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가난, 복음의 기쁨
욥 38,1.12-21; 40,3-5; 루카 10,13-16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 2024.10.4.
12세기 이탈리아 아씨시에서 활약한 프란치스코는 복음적 가난의 생활로 유명한 성인입니다. 이런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사람은 교황직에 선출되자 그의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한 현 교황입니다. 단지 이름으로만이 아니라 교황직에 오르자마자 발표한 문헌 가르침으로나 실제 파격적인 청빈 행보로써도 현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인을 많이 닮았습니다.
교황직에 오른 바로 그 해에 반포한 문헌에서 교황은 전 세계의 신자들에게 자신의 사목노선을 힘차게 알렸으니, 그 문헌의 제목이 「복음의 기쁨」이듯이 주제도 신자들에게 복음을 사는 기쁨을 권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제자다운 행보로 보이는 이유는 12세기에 청빈 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은 많았으나 오직 프란치스코만이 겸손과 기쁨으로 청빈 운동을 소리 없이 실천하여 교회를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성인과 현 교황의 공통점입니다, 겸손과 기쁨과 청빈.
이 권고 문헌은 예수님의 가르침인 복음을 원천으로 삼고 여기서 교회를 쇄신할 길을 찾고 사회에 봉사할 길을 찾자고 권고합니다.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첫째 시대의 징표를 식별할 것과, 둘째 이 징표를 복음의 빛으로 성찰할 것과, 셋째 인류의 복음화를 위해 선의의 모든 이들과 함께 나아갈 길을 제시하자고 권고합니다.
세상이 온통 영혼을 잊어버리고 하느님 없이 살아가는 듯 보여도 여전히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느님은 필요한 존재입니다(복음의 기쁨, 6항).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주는 것은 복음의 기쁨입니다(1항). 매우 암울한 시대상황을 겪고 있었으면서도 구약의 예언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께서 이러한 기쁨을 주시리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3항). 그런데 이 기쁨은 세상이 기대하는 즐거움과는 다릅니다. 사랑을 위한 헌신에서 우러나오는 십자가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5항). 우리를 어딘가로 떠나거나 무언가를 해야만 선교할 수 있지 않습니다. 단지 복음의 기쁨을 그 충만한 인격 안에 갖추고 계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선교할 수 있습니다(10항). 복음의 기쁨을 잊어버린 채 교회의 봉사직을 맡아서 얼굴을 찌푸리며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에게 바로 그 복음의 원천이신 그분께로 떠나시기를 권고합니다(19항). 왜냐하면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복음의 기쁨 없이 산다는 것은 너무도 힘들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기쁨으로 활기찬 공동체를 이룩하는 일은 성령께서 언제든지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성령께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길을 떠나는 교회요 선교하러 나서는 채비입니다(20-21항).
오늘날 우리 교회는 복음의 기쁨을 상실한 이들로 말미암은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제2장). 이 위기는 또 다른 바이러스처럼 우리 안에서 퍼져나가서 세상 안에로 끊임없이 더 많은 이들을 냉소주의의 절벽으로 밀어뜨리고 있습니다(52항). 사람을 배제하는 경제나(53항), 돈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풍조나(55-56항), 사람을 지배하는 금융이나(57-58항), 폭력을 양산하는 불평등이(59-60항) 모두 그 증상입니다.
복음의 기쁨을 되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아는 데 있습니다(110항).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그 귀한 생명을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받았고, 그 생명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온갖 여건과 환경도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받은 존재들입니다. 거저 받은 선물에 대한 대가는 오직 감사와 찬미뿐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마음안으로 모셔들이는 일입니다(제3장).
우리가 살거나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그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 전체를 통털어 보거나 과거 인류 역사나 미래까지 통털어 보더라도 하나밖에 없는 귀하디 귀한 그래서 유일무이한 존재들입니다. 그들 하나하나의 삶에 온 우주가 담겨 있고 온 역사가 농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만남에서 경탄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미사 중에 복음을 들려주는 강론은 사제를 통해 이 마음을 일깨워주려는 하느님의 배려입니다. 그러니 미사에 참례하러 성당에 갈 때에는 먼저 독서와 복음의 성경 구절을 읽어서 하느님의 배려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 그분께 대한 예의입니다(135-159항). 혹시 독서와 복음에 대해 해설하는 사제의 강론을 알아듣기가 도무지 어렵거든 용기를 내어서 예비자 교리를 들으러 가기를 권고합니다. 첫 복음선포가 이루어지는 그 자리야말로 강론에 못지않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친절하게 알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163-168항). 그 다음에는 말씀이 담겨 있는 성경 공부에도 시간을 내어 황폐해진 우리네 마음을 말씀의 비옥한 땅으로 바꿀 노력을 해야 합니다(174-175항). 그렇게 하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마치 호수에 던진 돌이 수없이 많은 동심원의 파문으로 퍼져나가듯이, 복음의 기쁨을 세상 전체에 퍼뜨릴 수 있게 됩니다(제4-5장).
교우 여러분!
복음의 기쁨을 놓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선교의 첫 걸음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온 그 기쁨은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다른 이들에게로 퍼져나갑니다. 우리에게 그 기쁨을 주신 성령께서 다 알아서 퍼뜨리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