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올람토라 온라인 성도방에 초대합니다.
카카오 오픈채팅방에 "레올람토라"를 검색하시거나, 아래의 링크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픈채팅방 링크 주소
https://open.kakao.com/o/gvbFarQf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1-3)
1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는 믿음.
내가 바라고 있는 것, 소망하는 그것이 믿음이고 후에 이루어졌을 때 자신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소망했던 믿음이 증거가 된다. 즉 현실로 이루어진 이유는 누군가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을 하나님을 믿는다거나 사람을 믿는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히브리서에서는 '무엇을 소망하고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가 믿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마음 깊숙이 바라고 소망하는 그것이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과 동일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된 사람이고 우리의 소망을 주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우리는 믿음으로 안다. 우리는 직접 보지 않았다. 시내산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명령(율법, 토라)에 순종하는 것도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증거가 되는 이유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것은 믿음에서 비롯된다. 믿음이 있어야 순종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옳은 믿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믿는다면 그건 어둠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둠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어둠의 뜻인지 모를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죽은 믿음, 귀신의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판단의 법도인 토라(율법)를 공부하는 것이다. 토라는 세상을 창조한 법도이며 세상이 다스려지는 법도이다.
2 하나님의 꿈은 거룩한 나라이다
하나님의 꿈은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계시록을 보면 새하늘과 새땅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직전에 예슈아께서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그것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꿈이다. 그래서 시작하신 것이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언약이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으로 갈 때 위대하고 강한 나라를 그에게 약속하셨는데(창12:2), 그와 그의 가정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킴으로써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고 모든 열방이 복을 받을 거라고 증언하고 있다(창18:18,19). 즉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강대한 나라를 약속하셨고 메시아이신 예슈아를 통해 그 나라가 통치될 것이며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에게 나라를 언약하셨고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라는 개념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린 쉽게 이기적이 되고 복음을 개인적인 구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거룩한 가정을 이루고 더 나아가 거룩한 공동체(교회)를 이루고 더 나아가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것은 복음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즉 거룩한 나라를 세우는 것은 복음의 열매이고 믿음의 열매인 것이다.
약속의 땅 이스라엘만 거룩하면 되지 않을까? 대한민국, 중국, 미국, 일본 기타 모든 나라도 거룩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꿈은 이방인도 이스라엘로 접붙혀져 모든 나라가 복을 받는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거라는 언약은 예슈아를 통해 실제로 열방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제자로 삼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모두 이스라엘로 가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우리가 사는 나라를 거룩한 나라를 세우는 것,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다. 내 나라를 사랑하는 자가 이스라엘을 사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나라가 무너지든 말든 관심이 없다면 어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린 머리된 자로서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거룩한 백성, 거룩한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요즘 우리 나라는 반국가 세력이 온갖 거짓말로 선동하여 많이 어렵고 힘든 상황이다. 왜 거짓말에 선동되는 것일까? 그들은 당장 손에 돈을 쥐어주고 최저임금제 올리고 여러 보상을 많이 해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눈앞에 당장 있는 유익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선동에 휘둘릴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는지 아니면 나라 전체의 유익을 생각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설령 그들이 수많은 보상 정책을 약속한다 해도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말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돈도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이웃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거룩한 나라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통치자의 마음을 갖고 나라를 돌아봐야 예슈아께서 통치하시는 그날에 수많은 성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통치할 수 있다. 즉 우린 나라를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토라)대로 다스릴 줄 아는 통치자로서 이땅에서 훈련되야 한다(계20:6).
