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 /문경자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작은 손으로 밥을 짓고, 도랑에 나가 빨래를 하였다. 겨울엔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시리고 아팠다. 두 주먹을 쥐고 호호 불면 살이 튼 자리에 피가 났다. 손을 펴면 갈퀴를 닮은 손가락 마디도 남보다 굵다. 손이 예쁜 사람은 주먹을 쥐어도 반질반질 윤이 나고 손등도 매끄럽다. 탐스러운 아기의 주먹은 얼마나 귀엽고 앙증스러운가! 생각만 해도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나도 태어날 때는 엄마가 내 손을 꼭 깨물어 주었을 테다. 글을 쓰면서 내 손을 본다. 2월의 햇살이 베란다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내 손등 위에 시퍼런 실핏줄이 선명하다. 그 사이 허옇고 잘잘한 실오라기 같은 것들이 수를 놓았다. 수틀에 놓은 수는 아름다움 그 자체지만 내 손의 그것들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다시 주먹을 쥐어 본다. 손아귀의 힘은 정말 세다. 어쩌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악수를 한다. 보기보다는 손잡는 힘이 세다고 한다. 고생을 많이 한 손이 힘도 세어지는구나. 그 말이 듣기 싫지는 않았다. 사람에 따라 손을 맞잡는 순간에 마음까지도 읽을 수가 있다. 그 방법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이 악수를 청한다. 그때 느낌으로 자기 편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도 있다고 했다. 4월의 보궐선거는 주먹 인사를 하겠지. 그때는 딱딱한 느낌으로 서로의 감정도 더 날카로울 수가 있겠다. 권투 선수가 주먹인사를 하는 것처럼 승부욕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살에 닿는 순간과 딱딱한 손마디의 뼈와 맞잡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주먹도 세월의 무게만큼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두 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 잡으려는 듯 말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름대로 멋진 세상을 만들어 보자 하는 다짐도 해본다. 그런 것들이 다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안 될 때도 있다. 세상일이 그렇게 쉬우면 누구나 걱정없이 살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나는 두 주먹을 쥐고 내 친구에게 대들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우리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어릴 때 잠을 자다가 다리를 잘 못 펴서 합천 읍에 있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는데, 생살을 잡아당겨서 꿰매어 결국은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었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단발머리 춘이가 내 앞에서 할아버지가 걸어 가는 모습을 흉내 내며 웃었다. 허리에 찬 책보를 집어 던지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들었다. 머리카락을 잡고 싸우다가 힘이 없는 내가 밑에 깔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나는 주먹맛을 보여주겠다며 이를 악물고 얼굴을 때렸다. 춘이는 잘 먹고 자라서인지 힘도 세고 주먹의 힘도 대단했다. 그때 맞은 생각을 하면 주먹이 운다. 옆집에 사는 친척 오빠는 심심하면 분통이 터져 주먹세계로 진출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더니 자기가 짝사랑하던 애인이 다른 남자에게 반해서 도시로 떠났다. 낮이나 밤이나 오빠는 그 여자를 못 잊어 울며불며 아무데나 주먹을 쳤다. 얼마나 아플까! 피가 맺히고 맺혔다. 노부모를 모시고 사니 장가를 못 가서 얼마나 애간장이 탔을까 생각하면 불쌍하여 동네 사람들이 측은하게 여겼다. 어떤 날은 동네 술꾼 아저씨가 막걸리 한 잔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남씨 아저씨와 큰 싸움을 하였다.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모은 돈을 한입에 털어 넣고 뻔뻔하게 돌아다니는 빚쟁이 남씨를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한바탕 해야 하는데 덩치를 보나 말재주를 보나 아저씨가 당해 낼 재간이 없어 두 주먹이 바르르 떨었다. 권투 선수처럼 한방에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먹도 쓰기에 따라서 훌륭한 권투 선수는 이름을 날리지만, 진흙탕 물에 빠질 수도 있다. 누구나 한번은 주먹을 쥐고 맹세를 하거나 울부짖을 때가 있었다. 사랑 땜에 미움 땜에 힘을 낼 때 또는 아프거나 기쁠 때 서러울 때 그 때마다 주먹을 쥔다.
친구를 만나 반갑다는 인사로 주먹으로 배를 치거나 서로 주고받는 행동을 한다. 남자들은 뭐든지 내기를 했다. 아들을 둔 부모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살면 절대로 성공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주먹질을 잘하는 남의 자식들이 자라 성공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성공하여 산골마을로 가면 자랄 때 주먹만 쓰고 다니더니 이렇게 변해서 대기업의 총수가 되었다고 야단들이었다. 그때부터 동네서는 주먹을 쓰는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둑을 잡거나 정의를 위해서 쓰는 주먹은 황금 주먹이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하여 서로에게 미움보다는 위로를 주고 힘을 더해 주고 아껴주는 마음이 더 크다. 사람들과 만남이 어렵고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든 시기다. 다정하고 따듯하게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맞잡고 온기를 느끼며 인사하는 것도 사라지고 주먹 인사를 한다.
아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눈웃음을 지었다. 서로 주먹을 비비며 반가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과의 주먹이 연결고리가 되다니 정말 코로나 때문에 주먹이 출세를 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 노래 가사처럼 주먹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다. 만일에 주먹이 없다면 어떻게 인사를 했을까 코를 비비며 코로나를 외쳤을까! 어머니 없이 일을 하여 갈퀴 같은 손이지만 오늘따라 주먹 쥔 내 손이 예쁘고 귀하게 여겨졌다.
경남 합천 출생
2009년 한국산문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