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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중간
공격성 조금 위협적
게임 시작년도 1933년 3월 4일
실제 시작일시 2012년 5월 16일
포스트 일자 2012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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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그리스 합병.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합병했다.
그리스의 영토가 탐나기는 했지만 이탈리아가 동맹국이 되면 영토분할 이벤트가 뜨므로 상관없을 것이다.
4월 24일. 주요 교통로 파괴작전.
단 4편대뿐인 중폭격기로 열심히 프랑스 남부의 도로들을 파괴하고 있는 장면이다.
우회작전을 실시할 지금, 독일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시작하게되면
프랑스 또한 독일의 우회를 차단하기위해 마지노라인에서 병력을 뺄 것이므로
최대한 도로를 파괴시켜 증원을 늦출 생각이었다.
4월 28일. 황색작전 개시.
히틀러는 전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4월 28일. 프랑스로의 진격을 명했다.
그를 위한 여러가지 작전들이 준비되있다.
독일측 병력상황은 이러하다. 동부라인에서 기차수송되고 있는 20여개의 사단을 제외하고
헝가리와 불가리아, 슬로바키아의 병력 30여개 사단을 포함한 총 116개 사단이 서부전선에 배치되어있다.
이 중, 69개 사단을 제외한 47개 사단이 공세에 들어간다.
A집단군
일단, A집단군은 기갑사단만으로 이루어져있는 집단군이다.
총 41개 기갑사단으로 이루어져있으며, 2차대전에 생긴 첫 기갑사단들로 이루어져있다.
신종병종으로 이루어진 기갑사단들인만큼 아직까지는 기갑사단만으로 이루어진 군단이 신설되지는 않았다.
주공은 바로 이 A집단군이 맡게 되며 2갈래로 나뉘어 벨기에로 우회에 나서는데
하나는 룩셈부르크를 관통하여 벨기에 남단부를 돌파하는 작전이다.
지금까지 공군기로 프랑스의 공군기지와 도로를 파괴하며 이루어진 정찰에서
프랑스군의 대부분은 마지노라인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벨기에 국경에도 산더미같이 많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 결과 원래 계획되었던 낫질작전에도 크게 수정이 들어가서 프랑스로의 진출을 금하고
네덜란드와 벨기에로 빠르게 진출한 프랑스의 일부병력을 포위섬멸하는 것만 허용했다.
이 작전의 성공은 기대하지 않으나 성공한다면
밑에 설명할 작전보다 더욱 커다란 포위망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나머지 하나는 네덜란드 북서부를 빠르게 관통하여 됭케르크 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작전이다.
이 방안은 1차대전에서 사용된 슐리펜 작전을 염두한 작전이다.
남단부에서의 돌파가 실패하여 돈좌된다면 그대로 프랑스 병력을 잡아두어
북단부에서 빠른 돌파로 프랑스 북부로 진출하는 것이다.
실패하면 프랑스공격은 모두 좌절되며 1차대전이 재림할 수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프랑스로의 진출도 성공할 뿐만아니라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차단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보고있다.
B집단군
B집단군은 서부방면 사령부가 속해있는 집단군이다.
보병들만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네덜란드의 병력들을 붙잡는 역활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A집단군이 빠르게 움직여 포위를 해주면 B집단군의 보병사단이 네덜란드의 병력들을 섬멸.
그리하여 남는 보병사단은 벨기에 북부로 이동하여 A집단군의 보조를 맡는다.
C집단군
보병사단이 대부분으로 소수의 기갑사단과 기병사단, 산악사단으로 이루어져있다.
39년에 동맹국이 된 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의 병력들도 다수 편제되있는 혼성집단군이다.
마지노라인에서의 양동작전이 작전의 전부이지만 프랑스군이 빠지는 정도에 따라서
마지노라인을 정면으로 돌파할 것을 명령했다.
4월 29일. 룩셈부르크 합병.
개전 1일만에 기갑사단의 다수가 룩셈부르크를 관통하여 벨기에 남단부로 쏟아져 들어갔다.
무저항의 룩셈부르크는 당일 독일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예상외로 프랑스군의 증원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작전 하루만에 프랑스군 일부가 네덜란드까지 급파되었으며 독일군의 전면에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병력이 아니었던 프랑스군은
병력수에서 크게 앞서는 독일군에게 각개격파당하는 분위기다.
