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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기마인물형토기; 주종관계라고 한다. 그들의 모자를 살펴보면 유목족의 것이다. 뒤의 그릇
모양은 제사지낼때의 술잔이라고 멍청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동복의 다른 형태라고 보인다.
앞쪽의 뿔 모양은 전쟁무기일 수 도 있겠지만, 말을 다루기 쉽게하기 위한 마구로 생각된다.)
* 1편에 이어서...
신라인들이 흉노족일 수 있다란 증거는 비문과 기록 외에도 여러 풍습과 언어, 유물들이 뒷바침 한다.
그런데 한발 나아가 김알지의 김은 후손이 붙인 김씨지 당시에도 김알지라 했을지는 상당한 의문이
간다. 우선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석탈해도 모두 시기를 달리해 이주한 흉노족이라고 판단된다.
또 신라 김씨왕들의 성이 김씨가 아닌 흉노족이 사용한 모(慕)씨성을 사용한다 라는점 등이다.
또 알지 그 자체가 금을 표현하고 있다. 이쯤에서 신라인이 흉노족인가에 대한 공통점을
찾아보기로 한다.
* 알(閼) - 알지는 알타이라고도 하고, 아르치라고도 하며, 금을 나타낸다. 금은 흉노족의 상징으로,
태양의 다른말이다. 즉, 금은 태양(신)이 내려준 지상의 선물인 것이다. 또 알(AL / AR)
는 태양이란 말로 둥글다란 말과 상통한다. 둥근것은 알이고, 알은 박이며, 박은 둥글며,
둥근것은 태양이니, 이것은 모두 태양을 상징한다.
또 태양은 빛나는 것이며, 금도 빛나니 이는 태양의 선물로 즉슨 금도 태양이므로
숭배대상이다. 알치(ALCHI)는 투르크어로 "뛰어난, 독보적인" 이란 말로 해석된다.
우리는 지금도 닭이나 새, 거북등에서 난 둥근것을 알이라고 하는데, 알은 여기서 왔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나고, 김알지가 금궤에서 나고, 탈해가 알에서 난, 난생설화는
흉노족의 설화와 거의 같다. 아랍에서 알을 높임말로 쓰고 있는데, 이는 유목으로
서유럽까지 간 흉노나 돌궐이 전파한 영향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여호와 즉 유대의
신 하나님을 이슬람에서는 알라라고 한다. 혹 태양신=하나님 공식과 관련되지 않을까?...
이슬람의 "알" 명칭은 좀더 연구 해봐야 할일이고, 현재 나로선 알 수 없다.
그 밖의 흉노(알타이어, 투르크어 등)의 여러말이 아랍세계의 여러말과 상통한다.
"알"은 또 여러곳에서 나타나는데, 신라의 알천,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 알영정,
그리고 심지어 삼국사기에 알씨일족의 활약도 있다.
알(閼)자는 흉노족에서 주로 많이 쓰이며, 유독 신라에서 그 쓰임이 많음은 우연인가?
모두 같은 알(閼)자를 사용하는데, 놀랍지 아니한가...
* 닭(鷄) - 흉노족은 새를 숭배하는데, 옛말에 이르기를 우리 민족을 동이새족이라 하였다.
고구려는 삼족오를 상징으로 하였고, 신라의 김씨시조는 닭이 우는 곳에서 났다.
소호김천씨 또한 새를 숭배한 씨족이었으며, 특히 금계를 숭배하였는데,
닭의 의미는 새벽을 알리는 새로 변혁, 개벽을 상징하며, 길조로 여겨졌다.
또 소호김천씨는 "까치(까마귀과), 종달새, 제비, 금계" 를 섬겼고, 새이름으로 벼슬을
매겼는데, 우리민족 또한 그러했으며, 벼슬이란 말 자체가 닭벼슬에서 왔다고 한다.
김알지가 태어난 곳을 계림이라하고, 신라의 국명조차 계림이라 하였는데, 이는 계는
닭을 나타내지만 샛별(금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림은 집단이나 무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즉, 샛별이 모이는 곳, 새로운곳이란 말의 신라와 같은 말이다.