내가 너로 큰 민족(나라)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2)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18:18,19)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20:6)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4-6)
3 태초부터 세말까지 찾으시는 믿음
성경은 자주 한아버지 아래 두 아들 또는 아들들을 비교한다. 아담에게 가인과 아벨이 있었고 노아에게 셈, 함, 야벳이 있었고 아브라함에게 이삭과 이스마엘, 이삭에게 야곱과 에서, 야곱에게는 레아와 라헬이 있었고 12아들들이 있었다. 사실 모두 믿음에 따라 비교하고 있고 그 비교는 아담의 자녀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를통해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믿음을 요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에 따라 유업을 얻을 아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아들이 있다. 이것만 보아도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을 보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같은 아버지 아래 같은 가르침을 받으며 살지만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남편의 아내로서 살지만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벨은 믿음으로써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 그러면 믿음으로 제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무엇일까? 당시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을 여호와께 드렸고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다(창4:3-5). 그런데 가인은 첫소산 중 제일 좋은 것으로 드려야 하는데 첫소산이라는 말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드리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민18:12). 그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신뢰하지 않는 충성되지 않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물을 통해 가인과 아벨의 믿음에 대해 증언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하는 방법만을 지적하시는 것일까? 물론 예배 뿐아니라 삶에서 그는 죄를 다스리지 못했고 그런 불법한 삶은 예배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함께 예배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법도대로 살아야 하고 법도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이고 충성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믿음) 자가 말씀을 신실하게(믿음) 준행하며 더 훌륭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의로운 자라는 증거가 된다.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4:2-5)
4 특출난 믿음으로 승천한 에녹
말씀을 통해 에녹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였고 믿음이 누구보다 승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로서 승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에녹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믿었으며 그 믿음이 죽음을 보지 않게한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믿음이 중요한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말씀대로 행할 것이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하나님을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물론 예슈아 시대에 위선자들은 율법을 지키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위선자, 거짓말 쟁이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위선적인 행위를 책망한 것이지 율법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믿음으로 율법을 더 굳게 세워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롬3:31). 이것은 진리이다. 야고보 사도도 자유롭게 하는 율법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고 말하고 있다(약1:25).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진리이다(요14:1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1:2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히11:7)
5 의로움을 상속하는 아버지
노아는 믿음으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일에 대해 경고를 받았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했다. 이로써 노아는 그의 의로움으로 세상을 정죄했다. 왜냐하면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죄때문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로운 노아를 통해 세상을 다시 시작하셨다. 즉 노아를 통해 세상에 의로움을 상속하게 되었다. 이것을 통해 우린 재산을 상속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도 상속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보다 의로움을 상속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아의 세 아들중 셈이 노아의 의로움을 상속했다. 노아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방주를 준비했다. 믿음만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가? 순종만 해서 방주를 준비할 수 있는가? 당연히 명령을 믿어야 순종할 수 있고 그것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충성됨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보는 모두 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이어간다. 세상은 의로운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로움 때문에 세상의 부패가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이 의로 인해 핍박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의로움을 위해 핍박을 받자. 그런 자에게 커다란 하늘의 상급이 있다(마5:10-12).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6:9-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10-12)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히11:8-10)