5월 1일. 트리어 항공전.
독일의 우수한 항공기술이 집약된 메서슈미트 BF-109가 프랑스의 폭격기들을 요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중전 교리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었고
독일군 수뇌부도 육군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5월 3일. 자이들리츠,1함대 배속.
영국의 첩보전에 의해 테러당하여 몇개월동안 건조가 늦춰진 자이들리츠가 결국 완성되어 1함대에 배속되었다.
관통.
프랑스군의 증원의 조기차단이 가능했던 네덜란드는 순조롭게 섬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군 증원으로 공격이 지체되고있는 벨기에 남단부 공격은 실패로 끝날 것 같다.
더 이상의 공격은 시간낭비일 수 있지만, 북부 벨기에쪽의 기갑사단을 위해 프랑스군을 붙들고 있는 장면이다.
5월 4일. 겨울전쟁 종전.
한 때, 파죽지세로 핀란드를 공격해 들어간 소련이었으나
핀란드군의 게릴라작전으로 이제서야 승전한 소련이다.
이번 사건으로 소련이 교훈을 배웠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핀란드는 복수를 꿈꾸고 있다.
마지노라인에서 프랑스군의 대부분의 병력이 빠져나갔고
지크프리트라인에 주둔한 동맹국 병력들이 마지노라인을 전면 공격했다.
마지노라인이 얇아지면 지크프리트라인에서 우리군 또한 보충할 생각이지만,
너무 빠르게 얇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회라인에 프랑스군이 빠르게 증원된다는 얘기다.
적당히 속도를 조율시킬 작정으로 마지노라인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한편, 중부전선에서 기갑사단이 확실히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에
북부 기갑사단들은 벨기에 북단부를 통과하게 되었다.
비어있는 프랑스 해안가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찬스지만,
너무 빠른 돌파로 B집단군의 보병사단들의 지원이 아직 늦었다.
5월 6일. 공중에서의 침투.
네덜란드 지역의 빠른 점령을 위해서 네덜란드 동부에 대대적인 공수강하를 개시했다.
이 작전에 3개 공수사단이 투입되었다.
5월 7일. 영국, 처칠이 수상이 되다.
벨기에 남단부에서의 공격은 프랑스군의 대규모 급파로 전면 봉쇄되었다.
무려 20여개 사단이 방어에 나서는데다 강까지 끼고있는 이상 완벽하게 무리였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을 벌어주었고 몇 개의 기갑사단이 프랑스 북부로 진입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또한, 네덜란드와 벨기에 동부에서도 어느정도 포위섬멸에 성공함에 따라서 병력우위에 앞설 수 있게 되었다.
전세는 기울었다.
5월 12일. 네덜란드 점령.
프랑스의 마지막 잔여사단들이 네덜란드에서 패주하는 상황이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1개 기갑사단을 주둔시킬 예정이다.
오리지널 이후 처음인 DHR모드이지만 여기서는 주위가 포위당해있어도
후퇴하는 지역에 적병력만 없으면 사단의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후퇴하는 지역에 상당수의 병력이 붙어있어야하는
재미없는 상황이 왔지만 그렇기에 더욱 재미 있는 것 같다.
거기에 기갑사단만 그런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쉬프트로 릴레이 공격을 걸어두었으면,
옆에서 아무리 공격해도 이동이 가능한 것 같다.
말그대로의 기동섬멸도 가능하다. 다만 DHR은 전투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만큼 하기 힘들지만...
5월 16일. 네덜란드 항복.
어떻게 보면 말뿐인 항복이고 그들의 군대는 아직도 동남아시아에서 항전을 계속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네덜란드 본토는 독일군에게 흡수당했고 네덜란드의 군대는 독일군에게 해산당했다.
5월 18일. 틈새.
벨기에 남단부에 마지노라인에서 증원된 대부분의 프랑스군이 붙잡혀있는 사이
지크프리트라인도 점점 동맹국의 병력들로 바꾸어나갔고 더욱 큰 반포위망을 형성시킬 수 있었다.
한편, 기갑사단들이 열심히 뛰어준 덕에 결국 적군 전면에 구멍이 생겼다.
속도로 무장한 기갑군들이 이 곳을 통해 파리로, 브레스트로 진군할 것이다.
5월 19일. 파리 레이스.
