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 기념일 전례가 생겨난 유래와 배경이 이렇습니다. 16세기 중엽에 오스만 터어키 제국은 영토를 확장하려고 유럽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리스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어진 이 해전은 정치적 대결이면서도 종교적 한 판 승부의 양상을 띠고 벌어졌습니다. 터어키인들은 유럽 백인과 달리 아시아 황인으로서 이슬람 신도들이었고, 십자군 전쟁에서 백인들에 의해 침략을 당한 이래로 서로 적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스만 터어키군의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당시 비오 5세 교황은 이 전투의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전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로써 승리를 응원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다행히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유럽 연합군이 가까스로 이슬람교를 신봉하던 오스만 터어키군 함대를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비오 5세는 전투의 승리가 묵주 기도를 통해서 성모 마리아께서 전구해 주신 덕분이라고 여기고, 이 날을 제정했습니다. 유럽인들만이 아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닌 인류 전체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유럽 그리스도인들의 편만 드셨을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 일 이후로 유럽 가톨릭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기도가, 특히 묵주 기도가 성모 마리아를 움직여서 자신들이 바라는 지향대로 전구해 주시는 영적 은사가 있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매듭을 기도의 힘으로 풀고 싶은 정신현상이지요.
그래서 “기도로 승리하리라!”. 레판토 해전의 교훈입니다. 그 사건 이후 가톨릭 신앙인들은 비오 교황의 지향과 당부에 따라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관습이 굳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든 민족적으로든 그렇게 성모 마리아께 전구드리는 주된 수단이 묵주기도가 되었습니다. 식민통치 시대에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열심히 드리던 신자들은, 뜻밖에도 성모 마리아의 축일인 몽소승천 대축일에 일제가 패망하고 해방된 데다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축일에 국제연합이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는 경사가 겹치자,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 민족을 보호해 주고 계시다는 신념이 굳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아 백 년 전에 시작된 고난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식민 지배에서 해방되고 나서도 나라가 두 동강 나버렸고 동족 상잔의 전쟁까지 치루었으며, 이후 독재와 가난의 굴레에서 겨우 벗어나고 있는 중이지만 전 세계가 냉전 시대에서 탈출했어도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 구도에서 남북 간의 대립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구약성경의 역사신학적 관점에 따르면, 백 년도 넘게 지루하게 지속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고난은 그 이전 백 년 동안 진행된 박해, 즉 하느님 신앙을 죄악시하여 2만 여명의 천주교 신자를 학살했던 업보입니다. 그 참혹했던 박해를 견디어 내고 신앙을 끝내 지켜낸 교회의 역사도 자랑스럽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신앙의 힘으로 마지막 남은 이 끈질긴 민족 고난을 종식시키는 일입니다.
이 민족 고난에 대해서 책임이 있는 주변 당사국들은 하나 같이 모른 척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해 말로만 사과할 뿐 진정으로 화해할 뜻이 없어 보일 뿐만 아니라 남북 갈등을 키우고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남북을 자의적으로 갈라 놓은 미국과 소련 역시 분단을 해소하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침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의 김씨 왕조 역시 사과한 적이 없으며 도리어 핵무기 개발로 한반도 전쟁 위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통일할 수도 있었던 기회에 인민군을 대거 동원하여 한반도를 침략했던 중국도 이제 국운이 상승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의해서 통일될 한반도를 두려워합니다. 이제 남은 희망은 한민족 자신이 한반도 평화를 성취하는 길뿐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통일을 이루어야 완전한 독립이자 온전한 해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