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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선생님]전남 완도군 청산도 청산중 김상일 선생님 |
“우리 아이들, ‘청산도의 피카소’ 꿈꿔요” |
2010-02-01 오후 12:42:34 게재 |
섬은 아련한 동경이다. 낭만과 신화가 가득 쟁여져 있는 곳이다. 섬마을 선생님은 왠지 달콤한 로맨스와 깊은 사연을 지닌 주인공 일 것만 같다. 그래서 섬마을 유람에 나섰다. 섬마을 선생님들의 훈훈한 휴먼스토리와 낙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지면에 담아낼 작정이다. 서해의 백령·연평군도에서 남해 한려수도를 돌아 동해의 울릉도까지…. 청산도에 내렸다. 그날의 마지막 배였다. 도청항엔 어둑어둑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초로의 한 남자가 휘적휘적 다가온다. 개량한복 위에 잠바를 걸쳤다. 머리엔 헌팅캡을 쓰고 있다. 외모에서부터 예술인 분위기를 팍팍 풍긴다. 청산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화가 김상일(55) 선생님이다. “아이고, 뭐 하러 마중은 나오셨어요.” “워매 서울에서 손님이 오시는디 마땅히 모시러 나와야지라.” 걸쭉한 남도 사투리에 정이 뚝뚝 묻어난다. 수인사를 마친 뒤 선생님이 잰 걸음으로 앞장서 걷는다. 꼬불꼬불 언덕길은 벌써 깊은 어둠에 묻혔다. 숨이 조금 가빠올 즈음 환하게 불을 밝힌 아담한 2층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1~3학년 통틀어 40여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청산중학이다. 왼편으로 학교를 끼고 언덕길을 더 오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학교 오른편 산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관사였다. 관사의 주방은 응접실로도 쓰이는 곳이다. 연잎차와 감잎차, 뽕잎차 등 각종 차들이 다기와 함께 방 한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선생님이 연잎차를 우려 내놓는다. 산중 암자의 도인과 마주 앉은 느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크고 작은 미술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조선대 주최 전국사생대회 특선도 했고, 전남매일신문에서 주최한 전국파스텔대회에서 최고상을 받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어릴 때 양조장에 다니셨는데 월급날이면 도화지를 잔뜩 사오고는 하셨어요. 그림 특기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목포 제일중학에 진학했습니다. 광주 농고 미술부를 거쳐 조선대 미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지요.” 대학시절엔 인상파 화가들의 세계에 푹 빠져 지냈다. 서울에서 마네와 모네, 르느와르의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면 열일 제쳐놓고 달려갔다. 대학 졸업 후 전남 화순에 있는 춘양중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제자들 교육에 젊은 열정을 쏟았다. 40대 초반 들어 웬일인지 자꾸 몸이 쇠약해져 갔다. 우선 몸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은 20년 교직생활을 접는다. 평소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전업화가의 꿈도 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다. 여기서 선생님이 잠시 말을 끊는다. 찻잔들을 치우고는 대신 술잔들을 내놓는다. 해삼과 멍게를 안주로 내놓는다. 권커니 잣커니 몇 순배 소주잔이 돌아가고 난 뒤 선생님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학교를 그만 둔 뒤 낙안으로 내려가 화실을 냈어요. 대학 동창인 송팔영이란 친구가 거기서 도예 공방을 열고 있었거든요. 그 친구랑 워낙 친하기도 하고, 풍광도 좋은 곳이고….” 이후 작품 활동에 매진한 선생님은 1989년 전남 광주에서 제1회 수채화 개인전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연다. 선생님이 화첩을 보여준다. 화첩 속의 작품들은 주로 고향과 어머니를 통해 세월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과 퇴락해가는 고향 골목길의 풍경 속에 슬픈 노스탤지어가 가득 담겨 있다. 2009년 4월 선생님은 청산도로 왔다. 청산중학의 정연국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기간제 미술교사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던 것이다. “정연국 교장선생님은 학교 급식개혁과 우리농산물이용 운동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제가 평소 존경하던 분이었어요. 그분 덕에 십 수 년 만에 다시 아이들 앞에 설 수 있게 된 셈이지요.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인 청산도라면 작품 활동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을 했지요. 저에게 청산도는 폴 고갱의 타히티 섬 같은 곳입니다.” 취흥이 도도해 질 무렵 선생님이 갑자기 일어서더니 화구를 챙겨온다. 물감을 개고는 붓을 잡는다. 필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일필휘지로 붓 끝을 놀린다. 불과 2~3분이나 됐을까. 도화지 위엔 크로키로 잡은 필자의 프로필이 살아있는 자신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 표정과 특징을 화폭위에 옮겼을까. 취중에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크로키는 상대방을 내 가슴에 담는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교감이 중요해요.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을 내 안에 들이는 작업이 바로 크로키입니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단순함 속에 있다고 했던가? 선생님은 미술의 경지 역시 단순화하고 비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얼마나 잤을까.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끼오, 꼬끼오…. 관사 바로 옆에 있는 닭장에서 들여오는 소리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수탉 울음소리인가. 청산도의 자명종은 수탉의 울음소리였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뜰로 나섰다. 순간 눈앞에 한 폭의 산수화가 펼쳐진다. 눈을 시리게 하는 쪽빛바다와 그 위를 지나는 작은 고깃배,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 포구 안쪽으로 포근하게 안겨 있는 도청항…. 