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숫자 ‘4’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숫자가 뭐니? 하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7(칠)이요! 하고 대답한다.
그리고 싫어하는 숫자는? 하고 묻는다면 당연힌 4(사)인데요. 라고 대답하지.
그 이유를 물으면 불길하잖아요. 라는 대답을 돌려받게 된다.
‘죽을 死’ 자와 소리가 같아서 사람들은 숫자 4를 싫어하고 불길하게 여긴다.
하지만 나에겐 그 어떤 숫자보다도 ‘4’의 의미는 크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처음만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 첫사랑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첫사랑은 그냥 첫사랑 일뿐이다 하지만 그는 첫사랑, 그 이상의 것이었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나는 첫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나는 마지막 사랑이었다.
기차에서 내리는 그를 나는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역시도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날 바라보고 있었지.
기차역의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난 저 사람이 내 운명이라는 걸 직감했어.
귀가 아플 만큼 커다란 기적소리와 희뿌연 연기로 내 주위는 가득했지만 그의 곁은 온통 빛 투성이였어.
그리고 방금 조그만 손수레에서 산 찐빵을 들고 그에게로 갔지.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없어보였다. 그래서 난 불쌍한 사람에게 큰 인심이라도 쓴 양 그렇게
들고 있던 빵 3개를 그의 손에 쥐어줬지. 그게 바로 그와의 첫 만남이었어.
때는 1962년이었다.
그 후에 나와 그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한 청년과 돈 없고 가난한 계집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이 부정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과 양측 부모님들의 반대에 우리는 숨어서 만나고 숨어서 얘기하고
숨어서 사랑했다. 4년 동안 깜깜한 한 밤중에 묘지들이 이곳저곳 가릴 것 없이 많은 동산에서 연애를 했다.
하루 중 단 1시간정도. 그 마저도 부모님에게 들킬까 숨 졸이며 만나야했고
내가 밤중에 나가는 걸 눈치 채신 어머니 때문에 연락도 없이 그를 만나러 나가지 못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사랑은 커져만 갔고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의 허락 하에 우리는 첫날밤을 맞았다.
그 첫날밤은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잊을 수가 없다.
따뜻했던 그의 품에서 너무나 행복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따뜻한 그의 품도, 설렜던 그 날의 감정도 가질 수가 없어.
40년이 흐른 지금, 그는 이렇게 내 옆에 누워만 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만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고 그 후론 계속 이렇게 누워서 지내는 걸.
내일이 바로 우리의 결혼 40주년인데, 여보.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되는데, 여보.
요즘 들어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된 그. 누워있는 이 사람의 마음도 말이 아니겠지만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는 난 억장이 다 무너진다.
“여보, 당신. 약속은 지키고 가야지요. 나랑 한 약속은 꼭 지켜주세요.”
“미....안해.....”
힘없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멀리 타지에 살고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내려오려고 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니 빨리 오너라. 하고 전화를 걸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여보. 내일이 우리 40주년인데. 그 때까지만 참아주세요.”
“....미안하오... 정..말..”
“괜찮아요, 여보. 꼭 약속 지켜주세요. 지금 혜인이가 오고 있으니까 참아주세요, 당신.”
그는 내게 힘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초조한 시간이 흐른 후, 딸 혜인이가 도착했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내 딸, 혜인이.
혜인아. 고맙다. 네 아버지가 나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줘서.
“엄마, 무슨 일이세요?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아직 괜찮으시다. 혜인아. 아버지를 이 소파로 옮기는 걸 도와주겠니?”
“왜요? 아버지 몸도 안 좋으신데 그냥 방안에 계시는 것이....”
“부탁하마. 나 혼자의 힘으론 무리구나..”
“....... 예. 그럴게요..”
혜인이의 도움으로 힘겨운 그를 거실 소파로 옮겨놓았다.
소파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고 딸을 바라보는 그. 이제 다 된 겁니다.
여보, 당신은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셨어요. 고마워요.
감격에 겨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나의 눈물을 보곤 딸 혜인이와 그가 걱정을 하는 것 같다.
“혜인아, 그 노래 한번 만 쳐주겠니?”
