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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의 미술 토크』 Ⅳ
- ①원시미술,②이집트 미술,③그리스 미술,④로마 미술,⑤비잔틴 미술,⑥로마네스크 미술.
◆ 『서정욱의 미술 토크』 Ⅳ···목차
52. 미술의 처음, 원시 미술 - ‘절실함’ 미술의 시작이었다
53. 영원불멸 이집트 미술 - 영원에 대한 집념과 삶에 대한 의지의 결합
54. 인간의 가치를 고민했던 그리스 미술 - 3000년 전 ‘품위있는 삶’ 고민하고 실천한 그리스인
55. 2000년 전과의 소통, 로마 미술- 힘이 법이던 시대…미술, 정치적 목적에 맞아야 했다
56. 신을 위한 비잔틴 미술① - 성경 이야기 모자이크화로 표현한 교회미술 발전
57. 신을 위한 비잔틴 미술② - 규칙대로 그린 최소한의 상징 이콘 박해받던 시대 위안의 상징물
58. 어두운 중세에서 피어난 로마네스크 미술 - 로마식 둥근 아치와 두툼한 기둥…웅장하다, 엄숙하다
52.미술의 처음, 원시미술 - ‘절실함’ 미술의 시작이었다
벽화·구조물·조각상 등 원시미술 대표작…불안감 극복의 선택이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스톤헨지
알타미라 동굴벽화
지금 기분이 어떤가? 어린아이처럼 편한가? 걱정이 조금은 있는가? 아주 편한 것만은 아니죠? 위로를 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좀 있죠? 나는 여러분의 불안감을 부추기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항상 불안감이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 것이다. 미술의 처음인 원시미술을 보면 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원시미술이라는 용어에서 이런 생각이 듭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 아닐까? 하지만 아니겠죠. 여러분도 1만 년 전쯤에 태어났다면 지금쯤 막 동굴벽화를 그리다가 잠깐 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반문이 드는가? 그런데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21세기 문명시대인데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이냐? 그런데 아니죠. 오히려 단순한 시절을 살펴보다 보면 지금 문제의 힌트를 얻기가 쉬울 수도 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우리의 본 모습을 찾기가 다소 어렵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의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유행하는 형식 속에 감추게 된다. 비슷해지려는 본능 또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에는 부작용이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오래 그러고 있으면 몸과 마음에 해가 된다.
오늘은 원래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까? 원시미술의 세계를 함께 탐구해 보자. 석기시대의 미술품 세 점이 있다. 하나는 동굴벽화이다. 알타미라 동굴 것이다. 그리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이라고 하는 작은 조각상이 있다. 크기는 11㎝ 정도다. 그리고 스톤헨지라고 하는 거대한 돌로 만든 구조물이 있다.
세 미술품 다 원시미술사에서 대표적으로 다뤄지는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은 기원전 1만5000년쯤 것으로 추정되고, 빌렌도르프의 조각상은 기원전 3만 년쯤, 그리고 스톤헨지 구조물은 기원전 2000년쯤의 것인데 우리는 고고학자가 아니니 시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왜 만들었을까?’일 것이다. 왜 만들었을까? 당연히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분명한 필요가 있었기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절실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당시는 사냥과 채취로 살아가던 시기였다.
석기시대. 먹고살거나 굶어 죽거나 선택은 둘 중에 하나다. 그런데, 한가롭게 동굴에 그림이나 그리고 아무 도구도 없이 수많은 시간 조각상에 혼신의 힘을 쏟거나 맨손으로 45톤짜리 돌을 옮기고 쌓고 그랬을까? 아니겠죠? 그들에게는 필수였을 것이다. 의문이 다시 듭니다. 왜 필수였을까? 먹고살면 됐지? 저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했을까?
그런데 그런 게 있었다. 처음 한 말 기억하는가? 불안감. 죽을 만큼 힘들 수 있는 불안감. 기원전 1만5000년쯤 석기인들에게나 지금 우리에게나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불안감은 이런 것이었겠지. 내일은 사슴이 잡히려나. 오히려 맹수에게 물려 죽지는 않을까?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겁이 났겠죠? 우리 식구들이 병에 걸려 죽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없애고자 그들은 어떤 퍼포먼스를 했고, 저런 그림과 조각과 구조물들을 만들었다.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미술의 기원이 되었다. 즉 미술은 사치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의 시작은 절실함이었다.
