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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면할아버지group 원문보기 글쓴이: 김성채
아버지의 93회 생신을 축하합니다. 이 가을 바람이 시원하고, 선선히 붑니다. 산천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 한참 아름답습니다. 며느리와 딸들 분단장도 하고 왔나요? 말끔히 차려 입고 아버지 생신에 대하니 참 고맙습니다. 아버지 생신 때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 하나 만이라도 참으로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건강하다는 것이 정말 생활을 바르게 잘 해왔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께서 바르니 우리 모두가 바른가 봅니다. 아버지께서 근면하셨기에 우리 모두가 근면한가 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베풀고도 미안해 하는 것이 부모라고… 아버지… 우리도 똑같은 입장의 부모가 되어 있습니다. 출가를 시키고 출가를 곧 할 자식도 있고, 앞으로도 출가 시킬 입장에서 보면 부모와 자식의 천륜이라는 것을… 아버지… 오래 건강 하십시오. 우리도 예쁘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인생을 보면서, 나의 인생을 보면서, 자식의 인생을 보면서 삶의 엄숙함을 느낍니다. 항상 긍정적이며, 건전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아버지… 매일 아버지께서 산에 가시는 일, 산소를 마시며, 산소 같은 일입니다. 그 산소 같은 일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준 오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것은 오빠의 마음과 시간과 정신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아버지 에너지가 되며, 아버지의 정신이 자신과 싸워서 게으름이 없는 좋은 습성이 건강을 세우는 것 같습니다. 다들 농사를 짓고 난 뒤, 추수해서 그 콩으로 메주를 쑤는 시절… 한번 더 생신 축하합니다. 요즘 와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밥을 많이 사주셔서 잘 먹었습니다. 오늘도 만나서 맛나게 잡수시고, 기분 좋으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다함께) 아버지… 사랑합니다… |
-.아버지 상례
고인의 장례식에 정성들여 화환을 보내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1.엘지 이노택 대표이사 허영호
2.한국 구라봉사회 회장 유동수
3.부산고교 제22회 동기회
4.성치회(치과의사 친목모임)
5.호스트웨이 대표 김성민(명순 동생 사위)
6.서울 평화 기공소 대표 김영곤
7.부산상고(개성고등학교) 49회 동기회
8.청치회 일동(치과의사 친목모임)
9.부산상고 녹심회 일동
10.부산진구 하친회 일동
11.가락 중학교 9회 동기생 일동
12한국가스 공사 대외 협력실장 이철규
13.법무법인 천우 변호사 정성원
14.이인승 성형외과 원장 이인승
15.국립 부산 사범학교 제11기 동기회 회장 송수복외 일동
16.삼성전기(주) 대표이사 사장 강호문
17.ㅎ한화 석유화학 주식회사 대표이사 허원준
18.하나은행 부행장 김준호
19.안락주식회사(에스뻬랑스) 대표이사 김성철
20.부산교통공사 사장 김구현
21.(주)파리크라상 대표이사 사장 조상호
22.동아대학 순환기 내과 교수 김무현
23.(주)일렉트로닉스 대표이사 박태원
24.네오차타링(주) 대표이사 김해수
25.경남은행 은행장 정경득
26.롯데 로지스스틱스(주) 최문철
27.정심전자(주0 대표이사 손왕목
28.신한은행 영업 본부장 윤응택
29.메리놀 병원 원장 김호균
30.서울 치과 의사회 회장 김성옥
31.서우회 회원 일동
32.부산 문화방송 사우회 회장 이종원
33.서우회 회장 윤효주
34.국립부산 사범학교 제11회 동기회 기
35.삼성전기 상조회기
36.서우회조기
-.아버지 막재를 마치고
영주암에 새벽 예불을 다니면서 막재때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챙기고 공양미도 미리 올려놓고 미리 미리 준비를 하여서 마음의 여유를 가졌는데 오늘아침 아버지께서 입고 가실 양복과 와이샤스 넥타이를 챙기면서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아버지께서 평소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가시던 검정색 양복은 아직 새 옷으로 그대로 인데 아버지는 안 계시고..........
