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산(般若山 96.2m)’은 논산천의 남쪽에 위치한 구릉성 산지이다.
'반야(般若)'는 대승 불교에서 비롯된 용어로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 곧 ‘분별(分別)·망상(妄想)을 떠난 지혜(智慧)’를 뜻한다.
정상에는 반야산성이 있고, 산의 남쪽에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서 968년(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한 관촉사(灌燭寺)가 있다.
‘관촉사’라는 이름은 중국의 지안(智安)이라는 명승(名僧)이 은진미륵 미간(眉間)의 옥호(玉毫)에서 발생한 빛이 “마치 촛불을 보는 것같이 빛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觀音殿)·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해탈문(解脫門)·현충각(顯忠閣)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국보 제323호)’과 ‘석등(보물 제232호)’, ‘배례석(拜禮石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 ‘석문(石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오층석탑·사적비 등이 있다.
그 밖에 반야산 입구 민가에는 ‘논산 관촉동 석조비로자나석불입상(論山 灌燭洞 石造毘盧舍那佛立像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이 있다.
반야산 관촉사 탐방은 ☞ 노성산,옥리봉,옥재봉,봉우재산,노성향교,명재고택,궐리사를 답사한 뒤 이루어졌다.
산행코스: 대바우마을-민가(관촉동비로자나석불입상)-반야산-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석등·배례석·석문)-대바우마을(2km,55분)
궤적.
2km가 조금 넘는 길을 관촉사 답사 포함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현장에서 급조한 표지기를 서두에 올렸다.
대바우 표석 앞에서 모두 내린 뒤...
표석 아래의 '대바우 마을 유래'를 카메라에 담았다.
'대바우(竹岩)'는 바위의 모양이 거북이를 닮아 '거북바위'라 불리기도 한다.
옛날 표진강이 흐를 때 이 바위에 배를 매었다하여 '배바위'라 하였는데, 배바위가 변해 '대바우'가 되었다는 설이다.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기 위해...
우측 아스팔트를 따르다보면 야트마한 동산 아래에 '순릉안씨 재실'이 있고, 그 옆에 석불이 있는 민가가 있다.
옛날 '대정운사(大正雲寺)'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이란다.
지금은 민가인 듯한 마당에 석불 한 기가 두손을 모으고 뻘쭘이 내방객을 맞고 있다.
불상은 사각형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데, 몸에 비해 머리가 매우 크다.
머리 윗부분은 마치 관(冠)을 쓴 듯 높이 솟아 있고, 그 위에 다시 크고 높은 상투모양의 머리묶음이 있다.
머리에 높은 관을 쓴 것은 국보인 ‘관촉사 은진미륵’과 비슷한 것으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다.
네모난 얼굴은 비대한 느낌도 들지만 선명한 눈썹, 작은 코, 입과 턱에 있는 U자형의 선이 특이한 인상을 준다.
사각형 신체의 작고 비만한 모습은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평행 옷주름과 다리에 U자형 무늬의 구불구불한 선이 있다.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오른손 검지를 왼손이 말아 쥔 모습이다.<자료>
안내판.
절집을 닮은 기와집은 순흥안씨재실.
순ㄹ흥안씨 표석.
석불을 답사한 뒤 일행들은 모두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갔으나...
나는 산자락이 내려온 능선으로 바로 붙었다.
유택들이 자리 잡은 지능선을 올라서면...
금세 반듯한 등로.
고개를 드니 2층 팔각정자가 올려다 보이는 반야봉.
팔각 2층 정자다.
현판엔 '반야정'. 2002년 가을 일화(一和).
엎드린 채 표지기를 쓴 뒤 한갓진 나무에 걸었다.
임도급 산길에 있는 석상은 '안향(安珦)의 상(像)'.
'안향'은 고려 충렬왕 때 원나라에서 성리학을 도입하고 섬학전을 설치하여 이를 보급한 고려의 문신. 초명은 유, 자는 사온, 호는 회헌이고 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해 교서랑을 거쳐 직한림원이 됐다.
문교부흥의 기운이 소생하기 시작한 충렬왕 때 원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원나라를 왕래하며 학풍을 견학하고 이를 최초로 국내에 들여왔다.
이는 한국 유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고려의 불교세력과 대항하고 나아가 그것을 압도하면서 조선시대의 건국이념으로까지 성장했다.
'애국지사최호선생기적비'.
비석은...
'경주 배씨 중시조 무열공 배현경 공덕비'.
체육시설을 지나...
잘 다듬어진 계단을 내려서자...
높다랗게 절집이 있다. 관촉사다.
2층 전각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관촉사의 중심 전각 대광명전.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국보 제323호)’을 친견한다.
968년(고려 광종 1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7년이나 걸려 1006년(목종 9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옛 지명이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현재의 관촉동)여서 은진미륵(恩津彌勒)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륵불 뒤로 병풍처럼 둘러져진 입석들.
머리에는 구름무늬 같은 머리카락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윗부분의 관까지는 정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고, 관은 8각형으로 깎았다.
그 위에 2중의 보관을 올리고 관의 네 귀에는 청동제 방울을 달았다.
