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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길 단상(斷想)
전 호준
한여름 정취 어린 매미 소리도 언제 사라졌다.
해가 지면 집 뒤 말뫼공원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애잔하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면 땅에서 찬 기운이 올라오고 모든 초목은 영양 생장(자람)을 멈추고 생식 생장(번식)에 들어간다 한다. 이때가 벌초하기 가장 적당한 시기다.
흰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를 지나 추석이 코앞에 왔는데도 어영부영하다가 오늘에야 부랴부랴 벌초 길에 나섰다. 절기도 모르는 우리 집 모기처럼....
봉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자란 풀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하다.
먼저 초입에서 주위를 살핀다. 벌 때문이다. 죽은 조상 머리 깎으려다, 산 후손 머리통에 불나면 큰일이다.
두어 시간 땀을 흘리고 나니. 오래 비워 두었던 집에 대청소한 듯 휜 하다. 가을하늘 같은 마음, 유택(幽宅)은 죽은 이가 거하는 집이기 때문일까?
잔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 여기저기 말끔하게 풀을 내린 산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기가 좋다. 간혹 묵은 산소도 보인다.
매장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는 산에 들어가 눈만 돌리며 묘지다. 작은 봉분에 비목 하나 없는 묘, 이미 묵 묘가 되어 제 모습을 잃은 묘, 왕릉같이 넓고 화려한 호화분묘, 정원같이 아담하게 잘 가꾸어진 가족묘 등 그 풍경도 다양하다. 아직 벌초를 하지 않은 산소도 눈에 띈다. 아직 못했을까? 안 했을까? 할 사람이 없을까? 과연 오늘 다녀간 이 길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태초에 조물주는 흙으로 사람을 빚어 코에 생기, 즉 혼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성경은 전한다. 수긍이 간다.
모든 동물은 회귀본능이 있다.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혹은 만들어진 물질로 되돌아가려는 본능 같은 것이다. 사람 역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사람의 몸은 흙에 닿는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더욱 편안해짐을 느낀다.
한발을 들고 서 있으면 얼마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두 발로 서면 한결 편하다. 서 있는 것 보다 앉아있는 것이, 앉아 있기보다 눕는 것이, 흙과 접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더욱더 편안해짐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람은 마침내 흙이 전신을 감싸므로 가장 편안함 속에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 결국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려는 원초적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일부 부유층 사람들은 관을 돌로 만든다 한다. 좋은 관에 망인을 모시는 것이 효와 예가 될지 몰라도 흙과 단절시키는 석관은 죽은 망인을 돌로 된 감옥에 가두는 것 같은 어리석음이다
매장이 장묘문화의 주를 이루는 우리 민족은 좋은 자리에 조상을 모시려는 풍습이 면면히 내려왔다. 명문대가일수록 명당을 찾고 봉분을 높이고 갖은 석물로 치장, 가문의 명예를 과시하는 것이 효(孝)라고 믿어 온 것 같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기보다 가문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한 후손들의 은근한 과시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매장 신고를 행정관서에 하고 묘적부에 등재 후 신고필증을 발급받아 매장하도록 되어 있다.
분묘의 넓이도 봉분의 크기 석물에 관한 내용도 법률로 정해져 있지만 알게 모르게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을 당해 슬픔에 젖어 장례를 치르는 상주에게 위법이라며 매장을 가로 막을 염치없는 공직자는 아무도 없다
오히려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 부유층들이 호화분묘로 위상을 과시 하는 실정이니, 화장장 또는 공설묘지나 납골당 등, 일부 허가시설에 적용될 뿐 법이 있어도 무용지법(無用之法)이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이다.
현직에서 묘지 관계 업무를 볼 때다. 00면 00리 속명 학당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 앞에는 제법 큰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의 수원지를 따라 얼마쯤 올라가면 뽕골(桑谷)이다. 상곡지(桑谷池)란 조그마한 연못 위 오른쪽 양지바른 곳에 한 세기를 훌쩍 넘긴 노송 몇 그루가 서 있다.