저 옷을 입으시면 왠지 인품이 달라지는 것 같았고 집안의 어른으로 하실 도리를 다하신 아버지께서 이승에서는 못입고 저승에서 입고 가셔야 할 것을 생각하니 왈깍 주마등처럼 지난날들이 생각이나 아버지 방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렀다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에 마음 편하게 가실수 있도록 울면 안 된다며 집사람이 챙겨주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일찍 집을 나섰디
한시간 반전에 영주암에 갔는데 벌써 기채형님과 형수께서 오셔서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무척 반가웠다 형님도 건강이 안좋으신데 길이 멀어 새벽에 오신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영주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동채가 택시에서 내렸다 건강을 묻는말에 시간이 많이 걸렷는데 이제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아직 완쾌하지 못한 것 같았으며 그간에 투병하느라 안색도 수축해 보였다 동아대 병원에서 아버지와 같이 투병을 계속 하다가 아버지께서 먼저 저승으로 가시고 동채는 투병 중이라 아버지 빈소에 상문도 못하여 아버지의 막재에 참석은 남다른 감회를 갖고 있을 것 같앗다
서울에서 전날온 태기동생과 재수씨가 도착하였고 조금 있다가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한 승기동생 가족이 택시에서 내렸다 제수씨와 현준이도 같이왔다 동생을 보는 순간 마음이 울적하였다 무슨일이 있습니까 묻는말에 아무일 없다 하며 태연히 할려고 해도 울적한 마음은 그대로 였다
아버지의 검정색 양복은 승기동생이 신경을 써 특별히 아버지 생신때 마쳐 드린 옷이다 항시 생전에 부모님께 잘해야 된디는 철학을 갖고 어머니께서 만7년 동안 병석에 계실 때 부터 서울 부산의 먼 거리를 병원 마치고 주일 혹은 객주마다 밤늦게 와서 혼자서 못드시는 어머니께 좋아하신 음식을 드리곤 했다
아버지 께서 병원에 입원 하시기 전 토요일에도 부산에 와서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해운대 금수복국집에서 복국을 사들이고 갔으며 아버지께서도 거동이 불편하신 이후부터는 유난히 자식들을 기다렸으며 서울에서 태기 승기동생은 주일마다 번갈아 아버지를 뵈러 왔으며 일요일 아침은 으레히 가족 모두 해운대 금수 복국집으로 갔었다
부산 누나와 동생들도 아버지를 번갈아 뵈러 왔으며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는 퇴근하는 자식을 학수고대 하셨는지 아버지하고 집에 들어서면 아이고 고맙다 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왜 나는 그 말뜻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난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히는 회한뿐이다
작은자형차에 작은누나와 큰자형 큰누나가 타고 왔다 큰누나는 일전 새벽등산을 하고 내려오다 다리에 금이가 기부스를 하고 목발을 집고 오셨다 큰자형은 집안일과 누나 뒷바라지를 혼자 하고 계시며 오늘도 누나를 부축하여 왔어 누나의 대웅전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만류하였으나 누나는 울적이면서도 올라가기를 원해 태기동생과 같이 부축하여 근근히 계단을 올라 막재에 참석하였다 조금 있다 뒤를 돌아보니 언제 오셨는지 연세가 높아 거동이 힘드신 창범이 할머니께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마음으로 오신것 같았다
법당 에는 신도들이 미리 와 있엇으며 우리가족과 친지분들이 조용히 앉아 있으니 주지스님과 스님이 들어오셨어 주지스님의 김환수영가 막재를 올린다는 염불이 있은 후 스님의 안내로 아버지의 위폐를 부처님 앞에 놓고 막재를 알리는 예를 올린 다음 다시 아버지 영전앞에 놓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후
사바세계에서 더럽혀진 영가의 몸과 마음을 부처님의 감로법으로 깨끗이 딱아 드리는 의식인 관욕을 한후 부처님께 에불이 시작 되엇다 주지스님의 목탁소리와 방울소리에 마쳐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의 소리를 다 관찰하고 계시는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의 넓고 크고 원만하며 걸림이 없는 대자대비한 마음을 지닌 천수경을 독송하면서 부처님께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을 담아 수없이 절을 올렸다.