얼굴은 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역제형(사다리꼴)으로 눈이 옆으로 길게 돌아갔고 코, 입, 귀는 모두 크고 토속적인 느낌이다.
굵은 목에는 3도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좁은 어깨에는 가로무늬가 있고 몸중앙으로 몇 개의 U형 옷주름을 둘른 단조로운 무늬의 법의가 걸쳐져 있고, 양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한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는데 이는 아미타여래의 중품하생인을 표현한 듯하다.
눈코입은 과장되어 있는 무정형의 안면으로 턱밑에 음각선이 비만해 보이고, 불신은 어깨와 동체 폭이 같은 석주형으로 4등신의 비사실적 비례로 서민에게 친밀감을 준다.
평야지대의 그리 높지 않은 언덕에 우뚝 서있어 들녘에서 일하는 농부나 길을 가는 행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불상조각 보다는 정교하지 못하나, 규모의 장대함이나 고려시대 독자적인 특이한 양식으로 토속신앙과 불교가 혼합된 석불상이다.<자료>
은진미륵 앞의 비석의 비명은 ‘금강회상도리회상옹호회상(金剛會上瀟利會上擁護會上)’이라고 적혀 있다.
시주자 전태현(全泰賢)이라는 이름이 비석 옆면에 새겨져 있을 뿐 조성시기를 밝히지 않았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323호)' 안내판.
석등은 보수 중인 듯 가림막 안에 있어 휀스 밖에서 틈새로 작은 카메라를 집어 넣었더니...
석등은 목하 보수중.
가림막의 석등 그림 앞에...
관촉사 배례석(灌燭寺 拜禮石 유형문화재 제 53호)이 있다.
길이 204㎝, 너비 103㎝, 높이 40㎝의 장방형의 대석으로 면석(面石)의 긴쪽에 3개, 짧은쪽에 2개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고사리무늬 같은 버섯구름 모양을 양각했다.
윗면에는 가운데의 커다란 연꽃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약간 작은 연꽃 2송이를 양각했는데, 연꽃모양은 3개가 모두 같은 홑꽃잎 8엽이며, 가운데 커다란 원좌(圓座)가 있고 그안에 자방(子房)이 연주문(連珠文)처럼 양각으로 돌려 새겨져 있다.
연꽃잎이 뾰족하게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 연꽃에서 좌우로 이어지는 연꽃가지는 매우 사실적이다.
석불·석등·배례석이 일직선상으로 놓여 있어 신도(信徒)가 입구에 들어와 석불을 향하여 배례했을 때 이용했던 대좌인 듯한데, 보존상태가 아주 좋고 조각이 뚜렷하고 힘이 있어 석불보다 우수하다.<자료>
관촉사 배례석 안내판.
은진미륵 옆으로 비석을 포함한 석물들이 있고...
특이한 석문이 보인다.
‘논산 관촉사 석문(論山 灌燭寺 石門 충남 문화재자료 제79호)’은 절내로 들어가려면 이 석문을 통과하여야만 했다.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문으로 일명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문은 네모난 돌기둥을 양쪽에 세운 후, 양 기둥 뒤쪽으로 길쭉한 돌을 5개씩 쌓아 옆면을 이루게 하였다.
기둥 위로는 네모지고 넓적한 돌을 얹어 놓아 전체적으로 4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관촉사가 건립된 후 참배객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동·서·남·북 4곳에 이러한 문을 두었는데, 그중 동쪽에 세운 이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석문을 세운 시기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관촉사가 건립되었던 고려시대로 짐작된다.<자료>
안내판.
윤장대(輪藏臺)다.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 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달라는 염원이 들어 있다.
윤장대의 용문양.
연꽃을 비롯한 화려한 무늬.
관촉사 윤장대 안내판.
은진미륵 옆에 있는 비석은 '관촉사 사적비'다.
이 사적비는 1743년(영조 19)에 각혜(覺慧) 스님과 속인으로 구성된 불량계원(佛粮契員) 다수가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이를 통해 미륵보살입상의 자세한 조성경위와 절의 연혁을 알 수 있다.
관촉사 사적명.
사적비의 측면에 '관촉사 사적명(灌燭寺 事蹟銘)'이라 새겨져 있고, 비문 내용은 석불을 조성하게 된 경위와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스님으로 화신하여 나라를 구한 일, 후일에 석불과 절 주변을 보수 정비 한 사항 등이 새겨져 있다.
반야산과 관촉사 답사를 마치고 대바우로 회귀하였더니...
그 옆 널따란 주차장에 대기 중인 우리 버스.
- 관촉사 윤장대 -
까막눈이시다
물집 잡힌 발가락이 꿈 밖에 나와서도 쓰리다
문자에 기대지 않고는 한 발짝도 올 수 없는 불경책 수억년 돌아 품에 안기고
긴 손에 닿은 판도라는 어둠에 갇히고
품고만 있어도 위안이 되는지
갓난아기처럼 끌어안고 사신다
내 이름 석 자도 어디에 있을 듯하여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끌어안고
꿈속에서도 윤장대를 돌리시는지
같은 말만 되풀이하신다
금강경을 넣고 밤새 윤장대를 돌린다
지금도 엄마는 자꾸 나를 끌어안으신다
<김 효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