다음의 궁금증은 용도다. 사실 무엇을 보면 그게 먼저 궁금해지죠. 당연히 고고학자들은 용도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논문들도 많다. 연구결과를 보면 동굴벽화는 사냥을 위한 기원이다. 주술 도구 중 하나이다. 빌렌도르프의 조각상은 다산과 풍요의 기원 등등이다.
스톤헨지는 좀 더 여러 가지다. 별을 보던 천문대라는 것부터 죽은 자의 무덤이라는 것까지. 실제 스톤헨지 아래서는 50명 정도 고대인들의 뼈들이 발견됐다. 그리고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의 무대라는 것도. 하지만 당연히 정설은 없다. 수만 년 전의 일이니 다 추측이겠죠. 확실한 것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고고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확실한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 의식주에 관한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은 아니고, 사냥 도구도 아니다. 잠자리도 아니고 의복도 아니다. 결론은 이렇다. 인간에게는 의식주 말고도 확실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불안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미술품을 만들 때의 태도다. 어떻게 아느냐고? 디테일을 보면 안다. 너무 너무나 성실했고, 세밀했음이 분명하다. 보통 정성으로 한 것이 아니다. 스톤헨지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수십 톤짜리 돌이다. 그 돌도 멀리서 가져온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동했고,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저토록 정밀하게 배치했을까? 아무 도구도 없이, 어떤 수학적 지식도 없이…. 많은 고고학자도 이것을 궁금해한다. 단순한 수레조차 없었고, 석기시대였기에 쇠망치 하나 없었을 때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런 고고학자들도 분명한 이유 하나는 안다.
그것은 석기인들의 믿음. 즉 신념이다. 신념과 믿음은 인간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결론은 그들은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으로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신념과 믿음은 긍정적인 기대를 만들어냈고 불안감을 없애주었던 것이다.
처음에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에게는 크든 작든 불안감이 있다. 알고 보니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것들과 함께 살겠지.
보통 불안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하나는 불안하면 짜증이 나니 참지 않고 화를 내며 푸는 선택이다. 또 하나는 신념과 믿음 같은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무언가에 정성을 다하는 방식이다. 석기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 결과 상상하기도 힘든 미술품들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이어져 신비로운 이집트 미술, 그리스의 화려한 미술, 그리고 중세의 어마어마한 성당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미술의 바탕에는 불안감의 극복이 있었다.
[출처] : 서정욱아트앤콘텐츠 대표 : <서정욱의 미술 토크> - 52.미술의 처음, 원시미술 - ‘절실함’ 미술의 시작이었다 / 국방일보 ,2021. 1. 19.
53.영원불멸 이집트 미술 - 영원에 대한 집념과 삶에 대한 의지의 결합
약탈과 나일강 심술이 걱정인 사람들 - 파라오 믿고 충성하면 골칫거리 해결
3000년 동안 변치않고 믿음 이어져 - 상상 뛰어넘는 거대 피라미드 탄생
쿠프의 피라미드. 필자 제공
고대 이집트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아마 피라미드, 미라, 이런 것들일 것이다. 사진에 피라미드가 있다. 쿠프의 피라미드다. 규모는 밑변의 길이는 230m 높이는 147m, 어마어마한 크기다. 워낙 유명하니 더 이상 설명은 그만두고 이런 의문을 가져보자. 왜 만들었을까?
기본 용도가 이집트의 왕 파라오의 무덤이라는 것은 다 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큰 규모로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것을 만들었을 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다. 석기 시대를 갓 지난 때다. 지금 같은 기술과 장비는 꿈도 못 꿀 때이기 때문에 엄청 무리한 공사였을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아마 서울시 전체에 뚜껑을 덮는 공사 정도로 상상하기도 싫은 프로젝트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다들 불만은 없었을까? 찬반을 두고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하지는 않았을까? 지금 같으면 그랬을 텐데 혹시 당시 사람들은 지능이 낮고 심성이 단순해 다루기 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그들은 대단히 뛰어난 기술과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지능이 있었다.
