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시골집에는 돌담이 딱이다. -
권다품(영철)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집안 일들은 거들어야 했다.
보리타작 모내기 벼타작 소먹이러도 가야 하고, 그외 여러 일들을 해야 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께서 무너진 돌담 쌓으시는 걸 도와 드린 기억도 난다.
큰 도움이야 안 되었겠지만, 일을 하시면서도 아들을 데리고 놀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셨을 것 같다.
어디 여행을 가다가 가끔 차창밖으로 시골 돌담이 보이면, '나도 어릴 때 아버지 돌담 쌓으실 때, 거들어 드리기도 했는데...' 하는 정겨운 기억이 나기도 한다.
명절에 어른들 산소를 가기위해 고향을 찾다보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폐가로 변한 고향집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언제 시간이 나면 수리를 하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추억이 고스란히 묻은 집이라, 뜯어버리기에는 너무 아쉽다.
우선 수리가 가능할 지 벽지를 뜯어보고, 천장의 방장도 걷어내 보았다.
150년 정도 전에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인데도, 아직 기둥이나 서까래 등 연목들이 탄탄해서 뜯어없애기가 너무 아까웠다.
또, '요즘 집을 대부분 양옥으로 짓다보니, 시골에 와도 시골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이런 흙집은 건강에도 좋고, 우리의 옛날의 정서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학원을 정리했을 때라 바쁠 것도 없다 싶어서 내 손으로 직접해 보기로 했다.
아내도 거들어주고, 마침 쉬고 있던 아들도 같이 시작했다.
너무 험한 집이라 자신이 없긴 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하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라는 생각은 들었다.
천장의 흙이 떨어져 중간 중간 세숫대야 만한 큰 구멍이 뚫렸고, 벽도 헐어서 무너진 곳도 더러 있었다.
어릴 때 본 아버지처럼 나도 진흙에다가 짚을 썰어넣어 밟고 이겨서 벽과 천장을 때워 봤다.
그래도 벽은 쉬운 편이었는데, 천장 떼우는 건 정말 어려웠다.
밑에서 흙을 힘껏 쳐올놓고 내려오면 흙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서 꼭꼭 눌러서 떼워놓고 내려오면 또 떨어지고....
물론, 전혀 경험이 없긴 했지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시도해보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봤다.
결국 세 사람이 머리를 모으다보니, 해결은 했지만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다.
천장의 그 많은 서까래들에 까많게 끼인 그으름과 파리똥들도 일일이 사포로 다 벗겨냈다.
옛날 마루 위에 지어놓은 예쁜 제비집도 살리고.....
동네 어른들마다 "하겠나?" 하시면서 걱정을 하셨는데, 그래도 우리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거의 3개월 정도만에 우리 손으로 조금 어설프긴 했지만, 어느 정도로는 복원을 해낼 수 있었다.
마루도 비잉 다 창문을 둘러서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해서 거실로 만들었다.
마당에도 자갈을 깔고나니까 집이 산뜻하게 살아났다.
아들은 마당위 집과 나무에다 줄에 달린 전구들을 둘렀더니, 티비에서 봤던 예쁜 찻집같은 분위기가 됐다.
마당 큰 벗꽃 나무 두 그루 거늘 아래는 큰 돌 식탁도 놓았다.
돌식탁 옆에다 닭백숙도 해먹을 수 있도록 무쇠솥도 걸어뒀다.무쇠 솥뚜껑을 뒤집어서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남은 고기에다 김치를 썰어넣고 밥을 비벼먹어도 정말 맛있다.
한 3개월 동안 일을 했더니, 집 울타리는 그냥 편하게 원래 있던 사철나무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사철나무가 일일이 손질을 못해주다 보니 참 보기가 싫었다.
역시 시골집에는 돌담이 딱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요즘은 시골에도 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자꾸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집안 아지매 집 헛간채를 뜯었더니 돌이 많이 나왔다며, 어떻게 처리해얄 지를 걱정하시는 말씀을 듣고는, 고맙다 싶어서 그 돌을 실어다 날라서 담을 쌓기 시작했다.
80세가 넘으신 동네 어른들은 "돌담 그거 아무나 몬 쌀 낀데...이 돌하고 저 돌하고 서로 물리도록 싸야 와르르 안 뭉개질 낀데...." 이렇게 걱정들도 하셨다.
'그래도 시작은 해 보자. 무너지면 다시 쌓으면 되지 뭐. 시작하다보면 무슨 답이 나오겠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 말씀처럼 어려웠다.
그런데, 하다보니 조금씩 요령도 생기고, 어릴 때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들도 기억이 났다.
"사람도 여기 필요한 사람이 있고, 저기 필요한 사람이 있듯이, 담 쌓는데도 큰돌만 필요한 기 아이고, 작은 돌도 필요하고, 큰돌 사이사이에 자갈들도 필요하니라."라는 말씀도 기억났다
나도 아버지처럼 돌을 요리도 놔보고, 조리도 놔보고, 바로도 놔보고 뒤집어도 놔보고, 안 맞을 때는 고렇게 작은 돌 하나를 끼우니까 신기하게도 고렇게 단단하게 고정이 되었다.
가끔 물을 마시면서 돌아보면, 좀 어설프긴 해도 점점 제법 돌담 모습이 돼간다.
기분이 참 좋다!
작업복을 입고 돌담을 쌓고 있는 내 모습은 영락없이 나를 데리고 담을 쌓으시던 옛날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리라!
아버지는 농사 일에 쫓겨서 빨리 쌓아야 되지만, 나는 급하게 쌓을 이유도 없다.
시간나는 대로 쌓으면 된다.
햇살이 뜨거우면 찬물로 샤워하고 낮잠을 한 숨 자도 되고, 냉커피를 타 마시고 쉬어도 되고...
커피를 들고 거실에서 돌담을 내다보면, '조금 서툴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예쁘다' 싶기도 했다.
그렇게 한 뼘씩 높아지고, 한 자씩 길어지는 돌담을 쌓다보면, 어느새 저녁 시간이 지난 줄도 모를 때도 있다.
주위 어른들이 "저녁도 안 먹고 일하나?"라는 말을 듣고야 벌써 저녁 때가 됐나 보다 하며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이 담을 쌓는다고 무슨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옛날 시골 모습이 그리워서다.
전문가처럼 잘 쌓은 것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옛날 우리 돌담을 복원해 보는 것이, 나 자신이 생각해도 참 기특하다 싶기도 하다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사진을 찍어서 여기저기 자랑도 하고....
사실, 돌담 쌓는 일은 참 힘이 든다.
그런데도 묘하게 돌담쌓기에 빠져드는 걸 보면, 외래 문화 속에 살던 내가 은근히 우리 것이 그리웠던가 보다.
볼수록 은근한 정이 생기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
비오는 날은 그 비맞는 돌담을 보고 있으면 어떤 묘한 향수에 젖기도 한다.
나는 그런 것이 좋다.
며칠 있다가 또 시골 올라가면, 또 쪼매이 쌓고 올 생각이다.
이제 몇 미터 안 남았다.
2024년 7월 16일 오후 1시 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