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영성
욥 42,1-3.5-6.12-17; 루카 10,17-24 /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2024.10.5.
사도직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선교는 삶이 밑받침되어야 지속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식물의 경우에 뿌리가 튼튼해야 꽃도 피울 수 있고 열매도 맺을 수 있듯이, 선교에 있어서도 선교사의 삶이 건강해야 선교적 열매도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영성까지도 건강해야 그 열매도 튼실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의 방방곡곡으로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일흔두 제자들이 돌아와 선교활동에서 거둔 성과를 보고했습니다. 마귀들까지 제자들에게 복종할 만큼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제자들도 성공적으로 선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선교적 성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제자들과 함께 기뻐하시면서도 정작 제자들이 명심해야 할 선교의 근본 비결을 일러주셨습니다. 영들이 복종하게 된 성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그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일보다 삶이, 성과보다 존재가 더 앞섭니다.
오늘 독서에서 욥의 처지가 보여주듯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다 보면 역경이 닥칠 때도 있고 축복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험난할 때도 있고 원만할 때도 있습니다. 재산이나 일, 인간관계는 우리네 일상에서 겪는 날씨처럼 늘 변화무쌍하기 마련입니다. 화창할 때도 있고 궂을 때도 있습니다. 눈비가 내리기도 하고, 햇볕이 내리쬐기도 합니다. 자연과 인간에게 좋기만 한 날씨는 없는 법이고, 햇볕도 필요하고 비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날씨에 따라서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공생활 동안에도 변화는 많았습니다. 군중으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기도 하고 바리사이들로부터 얄궂은 시비거리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밥 먹을 겨를도 없이 분주하게 군중의 요구에 시달리기도 했고, 사람들을 피해 새벽녘에 홀로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이들을 보면서 기쁘기도 하셨지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농부처럼 소신과 줏대가 없는 사람들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성공적인 인간관계만 얻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작 열두 명 밖에 되지 않는 제자들이 속을 썩이기도 했고 그 제자들에게 열과 성을 다해서 당신의 속내를 드러내어 사도가 될 각오를 이끌어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날씨와도 같은 관계의 변화나 성과에 좌우되지 않고 일관되게 복음을 선포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버지이신 하느님 안에 한결같이 머무셨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철부지 어린이들처럼 어렵사리 얻은 선교적 성과에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타이르셨던 것입니다. 하늘에 그 이름이 기록될 정도로 삶이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 그로 인한 성과보다 더 중요하고 그래서 앞서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2천 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꼽는 사도 바오로 역시 선교활동의 성과에는 부침이 있었습니다. 선교하면서 기적을 일으켜 주었다고 해서 신으로 떠받들릴 뻔하기도 했지만, 고생도 숱하게 했습니다. 억울한 옥살이도 했고 매질도 당했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습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했습니다. 선교하면서 강물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은 위험, 가짜 신자에게서 오는 위험을 겪었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작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 그렇지만 바오로가 사도요 선교사로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그런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 어떠한 보수도 받지 않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면서 사도직을 수행한다는 긍지에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자기자신을 불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그저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 힘들 뿐 그 빛으로 얼마만한 어둠이 사라지는 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촛불의 희미한 빛만으로도 칠흙 같이 캄캄한 어둠을 꼼짝 없이 물리칩니다. 그 촛불이 모이면 횃불이 되고, 횃불이 커지면 대낮 같은 밝은 빛이 생겨납니다. 빛은 자신의 밝기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자신을 태우는 데 집중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그 빛으로 말미암아 어둠을 몰아내는 일은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선교도 그렇습니다. 특히 선교의 영성이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