금계는 또한 신으로 간주되어, 봉황이라 하는데, 소호김천씨 일족이 숭앙하고 동이족이
숭앙하는 새가 또한 봉황이다. 진(秦)나라 역시 봉황을 숭배했고,
고구려가 삼족오를 상징으로 하고, 신라가 또한 금계를 숭앙하였으며, 조선과 대한민국의
수장을 상징하는 새가 또한 봉황이다.
또, 흉노계의 북방에는 새를 상징으로 하는 나라들이 많았는데, 오환, 오손 등이다.
또 고조선, 부여, 백제, 고구려가 이 새를 상징으로 하였는데, 북방의 색인 검은색
즉 까마귀를 상징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즉 같은 새를 상징으로 하는 흉노족이 동서로
갈라져, 서로 싸우게 되는데, 특히 까마귀(까치는 참새목까마귀과 이므로 동일시)를
상징으로 하는 동북의 흉노일파와 본류의 흉노족이 서로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하게된다.
중국이 이를 이이제이로 이용하곤 했는데, 왕망의 신나라 또한 오환족을 공격하고 고구려
를 공격하나, 반대로 이들에게 공격당하고, 광무제의 연합군에 망하게 된다.
신나라 세력이 신라로 오고,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여, 풍속에 까마귀가 길조가 아닌,
오히려 흉조로 남았음은, 이 때문이 아닌가...하는 설도 있다.
허나, 신라에서는 정월 보름날에는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태양신(太陽)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으니, 까마귀를 흉조로 봤다면, 태양과 까마귀를 동일시 하는 이런
기제 풍습은 없었을 것이다.
한가지 이상한 점은 삼족오는 북방색인 검은색의 까마귀를 상징하나, 벼슬이 있다.
벼슬은 까마귀에 있지 않으므로, 삼족오라고는 하나, 금계를 섬기던 풍속이 까마귀가
많은 북방에서 자연스레 까마귀로 변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신라금관에 새가 3 마리앉아 있으며, 흉노지역의 출토금관 들도 새가 장식되어
있다. 이 유사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신(新) - 새로울 신이란 말인데, 새롭다는 것은 새벽을 말하며, 새벽에는 금성이 뜨고, 닭이 알린다.
금성은 오행중 금을 상징하고,
때문에 신이란 글자는 계와 금에 상통하고, 계림이 곧 신라이다. 신라를 계림이라 했던
것은 이때문이다. 라는 림과 같은 뜻으로 무리 즉 부족이나 국가를 뜻하므로 신라는
신국이라고 할 수 도 있다.
신(新)나라는 왕망이 세운 나라로, 신나라가 망하고 나서 김일제 후손의 흉노족들이
삼한으로 이주해와 계림의 지배세력이 되어, 자신들의 풍속과 철학을 따라 신라라고
칭 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흉은 슝으로 발음되었다고 하는데, 흉노 - 슝노- 슌나 - 신라식으로 변환되었을
수있다. 다만 이는 다 한발음 이었을 것인데, 조금씩 변화한 발음을 한자로 가차하여
사용하다보니, 또 한글음으로 구분하다보니, 이제는 서로 완전 다른 발음으로 여겨질
뿐일 가능성이 매우높다.
* 금(金) - 금은 흉노족이 숭배하는 상징중 하나인데, 금은 알이요, 빛이며, 태양이다. 또 금은 금성과
도 상통하는데, 금성은 샛별이요, 샛별은 새벽에우는 닭으로 상통되며, 닭은 소호김천씨가
숭배하는 새이다. 우리가 새라고 함은 새롭다는 것과 새벽의
닭을 말하므로, 새란 뜻은 서로 상통한다. 소호김천씨의 조상이 계명성(鷄明星)인데,
계명성을 금성이라고 하며, 금성을 샛별이라하거나 명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치다.
여불위가 쓴 여씨춘추에 소호김천씨가 경신년 경신월에 등극하였는데, 오행중 금에
해당하여 금덕으로 세상을 다스려 금천(金天)이라했다 한다.
또, 아랍어에 SABIT이 샛별이고 금성인데,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
다만 아랍은 몽골이나 티무르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그 영향을 받은바가 있을 법 하다.
