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과 편집
헤스턴과 보이드 둘 다 전차를 모는 법을 배워야 했다.
헤스턴은 말을 타 본 경험이 있어서 로마에 온 후 하루 세 시간씩 전차몰기 연습을 한 결과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m][41][128]
헤스턴은 주행 중 튀는 돌과 모래에 눈을 다치지 않도록 특수 콘택트 렌즈를 착용했다.[128]
할리우드에서 말타기에 능숙한 배우 여섯을 데려왔으며 이들은 벤허와 메살라 외 전차수를 연기하였다.
이들 중에는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경호원을 한 적이 있는 주세페 토시도 있었다.[45]
전차경주 신 촬영은 3개월 동안 이어졌고 이 기간 실제 소요된 촬영시간은 5주였다.
비용은 100만 달러가 들었고[129] 촬영 종료까지 말들이 달린 거리는 총 320 킬로미터였다.[120]
마튼과 카누트는 전차경주 장면 전체를 원거리에서 스턴트 대역을 써서 찍은 뒤 이를 짐발리스트, 와일러, 헤스턴에게 보여주었다.
이는 경주 장면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검토하고, 어느 부분에서 헤스턴과 보이드가 근거리 촬영 장면을 직접 찍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129]
관중석에서 환호하는 관객을 연기할 엑스트라로 7000명을 모집했으나[11][120][n] 당시 이탈리아는 경제 상황이 좋지 못했기에 엑스트라 수요 인원은 일당 1500명으로 삭감되었다.
6월 6일 3000명이 넘는 현지인이 엑스트라로 자원하였으나 거부당했다. 이들은 촬영장에 돌을 던지고 진입을 시도하는 등 폭동을 일으켰으나 경찰이 진압하였다.[130]
메살라 전차바퀴에 장착된 칼날에 라이벌 차륜과 차축이 박살나는 장면에는 다이너마이트가 사용되었다.[121]
경주장 주요 장소에 인체 모형을 설치하여 마치 사람이 치이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131]
경주 중 사용된 카메라들 역시 문제점을 드러냈다.
70밀리미터 렌즈의 최소 초점거리는 15미터로, 카메라맨이 전차 앞에 계속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소형 이탈리아제 자동차에 설치했다.
그러나 말들은 460미터 길이 트랙을 자동차보다 훨씬 빠르게 가속하여 달렸기 때문에 긴 초점거리로는 마튼과 카누트가 사진을 찍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프로덕션은 보다 빠른 미국산 자동차를 구입했으나 여전히 말들은 더 빨랐다. 말보다 먼저 출발하는 수를 둬도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초 더 늘어날 뿐이었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시행착오 누적량은 엄청났는데 찍은 분량 대 실제 영화에 삽입된 부분의 비율은 263대 1이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영화 중에서 최고 수준으로 높은 비율이었다.[131]
전차주행 촬영 중 최악의 순간은 야키마 카누트의 아들이자 스턴트맨인 조 카누트가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었다.
그는 사고 당시 하늘로 몸이 솟구쳐 올랐으며 다행히 턱에 경상을 입은 수준으로 끝났다.[132]
마튼은 해당 영상을 보존하기 원했으나 짐발리스트는 이를 사용하기 원치 않았다.
마튼은 묘안을 내었는데, 해당 부분에 벤허가 낙마하지 않고 몸을 추스른 뒤 다시 쿼드리가에 올라타는 장면을 삽입하는 것이었다.[133]
결국 카누트가 사고를 당하는 부분을 잘라낸 뒤 거기에 헤스턴의 근접촬영 연기를 넣었고 이 부분은 전차경주 신의 박진감을 더해 주는 장면으로 거듭났다.[134]
스티븐 보이드는 스턴트 장면 두 군데 연기를 거의 혼자서 했다.[13]
전차가 파괴되어 말고삐를 잡은 채로 바닥에 끌려가다가 다른 전차에 깔리는 장면에서 보이드는 의상 밑에 철제 보호장구를 겹쳐 입어 부상을 방지했다.
이 장면에서 메살라가 말에 밟히는 부분은 마네킹을 사용했다.[132]
전차경주 장면을 다룬 도시전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노셔 파월이 자서전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경주 촬영 중 스턴트맨 하나가 죽었다."라는 소문이다.[135]
다른 것으로는 전차경주 중 빨간색 페라리가 화면에 보인다는 것이 있는데《영화 속 실수》(Movie Mistakes)라는 책에서는 이를 헛소문이라고 주장했다.[136]
경주 중 헤스턴이 손목시계를 차고 있다는 루머도 나왔는데 헤스턴은 영화 DVD 해설 트랙에서 여기에 대해 자신은 당시 팔꿈치까지 닿는 가죽팔찌를 차고 있었다고 말했다.[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