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이나 토성엔/오세영
새벽 산책길에서
살모사가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입에 삼키는 것을 보았다.
어제 저녁에 나도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먹지 않았던가.
하나의 생명을 먹고 사는 다른 또 하나의 생명
죽은 자는 죽인 자의 어머니,
이 무참하게 저지를 죄를 씻기 위해 산 자는
식사 후 항상
물로
자신의 내장을 헹구어낸다.
아무도 살지 않는 목성이냐 토성엔
물도 필요 없지 않던가.
*오세영1942~
시집으로 『봄은 전쟁처럼』 『시간의 뗏목』 『사랑의 저쪽』 등이 있고, 학술서 『20세기 한국시 연구』 『우상의 눈물』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만해상 등을 수상했다.
<시 읽기> 목성이나 토성엔/오세영
삶의 치욕을 건너는 법
삶의 치욕을 건너갈 방법은 없을까. 그것은 치욕이 삶의 가장 큰 무기가 되는 순간밖에 없다. 때론 ‘다 먹고 살자고 이런다’는 말이 숭고하게 들릴 때가 있다. 치욕은 모락모락 김나는 한 그릇 쌀밥 때문에 생겨나지만, 그 치욕을 감내하는 순간 꿈이 생긴다. 식사 후에 마시는 한 잔의 물은 치욕을 씻어내기 위한 행위일 것이다. 물 때문에 인간의 죄가 생겨나지만 그 물로 우리는 고통받는 신의 발조차 씻어줄 수 있는 인간 행위의 가장 성스러운 꿈을 펼칠 수가 있다. 진공의 저 우주보다 지구가 아름다운 건 본성을 억제하지 않는 미생물 같은 치욕이 우리들 삶을 활성화시켜주기 때문이다.
―박형준 엮음, 『당신에게 그 어떤 위로보다』, 사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