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 맡겨진 핸들 자율주행기술이 가져올 자동차산업의 혁명
오전 6시 30분. 직장인 A씨는 출근을 준비한다.
회사로 가는 길은 곳곳이 상습 정체 구간이다.
9시 전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며 7시 15분쯤 집을 나선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회사동료 B씨는 평소 출근시간보다 30분 늦은
오전 7시 45분에 로보택시(Robo-Taxi, 자율주행택시)를 예약했다.
실시간 교통상황에 따라 경로를 바꾸고, 주차 시간도 절약되므로
본인 차를 이용할 때보다 통근 시간을 30분가량 줄일 수 있다.
택시에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방향으로 가는 다른 승객도 분리된 개인 공간에 탑승했다.
B씨는 꽉 막힌 도로를 보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는 대신 뒷좌석에 편히 앉아
밀린 서류를 확인하고 그날의 일정을 확인했다.
자율주행차(Autonomous Vehicles, AV)가 도로를 달리는 것은 더 이상 가상이냐 실제냐의 문제가 아닌, 시기의 문제가 됐다. 앞서 언급한 로보택시는 실제로 단거리 출퇴근, 주요 대중교통 거점의 환승 연결성을 목표로 시험운행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 도요타자동차는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시기에 맞춰 자율주행차를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독일 다임러는 독일 내 처음으로 자사 자율주행 트럭이 고속도로 시험운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 제조분야 기업 프리스케일과 손잡고 자율주행차 부품 공동개발에 나선다고 한다. 자율주행차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기까지는 약 20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가올 변화에 미리 대처하고 준비하기엔 많지 않은 시간이다. 자동차 업계, 규제당국, 그리고 교통 및 기술 분야 이해 당사자들이 지금부터 얼마나 철저히 대비하느냐에 따라 자율주행차가 맞이할 미래는 달라진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에 자동차를 구매했거나 구매할 의향이 있는 미국 소비자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 결과는 자율주행차에 대해 소비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머지않아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장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자율주행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 4가지
▶① 자율주행차 기능에 추가비용 지불할 의향 있음
설문조사 결과 미국 운전자들은 자율주행차의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응답자의 약 55%는 5년 내 부분 자율주행차 구매를, 약 44%는 완전 자율주행차 구매를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완전 자율차 구매에 적극적 관심을 보인 소비자들은 추가 금액을 지불할 의향도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기차 도입 전 관심도에 비해 훨씬 높고 강한 것으로 자율주행차 보급이 예상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② 자율주행 기능 전반적 높은 관심, 특정 기능 선호도는 부재
응답자의 60% 이상은 자율주행차 각각의 기능에 대해 매우 또는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고속도로나 교통체증, 정해진 루트의 자율주행, 주차공간 자동탐색과 자율 발렛파킹 등 대부분의 기능에 전반적으로 고른 관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특정 기능에 대한 선호도를 나타내지 않은 만큼 제조, 부품사들은 연구개발 과정에서 어떤 기능을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③ 높은 관심을 보인 프리미엄 고객층
현재 프리미엄 자동차를 소유한 응답자들은 부분 자율주행차와 완전 자율주행차 모두에 높은 지불 의향과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자율주행차는 프리미엄 고객을 타깃으로 하는 세그먼트에서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Volume Segment)들도 상당한 관심을 보인 만큼 일본 도요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처럼 모든 고객층에 탄탄한 입지를 가진 제조사들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자율주행차 기술을 볼륨 시장으로 전수함으로써 수익성과 규모를 모두 확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④ 생산성, 안전성 증가 및 비용절감에 대한 기대
완전 자율차 구매 의향을 보인 응답자 절반 이상은 구매하고자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생산성 향상을 꼽았다. 개인 생산성 측면에서 2차 혁명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는 많은 소비자들이 다른 활동을 위해 운전의 즐거움을 포기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율주행차가 세탁기와 식기세척기와 같은 가전에 의해 실현된 것보다 더 큰 혜택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응답자들은 자율주행차가 안전성을 개선하고 보험, 정비,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5가지 예상 시나리오
자율주행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파악한 뒤에는 이 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상되는 그림을 그리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① 자율주행기능 외 옵션에 대한 하향조정 니즈
자율주행차 구매에 관심이 있는 일부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자율주행 옵션을 얻기 위해 차체, 엔진 크기와 인테리어 장식과 같은 사양을 낮출 의향을 보였다. 이에 제조업체가 5년 안에 자율주행차 사양을 추가하는 한편, 다른 옵션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자율주행차 보급을 2035년까지 약 15%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② 비용회수 여부에 따른 보급률 전망
연료 및 보험 비용 감소를 통해 자율주행차 사양에 지불한 프리미엄 값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구매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를 이용함으로써 약 15%의 연간 연료비가 절감되고, 교통사고 감소 및 전반적인 안전성 개선으로 차량 1대당 30%의 보험료를 감소할 수 있다면, 4년 동안 절감할 수 있는 금액은 최소 2300달러(약 266만원) 이상이다.
