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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를 기다린 포르쉐의 상상이 현실이 됐다. 761마력 타이칸의 쇼타임이 시작된다
묘하게 설레었다. 으레 그렇듯 브리핑 시간을 가벼운 저녁 식사 자리쯤으로 생각했던 게 큰 착각이었다. 설마 상하이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본격적인 일정을 할까 싶었다. 레스토랑에는 이미 아시아 전역에서 날아온 기자들이 테이블을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코끝을 자극하는 요리가 하나둘 만들어지는 동안 조용한 대화가 오갔다. 업계 소식만 주고받을 뿐 누구도 이번 출장의 화두인 타이칸에 대해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보고 싶어서 그러리라 짐작했다. 궁금한 부분은 곧 합석할 타이칸 개발 당사자에게 물어볼 심산일 터다.
“우리 포르쉐가 만들었잖아요.” 테슬라와 비교해 어떤 점이 더 나은지 묻는 첫 질문에 타이칸 인테리 및 유저 인터페이스 매니저 미리엄 모하마드가 답했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한바탕 웃음이 오갔지, 그녀의 당찬 대답에서 타이칸에 대한 진심 어린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자동차는 역시 ‘메이드 인 저머니’를 외치는 시대다. 수많은 브랜드가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가 이끄는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넘어서려 애쓴다. 게다가 외계인이 만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자동차 제작에 있어서 자타공인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포르쉐 아니던가. 그들이 만들면 전기차도 남다를 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취재 경쟁이 시작된 이유다. 타이칸에 대한 질문 공세 탓에 저녁 만찬이 때아닌 다이닝 인터뷰가 됐다. 기자들은 머릿속에 질문을 장전한 채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 질문 하나에 답변하면 곧장 또 다른 질문이 날아들었다. 눈앞의 산해진미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질문과 답을 하는 이들에게 열중했다.
개발자들는 워크숍을 이미 시작한 듯하다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즉답을 피하지 않았다. 개발 과정과 시장 포지션, 성능 및 디자인 등 타이칸에 대한 많은 정보를 공유했다. 다만, 다음날 있을 본격적인 타이칸 글로벌 테크놀로지 워크숍을 의식해서인지 자세한 설명을 아끼는 눈치가 역력했다.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버스에 올라 도착한 곳은 상하이 F1 서킷 옆에 자리한 포르쉐 드라이빙 센터였다. 오후 늦게까지 짜인 워크숍 시간표를 보고 이날 하루만큼은 대학 시절처럼 열공 모드를 소환했다. 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졌던 타이칸에 대해 속속들이 들어볼 시간이다. 포르쉐 최초 양산형 전기차를 직접 만날 생각을 하니 괜스레 떨리기까지 했다.
강단에 올라선 타이칸 및 E-모빌리티 라인업 매니저 마인 비엔코터는 지난 5년 동안 매달린 프로젝트를 비로소 공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타이칸은 첫사랑처럼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았다. 과거 창립자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일찍이 전기모터 2개를 단 전기차 ‘P1’을 만들었고,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을 때까지 자그마치 120년을 기다렸다.
물론 그동안의 과정은 새 시대를 맞이할 장엄한 준비였다. 2011년에는 포르쉐 상징과도 같은 수평대향 엔진 대신 전기모터로만 구동하는 콘셉트카 박스터 E를 선보이기도 했다. 중기 하이브리드 전략에 따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얹은 E-하이브리드 모델들도 속속 출시하면서 포르쉐 DNA에 전동화를 엮는 연습을 했다. 연습에 성과가 괜찮았냐고? 파나메라 터보 S E-하이브리드는 무려 680마력을 발휘한다.
마침내 타이칸이 베일을 벗었다. 디자인은 콘셉트카 미션 E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600만 년 전 지상 최고 포식자였던 스밀로돈의 송곳니를 닮은 공기구멍도 그대로다. 낮은 차고, 쩍 벌어진 어깨까지 더한 자태를 보면 짙은 포르쉐 DNA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네 개의 광원을 이용한 주간주행등으로 개성을 뽐내는 LED 헤드램프도 여느 포르쉐와 다르지 않다. 전력 소모량은 더 적으면서 훨씬 멀리 비출 수 있는 레이저 라이트 부재가 아쉬웠다.
길이는 파나메라보다 86mm 짧아 5m에 약간 못 미친다(4963mm). 시트 포지션이 낮아지고, 무게중심이 차체 중앙으로 이동했다. 흡사 911을 운전하는 듯한 스포티한 주행 질감을 선사한다는 게 포르쉐측 설명이다. 최상위 트림인 터보 S를 선택하면 미션 E에 썼던 휠 디자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브레이크에는 10피스톤 캘리퍼를 적용했다. 항상 주행 성능을 넘어서는 탄탄한 제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포르쉐의 고집이다.
