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의 장편시 만프레드에 의한 작품
영국의 낭만파 시인.
국적 : 영국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영국 런던
주요저서 : 《게으른 나날》(1807) 등
주요작품 : 《카인》(1821) 《사르다나팔루스》(1821) 《코린트의 포위》(1816)
런던 출생. 아버지는 미남이었으나, ‘미치광이 존’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방종한 가난뱅이 사관(士官)으로, 전처의 자식이 있었다. 후처로 들어온 바이런의 어머니 캐서린 고든은 스코틀랜드의 어느 부호의 재산 상속인이었으며, 바이런은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1791년 아내의 재산마저 탕진해 버린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방랑하다가 죽자, 그는 어머니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항구도시 애버딘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오른 다리가 기형인 아들에게 냉담하기도 하였으나 독실한 청교도(淸敎徒)인 유모 메이 그레이의 캘빈주의의 종교교육을 받아 후일 이 시인의 악마주의(惡魔主義)는 심각한 내부적 반항으로 승화되었다.
1798년 제5대 바이런 남작(男爵)이 죽음으로써 제6대를 상속하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노팅엄셔의 낡은 뉴스테드 애비의 영주(領主)가 되었다. 이듬해 런던에 올라와 다리지의 예비 칼리지를 거쳐 해로 스쿨에 다녔다. 다리는 부자유하였으나 수영과 크리켓도 잘 하였다. 1805년,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들어가, 시집 《게으른 나날》(1807)을 출판하였다. 이 시집에 대한 《에든버러 평론》지의 악평에 분개하여 그는 당시의 문단을 비평한 풍자시 《잉글랜드의 시인들과 스코틀랜드의 비평가들》(1809)로 울분을 풀었다.
그 후 생활태도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모험의 꿈을 안고 소작인의 아들과 종복(從僕), 친구 홉하우스를 데리고 배로 고국을 떠났다. 그는 이 때 이미 성년(成年)으로 상원(上院)에 의석을 두고 있었다. 리스본에서 육로로 에스파냐를 돌아보고, 몰타섬과 알바니아를 거쳐 아테네와 마라톤에 들렀으며, 스미르나에 머물면서 장편서사시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遍歷)》(1, 2권, 1812)을 썼다. 그 후 2년 남짓한 긴 여행을 끝마치고 1811년에 귀국하였다. 1812년 상원에서 산업혁명기 방직공의 소요탄압(騷擾彈壓)에 항의하는 열변을 토해 이름을 떨쳤으며, 또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의 출판으로도 생의 권태와 동경을 실은 분방한 시풍과 이국정서(異國情緖)가 큰 호응을 얻어 일약 유명해졌다. 그 후 스콧의 뒤를 이어 담시(譚詩) 《아바이도스의 신부》(1813) 《해적》(1814) 《라라》(1814) 등을 잇달아 출판하였으며, 반속적(反俗的)인 천재시인, 미남인 젊은 독신귀족이라 하여 런던 사교계의 총아로 등장하였고, 캐롤라인 램 남작부인, 이복 누이 오거스터 리 부인, 옥스퍼드 백작부인 등과 관계를 가졌다. 1815년 양가의 딸인 애너벨러 밀뱅크와 결혼하였으며, 《헤브라이 영창(詠唱)》(1815) 《파리지나》(1816) 《코린트의 포위》(1816)를 출판하였다. 그러나 딸 출생 후 아내의 별거 요구로 1816년 고국을 떠났다. 그 해 여름을 셸리 부부와 스위스에서 지내면서,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3권, 1816) 《실롱의 죄수》(1816) 등을 썼다. 그 후 베니스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도 《맨프렛》(1817) 《타소의 비탄》(1817) 《베포》(1818)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4권, 1818) 《마제파》(1819) 등을 썼으며, 또 대작(大作) 《돈 주안》(1819∼1823)에 착수하였다.
셸리가 영국에서 온 이듬해인 1819년에는 테레사 귀치올리 백작부인과 동거생활을 하였는데, 그 동안에도 《돈 주안》을 계속하여 썼으며, 《단테의 예언》(1821)과 4편의 시극(詩劇) 《마리노 팔리에로》(1820) 《카인》(1821) 《포스카리 2대》(1821) 《사르다나팔루스》(1821)를 썼다. 1822년에 셸리와 리헌트를 불러 《리버럴》지를 발간하여, 풍자시 《심판의 꿈》(1822) 등을 발표하였으나, 셸리의 익사(溺死)로 4호밖에 내지 못하고 폐간하였다. 1823년 그리스 독립군을 도우러 갔다가, 고난 끝에 1824년 4월 미솔롱기온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였다. 그러나 바이런의 비통한 서정, 습속에 대한 반골(反骨), 날카로운 풍자, 근대적인 내적 고뇌, 다채로운 서간 등은 전유럽을 풍미하였고,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그의 작품이 널리 애송되었다.
Piotr Tchaikovsky - Symphony "Manfred" Op.58
Key: b Minor
Orch: 2 Fl.+1 Pic., 2 Ob.+Eng.Hrn., 2 Cl.+B.CL., 3 Bsn. / 4 Hrn., 2 Tpt.+2 Cor., 3 Tbn., 1 Tuba / Timp., Perc., Harp / Str. / Harmonium
Composed: 1885
-발라키레프의 요청작
만프레드는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고있는 알프스의 성주로 마녀의 힘을 빌려 죽은 연인의 환영을
만나고 파멸하는 인물입니다
I
Lento lugubre
II
Vivace con spirito
III
Andante con moto
IV
Allegro con fuoco
4부분으로 이루어지는 교향시 비슷한 곡입니다
몽상 정열 어둠의 환영에 탐닉하는 만프레드처럼 곡도 시종일관
어둡고 몽상적인 환영이 느껴지는 곡입니다
피날레의 하모니움 오르간 소리에 의해 장대하게 대단원을
울리는 곡입니다.
만프레드는 슈만도 동명의 서곡을 남겼듯이
작곡가들에게 상당한 영감을 준 작품입니다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과 이 곡을 비교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같은 작품을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