어두운 밤에 도착한 탓에 하룻밤을 자고 나서야 청산도와 사실상 첫 대면을 하게 된 것이었다. “참 예쁘지요? 고갱의 타히티 섬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요?” 어느 틈엔가 선생님이 옆으로 다가서면서 말했다. 바다도, 산도, 나무도, 햇빛도 이만큼 찬란한 빛을 내는 곳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은 처음입니다. 바다의 색깔이 하루에도 여러 바뀐답니다.” 아침의 태양은 조물주의 붓이다. 조물주의 붓은 새벽의 하얀 여백 위에 천사만물의 찬란한 모습을 하나 둘 그린다. 매 순간 다른 빛으로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요즘 통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어요. 저렇게 이쁜 것을 어떻게 화폭에 옮길 수 있겄소. 가끔 팔레트와 물통, 와트만지(수채화를 그리는 데 쓰는 두꺼운 순백색 도화지)등을 펼쳐놓고 붓을 들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냥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지요.” 방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이리저리 구도를 잡아가며 셔터를 눌러본다. 무기력감이 밀려온다. 카메라인들 자연의 저 찬란함을 무슨 수로 담아낼 것인가. 붓을 들고도 그리지 못하는 선생님의 심정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래 굳이 사진 속에 다 담아내겠다고 안달복달 할 건 무언가. 저 아름다움을 마주한 행운만으로도 행복한 것을. 선생님은 3학년 수업 중이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까지 울린다. 열댓 명 정도의 아이들이 19세기 근대미술에 관한 선생님의 열강을 듣고 있었다. 간간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진다. 수업을 종료하는 종이 울린다. 갑자기 한 아이가 큰 소리로 선생님에게 묻는다. “사부님, 연예계 데뷔하신다더니 언제 하실 꺼예요? 저를 매니저로 임명하신다는 약속은 지키실 거지요?” “그래 범진이는 매니저하고, 부지런한 광주는 운전기사, 동률이는 덩치가 크니까 경호팀장하면 되겠네.” 선생님이 연예계 데뷔를 한다니 무슨 소릴까? 수업을 마치고 교실 문을 나서던 선생님이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수업은 겁나게 재미있게 해야 된다는 게 저의 평소 지론입니다. 교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으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웃음교육부터 합니다. 얘들아, 우리 한바탕 웃어 볼까나? 안동 하회탈처럼 다 함께 하하하! 그러면 아이들의 웃음이 깔깔깔 터지지요. 하루는 한 학생이 ‘선생님, 코미디언 하시면 대박날 거예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네가 매니저해라’ 하면서 또 웃었지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웃음보따리’만 안기는 게 아니다. 틈만 나면 ‘칭찬 보따리’도 안긴다. 그림을 잘 그린 녀석에게 ‘오늘은 네가 피카소다’ 혹은 ‘야, 마네와 모네가 쌍으로 울고 가겠네’ 하고 칭찬 해준다. 실제로 선생님은 ‘청산도의 피카소’를 꿈꾸는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침 8시부터 아침 조회 전까지 미술반 학생 여덟 명을 지도하고 있어요. 대도시 아이들의 그림은 딱딱하고 도식적인데 비해 여기 아이들 그림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개성을 담고 있습니다. 2009년 여름 목포대학 주최 미술사생대회에 여섯 명이 참가 했는데 이중 두 명은 특선, 한 명은 입선을 하는 좋은 성적을 올렸답니다. 방학 기간에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지도도 하고 있어요.” 그날 오후 선생님은 도청항 선착장으로 나갔다. 뭍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예술적 끼를 닮았는지 도예를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배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는데도 미리 나가 서성인다. 배에서 걸어 나오는 아들을 발견하는 순간 선생님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오랜만에 만난 부자가 회포를 푸는 처방으로 술만 한 게 있을까? 예술인 부자를 이끌고 선착장의 수산물 공판장으로 들어갔다. 어제 저녁에 진 신세를 갚고 싶었다. 커다란 고무 함지 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우럭과 놀래미를 몇 마리 잡고, 자연산 돌멍게와 홍합도 한 접시씩 시켰다. 횟집 주인 아주머니가 능숙한 솜씨를 회를 뜨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 데 부자는 벌써 소주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들아, 우리 집 가훈이 뭐라고 했지?” “신간 편하게 살자! 내 인생 내가 찾자!” 그래, 신간 편하게 사는 거야. 욕심도 미움도 원망도 훌훌 털어버리는 거야. 마음속엔 그저 허허로움을 남겨두면 그뿐. 그나저나 내 인생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하지? 박상주 오지여행가 |
첫댓글 이글을 읽으니 김선생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며 함께한 기억들이 소중하게 되 짚어집니다. 참으로 신간편하시게 멎진 삶을 사시는 분이시네요. 언제 광주에서 작품전을 하시는 걸 보고 싶네요.
짧은 시간 동안 그 분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며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집니다. 글과 사람이 그대로 일치하는 거 같습니다. 너무나 소탈하고 순박하신 모습이 너무나 좋았기에 다시 또 뵙고 싶군요.
김선생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또 귀한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는 마음 외에도 세삼 느끼고 배운게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쳐 온 중요한 것들 - [유머와 여유], 슬로시티에서 그 섬의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는 친구의 아름다운 삶에 늘 기쁨과 행운과 건강이 함께하기를...
낙안에서 뵙고 두번째의 만남이었는데 모습이 여전하여 단번에 알아 보았습니다. 특히 화실에서 보았던 시골 할머니와 몇몇 정물들이 되살아 났어요. 작품은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힘이 있나봅니다. 김선생님의 적적한 안내로 청산의 겨울을 화사하게 둘러보았습니다. 타이티섬 보다 더 아름다운 청산기행 하시기 바랍니다.
김선생님 눈 빛을 잊을수가 없는데......이글을 읽고있으니 더욱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