당시 기술로 피라미드를 세운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뭘까? 먹고 살기도 어렵던 그 때에 저런 무리한 공사가 가능했던 배경은? 혹시 당시 왕인 파라오와 권력자들의 강압에 의해 저 공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어느 정도의 강압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억압에 의한 공사는 저런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다. 부실공사가 됐을테고 강압은 오래 못 간다. 이집트 역사 3000년을 이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부심벨 신전.
그렇다면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아보자.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런데 답은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쉽다. 바로 먹고사는 문제 때문이었다. 때는 기원전 3000년 전. 농업 기술이 개발된 덕분에 이제 인류는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수렵과 채취만의 한계는 끝났다.
하루하루 ‘동물이 안 잡히면 어떨까?’ ‘잡혀 먹히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농사를 통해 인류는 계획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됐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긴다.
다 수확해 놓은 곡식들을 강탈해가는 무리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전에는 맹수들이 걱정이었는데 그것들을 쫓아내니 이제는 인간들이 더 문제다. 밤잠이 안 왔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또 있었다. 이건 좀 크다. 수확한 것을 일부 강탈해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농산물 수확 자체를 막아 버린다. 바로 나일강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나일강의 심술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나일강변에 모여 살았다.
나일강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줬다. 물고기, 하마 그리고 악어를 주었다. 좋은 식량이었다. 그다음 때때로 적당한 범람을 해 그 주변 땅을 비옥하게 해주고 농사지을 물을 공급해 줬다. 추가로 뱃길을 열어줘 농산물 이동에도 큰 도움을 줬다. 나일강은 그들에게 생명 같은 존재였다. 아니 생명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씩 심술을 부린다는 것이다. 뭐가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확 넘쳐버려 대홍수로 모든 것을 싹 쓸어가 버린다. 아니면 반대로 가뭄을 줘 바싹 말려버린다. 아주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이걸 주관하는 어떤 이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바로 이집트 신들이다. 홍수와 기근을 주면 한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다. 집까지 싹 쓸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빌어보기라도 하고 싶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신들은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빌 수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반갑게도 이걸 해결해 주는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바로 파라오와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다. 그는 자신들에게만 충성하면 빼앗아가는 도적들을 다 막아준다고 한다. 그리고 막아줬다. 그나마 시름 하나는 던 셈이다. 이제 파라오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뺏길 걱정은 없다. 충성은 당연히 필수조건이다.
그렇다면 나일강의 심술은 어떡할까? 뜻밖에도 고마운 존재가 또 불쑥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나일강을 관장하는 신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충성만 다 하면 잘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파라오다.‘잘 먹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파라오가 시키는 대로만, 그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구나, 다른 생각은 전혀 할 필요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파라오 님만 잘 모시면 식량을 빼앗는 적도 막아주고 나일강을 관장하는 신도 잘 설득해 주니 어쩌면 굉장히 간편해진 것이다. 이 믿음이 변치 않고 3000년을 이어졌다. 그래서 그 긴 3000년 동안 이집트는 변화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대 이집트인의 세계관이었다.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로 이집트 미술에 관한 궁금증은 대부분 설명된다. 당시 파라오에 대한 이해와 나일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처음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풀어보자.
덴데라 신전.
첫째, 어떻게 그런 무리한 공사가 가능했을까? 파라오가 원했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건 뭐든 하는 것이 나에게 이롭다. 어쩌면 어려울수록 더 좋다. 아마 내 평안한 삶을 위한 저축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거대한 공사를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강요만으로는 불가능한 공사를 말이다.
그렇다면 파라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그들은 자신이 죽지 않는다고 믿었다. 아니 죽긴 죽지만 죽은 다음에도 다른 공간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믿었다. 그 삶은 영원했던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살아서의 육신이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썩지 않는 미라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리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엄청나고 복잡한 건축물인 피라미드 속에 숨긴 다음 그 속에 또 미로를 만들어 누구도 찾을 수 없고 훼손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보조장치로 자신과 닮은 석상까지 만들어 혹시 모를 사후 육신의 훼손까지 염두에 뒀다.