53개 사단이 중부전선에 묶여있는 바람에 제 때에 뚫린 구멍을 막지 못했던 프랑스는 큰 손실을 앞두고 있다.
바로 수도인 파리를 점령당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5월 19일. 파리 점령.
몇시간 후, 기갑사단이 파리에 들어서면서 전쟁의 끝이 얼마남지않았음을 보여주었다.
5월 24일. 질주.
프랑스군의 대부분은 아직도 마지노선에 묶여있으며 나머지는 모조리 섬멸당하고 와해되었다.
파리를 점령하는 영광을 얻은 기갑사단은
아직도 프랑스 북부를 질주중이며 브레스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남쪽으로는 틀롱과 비시지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5월 29일. 미국, 영국에 구축함 원조.
파리에 이어서 브레스트, 틀룽 등의 프랑스의 주요 도시가 점령되는 등,
현시점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는 것이 선명해지자 미국은 '유럽의 마지막 민주주의'
영국을 사수하기위해 구축함을 원조했다.
6월 2일. 추축 삼국 협정.
파리를 점령한 이 후, 독일은 이 기세를 살려 이탈리아와 일본에 협정을 제안했다.
당연스럽게도 이 승전을 계속하는 독일의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고
이 순간, 세계의 질서가 새롭게 정해졌다.
6월 3일. 잔당 소탕.
이상하게 뜨지않는 항복 이벤트 때문에 기갑사단들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셰르부르를 점령하자 뜨는 항복이벤트였다.
6월 4일. 항복 협상.
프랑스는 국가 초유의 사태에 어쩔수 없이 협상 테이블의 한쪽자리에 앉게 되었고 독일측도 흔쾌히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이번 협상으로 독일은 관대하게도 프랑스의 남부를 보존시켜 주었고 그 대가로 북부를 가져간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프랑스측은 마지못해서 이 조건에 승락했다.
6월 7일. 프랑스 항복.
곧이어 6월 7일부로 항복협상의 문구가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마지노라인의 영국사단과 벨기에의 잔당들은
맨바닥에 내동댕이 쳐진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여유가 생긴 독일군이 이 들을 향해 총포를 내밀었고 그 들은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6월 9일. 2차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프랑스가 항복함에 따라서 독일은 영국으로의 본격적인 전쟁을 위해
소련과의 새로운 조약을 맺을 필요성을 느꼈다.
새로운 조약과 함께 새로운 영토. 새로운 전쟁목표가 세워진 독일.
그들 앞에 누가 앞을 막아서리.
6월 9일. 스위스와의 강제 무역협정.
스위스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둘러쌓인 소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독일, 이탈리아라는 호전적인 국가만이 그들을 둘러싸고있는 형세가 되었다.
이제 독일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으며 스위스는 그들이 강요한 그 어느 요구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6월 11일. 중일전.
일본이 다시 공세에 나섰다. 아주 느리지만 말이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다는 것에 뭔가 자극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들이 더욱 힘내주었으면 하지만... 글쎄... 과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6월 11일. 제 3제국.
현재 군대는 대부분 재배치 중이다.
요격기와 중폭격기등의 공군기들은 프랑스의 공군기지들이 수복되는 대로 모조리 프랑스 본토로 배치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이탈리아와 루마니아, 핀란드를 동맹국에 넣을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탈리아를 위해 기갑사단 대부분을 그리스를 통해 해상으로 수송, 아프리카 작전을 지원할 생각이다.
그런데, 사진의 크기와 위치가 왠지 일정하다고 느끼지 않았는가 제군들.
은 움짤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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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짤만드는 재미가 세계최고!!!!!!!!
동영상은 용량도 많이나가고 무엇보다 쓸데없는 것도 찍히지만 움짤은 달라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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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DHR다시 잡아볼까.
오오 움짤 오오!
근데 DHR은 비시프랑스가 새로 생기는게 아니라 그냥 프랑스와 강화만 하는 건가요?
자유 프랑스가 생깁니다
콩색작전...
근데 진짜 정성이 눈에 보이는군요 ㅠㅠ
난 그냥 스샷만 대에충 올린거에비하면 ㅠ
오오오.. 움짤위엄
우ㅗ아아.. 성의가 묻어나는 연대기. 그와중에 눈에띄는 발번역에 번역자는 눈물이 추적추적...
우와 어떻게 이렇게 빨리 프랑스를 미시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헝가리랑 불가리아가 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