타이칸은 새로운 가변 공기역학 장치를 적용했다. 늘씬한 루프 라인을 따라 바람이 흐르면 주행 모드에 따라 앞쪽의 에어 커튼 기술과 가변 리어 스포일러가 연동해 최적의 공기역학 효과를 끌어낸다. 가령 에코 모드에서는 스포일러가 약간만 올라오고, 루프를 넘어오는 바람이 뒤쪽으로 부드럽게 빠지도록 돕는다. 반대로 빠르게 달리는 주행상황이라면 스포일러 각도를 다운포스 발생에 최적화해서 주행 안정성을 높인다.
이때 프런트 쿨링 에어플랩이 활짝 열려 신속하게 브레이크 열을 식힌다. 여기에 앞뒤 차축까지 감싼 풀 언더보디 패널이 더해져 타이칸 터보의 공기저항 계수(Cd)는 0.22(터보 S는 0.25)에 불과하다. 오리지널 911에 뿌리를 둔 타이칸 인테리어는 볼수록 매력적이다. 우선 포르쉐다운 모습을 만들기 위해 운전자 중심의 콕핏과 계기판 쪽이 약간만 솟은 매끈한 대시보드를 구현하는 데 신경 썼다.
새로운 시대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이 될 수 있도록 추가한 요소도 적지 않다. 그중 양산차 최초로 적용 커브드 16.8인치 디지털 계기판은 국내기업 중 한 곳이 포르쉐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고 납품에 성공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도 들었다. 계기판은 어떤 상황에서도 뛰어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므로 뒤쪽 덮개는 삭제했다.
센터콘솔에는 8.4인치 터치스크린을 넣었다. 공조기 외에도 미디어와 충전 상태 등 여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원하지 않을 때 터치되는 경우를 없애기 위해 압력에 의해 동작하도록 세팅했다. 동승자를 위한 10.9인치 터치 디스플레이도 옵션으로 마련했다. 드라이브 모드를 빼고는 중앙 디스플레이랑 크기와 기능이 같다.
에어벤트를 손으로 조작할 일도 없다. 자동화 시스템이 모든 에어벤트를 제어하기 때문에 바람을 직접 맞고 싶다면 포커스 모드를, 무풍 모드를 원하면 디퓨저 모드를 고르면 된다. 바람의 방향을 원하는 곳으로 설정할 수 있는 인디비주얼 모드도 있다.
워크숍 중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단연 퍼포먼스였다. 터보 S의 경우 기본 최고출력 625마력이란 출중한 힘을 지녔다. 론치컨트롤 시 최고 761마력(터보는 680마력)을 발휘하는 오버부스트를 사용하면 슈퍼카 못지않은 가속을 경험할 수 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시간은 2.8초면 충분하다.
더 놀라운 점은 퍼포먼스 지속 능력이다. 시속 200km까지 가속하는 실험을 26회 연속 실시했는데도 전기모터 내구성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26회의 테스트 모두 0→시속 200km 가속시간이 10초를 넘지 않았다. 게다가 이탈리아 나르도 서킷을 시속 195~215km의 속도로 24시간 동안 달려 내구성까지 입증했다. 꼬박 하룻동안 타이칸이 달린 거리는 3425km에 달했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는 터보 S가 412km, 터보는 450km다. 일단 주행거리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 듯하다. 획기적인 전기에너지 회수 기술도 자랑거리다. 스티어링휠 위에 자리 잡은 회생제동 버튼을 켜면 주행 중 가속페달만 떼도 적극적으로 긁어모은다. 이때,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제동의 90%를 해결할 수 있다. 회생제동 모드를 자동으로 두면 카메라가 전방 상황을 살피고 회생제동을 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한다.
포르쉐는 전 세계가 지금 내연기관에서 전기로 옮겨가는 전환점에 있다고 확신했다. 포르쉐는 다가올 전기 시대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았고, 타이칸은 훌륭한 대답이 되었다.타이칸에서 포르쉐의 영혼을 발견했다. 다가올 미래에도 당당할 수 있는 전기차를 보여주리라 마음먹었던 그들의 바람이 마침내 빛을 보는 순간이다.
MAX THRILL OF TAYCAN
글로벌 론칭 전 실물을 직접 보고, 트랙에서 타볼 수도 있었다. 비록 동승석에서 체험하는 택시 드라이브였지만, 출시도 안 한 포르쉐의 미래를 한발 앞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시승차는 실제 타이칸과 모든 성능은 같은 최종 프로토타입이었다.
출발부터 화끈했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순식간에 코너를 돌아 시속 150km를 넘겼다. 가벼운 움직임에서 2.3t이 넘는 차체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민첩성이 최고조에 달한다. 축지법을 쓰듯 트랙 위를 조용히 날아다녔다. 포르쉐 스테이빌리티 매니지먼트 (PSM)가 개입하는 상태에는 물이 흥건한 노면에서 아무리 자세를 흐트러뜨리려 해도 밸런스가 깨지지 않았다. 안정적인 차체자세제어시스템에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배기 사운드가 없어 아쉬워할 이를 위해 타이칸만의 사운드를 적용했다. 인공적인 소리를 더하지 않고 전기모터 본연의 소리를 키운 결과다. 실제로 들어보면 달리는 맛을 돋우기 충분했다. 동승석에서 경험한 게 전부지만, 꼭 운전하지 않아도 워크숍에서 들었던 타이칸의 강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포르쉐가 작정하고 만든 미래, 타이칸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SOME MORE TO TELL
DESIGN - 알아챘는지 모르겠다. 터보와 터보 S의 디자인은 약간 다르다. 터보에는 기본 스포츠 디자인 패키지가 적용되지만, 터보 S는 더 역동적인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 스포츠 디자인 패키지 블랙과 스포츠 디자인 패키지 카본을 제공한다. 고광택의 블랙 유광인지 카본의 위엄인지만 취향에 따라 고르면 소재만 다르고 프런트 상부와 실 패널, 리어 디퓨저 등에 새 디자인이 적용되는 부분은 같다.