소호김천씨의 김씨외에 김씨가 역사적으로 대두하는 것은 한무제 당시 한무제의 생모인
왕미인이 무제의 아비인 한경제에게 간택되기전 유부녀였는데, 그녀는 자식들이 이미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 중 김속이란 여인이 왕미인의 딸인데, 즉 왕미인의 전남편
일가가 김씨이다. 때문에 한무제때부터 왕미인의 왕씨와 김씨가 세력을 형성한다.
당시 외척인 두씨일족에 비해 세력이 약했던 왕씨들이 왕미인이 황태후가 되면서부터
세력을 키우게 되는데, 왕씨와 김씨는 그러한 배경에서 조금씩 성장하여, 먼훗날에
왕망이 "신"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된다. 또한 왕미인의 전남편일가는 흉노인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한나라에서는 흉노인들의 활약이 꽤 많은데, 이는 흉노의 일국인
진의 멸망으로 한에서 남아 살던 흉노인이거나, 흉노에서 정치적 등등의 이유로 한으로
넘어와 살던 흉노인들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왕씨성인데, 왕씨성 자체가 고조선쪽
동이의 성씨이므로, 왕미인 자체가 한인은 아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출생의 비밀 등으로 인해 한무제는 황제가 되지 못할 뻔도 하였으니 실제로
어떤 사연이었을까... 여하튼 중국은 동북 및 서북공정의 일환으로 흉노 또한 자신들의
족속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나라 당시 한왕실과 흉노왕실은 정략결혼이 성행했고,
한무제, 한선제, 광무제등의 활약으로 많은 흉노인들이 한으로 귀화하거나, 귀속 하였고,
또 한 많은 활약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피에 흉노인들의 피가 흐른다고 믿고 있고,
또 사실이 그러하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민족의 유래에 대한 이런 역사를 애써 피하고
있어서, 결국 한반도 아래쪽에 불과한 한(韓)!국에 불과하니 북방의 역사를 어찌 우리
것이라 우기기라도 하겠는가... 흉노는 고사하고, 부여, 고조선, 선비, 거란, 여진, 돌궐의
역사를 죄다 중국에 빼앗기고 어쩌겠단 말인가... 중국입장에선 자신들의 역사라
주장할 수 있겠지만, 보다 가까운 우리의 역사이거늘... 늘 우리역사의 밖으로 치고 있으니
한스럽다.
* 박(朴) - 박은 밝이라고도 읽는데, 즉 빛이라는 것이다. 또한 원래 박이있었는데, 둥근것이 알과
같고, 태양과 같다는 데서 상통한다. 트르크어나 예니게이 케트어 등을 살펴보면,
버커커지(BERKEKEJI)는 통치자란 뜻이 되는데, 박혁거세와 발음이 유사함이 놀랍고,
BAGG/BAK/BEK 등은 말을탄 군주 또는 신(神)으로 해석되며, 아랍의 바그다드(BAGH/DAD)
는 신이준 선물이란 뜻이라 하는데, 우연치고는 그 상통함이 매우 놀랍다. BAGH는
알타이어로 영웅이나 군주를 뜻하며, 신라의 소벌촌(소벌도리)의 소벌은 흉노족중 SUVAR
과 유사하며 SUVAL종족이 실제로 있었다 하며, 금을 상징으로 한 종족이었다.
또, 신라의 후예 또는 퉁구스계로 알려진 여진의 경우도 금을 숭배 한 부족이다.
(그러한 부족이 금(金)과 청(淸)을 세웠는데, 청(淸)은 명(明)을 잇는다는 데서 나온듯
한데, 모두 밝다는데서 자신들의 신념과도 상통하기에 국명으로 쓴 듯 하다.
또한, 금사를 비롯한 중국 여러나라의 정사들에 여진족의 나라 금의 왕조가
신라계유민이 세운 나라이며, 자신들의 직접적 조상임을 이미 여러차례 서술하고
천명하고 있는데 우린 아직까지 이러한 사실역사 조차 배우지 않고 있다.)
또 몽골에서 황하강을 신라라고 부르며, 사로(斯盧)사라(斯羅)는 실라,시라(SHILAR)로
발음되니, 한때 다르게 표현되기도 했으나 계림, 사로, 사라, 시라 등은 그 뜻과 음이
같은 신라이다.
