년 전 이름없는 한 여인이 불꽃으로 자신의 몸을 던져
이땅 민주화와 통일의 역사를 한걸음 앞으로 밀고갔다.
당시 39살의 그녀는 1991년 5월 18일 오전 11시 30분경
경대 학생의 노제행렬이 지나가는 연세대학교 앞 철길에서
분신과 투신으로 부정한 독재권력의 퇴진과 갈라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자신의 뜻을 밝혔다.
'백골단'으로 불리던 사복경찰에 의해 명지대생 강경대가 폭행,
사망당한 1991년 4월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신의 죽음으로 투쟁이 이어지던 때였다.
'공안통치 종식, 노태우 퇴진, 백골단 해체'를 외친
그녀의 항거에 대해 언론은 '4남매의 자녀를 둔
30대 여인의 죽음'으로 제목을 달아 보도했고,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혼과 정신병력 운운하며
의로운 주검에 난도질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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