이러한 효과가 3~4년간 입증될 경우 보급률을 2035년까지 전체 자동차 시장의 14%로 끌어올릴 수 있다.
▶③ 도시교통수단에 미치는 영향
세 번째 시나리오는 완전자율차가 도시 교통수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것이다. 자율주행택시의 경제논리는 기존 택시와 개인 자동차 소유의 경제논리보다 더 매력적이다.
미래엔 자율주행택시의 여러 경제적 이점으로 개인 교통수단으로 자율주행차 사용을 장려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도심지역 운전자들이 개인 자동차를 포기하도록 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의무화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많은 도시에서 이처럼 급격한 변화가 생기게 되면 완전 자율차 보급률은 2035년 19%에서 2040년 약 43%까지 증가될 전망이다.
▶④ 자율주행기능 의무화 가능성
자율주행차 시장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신규 자동차에 자율주행 자동차 기능을 의무화하는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다. 이러한 규제는 사고 감소 및 교통체증 감소로 인한 인력의 생산성 증가 등 상당한 사회적 잠재 효과에 의해 촉진될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의무화 규제를 제도화하기까지 안전성과 경제적 혜택 입증을 위한 기간, 제조사와 공급업체가 새로운 표준에 부합하기 위해 소요되는 기간을 모두 포함해 5년에서 10년의 기간이 예상된다. 의무화 규제가 시행되면 완전 자율차는 2035년까지 전체 자동차 시장의 약 19%에 도달할 수 있다.
▶⑤ 자율주행차 시행 반발 가능성
마지막 시나리오는 자율주행차 기술 관련 심각한 실패 사례가 발생, 널리 알려지는 경우다. 이 경우 자율주행차에 대한 여론이 갑자기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강경해지며 대중의 자율주행 자동차 채택이 수년간 지연될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고 광범위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자율주행차 설계 및 제조, 그리고 자율 기능 작동 및 제어 소프트웨어 개발과 개선 등 모든 측면에서 엄격한 실험 및 품질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성공적인 시장 안착을 위한 과제
자율주행차가 사회 전체에 제공하는 혜택은 크다. 교통혼잡이 줄어들고 연비가 개선되며 자동차 사고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구할 것이다. 하루의 상당 부분을 교통에 낭비하고 있는 통근자들에게 연간 수백 시간에 달하는 생산적 시간을 되돌려줄 수 있다.
이처럼 막대한 잠재적 효과 때문에 세계 각국의 규제당국은 자율주행차 기술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우려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최근 발생한 우버택시와 유럽택시조합과의 분쟁에서처럼 기존의 이해관계로 인해 자율주행차 도입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택시 및 트럭 운전수, 보험사, 개인상해 및 교통사고 소송 전문 변호사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이해당사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정책입안자들에게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이에 관계당국은 가장 피해가 큰 이해관계자들이 입는 타격을 완화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사회적 압력도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반 대중은 대체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매우 기대에 찬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한순간에 등을 돌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장 도입 초반에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면 규제당국은 자율주행차에 대해 강력한 입장을 취하라는 압력에 부딪힐 수 있다. 따라서 제조업계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기술의 한계와 혜택 모두에 솔직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지나온 100년 중 가장 중요한 변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20년 후 자율주율차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가면 주차난으로 짜증낼 일도, 도심의 러시아워를 뚫고 지나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철저한 소비자 분석을 통해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그려보자. 그리고 제조사, 연구원, 규제당국 등 각자가 취해야 할 단계를 정리, 자율주행차 시장 발전을 위한 로드맵에 맞춰 전략적으로 실행해 나가자. 그것이 현재 자동차산업에 일고 있는 엄청난 변화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다.
[자비에르 모스퀘트(Xavier Mosquet)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디트로이트오피스 파트너, 토마스 다우너(Thomas Dauner) 슈투트가르트오피스 파트너 니콜라스 랭(Nikolaus Lang) 뮌헨오피스 파트너]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62호(201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