따라서 신라는 국명이 바뀌었던 적이 없으며, 음을 가차함에 있어 혼동이 있었을 뿐이라
하겠다. 또 초원의 유목전설에 게세이칸이라고 유명한 전설의 영웅이 있는데, 혁거세의
거서간과 유사하다. 즉, 이로 말마암아 볼때 박혁거세는 실존인물이라기 보다는 전설이며,
흉노족이 그 박씨를 김씨대신 사용했을 가능성이나, 1차도래인인 진인들이 태양과 금을
숭상함에 박을 성씨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즉 박이 김이요 김이 박인 것인데,
이들은 모두 흉노족이라 할 수 있겠다.
* 석(昔) - 석은 석탈해의 성씨인데, 석탈해전설에 금궤에 까치가 날아 따라왔다 하여, 까치 작(鵲)자
의 한편을 떼어 석(昔)을 성씨로 삼고 탈해라 하자 하였다고 한다.
"탈해"는 김병모교수의 주장대로, 대장장이를 뜻하는 흉노어 "탈하이" 같다.
이를 뒷바침하는 그의 전설중에는 호공의 집에 숯을 몰래 묻어, 자신의 조상이 대장장이
인데, 조상의 옛집터라고 주장해서 그 집을 빼앗았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 기사가
표현하는 것이 대장장이 인것은 우연이겠는가...
당시 대장장이나 세공자들은 크게 우대를 받았으며, 부족의 우두머리도 될 수 있었던
듯 하다. 또 한가지, 소호김천씨가 숭앙하는 새에는 놀랍게도 까치가있다.
그 밖에 소호김천씨가 숭앙하는 새로는 종달새, 제비가 있다. 즉 소호김천씨 가문은
후대에 들어 4부족으로 나뉘었음을 말하고, 그 4부족중 신라에서는 닭을 숭앙하는
가문이 까치를 숭앙하는 가문에 들여지거나,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을 수 있다.
석씨 이전에 박씨일족의 경우, 흉노족이었으나, 말이 새처럼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아
올랐음을 말해주는 것은 천마설화는 기마민족의 새에대한 상상력이 발휘된 듯 하다.
즉, 박씨이전의 신라세력은 1차도래의 진의후예들이 마한의 땅을 빌려 살던곳이고,
2차로 흉노의 기마무리가 옮겨와 박씨가 되었으며 3차로 까치부족이와서 정권을 잡고,
4차로 닭부족이 옮겨와 통치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서로 신라에 흉노족 즉 자신들의 동족이 살고 있음을 서로 알고 이주해왔으며,
토착세력들은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이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듯 하다.
(마치 유목족이던 로마가 토착화되면서,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타 부족을 받아
들이 듯 말이다.)
우리나라는 소호김천씨족이 섬기던 까치, 제비, 종달새, 닭 모두 길조로 여기고 있으니
또한 놀라운 일이다. 단 까마귀만이 흉조로 남음은 위에서 말한 이유때문일까...
* 난생설화 - 난생설화는 알이라고 하는 곳에서 태어난 영웅을 말하는데, 알은 즉 태양, 태양은
신이라고 가정할때 천신족의 탄생인 것이다. 난생설화는 특히 흉노족에서 많은데,
우리나라의 주몽과 박혁거세, 석탈해 김수로왕을 포함한 6가야의 왕들이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 특히 김수로왕을 보면 구지가를 통해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수로(首露)의 뜻 자체가 "고개를 내밀다" 란 뜻이며, 구지가는 거북이에게 고개를
내밀라고 요청하는 노래다. 즉 해석하면, 거북이는 9촌이 믿는 고어로 신이라 표현되며,
거북이 구자와 아홉구자는 같은 음이니 무엇을 말하는가...
삼국유사에 따르면, 구촌(九村의 촌장들은 龜村의 촌장들 일 수 있다)의 촌장들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 거북신(구;龜;9촌이 믿는 신)에게 우두머리를 구해달라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이다.
