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손잡고 중국에 다른 손 내미는 일본…한국은?
[ 시민언론민들레 | 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 ] 2023.04.04 16:54
일본인 스파이혐의 구속 중일소통 기회로
하야시 외상, 중국 친강·왕이·리창 회동
중국과 불화하면서도 복수의 통로 유지
미국에 올인한 한국은 독자적 카드 없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왼쪽)이 2일(현지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일본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2019년 12월 이후 3년 4개월만이다. 2023.04.03 AP 연합뉴스
중국이 지난 달 일본의 대형 제약회사 아스테라스의 중국 현지법인 일본인 간부를 스파이활동 혐의로 구속하면서 경색기미를 보이던 중일관계가 양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연쇄 회동 속에 오히려 관계호전 쪽으로 바뀌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은 지난 1일 베이징을 방문해 문제가 된 제약회사 아스테라스 사원들을 비롯한 중국 현지의 일본계 기업들 관계자들을 만난 뒤, 2일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그리고 중국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중국 외교의 총책임자인 왕이 위원과 회담하고, 리창 총리까지 예방했다. 뿐만 아니라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도 2일 베이징에서 왕이 위원을 만났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왼쪽)이 2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친강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오른쪽)을 만나고 있다. 일본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2019년 12월 이후 3년여 만이다. 2023.04.02 AP 연합뉴스
한국과 대비되는 일본 외교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아스테라스 제약회사 간부 구속뿐만 아니라 지난달 31일 중국 포위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는 형태로 발표한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규제 강화 조치 등으로 중일관계에 역풍이 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기시다 정부가 미국과의 밀착을 강화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또한 유지, 강화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경사되지 않고 섬세한 균형을 취함으로써 일본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해 나가는 독자적인 외교전략을 구사하려 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일본의 이런 외교전략은 일본과 유사한 지정학적 조건 속에 놓여 있는 한국의 윤석열 정부가 ‘탈중국’을 공언하면서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에 ‘올인’하는 미국 일변도의 젼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일본은 중국과 정치적으로 불화할 때조차 경제, 문화, 인적 교류 등 복수의 소통 통로를 유지함으로써 양국관계 단절로 인한 손실을 막거나 줄이면서 상황에 맞춰 방향을 다시 바꿀 수 있는 장치를 항상 마련해 두고 있는데 비해 지금 한국정부에겐 그것이 없다.
리창 중국 총리(오른쪽)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2일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하고 있다. 일본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2019년 12월 이후 3년여 만이다. 2023.04.03 AP 연합뉴스
할 말 하면서도 실리 챙기는 일본·중국 외교
중국 또한 왕이 위원이 후쿠다 전 총리에게 한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아스테라스 제약회사 간부 구속 사태를 일본과의 고위급 접촉의 기회로 활용해 일본의 과도한 대미국 밀착에 대해 경고하면서, 일본과의 경제 및 인적 교류를 강화하는 새로운 대일관계 모색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왕이 위원은 2일 후쿠다 전 총리에게 “올해는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5주년이 되는 중요한 해인데, 일본의 대중국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는 명백히 오커스(AUKUS)와 쿼드(QUAD) 등을 통한 외교안보 방면,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 강화 등을 통한 경제 방면에서 중국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에 동조하는 일본의 과도한 미국밀착을 막고 반중국적 움직임에 경고를 보내기 위한 발언으로 읽힌다.
중국을 국빈 방문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왼쪽)가 31일 베이징에서 열린 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2023.03.31 EPA 연합뉴스
“교류와 의사소통 강화하자” 맞장구
일본 외상이 중국을 방문한 것은 2019년 12월 모테기 도시미츠 당시 외상의 방중 이래 이번이 3년 3개월 만이다. 이는 지난해 11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총리와 시진핑 중국주석이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 만나 정상회담을 비롯해서 모든 레벨에서 긴밀하게 상호 의사소통을 하기로 확인하면서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한 뒤 이뤄진 것으로, 아스테라스 제약 중국 현지법인 간부 구속이 이번 방중의 직접적인 게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2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조어대) 국빈관에서 열린 하야시-친강 회담에서 친강 부장은 올해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5주년임을 상기시키면서 “현재 양국 관계의 바톤은 우리 세대의 손에 건네졌다. 우리는 역사와 인민에게 부끄러움 없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친강 부장은 또 “나는 하야시 외상과 함께 조약의 정신을 되돌아보면서, 교류와 의사소통을 강화해서, 양국이 방해를 제거하고 곤란을 극복하면서 전진할 수 있도록 밀고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친강 부장의 이런 발언 역시 왕이 위원이 후쿠다 전 총리에게 한 말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7일 기자회견에서 친강 부장은 미국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에 대해 “중국을 봉쇄할 목적이 분명하지만 막혀서 나아갈 수 없는 운명이다. 아시아에서 냉전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하야시 일본 외상은 “지금 일중관계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수많은 과제와 심각한 현안에 직면해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국면에 처해 있다”면서 “일중 양국은 지역 및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는 대국이기도 하다”며 “양국 외교책임자로서 논의해야 할 일이 많으니 솔직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 맞장구를 쳤다.
