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려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욥기 19,21-27; 루카 10,1-12 /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2024.10.3.
오늘은 개천절입니다. 기원전 2333년에 이 땅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뜻으로 ‘하늘이 열렸다’고 천명한 개천절입니다. 민족들이 이룩한 문명의 정치적 단위를 나라라고 부르는데, 그 주체가 환웅과 곰토템족 여군장이 낳은 단군왕검으로서 ‘홍익인간’이라는 이념과 평화를 사랑하는 빛의 나라를 뜻을 담은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웠고, 그 후 역사에서 나라의 권력을 맡은 주체는 여러 번 바뀌어서 북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백제였다가 발해와 통일신라로, 다시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내려왔던 겁니다. 일본인 군국주의자들이 침략하여 식민통치를 한 적이 있으나 그들은 우리 민족에게서 나라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뺐었던 것뿐입니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이 땅에 총독부를 세워놓고 우리의 말과 글 나아가서는 문화와 전통까지 말살하려고 획책했고, 전반적으로 조선 왕조보다 훨씬 더 못한 악랄한 정치로 이 땅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괴롭혔습니다. 일제 36년의 식민통치는 총체적인 악이었고 식민지 시절 이 땅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말과 글 그리고 문화와 전통을 빼앗기지 않고 지키려던 지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패망한 일제로부터 우리는 36년만에 권력을 되찾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나라의 이름을 바꾸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 또렷한 민족적 정체성과 성실한 노력으로 국운을 상승시켜서 이미 일본을 따라잡았고 현재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도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자면, 이 나라의 기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나 삼일운동 직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이 아니라 최초에 문명사회를 세우려는 뜻으로 이룩된 조선이 세워진 기원 전 2333년 오늘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나라의 역사는 거의 반만년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우리 민족은 나라의 이름이 여러 이름으로 바뀌는 동안에도 10월 초순에 제천(祭天)행사를 치르며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개천의 이념을 기리곤 하였습니다. ‘홍익인간’이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는 뜻이고, ‘이화세계’란 진리로써 세상을 다스리자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5천 년 전인 그 옛날에 이렇듯 심오하고 선진적인 정신을 기치로 내걸고 세워진 위대한 나라입니다.
제천행사는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서, 스스로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천손족 의식을 지닌 우리 겨레가 지내던 고유 의식입니다. 씨를 뿌린 봄에는 농사가 풍요롭기를 하늘에 기원하고 곡식을 거둔 가을에는 풍요로운 수확을 주신 하늘에 감사하려는 취지로 치러졌으므로, 민족의 신화를 비롯해서 음악, 문학 등 예술의 맹아가 이 제천행사로부터 싹텄습니다. 그 옛날의 제천 행사에서 유래된 민속명절들은 단오와 추석, 시월상달 등으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우리 민족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뿌리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는 첫째,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하느님을 믿고 숭배하던 종교적 바탕이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 이러한 종교적 바탕 위에서 농사 등의 현세적 삶의 질서를 종교적으로 해석하고 설계하며 기원하는 문화적 전통이 비롯되었다는 것, 셋째 이 종교적 바탕과 문화적 전통이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적인 삶의 양식을 규정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뿌리를 감안할 때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첫째로 종교적이고 문화적이며 공동체적인 이 민족 전통적인 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로 전통적으로 알아왔던 막연한 하느님 개념에 2백4십여 년 전에 들어온 천주교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체적이고 인격적이며 역사적인 개념으로 세례를 준 것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적인 생활양식에 그리스도적인 공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공헌은 구체적으로 보면, 십자가와 부활의 섭리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공동체적 생활양식을 승화시키는 일종의 문화적 세례 작업이라고 볼 수 있으며, 백 년 박해라는 십자가로부터 비로소 부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의 윤리와 정서가 담긴 문학작품 속에는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한(恨)의 정서와 권선징악(勸善懲惡) 개념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의 정서는 십자가의 경험적 범주에 해당하지만 권선징악 개념은 막연한 추상적 기대에 지나지 않으므로, 한의 정서를 발생시키는 악의 구조를 실제로도 선의 구조로 바꿀 수 있는 현실적인 지혜가 요청됩니다. 그 지혜가 바로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섭리입니다. 즉, 막연하고 이원론적인 선악의 대립인식에서 벗어나서 악에 대한 선의 자기희생을 통해 악을 선으로 승화시키는 부활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민족 문화에 대한 신앙의 지혜요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이스라엘 방방곡곡으로 파견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루카 10,8ㄴ)고 선포하라고 분부하시면서, 철저하게 청빈한 생활양식을 견지해야 하고 당당하게 토박이 지지자들의 신세를 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메시아로서 본격적인 개천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이 파견은 "하늘이 열렸다."는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알리라는 조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이 열린 하늘이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은 새 하늘이신 예수님을 따라 새 땅을 열었으니, 이것이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기까지 천8백 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교회역사상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세운 기적은 초대교회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어제의 복음에서 들으셨다시피, '작은 이들을 위한 천사'로서 선비들이 나섰던 덕분에 받은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땅의 개천은 '홍익인간' 문명을 더욱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쾌거였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제 '새 땅'을 열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때가 찼습니다. 종교적인 박해는 일찌감치 백 년 전에 종식되었지만, 신앙의 가치 즉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공동선은 아직 멀었습니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인사들에게 정권을 내어줄 만큼 선한 이들안에서의 각성된 연대력도 취약합니다. 그런데도 희망적인 징표는 전 세계에서 이제사 비로소 한민족 문화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세계 언어학계의 지성인들은 한류 현상의 정수를 독창적이고 민주적이며 과학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한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음양오행이라는 한민족 고유의 철학에 따라 한글 자음이 만들어졌고, 세상의 근본이 천지인(天地人)이라는 통찰에 따라 한글 모음이 만들어졌다는 이치까지는 모릅니다. 더군다나 한글은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한국어는 아시아인들이 쓰는 언어의 뿌리가 되는 언어로써 제천의식과 천손의식을 반영하는 존대어법과 공동체적인 '우리' 의식이 남다른 최고의 언어라는 인식에는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글과 한국어에 스며들어 있는 제천의식(祭天儀式)과 천손의식(天孫意識), 그 뿌리에 감추어진 하느님 신앙을 일깨우고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한류 현상을 복음화하는 일입니다. 고달프기 짝이 없었던 욥의 일생이 말년에 가서는 활짝 피었던 것처럼, 한민족의 운명이 2백여 년에 걸친 고난을 졸업하고 홍익인간 문명의 가치를 구현하는 온전한 겨레의 모습으로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여전히 고달픈 아시아 여러 민족들의 운명까지도 일으키는 복음화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개천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늘이 열려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