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라는 골치 아픈 스포츠
간혹 방 박사 메일에 골프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골프를 즐기는 모양이다. 나는 골프라는 스포츠는 관심이 없다. 다만 남의 비서란 걸 하면서 골프 덕은 본 적 있다. 내 전임 실장은 군에서 중령으로 예편한 사람인데, 비서실장을 두 가지 일로 생색내고 있었다. 하나는 골프 예약, 하나는 서울대 의사 예약 이다. 서울대 의사 예약은 연고가 없으면 어렵다. 그런데 실장은 평양 사범 출신인데, 서울대에서 암으로 유명한 김진복 박사와 친했다. 그가 이북 출신인지 군에서 알던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잘 통했다. 그래 실장은 인후암 거친 노 회장을 모시고 자랑스럽게 서울대 강북 병원을 드나들곤 했다. 또 당시 골프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 같이 어렵던 시절이다. 우선 골프장은 통화부터 어렵다. 그래 그는 한번 다이얼 돌리면 연속 자동 발신되는 전화기를 두 대 갖다 놓고 여비서 두 사람을 하루 종일 골프 예약하는 일만 맡겼다. 사장은 경기고 졸업한 MIT 박사 출신인데, 안기부장 이종찬과 효성 그룹 창업 2세들과 골프 멤버였다. 서로 돌아가며 예약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모두들 자기 예약이 일류 골프장으로 되면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러니 실장은 일주일 내내 골프 예약에만 신경 쓰다가 일단 예약이 되면 즉시 사장실에 들어가 통보하고 나와서는 기분이 좋아 휘파람을 불며 비서실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후 내가 비서실장이 되었다. 그래 골프는 골프가 아니라 골치였다. 골프 예약 못하는 실장은 실장 자격이 없다는 말도 있던 시절이다. 그 빌어먹을 골프 때문에 골치를 썩이다가 나는 하나의 비법을 발견했다. 기자를 통해 예약하는 방법이다. 나도 기자 출신이다. 매일경제 골프 담당 기자를 시켜 매월 일류 골프장 황금 시간대 예약을 받아왔다. 골프장 사람은 딴 데는 고자세지만, 골프 담당 기자 앞엔 고양이 앞에 쥐다. 그 고양이를 나는 매월 1회 룸싸롱에 데리고 가서 먹이고, 몇 번은 봉투에 백만 원을 넣어서 주곤 했던 것이다. 내 덕에 사장은 현역 안기부장한테 생색내고, 그 덕에 나도 비서실장 체면 좀 세웠다.
나는 아이언 3번으로 남 드라이버 거리 날렸지만, 슬라이스가 많아 항상 100개 이하 성적이었다. 그룹 비서실장 한다고 자주 초청 받았지만 별로 좋아한 편이 아니라, 좋은 골프장 아니면 초청을 거절했다. 그렇게 공짜 골프도 고고하게 거절하다가, 속초 가서는 내 돈 내는 골프 잠시 즐기기도 했다. 멤버에 이대 출신 여교수가 있었다. 경찰서장 세무서장도 있어 티엎 시간은 항상 아침 7시 황금 시간대다. 대명 콘도 1번 홀에 서면 일출이 그림인 동해가 보이고, 돌아서서 2번 홀에 서면 안개 덮인 울산바위가 보인다. 봄이면 벚꽃이 필드 주변에 핀다. 이슬 맺힌 잔디밭에서 짧은 바지 입은 초노의 여교수가 아주 세련되고 멋지 폼으로 샽을 날리곤 했다. 골프 끝나면 넷이 동명항 매운탕으로 아침 식사하고 헤어졌다. 전부 집이 서울인 나그네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속초 생활 끝내고 서울 온 후론 골프 끊었다. 한번 노는데 캐디피니 뭐니 해서 멀쩡한 돈 30만 원 날아가기 때문이다. 돈 있으면 바둑이나 족구 하는 친구들 밥이나 사는 게 좋다. 미국은 몰라도 한국 골프는 너무 비싸다.
강릉에서
立冬 지나 서리맞은 홍시는 우수 봄비의 부드러움과 夏至 폭염의 강렬함을 겪은 후라서 인지, 果肉의 향기와 빛갈이 농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감나무 이파리는 창공에서 낙하하면서 뜰 안 이끼 위에 쌓였다가 바람에 날렸다가 하면서, 이별의 美學을 실습하고 있었다. 감나무는 가능성의 종점, 계절의 끝이 더욱 아름다운 나무다.
강릉에 와서 젊은 날 사랑과 절망을 세탁한 한 여교수를 만났다. 철 지난 해변의 여인처럼 그의 시선은 스쳐온 시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忍苦의 날들이 은백의 머릿결에 아름다웠다. 태백산맥이 파랗게 보이는 골프장 그늘집에서 그녀와 녹차를 한 적 있다.
십육번 인코스 부근을 지나며 아이언 7번을 멋있게 날리던 그. 그는 강릉 하현 달빛 아래 낙엽은 보내고 홍시만 단 아름다운 감나무처럼, 농익은 향기와 빛깔을 품은 채, 계절 끝에 혼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