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오늘 문득 아버님께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지내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버지께서 천국에 가신 후로는 아버지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납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뒷산자락이 없어진 듯, 바람막이 되어주던 울타리가 허물어진 듯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언제 어떤 경우에도 저를 용납해주시고 믿어주시고 제 편이 돼주셨지요.
몸이 아플 때도, 끼니를 거를 때도, 국회에 낙선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언제나
“앞으로 잘 될거야. 아들내미야! 살다보면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 허허 웃으며 힘을 주셨지요.
그래서 더 더욱 좋은 일, 축하받을 일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절절합니다.
아버지! 자식은 평생 짝사랑만 하는 존재라고 하시더니, 저 또한 자식들을 짝사랑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깊은 속정을 깨닫건만, 아버지는 어느새 제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아버지! 얼기설기 7남매를 천수답에 달아놓고, 애면글면,
먹이랴 입히랴 남의 축에 안 빠지게 가르치고 여위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셨습니까?
아버지! 못난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대학 교수가 되고, 박사가 되고, 어쩌다 신바람 건강박사가 되어 세상에 이름이 났을 때,
대놓고 한번도 자랑하지 않으셨지만, 만면 가득 뿌듯하게 지켜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제가 장남이랍시고, 옹색한 신혼 방에 동생들 데려와 공부시킬 때,
무거운 쌀가마 이고지고 오셔서, 며느리 붙잡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염치없어 하시던 우리 아버지!
박사학위 받아들고 보여드리자 “참 장하다! 장하다!” 함박웃음 지으시던 아버님,
그 모습을 딱 한 번만 다시 뵐 수 있다면 생각하던 차에, 어느날 거울을 보는 순간 놀랐어요.
제 얼굴이 아버님 얼굴로 보였어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너무 기뻤어요. 하하하!!!
아버지께서 위암 판정을 받았을 때 “하나님 주신 수명대로 살면 되지 몸에 칼 대가며 여러 사람 복잡하게 안한다.”며
수술을 완강히 거절하셨지요.“아버님이 수술 안 받으시면 저희들이 불효자가 됩니다.
명색이 의과대학에 몸담고 있는 제가 아버님 수술도 안 시켜 드리고 어떻게 학생들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 말씀드리자 “내 자식 욕 먹일 수는 없지, 그럼 수술하자!” 하시며 훌훌 털고 따라나서시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서 수술실로 들어가시기 전에 ‘奉仕(봉사)’라는 글귀가 적힌 종이를 쥐어 주셨을 때,
저희 칠남매는 부둥켜안고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교회와 가족을 위해 늘 봉사하며 살아라!”
아버지! 그날 이후 이것은 저희 집의 가훈이 되었습니다.
“대대로 봉사하는 우리 집으로”
제가 공부하고 싶다고, 중학교 가고 싶다고, 울며불며 소 몰고 지게지고 뒷산자락 오르내릴 때,
그 때 아버지가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셨을까!
아버지께선 어지간한 일은 늘 칭찬해주시고 인정해주시는 분이셨지만,
신앙의 문제 만큼은 간과하지 않으시고 엄격하셨지요.
2년전 93세의 일기로 하늘 나라에 가시기 전날까지도
가정예배를 일평생 드리시는 아버님, 정말 존경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느니라,
아범아! 이 말씀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니거나 책갈피에 넣고 다녀라!”
아버지처럼 훌륭한 분이 제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제게 엄청난 힘이고 자랑이고 분복입니다.
장로님이신 아버지 천국에서 다시 뵐 때까지 저를 위하여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아버지! 정말 많이 보고 싶습니다.
불효자 수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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