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중에 재미있는 단어가 '자기(自己)'라는 말이다. 명사가 되기도 하고 대명사가 되면서, 말 맥에 따라서 '자신'도 되었다가 또 삼 인칭 적인 뜻으로 바꿔져 버리는, 다른 나라의 언어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말이다.
일 인칭으로 보면 '나, 제 몸, 저'의 뜻이지만, 삼인칭에서는 그 사람을 다시 가리키는 말이 된다. 즉 '그 친구 한심한 친구로군! 자기가 어떤 일을 저지른 지도 모르니 말이야.'의 경우를 들 수 있고, '자기 배부르면 종놈 배 곱은 줄 모른다' 의 자아(自我)를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어떠한 단어보다도 심리적, 계약 적인 의미로 사용되면서, 제약을 암시하는 말이요, 철학적 용어로도 빼 는 수 없는 단어이다.
'자기암시, 자기기만, 자기주의, 자기소외, 자기계약, 자기앞 수표' 등 객관적 소재를 확실하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위 주체적인 책임의 뜻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책임을 따지고, 이에 대한 의무를 암시하는 뜻을 가진 단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영어에서도 myself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 자신과 나 스스로'를 뜻하고 일 인칭에 대한 강조의 의미가 두드러져 우리말과는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자승자박(自繩自縛)을 들게 된다. 즉 자기가 만든 줄에 제 몸이 얽어 묶인다 뜻이다. 이 말은 '제 무덤을 판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나 한 차원을 올려 보면 '남이 억지로 하라는 것도 아닌데 자신 스스로가 번뇌를 일으켜 고해(苦海)의 바다에 빠져든다'는 불교의 용어가 되기도 하고.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논리인 자기소외(自己疎外)와도 일별의 뜻을 가진다.
자기소외란 운동의 주체가 자기의 본래면목과는 일탈되어 다른, 오히려 대립하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변전을 하는, 자기외화(外化)를 뜻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이 먹은 사람이 외국생활에서 쉽게 느껴지는 소외감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주권도 'legal alienation'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외국에서의 법적인 영주'란 처음부터 소외로부터 시작되는 갈등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이 소외는, 비단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만 나타나는 괴로움이 아니다. 인간이란 처음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살도록 운명지어진 소외 속에서 태어났고, 또 그 속에서 살도록 그렇게 만들어진 동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회적인 동물이기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사회라는 객관성의 테두리 속에 작은 한 개체로서의 굴레라는 제약을 받아야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런 소외감이 생기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면 '만족해하는 돼지보다는 고민하며 움츠리는 인간'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요, 그 이면에는 변덕꾸러기인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스며드는 육신이라는 것이 있어, 청정(淸淨)한 색깔이 남색(藍色)으로 보이고 또 주황빛에 붉은 흙탕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신경이라는 괴물이 마음 한가운데서 기능적 병변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몸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져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외침이란 지극히 단순하다.'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의 역설 외에는 할말이 없다.
그러한 자승자박이 몸 속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이것을 신경증이라 한다.
신경증이란 뇌나 장부상의 기질적인 이상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데도, 몸의 어딘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만성화되면서 확실한 병으로 마음속에 자리 메김을 한다.
의학상으로 본다면 마음에서 오는 대수롭지 않는 기능적인 병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마음속의 느낌'에서 오는 병이라 지만 그것이, 그렇다고 정신병과 같이 정신적인 장애와 인격적인 변화는 따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은 그것이 아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며 고통을 호소하고 검사실의 신세를 진다. 첨단을 걷는다는 시티나 엠알아이의 촬영을 통해 의사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지극히...' 라는 형용사를 붙여 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려준다. 그러나 환자의 입에서는 끙끙 앓는 소리가 나는 병변. 그래서 어떤 종교에 빠진 의사는 '당신 병은 귀신이 든 병이라고 하며 교회를 나가라'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투덜거리는 환자의 불평, 그 속에는 불신이 묘연해 환자를 대하는 자신이 의사인지 사기꾼인지의 분간마저 혼동이 오면서 낮 뜨거워 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는 종교가 없는 의사의 입장도 다를 것이 없다. 아무리 찾아보아야 이렇다 할 만한 원인은 나타나지 않고... 환자는 죽을상을 지으며 괴로움을 호소한다. 이럴 때 쓰는 것이 '조자룡의 헌칼' 같은 신경증이라는 병변이요, 그리고 한의사는 모든 병이 기로 통하게 되어 있는 논리를 앞세워 '기가 부족합니다. 약을 써야 합니다'하는 대답이 유일한 방편이다.