이 주변이 말로만 전해오는 심릉(沈陵)이라 불리는 무덤이 있던 장소라 한다. 왕이나 왕비가 아니면 능(陵)이라 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 능(陵)이라 구전(口傳)된 것을 보면 그 무덤의 규모나 묻힌 인물이 대단했다는 추측일 뿐 아는 바 없다. 거대한 상석과 망두석 무덤의 내력을 새긴 기림묘비가 있었다 한다.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돌보는 이 없는 무덤은 도굴꾼에 훼손되고 허리가 동강 난 망두석이 묘지 주변에 널브러져 소먹이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후 저수지 공사를 하면서 깨어진 비들이 못 둑을 쌓는데 묻혀버려 심릉(沈陵)이란 두 글자 만 머릿속에 남았을 뿐 아무 흔적도 없다고 오래전 고인이 되신 이 마을 이장님이 어릴 적을 회상하며 들려주신 이야기다.
자손 된 도리로 조상님을 명당에 모시고 벌초와 성묘를 하며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남의 손을 빌려 벌초를 대행시키는 작금의 현실에 무슨 큰 의의(意義)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매장 문화도 많은 변천을 하고 있다. 납골당이며 수목장, 어떤 의례를 하든지 효(孝)는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지 밖으로 드러나는 겉치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전 효자는 적어도 사후 효자는 많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더구나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사는 싱글족, 의도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고 맞벌이로 사는 딩크족, 아이 대신 애완동물을 자녀같이 기르며 살아가는 딩펫족, 심지어 동성이 함께하는 동성애족 이 늘어나고 있는 문화에 미풍양속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십 년 아니 백 년, 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오늘의 호화분묘도 다 흔적 없이 살아질 것이다. 보살필 후손도 보살필 의무도 함께 없어질 것이 아닐까?
지구의 표면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된 곳에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저의 먼 조상들이 기거했던 유택 위에 아무런 생각 없이 다시 나의 부모의 유택을 모실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고 순리이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수목장이던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순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사시대 무덤, 고인돌 같이 평장(平葬)을 하고 작은 자연석이나 비목(碑木) 하나로 나만이 아는 표식을 하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다가 어느 날 있는 그대로 어느 시점이면 스스로 자연에 동화(同化)되어 버리는 장묘문화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7. 9. 30 벌초를 다녀와서
첫댓글 즐거워야 할 성묘길이 믾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 이겠지요. 그것 또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굴레이고요. 즐거운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살아서 효자는 적지만 사후 효자는 많다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돕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때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풍양속은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데 갈수록 효가 경시되는 현상 때문에 걱정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후효자, 부모의 내리사랑에 비해서 부모를 위하는 치사랑은 너무도 허약한 게 인간들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조상을 기리는 제례와 벌초 문화, 장묘문화는 10년이 지나면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우리 세대로 봐선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세상의 변화도 자연의 순환 이치로 받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벌초나 명절 차례등은 마음먹기 달린것 같습니다. 형편이 옛날보다 좋으며 생각보다 쉬운일을 사회에서 문제를 만들어서 문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공감하며 자녀들 교육을 잘 시켜 나가야할 시점인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벌초. 장묘문화. 명절나기. 전통적인 상례. 제례를 살리면서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개선이 되어가면 좋겠다는 생각만 때때로 합니다.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매장이든 화장이든 수목장이던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순응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다가 어느 날 있는 그대로 어느 시점이면 스스로 자연에 동화(同化)되어 버리는 장묘문화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본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묘지로 인한 자연훼손도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하나 뿐인 자녀가 많은데 과연 묘지관리를 옳게 할까 염려스런 문제입니다. 돈을 주고하는 벌초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나의 부모님도 농지를 관리하는 사람이 해주는데 효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벌초를 하시면서 떠오는 생각을 담담하게 풀어 놓으신 것 같습니다. 인구가 줄고 가족수도 적어서 장묘문화도 자연스레 바뀌겠지만 효의 정신만은 이어졌으면 합니다. 직접 벌초하시는 분들은 모두 효자이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옳은 생각입니다. 효심이란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묘를 호화롭게 치장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장묘를 통한 효사상도 세태에 따라 변천해야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벌초현장에서 느끼는 단상들. 하나하나 검토하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