6 초막(장막)에 거주하여 제2의 인생을 준비하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면서 출발했고 언약하신 땅이지만 외국인처럼 살았다. 같은 언약을 받은 이삭과 야곱도 함께 장막에 거주했다. 낯선 땅에 머물면서 근사한 집을 짓고 산 것이 아니라, 임시 거주지같은 장막을 치고 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짓지 않은 하나님께서 건설하시고 지으신 새예루살렘 성(도시, 나라)을 소망했기 때문이다. 즉 새예루살렘 성을 중심으로 하는 새하늘과 새땅인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외국인(나그네)처럼 산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이었고 이삭과 야곱의 삶이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우린 땅에서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이 땅에서 성공해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고자 하지 않는가? 땅도 사고 집도 사고...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땅에서 장막(텐트)에 거하는, 임시 숙소의 거주자들이었다. 이들은 초막절을 알지 못하나 이미 초막절의 삶을 살았으며 하늘 나라의 언약을 믿음으로 붙드는 자들이었다. 만약 우리도 하늘의 향한 믿음이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은 손님처럼 잠깐 살다 가자. 오히려 거룩한 하늘 예루살렘에서의 삶,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거룩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자(계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1-4)
#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히11:11,12)
7 죽은 태에서 나오는 수많은 자손
왜 하나님께서 굳이 사라가 단산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자녀를 주셨을까? 별과 같이 모래와 같이 셀 수없이 많은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한명만 주셨을까? 이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서 믿음을 요구하신다. 심지어 언약이 있어도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으로 바라보고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자로서 있기 원하신다. 사라가 단산했기 때문에 잉태하는 것도 믿음이 필요했고 출산할 힘을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했다. 심지어 이삭을 낳았지만 셀 수없이 많은 자녀를 주시겠다는 언약은 계속적인 믿음이 필요했다(창17:19). 심지어 출산할 수 있는 힘도 믿음으로 얻었고 그래서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은 출산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출산하다가 죽는 사람이 많다.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는 의사나 조산사가 없이 주로 집에서 출산하므로 아직도 출산 사망률이 높다. 그런데 사라는 초산이었고 여성의 경수가 멈추어 태가 죽은 상태였다고 말한다. 경수가 멈춘 나이이므로 현대로서는 55세~60세정도라 생각할 수 있다. 상상해보자. 그녀는 출산하면서 너무 힘들어 아기가 죽든 자신이 죽을 거라고 여기던 순간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고 그녀에게 다시 오겠다는 말한 약속'을 붙들었을 것이다. 분명 약속대로라면 아들도 살고 자신도 사는 것이 분명하다. 그 믿음이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서 힘을 내게 했고 출산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 성경은 분명하게 믿음으로 잉태할 힘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언약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라는 수많은 자녀를 믿었고 이제는 예슈아를 통해 이방인도 이스라엘에 접붙여지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셀수없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 언약은 지금도 성취되고 있고 새하늘과 새땅에 속한 새언약 시대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생명을 나을 수 없는 죽은 태를 가진 사라 한사람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믿음의 열매가 셀수없이 많아지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해질 것이고 새벽 이슬같은 청년들이 즐거이 주께 헌신하며 나아올 것이다(사11:9 시110:3). 믿어지는가? 물론 지금은 물이 바다 덮음같이 불법이 충만한 시대를 살고 있다. 온 세상에 불법이 가득하다. 그러나 여호와의 율법을 알고 지키려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치 죽은 태와 같은 우리지만 반드시 생명을 낳을 것이다. 이삭 한사람으로 셀수없이 많은 상속자들을 일으키신 것처럼, 진리에 순종하는 한사람으로 그날에 율법(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순종하는 수많은 자들이 온 땅에 물이 바다 덮음같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9)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110:3)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3-16)
8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자
모든 믿음의 조상들은 약속의 성취(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지만, 그것(약속)을 멀리서 보고 설득되었고 끌어 안았고, 이 땅에서는 스스로 나그네이고 순례자라고 고백했다. 이들이 자신을 이 땅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라고 증언한 이유는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본향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거주지인 본향 즉 하늘 새예루살렘을 준비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우린 이 땅에서 초막처럼 초라한 집에 살아도 된다. 이 땅은 본향이 아니며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치 캠핑가서 탠트치고 1박 2일 다녀오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도 1박 2일 캠핑을 위해 집을 짓고 오는 사람은 없다. 만약 우리의 영원한 집이 하늘 새예루살렘에 건설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잠시 잠깐 머무는 이 땅에 보물을 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사랑함으로 두주인을 섬긴다면, 우린 그날에 어둠으로 드러날 것이다(마6:24,25). 우리의 전쟁은 생명까지도 미워해야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초막에 사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것이 진짜 본향을 사모하는 자의 모습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이유는 안락함, 부유함, 성공 때문이 아니라 공의, 진리, 거룩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로 더 나은 부활을 가능하게 하므로 본향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6:24,25)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제작 문의
https://cafe.naver.com/freeflag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