어떻게 보면 마귀를 팔아먹고 사는 것이나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나 피장파장이기는 하지만, 환자의 입장으로서는 병의 원인이 자기 자신의 자율신경의 기능장애로 인한 기질적인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므로 어느 누구도 탓 할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이다.
이러한 병명을 신경증이라는 단어에 관능을 덧 붙여 신경관능증(神經官能症)이라 하고 주원인은 심인성이라고 한다.
원래 심인(心因)이라는 것은 선문답에 있어 '기폭에 바람'과 같은 것이 여서, 먼저 흔들릴 소질과 소인(素因)을 가지고 다음으로 바람을 탓하듯 그를 싸고있는 주위환경을 보게 된다. 즉 소리도 마주치는 손바닥이 있어야 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심리학적으로는 이것을 '인격의 미성숙과 욕구불만에 대한 약한 내성'으로 풀이하여 인격의 차원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참을 인(忍)자를 셋을 요구한다.
인내란 돌발사건에 대한 발진성의 분노에 대한 참음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은근하게 사람의 정서를 갉아먹는 갈등요소들에 대한 느긋한 여유를 말한다.
예를 들면 성인이라는 분들의 말 찌꺼기,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듯,' 아예 뺨을 맞기고 '님의 뜻대로 하소서!'하라는 식이다. 그래야만 '바늘구멍으로 개가 들어갔습니다' 하더라도 '흐흠'하는 것이요,
닦달을 하듯 시달리면서도 받아 논 밥상도 누가 가져 갈까봐 맞바람에 개눈 감추듯 퍼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그러한 마음씀씀이 가 아니고서는 제 방귀소리에도 지래 놀라 자빠지게 된다는 역설이다.
대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보면, 걱정도 팔자인 사람. 세상의 모든 문제를 제 혼자서 안고 있는 양 걱정 근심을 하면서 금방이라도 어떻게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한다. 그것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쏠리면서 망상들과 어울려 병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공포로 변한다. 조그마한 위화감이 들어도 죽을 것 같은 생각에 휩싸이고, 망상이 꼬리를 물면서 병정도 강도를 더해가고 불안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이것이 일종의 '피 암시성'으로 전환되면서 기분에 따라 몸의 느낌도 수시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강박감이 따르는 '전환성의 히스테리'를 유발시킨다.
심계항진에 대한 불안한 생각이 들면 심장에 대한 걱정이 늘어나고 (또 실제로 촉진되어진다.) 불면에 대한 불안은 불면을 촉진하는, 객관성 없는 증상이 연속된다. 그리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기 시작하며 나며 쉽게 흥분하고 화를 터트린다. 마침내는 감각기까지 예민해 지면서 광선의 밝기에 따라 감정 기복이 달라지며 또는 어떤 특정한 냄새가 역겹게 느껴지면 생각만 해도 오심(惡心)증이 나타난다. 조금만 움직여도 쌓이는 피로감 때문에 무기력해져 매사에 의욕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주의 집중력이 둔해지면서 곧 잘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두렵게 생각하여 공포관념에 싸이고 의심이 많아지면서 돌다리도 삐꺽거리는 다리처럼 때려보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확인을 하는 성격으로 변한다.
현대의학으로 설명하면 '긴장으로 인한 식물신경계의 기능 실조'로 표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증후 상으로 보면 정신적이라는 관점에서 정지억울로 인한 간기울결(肝氣鬱結)로 변증하게 된다. 그리고 병인으로는 정신에서 오는 칠정(七情)이 라는 점에서 심과의 관계를 들며 다음으로 심(心)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신정(腎精)과 장부들을 들게 된다.
신정과의 관계는, 먼저 신의 심의 상관기능인 수화상제(水火上帝)를 역행하는 심신불교(心腎不交)의 증상을 든다.
