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순례는 제주에서 인천으로 차를 싣고 배를 타고 가려하였지만
배 수리와 점검 관계로 승객은 탈 수 없다 했다.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내려 차를 찾으로 인천여객터미널로 가는 불편함 때문에
렌트를 하려고 하였는데, 사위 차를 일주일 간 빌려준다고 하여
사위차로 순례를 하기로 하였다.
제주에서 8시 45분 비행기를 타기위해 차를 면사무소 주차장에 주차하고
제주공항가는 직행버스 첫차 (6시 34분)를 막 타려는 순간
도장을 받아야하는 성지순례 책자를 집에 놓고 온 것이 생각나서 타지 못함.
시간을 보니(공항까지 1시간 걸림) 다음 직행버스는 7시 8분이었음.
아내는 우리 차를 공항근처에 주차하자고 했으나
부칠 짐도 없었기에 위태롭지만 다음 직행버스를 타자고 우겼다.
정상으로 도착하면 8시 8분 도착이기에 25분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가 밀려서 10분 늦은 8시 18분에 도착했다.
서둘러 탑승수속을 마치고 검색대를 통과하니 우리 비행기가
15분 늦게 출발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다.
공항오는 직행버스 안에서 한 자매를 만났는데
아내에게 필요한 병원정보를 알려주었다.
유용한 정보였다.
지나고보니 마음은 졸였지만 집에 책자를 두고와 다음 차를 탄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이루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처럼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그분을 찬미하는 순간이었다.
103. 행주성당
특별 전대사 성모 순례지
성모승천을 주보로 모신 행주 성당은 2016년 1월 25일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전과 특별한 영적 유대를 맺고
특별 전대사 순례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해 같은 해 10월 26일 대구 대교구 성모당을 모델로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동굴과 같은 모양의 성모당을 건립해 축복식을 가졌다.
한강 이북 최초의 한옥 성당
1899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두세 신부가 공소를 세웠다.
행주 성당은 서울 명동. 약현 성당에 이어
서울과 경기 북부권에서 세 번째로 세워졌다.
2010년 2월 등록문화재 제 455호로 지정됐다.
성당 건물은 근대 초기의 목조 한옥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화산성당에 이어 두 번째이다.
104. 김포성당
1946년 11월 서울대교구 행주 본당(현 의정부교구)에서 분리되어
매괴(로사리오)의 성모를 주보로 설립된 김포 성당은 현 인천교구에서는
답동 주교좌성당과 소사 성당에 이은 세 번째 본당이다.
새 성당을 지으면서 옛 석조 성당에 있던 종을 그대로 새 성당 종탑에 옮겨와
옛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김포 성당만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다.
예수 부활 대축일 전야미사 때와 새로운 한해를 맞는 12월 31일 자정에는
신자들이 직접 종을 울린다.
105. 일만위 순교자 현양동산
우리 교회에는 적게는 만 명, 많게는 삼만 명의 순교자가 계시지만
우리가 이름 정도라도 알고 있는 순교자는 약 1,000여 명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수많은 신앙 선조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에 인천교구에서는 2002년 강화도에 '한국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을 조성하여
한국의 순교자들, 특히 '무명 순교자'들께 봉헌하였다.
이곳에는 전국의 유명 성지의 상징물들이 있는 '순교자의 길'이 조성되어 있고,
순교자 현양당과 무명 순교자상, '일만 위 순교자 현양탑' 등이 있다.
106. 갑곶 순교성지
병인박해의 회오리는 강화대교 서쪽 끝에 서 있는
갑곶돈대(甲串墩坮, 사적 제306호)에서 일기 시작했다.
1871년 신미양요(申未洋擾) 때는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로 처형당한 강화에 살던 천주교 신자
우윤집(禹允集), 최순복(崔順福), 박상손(朴尙孫) 등이 갑곶진두에서 순교하였다.
총 세 개의 건물로 건립된 영성센터는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순교한
세 순교자를 기리고자 박상손관(A관), 우윤집관(B관), 최순복관(C관)으로 명명되었다.
박상손관과 우윤집관은 영성수련관으로 총 50개의 방을 구비해
한 번에 100명의 단체 피정이 가능해졌다.
최순복관에는 성당과 사제관, 수녀원 등이 들어섰다.
107. 진무영 순교 성지
진무영(鎭撫營)은 숙종 4년(1678년) 강화도와
주변 지역의 군사들을 함께 엮어 창설한 군영(軍營)이었다.
1868년 5월(음) 장치선(張致善) · 최영준(崔英俊) 등이
진무영에서 효수(梟首)되었다.
한편 진무영 순교자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박 서방, 조 서방 등도 순교하였다.
박 서방은 박순집(朴順集, 베드로)의 형이었다.
이번 3차 순례여행은 서울부근을 순례하기에
가능한 많은 친지와 지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첫날은 성지 5곳만 방문하고 형님, 형수님과 댁 근처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4시 경에 만나 설렁탕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2시간 가량 머물렀다.
제주 집에서 뜯어간 약간의 두릅, 방풍나물, 머위, 달래, 쑥갓을 전달하자
형님이 여행중에 먹으라고 간식을 직접사서 한 보따리를 주셨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님댁에서 자라고 하셨지만, 형수님도 힘들고 불편할 것 같아
10여분 떨어진 모텔에서 묵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핸드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내려와 주차된 차를 살펴보니 의자옆 빈 공간에 떨어져 있었다.
출발부터 여러가지 실수로 가슴졸임의 연속이었다.
숙소는 이제까지 잔 모텔 중에서 제일 좋았다.
가격도 6만원으로 저렴하고 시설도 깨끗하고 침대도 더불, 싱글 2개가 있었다.
샤워실, 사우나실 욕탕등이 있어 고단한 하루를 푹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