즉 피라미드는 영원히 살려는 파라오의 집념과 그 파라오를 믿어야만 했던 이집트인의 생존 의지가 결합해 만들어낸 거대 건축 미술품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의문. 왜 300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이집트 미술은 변함이 없었을까? 이것은 당연하다. 변화라는 것은 현재에 대한 불만, 의심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인간에게 창의력을 준다. 그런데 당시 이집트인의 세계관 속에서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미 하나의 절대 진리가 있었던 것이다. 파라오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약탈자도 막아주고 나일강도 안전하게 지켜준다. 그 밖의 생각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이것이 3000년을 이어온 절대 진리다.
아메넴헤트 왕과 왕비의 무덤 벽화.
이제부터 몇몇 미술품들을 볼까? 아부심벨 신전과 덴데라 신전이다. 이집트 신들이 편히 살도록 만든 것이며 파라오와 신들의 만남의 장소다. 여기서 파라오는 나일강의 범람에 관해 그리고 이집트의 미래에 관해 신들과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보시는 것은 고대 이집트의 그림들이다. 작가는 따로 없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절대 진리가 있는데. 한사람, 한사람의 생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누가 그려도 똑같다.
좀 자세히 보면 통일감이 있다. 다리는 옆모습, 몸은 정면, 얼굴은 옆모습, 눈은 정면, 기타 여러 동물이나 사물들도 자세히 보면 어떤 규칙 같은 것이 보인다. 그림마다 다 똑같다. 그런데 사실 규칙이라고 보기보다는 진리다. 규칙은 시간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한다. 지루하면 바뀌는데 고대 이집트는 변하지 않는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이집트 미술은 당시 파라오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나일강의 중요성만 잘 안다면 이해가 보다 쉬울 것이다.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이 이집트 미술의 토대가 된 것이다.
[출처] : 서정욱아트앤콘텐츠 대표 : <서정욱의 미술 토크> - 53.영원불멸 이집트 미술 - 영원에 대한 집념과 삶에 대한 의지의 결합5 / 국방일보 ,2021. 1. 26.
54.인간의 가치를 고민했던 그리스 미술
- 3000년 전 ‘품위있는 삶’ 고민하고 실천한 그리스인
아고라서 끝없이 고민하고 토론 - 참된 인간다움 ‘아름다움 추구’서 찾아
현대 건축 모방해온 파르테논 신전 - 7만 개 대리석 조각 모양 다 달라
이집트와 그리스 조각 비교해보면 - 美 향한 강한 집념 느낄 수 있어
고대 그리스는 미술 분야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 전체에서 중요하다. 이런 말은 들어 봤죠. 모든 현재의 문명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나왔다. 선사시대 미술에서 보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의식주만이 아니었다. 그것만큼 중요한, 또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불안감의 극복이었다. 다시 말해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안정감이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없으면 화가 나고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 즉 선사인들은 의식주와 안정감, 그 둘을 위해 노력했다.
철학 논하고 예술과 문학 즐기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 고대 그리스로 오면 사람들은 욕심 하나를 더 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품위 있는 삶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모습이라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판단했다. 품격이라는 가치가 처음 시작된 것이 고대 그리스이다.
우리가 가진 상식을 꺼내 볼까? 여러분 철학자 누구 아는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알죠?
이때 이것을 고민했던 사람들이다. 3000년 전에. 여러분 콘서트, 오페라, 연극, 뮤지컬 좋아합니까?
이때 이런 것들의 유행이 시작되었다. 활발하게 말이다. 여러분 책 좋아하죠?
이때 아주 유명한 작가가 있었다. 호메로스이다. 그가 쓴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현재 모든 문학의 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뿐인가?
그들이 상상해낸 그리스 신화는 지금도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숨 쉬며 많은 아이디어를 준다.
