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와 꽃모종을 나누는 사람들은 극락정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신비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이 꽃씨가 아니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꽃이 아니던가?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씨와 꽃모종을 나누어 심는 이웃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외롭지 않고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7년 전 고향에 조상님의 시재를 모시러 갔다가 나는 집안 형님집에서 수선화 구근 10포기를 얻어왔다. 목포에서 서울을 거쳐 연천가지 오는 동안 수선화구근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긴 여정이 지치고 힘들었으리라.
그래고 뿌리가 튼실하여 화단에 심어 물을 주고 정성껏 가꾸었더니 하나도 죽지 않고 잘자라났다. 그리고 매년 노란 생명의 꽃을 피우며 포기가 자꾸자꾸 번져 나갔다. 7년이 지난 지금 금가락지 화단은 노란 수선화 천국이 되었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 자존심, 고결, 신비....라고 하는데,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도 자기를 사랑하며 고결하고 신비하게 자라났다.
그렇게 자라난 수선화를 포기나눔을 해서 이웃집에 나누었다. 웃집 장씨네, 앞집, 김씨네, 새로 이사를 온 아랫집 이씨네, 그리고 저 아랫집 이장집과 새댁집, 인삼집... 이렇게 다섯집에 구근을 포기나눔을 했다. 그러자 웃집에서는 하얀 수선화 한포기를 삽으로 떠왔고, 이장집에서는 백합 세뿌리를 파서 비닐봉지에 넣어 주었다. 또 김씨네 집에서는 땡땡이라는 꽃과, 바위솔, 홍매화 모종을 파서 주었다. 수선화를 다른 집에 시집보내는 것도 즐거웠지만, 애지중지하며 아끼던 모종을 나누워주는 훈훈한 이웃집들의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2016년 4월 19일 고향 무안 집안 형님 집에서 에서 수선화 구근
수선화는 슬프고도 가슴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는 얼굴이 예쁘고 잘생겨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숱한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거절에 마음이 상한 한 처녀는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를 찾아간다.
그녀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나르키소스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나르키소스가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결코 이루어지지 않고 고통을 받게 해달라고 네메시스에게 간청한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그런 처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다.
어느날 나르키소스는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갈증을 느껴 샘을 찾았다. 샘에서 물을 마시려고 물위를 보다가 그만 자신의 잘생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이내 자신과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내린 저주였다.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 보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게 되고, 그가 죽고 난 뒤 샘물가에 한 송이 꽃이 피어났다. 나르키소스의 생명이 바로 수선화로 피어난 것이다.
오, 나르키소스여... 그래서 이토록 수선화는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