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선생님
강중구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하숙방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노라면 철썩, 철썩, 쏴- 하는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그래도 잠이 들지 않는 밤이면 라디오를 켰다. 그러면 그 무렵 한창 유행하던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이 흘러나왔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중학교 교사에 임함 거제 OO중학교 근무를 명함. 1967년. 4월 1일. 문교부장관’
이 사령장 한 장이 심심산골 합천에서 나고 자라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하고 있던 나를 하루아침에 섬마을 선생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령장을 받은 나는 지도책을 펼쳐놓고 거제도 고현이 어디쯤 있으며 어떻게 찾아가야할 것인가를 검토해보았다. 다행히 나는 지리학이 전공이어서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합천에서 진주로 가서 비스를 바꿔 타고 고성을 거쳐서 충무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여서 거제도로 가는 배는 끊어져 버리고 없었다. 부둣가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아침에 금양호를 타고 거제도 성포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간 학교는 계룡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다.
개교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운동장마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학교는 황량하기 그지없었고 잡초가 무성한 후원에는 6.25전쟁 때 지은 거제포로수용소 건물이 아테네 신전처럼 늘어서 있었다.
3개 학년 5개 학급으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는 단출해서 좋았다. 하지만 8명의 교사가 한 학년에 15,6개나 되는 교과목을 가르치려니, 한사람이 3~4개 과목을 맡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교무주임이 된 나는 교과배정을 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지리학을 전공한 나는 지리는 물론이고 역사와 일반사회, 심지어는 물상까지 맡아서 가르쳐야 했고, 체육교사는 음악과 미술을 맡아야 했으며, 그해 처음 교단에 선 가사교사는 물상을 맡으라고 하자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으니, 섬마을 학교 선생님들의 교과배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그러니 수업인들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그래도 학생들이 순박해서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전공과목이야 문제될 것 없지만 상치 과목을 가르치다가 막히기라도 할라치면 학생들이 먼저 눈치를 채고 “선생님, 연구해서 다음시간에 가르쳐 주시고 재미나는 이야기나 해 주십시오.”라면서 떼를 썼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도루코 면도칼로 호랑이 잡는 이야기랑 대창으로 곰을 잡는 이야기하며, 기름기 많은 고기로 오리를 잡는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해주었다.
그리고 정규수업이 끝나고 나면 보충수업도 자율학습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도 섬마을 학생들은 부산의 명문 K고교로, 서울의 S대학교로 진학을 했으니 기특한 일이 아닌가.
그러다가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가서 낚시를 하거나 해수욕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학교 뒤에 높이 솟은 계룡산을 오르면서 호연지기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 무렵 풍금을 배워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노라는 단발머리 소녀가 나를 찾아왔다. 내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중학교로 왔기 때문에 풍금을 탈 줄 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풍금이 서툴기는 하지만 그 소녀의 소망을 들어주었다. 퇴근시간 후 학교로 찾아오는 소녀에게 나의 서툰 풍금 교습은 시작되었다. 도-레-,미-,로 시작된 풍금 교습은 소녀가 총명해서 진도가 빨리 나갔다. 그래서 학교종이 땡-, 땡-, 땡-, 을 거쳐서 몇 달이 지나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나아갈 수 있었으니 참으로 대단한 발전이었다.
나는 초등학교교사 자격고시검정 시험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내가 몇 년 동안 고전을 하다가 1년 전에 중등학교 교원자격고시검정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에 그 방면에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풍금 교습이 끝나고 난 한가한 시간이면 우리는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고현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거제포로수용소 건물이 늘어선 학교 후원을 거닐기도 하고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찾기도 했다.
그런데 다음해 3월 나는 육지의 어느 고등학교로 발령이 나 버렸다. 그래서 소녀의 음악교습은 끝이 나 버렸고 나는 섬마을 선생님 생활을 접게 되었다.
섬마을을 떠나는 나에게 소녀는 바닷가에서 주웠다는 하얀 조개껍질을 주었다. 육지에 가도 이 조개껍질을 보고 있노라면 고현만의 파도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면서.
손을 흔드는 소녀를 뒤로 하고 배를 타고 섬을 떠나는 나의 귓가에는 섬마을 선생님 노래가 끝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구름도 쫓겨 가는 섬마을에 무엇 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