이렇게 3000년 전에 그들은 인간의 품위 있는 삶에 관해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방식을 통해 알아냈을까? 우리도 같이 해볼까? 머릿속으로 가장 예뻐하는 꽃을 떠올려 보자.
혹 날씨가 좋다면 창밖의 파란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자. 어떤가? 아름다움이 느껴지는가? 그다음 어떤가?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보통은 여기서 끝이 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한발 더 나아간다. 아름다움이란 뭘까?
아름다운 것을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동물들도 아름다움을 느낄까?
그리스인들은 이런 것을 끝없이 고민하고 토론했다. 아고라에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답도 만든다. 아름다움은 오직 인간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인간만 창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것의 척도이다. 또한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 인간은 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좀 실용적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두 개의 조각상이 있다. 하나는 이집트 시대의 것이고, 하나는 그리스 시대 것이다. 차이가 확 나죠? 시대에 따른 기술 차이가 아니다. 세계관의 차이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 미술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들의 차이를 잠깐 더 살펴볼까?
서기의 좌상.
이집트 조각상은 서기이다. 서기는 공무원이다. 기록하고 계산하는 업무를 한다. 당연히 이집트 사람들은 정확히 그것만 표현했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밀로의 비너스 상이다.
밀로의 비너스.
밀로섬에서 발견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고. 팔이 보이지 않는데 그대로를 살리기 위해 복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미묘한 몸동작과 천의 질감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그리스인의 생각이 충분히 드러나 보인다.
라오콘의 군상.
다른 대표적인 조각상도 볼까? 라오콘과 니케다. 역시 그 동세에서 그리스인들이 추구했던 아름다움의 이상이 엿보인다. 라오콘부터 보면 한마디로 감탄부터 나온다. 그로부터 1500년 후 최고의 미술 전성기였던 르네상스시대 미켈란젤로의 작품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내용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으로부터 미움을 산 라오콘이 포세이돈이 보낸 두 마리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물려 죽은 장면이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이다. 루브르박물관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 역시 복원이 되지 않아 머리 부분과 몸의 일부가 없는데 열띤 토론 끝에 오히려 복원보다는 그대로가 더 충분하다고 결정돼 현재 이렇게 전시되고 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그리스 조각의 절정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건축물을 볼까? 파르테논 신전이다. 그리스 여행 시 보통은 필수로 보게 된다. 사람이 살았던 곳은 아니고 아테나 신을 모셨던 신전이다. 대략 2500년 전쯤 건축물이지만 너무 훌륭한 나머지 이것을 모방한 현대 건축물들은 전 세계에 너무나 많다.
대표적으로는 프랑스 국회의사당, 미국 대법원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 건축물에서 힘과 권위 부와 영원불멸을 표현했다. 당연히 그런 의미로 보이고 싶은 건물들이 이것을 모방한 것이다.
그런데 파르테논 신전의 이면에는 아무리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숨어 있다. 바로 이상적 아름다움이다. 아무리 보아도 직각과 수직, 수평처럼 보이는 이 파르테논 신전은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일단 바닥이 곡선이다. 미세하게 가운데가 불룩하다. 기둥도 그렇다. 그리고 직각으로 서 있는 것 같지만 약간씩 안쪽으로 기울어진 형태이다.
결론적으로 이 파르테논 신전은 대략 7만 개의 대리석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 7만 개가 서로 다르다. 꼭 맞는 위치는 한 군데씩뿐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복원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투입되면서 이 비밀들이 밝혀진 것이다. 상상이 가는가? 그들의 아름다움을 향한 집념은 대부분을 넘어선 상태였다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 필자 제공
수직·수평인 듯 곡선인 파르테논 신전
결론은 이렇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진정한 인간다움을 아름다움의 추구, 그리고 덕성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상적 결과물들이 고대 그리스 미술의 핵심이다. 앞으로 그리스 미술품들을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 시각에서 감상해 보기 바란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서정욱아트앤콘텐츠 대표 : <서정욱의 미술 토크> - 54.인간의 가치를 고민했던 그리스 미술 - 3000년 전 ‘품위있는 삶’ 고민하고 실천한 그리스인 / 국방일보 ,2021.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