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별곡 3
사월 넷째 토요일은 평소 출근보다 이른 시각 등교를 서둘렀다. 나는 평일엔 학교로 출근하고 주말엔 산야로 등교한다. 생계를 잇는 교사라 주중엔 직업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러 학교로 간다. 휴일이나 방학이면 자연에서 한 수 배우려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그런데 이날은 한 달 전 목적지를 정해둔 경주 산내 친구 농장으로 가는 걸음이었다. 지난 삼월 말 친구와 약속되어 있었다.
창원종합터미널에서 포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는 김해 대동을 지나 양산에 잠시 들렸다가 언양을 거쳐 지날 때 내렸다. 경주 산내 골짝에서 주말 농장을 일구고 사는 울산 친구를 언양터미널 맞은편에서 접선했다. 친구는 연로하신 모친과 동행했다. 우리는 국도를 따라 석남사 방향으로 올라가 산내로 넘어갔다. 산내면소재지를 지나 감산리에서 골짜기로 계속 들어갔다.
첩첩 산들은 연초록 신록이 눈부셨고 친구 텃밭 마당귀는 라일락꽃이 피어 있었다. 여장을 풀고 텃밭을 둘러보았다. 지난번 들렸을 때 심어둔 약초와 산나물이 궁금했다. 곰취 이랑 곁에 심은 잔대에선 새순이 돋아났다. 버섯장에는 표고가 자랐다. 친구는 일주 만에 들렸기에 주말 이틀 동안 하고 나갈 일거리를 구상하고 있었다. 나도 육체를 단련하여 영혼을 정화하고 싶었다.
친구 모친께서 거실을 정리하는 동안 둘은 야외 탁자 앞에 앉아 곡차를 몇 순배 들었다. 안주는 친구가 손수 담근 곰취와 오가피순 장아찌였다. 이어 친구는 지하수 모터를 수리하는 동안 나는 산밭으로 올라가 지난번 심은 잔대 이랑에 시든 포기를 보식했다. 각자 맡은 일을 끝내고 나서 친구는 관리기로 밭이랑을 지었다. 지난번 심어둔 방풍나물, 어수리, 영아자나물 곁이었다.
친구가 관리기로 땅을 일구는 사이 나는 참나물 포기를 캐 모았다. 친구가 작년까지 묵혀둔 산나물 이랑엔 참취와 곤드레와 참나물이 섞여 자랐다. 그 가운데 개체 수가 많은 참나물은 이랑을 새로 하나 더 만들어 심으려고 했다. 친구는 관리기로 땅을 일구고 나는 참나물 포기를 뽑아 놓고 점심을 먹었다. 식후 휴식도 줄이고 친구는 표고버섯을 땄다. 멀리서 온 나를 위해서였다.
친구는 표고버섯을 키워 자기 집으로 가져가기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낸 양이 훨씬 많지 싶다. 다음 주에는 처가댁 식구들이 들어온다기에 얼마간 남겨 놓아야 한다고 했다. 친구가 나를 위해 표고버섯을 따는 동안 나도 친구를 위해 할 일이 있었다. 친구 농장 주변 산언덕에 올라 절로 자라는 달래를 캤다. 친구가 좋아하는 달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캐 올 수 있었다.
표고버섯과 달래를 캐 놓고 산채를 더 장만했다. 친구네 가족들이 즐겨 먹는다는 엄나무 순을 땄다. 내가 떠나온 창원 엄나무는 진작 피어 이젠 나물로써 가치가 없어졌는데 경주 친구 농장은 워낙 깊은 산골이라 이제 보드라운 순이 나오고 있었다. 서울 사는 친구의 아우가 엄나무 순을 좋아한다기에 나는 친구보고 택배로 보내길 권했다. 약재로 쓸 엄나무 가지도 조금 잘랐다.
버섯과 산채를 정리해 놓고 아까 못다 한 참나물 이랑을 지었다. 이랑을 다 짓고 나서 참나물을 심었다. 그새 석남사에서 가까운 고훤산 기슭 산골 분교에 근무하는 대학 동기가 찾아왔다. 동기는 올 여름 교감자격 연수를 받을 예정이다. 우리는 교감에 뜻을 두지 않았다만 동기는 다른 또래들보다는 승진이 늦은 편이었다. 동기 가운데 일선 학교 교장이 되어 나간 친구도 몇 된다.
참나물을 다 심고 물까지 주었다.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셋은 거실에서 곡차를 비웠다. 친구보고 연세 많으신 모친께 마음을 잘 써 드리자고 했다. 나는 두 친구가 대작하고 있을 때 일찍 잠들었다. 중간에 친구가 흔들어 깨우기에 일어났더니 함께 잔을 비우던 녀석이 차를 몰아 떠났다고 씩씩거렸다. 내가 확인해 보니 울산 집으로 가지 않고 산골 학교 사택으로 가 마음 놓였다. 1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