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3, 11, 30, 목요일, 쾌청, 벽운계곡 들머리, 내원암 마당바위 날머리,
수락산 벽운계곡에 있는 바위글을 찾아 "벽운마을"<碧雲洞>로 들어섭니다 ~
벽운동은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혜경궁 홍씨 아바지인 "홍봉한"<1713 ~1778>이 이계곡에 별장을 지었는데 ~
계곡의 하얀 바위와 수락산 절경이 골짜기와 어우러져 마치 흰구름이 머무는것 같다하여 "벽운동" 이라 했답니다~
"벽운동천"<碧雲洞天>은 "푸른 빛 구름이 산천으로 둘러쌓인 경치 좋은곳" 이라는 뜻이구요 ~
"국봉"<菊峰>은 조선후기 "이병직" 선생의 호로 여기 새겨진 글은 선생이 썻다는 기록은 없지만 추정만 한다고 합니다..?
뭔가 글은 새겨져 있는데 마모가 심해 바위가 뚫어져라 쳐다본 결과..?
"탈ㅇㅇ"<侻ㅇㅇ> 추할 "탈" 자 만겨우 해독 했을뿐 나머지 두글자는 깜깜이..?
이 글은 "굉담ㅇ"<宏潭ㅇ> 클 "굉" 못 "담" 만 겨우 판독하고? 한 글자는 매끄럽게 갈렸지 뭡니까..?
토사를 운반해온 물살에 단단한 근육질도? 어쩔수 없이 쓸려 나갈수 밖에 없었을테죠..?
위 쪽에 있는 "소국"<小菊>암각,, 국화 "국"<菊>자를 즐겨 쓰는걸로 보아 서화가인 "이병직선생" 의 남다른 국화 사랑이리라..?
"운천대" <雲湶臺>는 여기서 샘이 솟았다는 의미인지..?
비교적 쉽게 술래잡기를 끝낼수 있었던건,, 한군데 몰려있는 덕분으로,, 못찾겠다 꾀꼬리를 외치고 재도전을 많이 해봤거든요..?
그 시대 선비 문화의 정신과 의미가 이 곳에 녹아있읍니다 !!
개울 건너 내려가면,, 사계절 식당 앞에 암각이 있걸랑요..?
역순으로 올리는데 저기가 진입 데크고 ~
벽운동천에 관한 설명입니다 ~
수락산 등산로를 따라 오다 좌측 "치유 명상의 숲" 으로 내려가면 되거든요 ~
금류폭포를 가기위해 "치마바위" 로 올라갑니다 ~
왜 "치마바위" 인지 묻지는 마사옵고..?
확실한건 롱 ~ 치마는 아닌듯 하고,, 짧은 스커트랄까..?
언제나 보기만해도 반가움에 두손을 부여잡게 만드는 로 ~ 프..?
살아 숨쉬는 순간까지 어찌 놓을수 있으리오..?
한때는 슬랩만을 찾아 다녔지만.. 이제 객기는 금물..?
여유로이 주변을 둘러 보며 숨고르기는 필수죠..?
"금류폭포"<金流瀑浦> 상단의 "금류동천"<金流洞天>은 "박주수"<朴周壽>의 글로 보이고? 웅후하면서도 정연한 필체가 돋보입니다 !!
끝 부분에 "도광 정서오월"<道光 丁西五月>이라 쓰여져,, 1873 년에 새긴것으로 보이며,, <물을 뿌리는 이유 글이 선명해 지거든요>?
이곳은 생육신<生六臣>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세조의 왕위 찬탈로 방랑하던중 10 년간 머문곳이랍니다 ~
옥류폭포로 가기위해 계곡으로 내려오다 발견한 "수락산 문수암"<水洛山 文殊庵> 그런데 암자는 어드메 있는지..?
옥류폭포 상단 좌측에 있는 "옥류동"<玉流洞>각자,, 폭포 윗쪽에 있다는 힌트 하나로 계곡을 이잡듯 뒤지다 찾았지 뭐유..?
수락산 옥류동 글은 "남용익"<南龍翼 1628~1692>이 "옥류폭포"<玉流瀑浦> 윗쪽 왼쪽 "자연대"<自然臺>에 ~
"간폭정"<看瀑亭>을 짓고,, 문인들과 시<詩>를 지어 즐기면서 이 폭포가 알려지게 됐다고 합니다 ~
"간폭정" 맞은편으로 "남용익" 이 이름지은 "구천문"<九天門> 바위에는 "옥류동" 바위글씨가 두개 있는데 ~
아래쪽 작은 글씨는 "금류폭포" 위 "금류동천" 바위글씨를 쓴 "박주수"<朴周壽>의 글로 여겨지고..?
윗쪽에 새겨진 큰 글씨는 이곳을 즐겨 찾았던 "이희조" <李喜朝,1655~1724>가 "우암 송시열" 선생께 청하여 받은 ~
"옥류동"<玉流洞> 글씨를 1704 년에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 <솔로 세척한후 말끔해진 글씨인데 조금은 비대칭이죠>?
"마당바위" 라는 지명을 갖게한 원조 마당바위 되시겠읍니다 !!
한자로 마당 "장"<張> 바위 "암"<巖>자를 써 "장암" <<場巖>이라 불리고,, 인근에는 사기를 굽던 막<幕>이있어 사기막이라 했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