“네? 무슨 노래를..”
“... 금혼식. 그 노래를 쳐 다오.”
“엄마, 그 노래는....”
“안다. 알고 있다. 그 노래는 아직 우리가 들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부탁한다, 혜인아”
“........네. 칠게요. 앉아계세요.”
귀와 머리까지 시원하게 울리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리고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금혼식’
결혼 50주년을 맞는 부부가 함께 듣는 음악.
난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지.
‘여보, 우리 50주년 때 금혼식 꼭 같이 들어요.’
‘여보, 우리 혜인이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야겠어요. 그래야 나중에 쳐주죠.’
‘여보, 피아노 하나도 장만해요. 몇십년 후를 생각해서 그래요’
결혼 50주년이 되면 꼭 이 음악을 같이 듣자고. 내 부탁이고 소원이라고.
하지만 나와 그에게 남은 10년이 너무 멀다. 그래서 결혼 40주년이 되기 하루 전.
오늘, 금혼식을 맞는다.
있는 꾸중 없는 꾸중 해가며 혜인이에게 이 음악을 가르친 보람이 있어.
이렇게 잘 치는 구나, 우리 혜인이가.
라음을 끝으로 조용히 울리던 피아노 소리가 잦아들었다. 곡이 끝난 것이었다.
“엄마..... 아버지!”
딸 혜인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다. 내가 왜 결혼 40주년에 금혼식을 들었는지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핑계를 대며 딸을 불렀는지 혜인인 깨달은듯하다.
그리고 그와 나, 딸 혜인이는 한 동안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사실, 눈물을 흘린 건 딸 뿐이었다. 그는 큰 한숨만 내쉬었고, 나는 받아드리기로 오래전부터 마음먹어왔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40주년만을 기다려왔으니까 덤덤해져버렸다.
그리고 해가지고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뜰 무렵, 결혼 40주년 당일 아침.
차갑게 식어버린 그의 몸에서 난 알 수 있었다. 그가 떠났구나하는 것을.
하지만 잡고 있던 손만은 따뜻했다. 40년 전 첫날밤을 치르던 그 날의 그의 손처럼 그렇게 따뜻했다.
여보, 고마워요.
당신은 나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당신과 나의 40주년은 잊지 못할 거예요.
앞으로 당신과 함께 할 400주년, 4000주년도 잊지 않을 거예요.
고마웠습니다....
...
당신을 처음만난 건 18살.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 40년을 함께 살아왔어요.
그래서 나에게 숫자‘4’는 행운의 숫자예요.
당신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행운이었어요.
***금혼식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은 25주년 기념일인 은혼식과 함께 대표적인 결혼기념일 행사이다.
금혼식 때는 결혼식 때 참석했던 손님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고, 부부는 신랑 신부로 불리며
각자 결혼식 때 사용했던 물건을 한 가지씩 몸에 지닌다. 신랑은 순금으로 된 물건이나 보석을 선물로 주고,
가족과 친구들도 신부에게 꽃과 기념품을 준다.
***
네네 안녕하세요, 보보네 입니다.
말머리를 해피로 달았는데 죽었는데 뭐가 해피야
하실 거 같아서 말씀드려요.
소설속의 ‘그’가 죽습니다. 하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고마웠다고, 행복했다고 말하죠.
그래서 해피로 했어요. 마지막에 행복을 느꼈으니까
결말은 해피인거죠!
이상- 황당 무괴한 보보네의 해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 이거 원래, 인소닷 4주년 기념때,
단편 이벤트로 올렸던 건데, 4주년보단 40의 의미가 컸죠,
그래서 안될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는데.
진짜 안됬어요ㅜㅜ
하지만 제가 이벤방에 올릴 때 몇번이나 수정하고 감정 몰입하고
썼던거라 너무 아까워서, 좀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예요.
작은 관심도 저에겐 큰 희망이 된답니다,
코멘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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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한번쯤 목숨을 걸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단편. 행운의 숫자 '4'
장편. 아파트, 804803 (새싹4에서 연재중)
첫댓글 멋지네요 ;ㅁ;! 우와하;ㅁ;).......감명깊게받았습니다!
이누상님, 감사합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