BRAKE - 타이칸 터보와 타이칸 터보 S는 모두 앞 10피스톤, 뒤 4피스톤 모노블럭 브레이크 캘리퍼를 달았지만, 브레이크 디스크는 크기와 소재에서 차이를 보인다. 터보는 앞뒤 직경이 415mm, 365mm 인 주철 디스크(텅스텐 재질을 코팅했다)를, 터보 S는 420mm, 410mm 크기의 가벼운 세라믹 디스크를 사용한다. 포르쉐는 예전부터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 캘리퍼에 노란색을 칠했다.
POWERTRAIN - 타이칸은 포르쉐만의 특별한 전기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 앞차축과 뒤차축에는 각각 전기모터를 1개씩 물렸다. 가장 큰 특징은 뒤쪽이다. 보통 전기차는 1단 변속기가 일반적이지만, 타이칸은 뒤차축 전기모터에 2단 변속기를 따로 달았다. 1단은 발진 가속력을 높이고, 2단은 높은 효율과 예비 전력을 보장한다. 최고시속 260km는 2단 기어에서 나온다.
BATTERY & CHARGING - 기존 전기차는 400V 전압을 사용하는 게 보통이지만, 타이칸은 양산차 최초로 800V 전압 시스템을 사용한다. 전압이 높을수록 케이블 굵기가 줄기 때문에 타이칸은 몸무게에서 4kg를 덜어낼 수 있었다. 충전도 빠르다. 타이칸은 최대 270kW 급속충전을 지원한다. 다만, 배터리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처음에 270kW 최대치로 충전하다가 점차 출력을 낮춘다. 배터리 잔량 5%에서 80% 충전까지 22분 정도 걸린다. 5분 충전만으로 최대 100km까지 주행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CHASSIS - 듬직한 통합형 포르쉐 4D 섀시 컨트롤은 3-챔버 기술의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 포르쉐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리어 액슬 스티어링 등 섀시 관련 요소를 실시간으로 중앙 제어해 완벽에 가까운 차체자세제어 능력을 보여준다. 특히 에어 서스펜션은 하중과 관계없이 높이를 동일하게 혹은 원하는 높이로 유지해주는 라이드 하이트 제어 기능을 제공한다. 경사가 다소 심한 노면을 지날 때는 차체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 기능도 수행한다. 시속 90km 이상에서는 10mm, 시속 180km 이상에서는 최대 22mm까지 차체를 낮춰 고속안정성과 공력 성능까지 극대화한다.
SAFETY - 타이칸은 전 세계 안전 기준을 충족한다. 충돌테스트 회수가 파나메라보다 50% 이상 많을 정도로 안전에 신경 썼다. 시속 64km에서 전면부의 40%를 충돌시키면 손상이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문을 여는 데 문제가 없도록 설계했다. 에어백은 총 8개. 타이칸에 처음 적용한 후방 추돌 경고 기능은 뒤따르는 차와 충돌 가능성을 계산하고, 위험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비상등을 작동시켜 뒤 차에 주의를 준다.
BODY - 타이칸은 다른 모델 라인업의 보디 프레임을 빌려다 쓰지 않았다. 알루미늄과 철을 알맞은 비율로 섞어 브랜드 전기차 전용 뼈대를 설계했다. 전기차라는 콘셉트는 엔지니어들에게 디자인적 자유를 주었고, 이는 배터리 저중심 배치란 큰 이점으로 나타났다. 차체 바닥에 깔린 배터리의 알루미늄 하우징은 타이칸 안전 구조의 일부이기도 하다.
INFRASTRUCTURE - 내년 상반기 국내 출시를 앞둔 타이칸을 위해 포르쉐코리아도 국내 인프라 구축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포르쉐코리아와 파트너십을 맺은 대영채비는 전기차 충전기 인프라 분야 선도기업이다. 환경부가 발주한 2018년 전기차 급속 충전기 설치 사업을 단독 수주했고, 전기차 충전기 70% 이상을 점유하면서 빠르게 영역을 넓혔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고효율 에너지 기자재’ 인증을 획득한 뛰어난 기술력까지 자랑한다. 든든한 파트너와 협력을 통해 국내 충전 네트워크 구축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포르쉐코리아는 전국 10곳 핵심 스팟에는 320kW 초급속 충전기를, 120여 곳에는 완속 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