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은 자연의 신비를 볼 수 있어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으로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랍니다! 이러한 성산일출봉의 숨겨진 다양한 이야기들을 알려드리려고 해요! 다함께 성산일출봉 이야기 속으로 빠져볼까요?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의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마그마가 물속에서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수성화산체에요. 화산활동시 분출된 뜨거운 마그마가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면서 화산재가 습기를 많이 머금어 끈끈한 성질을 띄게 되었고, 이것이 층을 이루면서 쌓여 지금의 성산일출봉이 되었답니다. 바다 근처의 퇴적층은 파도와 해류에 의해 침식되면서 지금처럼 경사가 가파른 모습을 띄게 되었는데요. 생성 당시엔 제주 본토와 떨어진 섬이었는데, 주변에 모래와 자갈등이 쌓이면서 간조 때면 본토와 이어지는 길이 생겼고, 1940년엔 이곳에 도로가 생기면서 현재는 육지와 연결되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상에 오르면 너비가 8만여 평에 이르는 분화구를 볼 수 있는데, 그릇처럼 오목한 형태로 안에는 억새 등 다양한 풀이 자라고 있어요. 분화구 둘레에는 99개의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자리하고 있어 이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고 해서 '성산(城山)', 해가 뜨는 모습이 장관이라 하여 '일출봉(日出峰)'이라는 뜻이 합쳐서 성산일출봉이라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성산일출봉에는 제주의 아픈역사도 간직하고 있어요. 1943년에는 일본군이 이곳을 요새화 하기 위해 일출봉 해안절벽에 24개의 굴을 파 폭탄과 어뢰등을 감춰두는 용도로 사용했었는데 이때 판 굴은 높이 3~5m 넓이 3m 길이 10~50m 정도로, 서너 개의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로 통하도록 해놓은 굴까지 있었답니다. 이 굴을 뚫을 당시 일제의 수탈은 너무 가혹하여 성산리 주민들은 이를 피해 다른 마을로 이주해 갔다고도 해요. 이후 시간이 흘러 이 굴들은 해녀의 탈의장으로 사용되었어요. 출처 - 제주관광정보 사이트 비짓제주(www.visitjeju.net) - 제주관광공사 성산일출봉과 본토를 잇는 길목은 간조때 길이 생길때 길이 터진다하여 터진목이라 불렸는데, 이곳과 일출봉의 우뭇개 일대에서 4·3항쟁 당시 많은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가슴 아픈 사연도 갖고 있어요. 현재 터진목 초입에는 성산읍 4·3희생자 유족회가 2010년 11월 5일에 세운 위령비가 자리하고 있어요. 이 위령비에는 추모글과 함께 성산면 4·3희생자 467위의 이름이 마을별로 새겨져 있어요. 한편, 이곳에는 2008년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르 클레지오의 ‘제주기행문’ 일부가 새겨진 빗돌이 자리해 ‘어떻게 이 아름다운 곳이 학살터로 변했는지?’ 의문을 갖고 있는 글귀가 적혀 있답니다. 성산일출봉 정상에 이르는 가파른 계단 길은 약 2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요. 정상에서는 너른 분화구와 그 뒤로 펼쳐지는 바다의 풍경은 정말 절경인데 예부터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은 영주10경(제주의 경승지)중에서 으뜸이라 하였고, 이에 매년 12월 31일에는 성산일출축제가 열린답니다. 성산일출봉은 지방기념물로 관리하다 2000년 7월 1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빼어난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7월 2일 UNESCO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어요. 또한 2010년 10월에는 UNESCO 세계지질공원에 인증되었고, 2011년도 대한민국 자연생태관광 으뜸명소, 2012년 12월 한국관광 기네스 12선에도 선정되었답니다. 출처 - 제주관광정보 사이트 비짓제주(www.visitjeju.net) - 제주관광공사 성산일출봉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시니 어떠신가요? 아름답고 신비하기만 했던 성산일출봉에게 아픈역사가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숙연하게 바라보게 될 것 같지 않으신가요? 여러분도 아름다운 성산일출봉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시길 바라요~! |
첫댓글 성산일출봉 올라간 날이 엊그제 같아요. 12년이 지난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