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李廷秀, (1920 ~ 1987)】 "1944년 한국광복군 제3지대 입대 후 지하공작 전개 "
1920년 2월 19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언주면(彦州面) 청담리(淸潭里, 현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태어났다.
중국 대륙에 거주하던 중 1941년 베이핑(北平, 현 베이징)에서 윤용호(尹龍虎)·김진동(金鎭東) 등과 뜻을 같이하여 베이핑 시내 한국인 학생들을 규합하고, 관내 일본군의 동향을 탐지하는 한편 선전공작 전개, 지하 연락망 구축 등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인 학생들을 감시하고 있던 일제 헌병대와 영사관 경찰이 활동을 탄압함에 따라 1942년 9월 베이핑을 탈출하여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으로 도피하였다. 타이위안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작원 김광언(金光彦)과 접선하여 정식으로 지하공작대원이 되었다.
1943년 재차 베이핑에 잠입하여 한국인 교포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연락망을 조직하고, 정보를 모아 임시정부로 전달하였으며, 뜻있는 한국인들을 일제 점령지역 밖으로 탈출시켰다. 그러던 중 톈진(天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광복군 전방공작원 윤창호(尹昌浩)와 접선하여 베이핑·톈진 지구의 전방공작원 임명장을 수령한 뒤 지역 내에서 동지를 초모(招募)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44년 윤창호의 인솔 하에 김의명(金義明)·이윤하(李允夏)·홍순명(洪淳明) 등과 함께 베이핑을 빠져나가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의 광복군 제3지대에 정식 입대하였다. 당시 광복군 제3지대의 명칭은 징모 제6분처로 주로 초모공작을 통해 대원들을 모집하고 지하공작으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따라, 푸양 광복군 제3지대 본부에서 첩보작전을 위한 훈련을 수료한 다음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의 지시에 따라 1945년 김광언과 함께 베이핑 지구에 배속되어 지하공작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후 광복군 제3지대의 전방 공작대원으로서 베이핑과 톈진, 타이위안, 스자좡(石家莊)을 왕래하며 군자금과 동지를 모집하였고, 현지인으로 변장하여 수집한 일본군의 정보를 무전을 통해 연합국 측으로 전달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한 이후 톈진에 설치된 광복군 특파단(特派團) 소속으로 지대장 신흥균(申興均)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국민혁명군을 도와 중국 내 일본군의 무장해제 작업 및 관할 내 치안 유지, 한국인들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절차 원호를 담당하였고, 한국인 교포들과 일본군에서 복무했던 한국인 병사들을 대상으로 애국사상 교육을 실시하였다. 1946년 중국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국내로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