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어 새의 구애(求愛)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는 속담 가운데 하나라 여깁니다.
외유내강을 지향했던 선조들과 달리 외형적 평가를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속에 조화와 균형보다
이기적 편향 현상에 몰입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성세대의 염려와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지만 맛까지 좋으면 금상첨화라 하겠죠.
그런데 불완전한 인간 세상에 이 삼박자가 온전히 갖추어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음을 경험하곤 합니다.
지난 4월 21일, 따뜻한 하루에서 보내온 메일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주로 호주와 파푸아 뉴기니에 서식하는 바우어새는
독특한 구애 행동으로 유명합니다.
바우어새의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몇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공을 들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독특한 행동을 하는데 바로 호화로운 둥지로 만드는 것입니다.
약 1m 높이의 둥지를 지어놓고 각종 열매, 꽃, 조약돌, 조개껍데기 등을 물어와
내부를 꾸미고 과일즙으로 외벽을 칠하기도 하며 장식물이 시들거나 낡으면
새로운 것으로 계속해서 바꿔주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바우어 새는 숲 속의 작은 정원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암컷을 유혹하려는 목적을 모두 달성한 뒤에 수컷은 돌연 폭군으로 돌변합니다.
암컷을 부리로 쪼아대며 못살게 괴롭히고 새끼도 돌보지 않고는 새로운 짝을
찾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곤 조류학자들은 '가장 뻔뻔한 새'라고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인간 세상이든 동물의 세계이든지 드러난 현상과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오류를 바우어 새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나아가 이 새는 이 땅에 사는 수컷들의 깊숙히 잠재되어 있는 본성적 측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할까요?
모두는 아니겠지만, 남자들이 결혼전후가 달라지는 것도 어찌보면 그물속에 들어온 고기라는
심리적 이유 때문이겠지요.
어쨋거나 목적을 달성한 후 폭군으로 돌변하는 바우어 새의 행동은 어떤 이유나 변명으로든
합리화해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유대교의 경건주의의 한 분파로서 모세오경(토라, 율법)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준수하는데 철저함을 보였던 이들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옹고집 원칙주의자(원칙을 위한 원칙)들이라 할까요?
그러한 바리새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신랄하게 비판하십니다.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23;3-7)>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표리부동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실감나게 표현하시며 화를 선언하십니다.
<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23:27-28)>
표리부동한 바우어 새와 바리새파들을 보면서 좋은 신앙인,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의 반대말에 해당되는 표리여일(表裏如一)
곧 겉과 속이 같은 그리스도인이어야 함을 역설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에베소서4:13-15)>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우리 주님의 말씀은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듣습니다
기도할 때의 마음이 일상의 삶에서도
이어지게 해주세요,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