스님의 진행에 따라 왼편 중단에 모신 불법을 호위하는 화엄성중을 모신 탱화에 반야신경을 독송하며 예불을 한후 아버지 영전에 향을 다시피워 꼽고 잔을 올리며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절을 2배한뒤 스님께 3배하였다 금강경을 독송하며 참석한 전원이 돌아가면서 아버지 영전에 극락왕생를 축원하는 절을 올린 후 신도님들도 아버지 영전에 절을 올린 후 상주들과 맞절을 나누었다 연이 어떻게 닿았는지 이렇게 많은 불자들이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축원해주니 무어라 보답해야할지 단지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아버지 영전에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절을 모두 올린 후 상주가 나가 물밥을 하고 절을 올린뒤
큰스님이 입장하시여 법문이 시작되었다 큰스님을 모시고온 스님은 큰스님이 중앙 높은자리에 앉아 긴 지팡이를 잡으니 대나무 통비? 로 손바닥을 세번 두드려 큰스님의 법문 시작을 알렸다 큰스님은 주장자(지팡이)로 세번 바닥을 치는 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자르는듯한 느낌을 주었고 영가를 부른후 염불로 극락왕생의 길로 인도 하셨다 그리고 이승에 있는 우리에게도 물질을 중시하고 살아가는 사바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마음이 허하여지니 무엇보다 믿음으로 마음의 동반자가 있어야 하며 나와 생과 사를 뻬고 생각 할 수 있어야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 하면서 살아 갈 것이며 긍정적인 생활관을 갖게 될 것이라는 큰스님의; 귀한 말씀이 있었다
정관 큰스님은 쌍계사 범어사 주지스님을 역임하셨고 부산 불교계의 거장으로서 조계종 중앙총회의원직의 소임을 맡아 봉직 하였으며 불교신문 이사장을 맡았으며 많은 저서를 내어 대중을 인도하시는 불교계의 원로이시다
큰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주지스님의 방울소리를 울리며 제일 앞에 서고 그 뒤로 아버지의 위폐와 영정을 들고 상주와 친인척 모두 법당를 돌고 나가서 대웅전을 돌아 마당을 지난후 대웅전 왼편에 있는 소각장에서 위폐와 아버지의 옷 영전에 가린 검은띠를 태운후 막재를 마쳤다
막재에 참석한 식구들과 불자들이 다같이 넉넉하게 식사를 같이 하며 떡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식사를 마치고 큰스님을 보좌하시는 보살의 안내에 따라 큰스님이 기거하시는 법당으로 신도 회장이신 친구 부인과 집사람과 같이 갔다 새로 지은 법당은 너무나 훌륭하였고 앞 마당에는 이제 막 이사한 흔적이 보였다
문을 열고 법당으로 들어서서 고목나무로 만든 큰 차탁 앞에 앉아계시는 큰 스님께 삼배를 올리니 책상앞으로 가까이 앉으라고 하시면서 절에서 재배한 녹차를 직접 만들어 유리잔에 부어 주셨다 가까이서 큰스님을 뵈니 긴세월 수행하셨서 전해지는 무언의 힘과 평온하시고 인자하신 모습은 무언지 모르게 따듯함을 전해주었다 일전 미얀마 성지순례에 같이 갔다온 이야기를 하신후 아버지 장수에 대하여 우리내외에게 덕담도 하여 주셨다 계속 권하는 차를 마시며 이제 다른 분도 드시도록 저희들은 그만 하겠습니다 하며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대웅전 마당으로 나와서 모두 우리집으로 가자고 하니 시간이 늦어서 인지 여동생은 예식장에 간다고 먼저가고 다대포 큰누님도 사촌들이 시간이 바빠 그냥 갈려고 해서 다음에 자리를 만들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으며 큰누나 자형도 작은자형차로 집으로 가고 우리집에는 집사람과 서울 가족들이 먼저 갔고 남자들은 친구차편으로 뒤에 집으로 갔다
간밤에 잠을 못자고 새벽에 온 승기동생 가족은 우선 좀자야 겠다고 하였으나 그래도 바로 산소에 갔다 와야 된다고 하는 집사람 의견에 그러면 차간에서 좀자기로 하고 서울동생들과 제수 우리내외가 산소에 갔다 파릇 파릇 새싹이나고 새때를 입힌 산소를 둘려보며 새꽃을 꽃병에 꼽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가면서 부모님의 은덕에 감사함을 전하며 각자 삶의 어려움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산소에서 내려오는 산길에는 오월의 푸른숲이 우리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는것 같았고 피로감을 많이 느끼는 승기동생 내외는 차간에서 눈을감고 피로를 푸는것 같았다 오후 늦게 집에 오자마자 다들 시간이 바쁜 것 같아서 서울 동생들한테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 한 후 다음 만날때까지 생각하기로 하고 두동생은 처갓집으로 갔다 막재가 끝나고 모두가 떠나버린 허전함을 느끼며 시간의 흐름속에 맡겨져 이시간까지 왔구나 하며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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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할아버지카페에 올린 글을 옮겨왔다 고모 고숙 삼촌 그리고 기태와 같이 제사를 지내고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화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태기삼촌이 읽다가 울컥하는 마음에 글을 못읽고 있으니 작은 고모가 릴레이 식으로 이 글을 읽으면서 할아버지 49제를 하던 그날을 회상하였으며
승기삼촌은 집에서 이글을 숙모와 보면서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서 그날의 감동을 새삼 느꼈다고 하였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