이에 모두 6개의 금빛 알을 발견하는데, 그중 첫번째로 깨고 나는 것이 김수로이고,
금관가야를 다스리며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 김수로는 김일제의 아우였던 [윤]의
일족으로 주장되기도 하는데, 신라로 갔던 석탈해나, 김알지세력과 친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석탈해 세력이 가야로 갔으나, 이미 설자리가 없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라로 가서 자리 잡게되고, 김알지 또한 신라에서 자리잡게 되는 것은 같은
종족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서든 신천지 신라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후에 수로가 나이가 들었을때, 신라 파사이사금이 수로에게 속국의 분쟁해결을
부탁하는데, 수로가 해결을 한다. 파사는 석탈해 다음임금으로 박씨이다.
이 파사이사금의 부인이 김씨인데, 알지의 세력이 알에서 태어난지 16년에 왕비를
배출했다는 것인가? 또 파사의 왕비 김씨는 허루 갈문왕의 딸이라고 했는데, 허씨의
딸이 어찌 김씨가 되었는가? 허씨는 중국한왕실의 외척 허씨이거나, 김수로가 왕비
허씨를 기리기 위해 두아들에게 허씨성을 쓰게 하는데, 그 가야의 허씨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허씨인데, 김씨 딸을 둔 것을 보면, 그가 이전엔 김씨였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허루는 김수로왕의 아들중 하나 일 것인데, 그 허루를 갈문왕으로 삼고
신라최고직인 주다(각간)로 삼은 것은 그만큼 신라와 금관가야가 서로 친분이 돈독한
사이(같은 종족)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수로왕 사후에는 신라와 가야는 서로
공격을 주고받는 적국의 사이가 되고 만다.
여하튼 수로는 장성하여, 황후를 맏이 하는데 아유타의 허황옥을 왕비로 맞는다고 한다.
아유타는 알타이, 알씨의 다른말로 생각되며 알씨는 왕비란 흉노의 말로, 허황후를
가리키는듯 하다.
허씨는 중국 한나라의 왕비 즉 외척세력으로 이름을 떨치던 세력으로 같은 외척세력인
왕망의 왕씨세력과는 경쟁을 했던 허씨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허씨세력 또한 광무제가 했을지 모를 보복을 피해 한반도로 이주 했다고 할 수
있거나, 한반도로 이주한 김일제일족 세력인 김수로에게 정약되었다가 김수로가
자리를 잡자 한나라에서 불러들인 것 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이 허황후를 따르는 시종들의 부인들이 흉노의 모씨성을 사용했음을
삼국유사 기록으로 알 수 있다.
* 부여 - 부여국명의 유래를 벌(서라벌, 달구벌등), 부리(고사부리 등), 불(이스탄불, 카불 등)에서
흉노어로 상통한다고도 주장하는 학자가 있지만, 이는 좀 설득력이 부족하다.
벌은 그렇다 할 수 있겠지만, 부여는 차라리 부씨족과 여씨족이 다스리던 땅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지배자가 바뀜에 따라, 부씨씨족이 해를 하늘의 아들 즉 천손임을 주장하고자
해를 존칭으로 삼아 해부루가 되고, 모씨도 해모수라하고, 금와와 대소는 해씨를 사용치
않는 것으로 보아, 다른 유목종족(퉁구스계)의 여씨씨족이 아닌가 한다.
이후 부여는 여씨를 성씨로 삼고, 백제도 여씨를 성씨로 삼았다.
즉, 여씨족이 흉노계의 모씨족과 부씨족에게 몰려 동부여로 옮겼다가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모씨와 부씨의 흉노계를 부여땅에서 몰아낸게 아닌가 한다. 이때 모씨족의 주몽이 쫓겨
졸본부여로 세력이 이주하고, 새로히 나라를 세운게 고구려라 생각된다. 고구려와
혼동되어, 사용되는 예가 있는데, 이 또한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부여란 즉 성씨에서
온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 모씨 - 흉노족은 모씨성이 주류를 이루는데, 모는 MU로 발음된다. 이 모씨성을 한자로 가차할때
여러가지로 나타나는데, 冒,慕,牟 등으로 나타난다. 묵특으로 시작 되는 흉노의 모씨는
그 후 흉노인들이 자신들을 묵특(바토르)의 후예라 칭하여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모씨성이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흉노에, 부여에, 고구려에, 가야에, 신라에, 투후지역에
많이 나타난다.