신음의 부족은 곧 간기를 자양하지 못하며, 억울. 불안. 화 등의 심한 감정의 기복을 일으키고 정지를 불창(不暢)시키므로 간기를 더욱더 울결 시킨다.
울결은 곧 열(熱)로 나타난다. 열은 진액인 진음(眞陰)을 마르게 하여 고갈시키므로 간신음허(肝腎陰虛)를 초래하고 간양상항(肝陽上亢)으로 나타난다.
항성된 간양은 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간기가 횡역 하면서 타 장기에 병변을 발생시킨다.
먼저 간 자체의 병으로 대표적인 것은 정지변화와 협통. 흉협고만(胸脇苦滿)을 들 수 있으며 두부로의 상요(上擾)로 인한 두통. 두훈(頭暈). 목현(目眩).이명(耳鳴)을 동반하기도 하고, 명치끝이 답답해지면서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오는 등의 증상이다.
다음은 간기가 항성해지면서 다를 장부에 미치는 증상이다. 태성한 간기가 위를 범하므로 위완부의 창만. 동통과 함께 신물이 올라오며 비를 범한 즉, 복창, 복통, 하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이 계속되면 신(腎)과 음혈(陰血)이 손상되어 골수(骨髓)에 영양을 주지 못해 대사장애로 인한 심계, 실면, 다몽과 요슬산연(腰膝酸軟)이 나타난다.
심은 혈맥을 주관하는바, 심기가 극도로 허해지면 영혈의 부족을 초래하여 심계, 다몽하고 미열로 인한 안면홍조와 전신에 때때로 발열 감을 느끼게 한다.
신은 공포를 주소하고 구병으로 신이 상하게 되는 즉, 신이 허해지면서 양기가 떨어져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어 유정(遺精)과 양위(陽萎), 요슬산연(腰膝酸軟)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다음은 장부상의 변증적인 관점에서 위장신경관능증. 심혈관신경관능증. 성신경관능증 등으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
위장신경관능증
주로 위장, 소화기 계통의 증상으로 두통과 불면, 기억력 감퇴, 번조, 심계 등의 신경관능증을 수반하고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1. 트림이 계속해서 나오며 울림소리가 크다.
2. 음식을 먹고 난 후, 구토증을 느끼며 소량을 토하기도 한다.
3. 과민성 결장으로 긴장을 하거나 정서적으로 격한 감정에 사로잡힌 후 바로 복통이 나타나거나 복창, 복명, 설사 등이 따른다.
대변은 묽은 수양 성이거나 점액이 섞인 변으로 하루에도 수 차례를, 그러나 항상 시원하지 못하고 묵직한 감이 들거나, 반대로 변비가 나타나는데 대변은 분상을 띠거나 소변이 흰색의 점액 상을 띤다. 과민성결장염과 유사한 증상이다.
심혈관신경관능증
1. 심장신경쇠약으로 인하여 항상 심계현상과 협통, 호흡곤란 및 심판막장애에서 오는 혈류 통과장애로 인한 심조(心跳). 좌흉 유방 부위나 유방하부의 은통(隱痛), 혹은 순간적인 자통이 나타나기도 하며 공기가 탁하다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며, 심호흡과 함께 탄식을 발하며 심한 경우에는 호흡이 촉박해지기도 한다.
2. 혈관운동기능 실조로 인하여, 모세혈관의 확장과 수축장애에 따른 갑작스런 홍조(紅潮)와 창백 현상이 나타나고, 체온은 정상인데도 전신이 춥고 떨리거나 지속적인 발열 감을 느끼기도 한다. 홍조현상이 나타날 때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발작 후에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성신경관능증
생식기능 계통의 증상으로 유정. 조루. 양위(陽萎). 월경부조. 성욕감퇴 등의 증상을 보인다.
위의 증상들을 변증해보면 몇 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심담기허(心膽氣虛). 간기범위(肝氣犯胃). 신허화쇠(腎虛火衰)로 변증한다.
1. 심담기허는 영혈이 허해지면서 정혈의 부족으로 심신(心神)이 안정되지 못하고 담이 허한 즉 매사에 놀래기를 잘한다. 치법은 익기정지(益氣定志). 양심탕(養心湯)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