일본의 독자적인 외교안보전략
하야시 외상은 이와함께 기시다 총리가 3월 20일 인도를 방문했을 때 뉴델리의 강연에서 밝힌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실현방안에서 강조한 ‘힘에 의한 현상변경이나 경제적 위압을 용인하지 않는 평화원칙과 번영의 룰’을 설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점령, 그리고 경제적 보복 또는 차별 조치 등에 반대한다는 것인데, 미일동이 주도하는 서방의 규칙에 따르라는 얘기다. 한국이 실효지배하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고유영토 다케시마’ 주장은 현상변경 불가 주장과 모순되는 듯 보이지만, 일본은 독도가 애초에 자국 영토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이를 묵인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다. 일본의 현상변경 불가 주장은 이런 샌프란시스코 체제 방어 내지 수호라는 면에서 그들의 주장에 부합한다.
하야시 외상은 이번 중국방문에 앞서 아스테라스 제약 간부 구속사태와 관련해 중국 쪽에 “엄중한 항의와 조기석방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그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제휴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 오키나와의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주변에서 중국군이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하야시 외상의 이런 행보는 미일동맹 강화 속에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와 방위비(군사비) 대폭 증대 등으로 군사안보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일본이 중국에게 할 말은 하되 힘을 통한 정면대결은 피하면서 중일관계 또한 더욱 긴밀하게 꾸려가겠다는 독자적인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에 일본과 중국은 정치, 안전보장, 경제 등의 분야에서 양국 차관급 협의를 재개했다. 하야시 외상은 이번 방중 전 날 중국군과 일본군(자위대)의 우발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군사당국간의 ‘핫라인’도 개설했다.
<아사히>는 3일 이와 관련한 사설에서 “의견이나 입장에 차이가 있더라도 솔직한 대화를 계속하면서 대립이 아니라 협조의 길”을 찾으라고 촉구했다. “그것이 지역과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일중 양국이 해내야 할 책무다. 정치, 경제, 국민 교류 등 중층적인 파이프를 연마해서 관계 재구축의 발판을 다져야 한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3.4.4 연합뉴스
미국 ‘올인’ 한국외교 독자적·주체적 카드가 없다
<아사히>의 이날 사설은 하야시 외상이 중국을 방문하기 전 날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한 ‘첨단반도체 제조장비 수출규제’를 발표한 것으로 두고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국 포위망 형성에 협력하겠다는 노림수가 분명하다”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에게 역사적으로도 관련이 깊은 이웃나라이고, 최대의 무역 상대국이기도 하다. 미중의 대립이 세계의 안정과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주체적인 근린외교에 힘쓸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얘기다.
<아사히>는 중일 두 나라 외교장관들이 2019년 말 이후 열리지 않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담’을 포함한 3개국 협의를 재개하자는데 생각을 같이했다고 전하면서,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문제의 정치결착(해결)으로 한일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한 타이밍에서 북조선(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을 포함해서 한중일이 지역문제를 함께 얘기하는 의미는 크다”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대일굴욕외교대책위원장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일제 강제동원 굴욕해법 및 굴종적 한일정상회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고 있다. 2023.3.29 .연합뉴스
여기에서 한국은 완전히 빠져 있거나 고려대상의 객체로만 거론되고 있다. 중일 양국 외교장관회의이니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한중관계가 막혀 있다면 한미일 3국관계에서 한국은 중대한 국면에서 늘 소외당한 채 중일 또는 미중, 미일의 논의에 자신과 한반도의 운명을 내맡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사히>가 지적했듯이 일본정부는 한국정부가 동의해 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중국과의 협의 내지 교섭에서 자국에 유리한 재료로 활용하면서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현안들에 대해서도 발언권을 지닌 주요 플레이어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게 됐다. 하지만, 중국과 불화하면서 일본에게 모든 걸 다 내주고 미국에 ‘올인’한 한국은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도 없이 그들 나라의 의도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