* 동복 - 동복은 북방초원에서 널리 보이는 유물로 흉노 및 북방유목민족의 지표이다. 우리는 대게
이를 흉노의 유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유물이 흉노지역은 물론, 부여, 신라, 가야, 고구려,
일본, 투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때 신라는 부여족 또는
후연의 일족들이 이주한 걸로 설명들을 하나, 이는 주류를 이루지 못했던 이주이므로,
사실상 신라는 그 이전부터 동복을 사용했다고 봐야 한다.
유목민족들이 사용한 이 유물이 일본에서도 보이는 점이 매우 놀라운데, 일본의 개벽설화에
따르면, 구지봉에서 천신이 도래했다고 한다. 이설화는 가야의 김수로 설화와 매우 흡사하고,
지명조차 놀랍도록 같다. 바로 가야의 흉노족이 일본으로 건너 가 나라를 세운듯 하다.
일본의 이즈모 지역은 이 설화의 중심지인데, 가야와 매우 가깝다. 부여인들이 일본에
건너 갔을 수 있다지만, 이 역시 주류를 이루지 못한듯 하므로, 이 보다는 가야흉노족 일부가
일본으로 이주해서 주류를 이루고, 사용한 동복일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참고로, 동복과 함께 발굴되는 공통유물이 매우 많다. 금제세공품, 금관 및 장식품, 묘제,
그 밖의 여러유물들이 북방 흉노계 유물로 확인된다.
이쯤에서 성씨를 살펴보건데, 박씨, 석씨, 김씨, 허씨는 모두 같은 일족이라 할 수 있겠다. 또 흉노성씨 모씨가 있고, 진의 영씨가 있으며, 흉노의 알씨, 선비의 모용씨, 고구려의 고씨와 모씨가 모두
한족속이랄 수 있는 소호김천씨의 후예요 중원에서 벗어난, 흉노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밖에 중국에는 소호김천씨의 후손성씨가 많으니,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일이 점점 커지므로,
여기서는 이야기 하지 않기로 한다.
여하튼, 이러한 흉노족을 한고조 유방은 완전 멸망시키기위해 정벌을 실시하나, 오히려 흉노족에
포위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흉노에 조공을 하게된다. 그리고는 한편으로, 중원대륙에서 진(秦) 즉,
흉노의 역사를 말살시키기 시작하고, 원수로 대하기에 이른다. 후에 한무제가 흉노를 정벌하는 계기가 되고, 이후 더욱 더 흉노를 멀리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강성했던 흉노는 한무제와 광무제 후에 세력이 약해져, 돌궐과 선비등으로 갈라지고,
다른 많은 곳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민족임은 분명 한 듯 하다.
통일군주 문무왕은 바로 이점을 바로알고, 당당히 자신이 흉노왕자 김일제의 후손임을 밝히는 것이다.
또 당시 당나라에 이긴 문무왕이 왜 굳이 한나라에 충성을 다한 김일제의 후손임을 내세웠을까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정치적 문제점을 안고 있기도 하겠지만, 특별한 사실을 생각하건데, 당나라의
고조 이연이 바로 흉노족 후손 이었다는 것이다.
즉 당 황실과의 연계성을 찾고 양국간 평화를 이룩하자는데, 문무대왕의 그 뜻 이 전해지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문무대왕은 말 그대로 문무를 겸비한 대왕이며, 신라를 사랑한 죽어서도
신라를 지키겠다는 기개가 있는 대왕이었다. 이런 대왕이 당나라와 자신의 출신이 같은 흉노계
동족임을 내세워 평화를 유지하려한 정치적 계산이며, 또 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는가 나는
생각해본다.
고구려도 흉노라면, 선비는 당연 흉노였다. 선비족은 좀더 연구해야겠지만, 고조선 유민과 흉노와
오환족 유민이 섞인 나라 였던 듯 하다. 그중 모용선비가 있는데, 흉노의 모씨를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즉, 우문은 오환이요, 단은 고조선이며, 모용은 흉노라는 것이다. 셋이 합쳐 흉노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하지만 말이다. 이 모용선비가 우문선비와 단선비를 뮈찌르고, 연나라를 세우는데, 후기에 고구려 유민인 고운이 왕이 된다. 이때,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은 같은 종족으로서의 우정을
나누게 되는데, 고구려 유민인 고운이 왕이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나라의 역사적 뿌리를 한군데서
찾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 김춘추가 고구려나 당나라에 가서 역설하고 외교할 적에 이
역사적 뿌리를 이용했으리라 짐작 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때에는 신라를 같은 종족으로 예우하고, 백제를 적으로 간주했다.
