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9일 연중27주간 화요일 (루가10,38-42)
♡비교에서 악이 나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기의 몫을 행하고 또 그 몫에 기쁨과 감사함을 지닙니다. 자기 몫이 무엇인지 알고 확신이 서 있다면 그 몫을 행하는 것에 배 아플 것도 없고 기쁨이 클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몫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 집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었고,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르타가 마음이 상했는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 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루가10,40).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가10,41-42).
마르타의 몫도, 마리아의 몫도 다 필요하고 좋은 몫입니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마리아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로마10,17)'. 말씀을 기초삼지 않은 행동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 깨닫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해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내 뜻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는 것을 찾게 됩니다.
마르타는 다소 불평어린 어조로 예수님께 말씀 드렸는데 그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의 역할을 다 했으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생색은 왜냅니까? 왜 동생과 비교합니까? 열심히 일해 놓고 마음에는 화를 잔뜩 담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이 내 몫이었으면 그것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스스로 주님을 위해 시중을 들었으면 그 자체를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마르타는 활동적인 여인인 듯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일에만 집착하면 그 활동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활동은 기도 안에서, 말씀 안에서 나온 활동이라야 참된 활동이 됩니다. 또한 기도를 하면 할수록 활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 없는 활동은 무의미합니다. 활동이 없는 기도는 또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 안에서 좋은 몫을 택할 수 있는 지혜를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몫이 주어졌든 최선을 다했으면 그 자체로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예수님을 집 안으로 모실 때의 마음은 분명히 좋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시중들다가 미움의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분주하게 시중들고 있는데 동생 마리아는 그저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편안하게 말씀만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동생 마리아가 도와준다면 자기 역시 예수님과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즉, 마리아 때문에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마리아 때문일까요?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리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많은 일에 염려하고 걱정했던 마르타 본인의 마음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시중든다는 것 역시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여기에 집중하다면 그녀 역시 기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 안의 부정적인 마음이 이기도록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중을 들고 있어도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내 마음 안의 싸움에서 좋은 마음, 사랑의 마음이 이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쁨이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