이는 우리만 몰랐지 당시사람들은 연나라와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당나라가 다 같은 흉노족임을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흉노족은 한나라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되고, 천시되어 왔으니... 한고조유방이 소호김천씨후예국인 진나라를 멸한 이후부터 날조되기 시작했다. 즉 그 이전에는 소호김천씨의 후손으로 진이
중국을 통일했고, 그런 진을 멸망시킨 한나라는 그 정통성을 위해 당연 진의 역사를 나쁘게 그려야만 했고, 흉노를 야만족으로 대해야만 했던것이다. 또 마침 한무제는 흉노족을 중국역사에서 처음으로
정복했으니, 흉노족이 이후 한족에 의해 얼만큼 멸시되어왔을지 짐작할 만하다.
이 때문에 진나라가 흉노족이니, 수나라가 선비 즉, 흉노족이니, 당나라가 흉노족이니
하는말이 돌지 않고, 마치 한족의 국가처럼 위장되고 포장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 밖의 역사.
즉 한나라이후의 한족 역사에서 오랑캐라 일컬어지는 동이족 나라들의 모습이다.
동이민족의 우리 조상의 역사도 전설도 다 빼앗겨 이제는 한족의 것이 되어있는 모습 인 것이다.
땅만 빼앗겼으면 되었지 무엇을 더 빼앗겨야 하는가...
우리 사학자들에게 바라건데, 이 확실한 역사를 이제는 우리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며,
보다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한자연구에서만, 역사를 찾으려 하지말고, 중앙아시아나 동북초원의 언어학을 좀더 면밀히,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진시황릉 및 상고적 동북아 묘지 및 유물의 연구. 그리고,
중국의 한나라 이전의 삼황오제시대, 하은주시대, 춘추전국시대, 통일진시대, 등의
고대사 및 유목사를 좀더 혜안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강산을 파괴하기에 앞서, 잃어버린 강산에 대해서 조차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우스꽝 스러운 후손이 되겠는가...
다만, 내 몸이 비루하고, 다망하여, 조상들의 일에 오로지 매달릴 수 없음이 개탄스럽다.
결론하여 말하건데, 이러한 역사연구는 평화적이어야만 한다.
내가 볼때, 동북아의 여러나라는 그 뿌리가 같기도 하지만, 여러민족이 마구 섞여버렸다.
본시 민족이란 이제 없다는게 내 신념이듯, 민족이 민족이 아니게 되었으니,
오히려, 동북아와 초원의 몇몇 나라는 형제애로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일전에 몽골의 한 의원이 한국과의 합병론을 가지고 의회에서 주장해 논의 된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의 노림수가 무엇이든 일단 경의를 표하고 싶다.
통일이나 합병은 될 수 없을 지언정, 여러나라가 같은 뿌리를 천명하고, 서로돕고, 평화롭게 살면
어떠한가? 북미가 통합하고, 남미가 서로도우며, 유럽과 아랍이 하나가 되어 경쟁력을 키워 갈때,
반대로 첨예하게 대립의 길을 걷고 있는 동북아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 신라도 당나라도 흉노였다! 2편 (무수정본) 박철학]
- 부제- 흉노는 진, 당, 후연, 고구려, 부여, 신라, 오환, 선비, 거란, 가야, 몽골, 돌궐, 투르크, 일본,
헝가리 등 세계도처에 강대국을 세운 인류최대의 거대 민족이었다.
[출처] ② 신라도 당나라도 흉노다!|작성자 시찌푸스
첫댓글 보완이론 흡수 중??ㅎ
그런데.. 좀 나름의 앞뒤가 맞는 철학으로 ctrl+v를 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시기상조 증거가 부족합니다 오나라 손권도 고구려 동천왕에게 선우라하며 국서도 보낸 사실이있습니다 ? 많은 연구가 필요할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