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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일상은 수많은 염려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문제는 염려한다고 염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많이 염려에 침몰된다는 것입니다.
염려에서 벗어나는 가장 명확하고 쉬운 길은 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번 한가위에 가장 대박난 축하카드는 이것이었습니다. 한가위 3행시로된 축하카드였는데요.
한 한번뿐인 삶에서
가 가장 잘한 선택은
위 위를 바라보는 것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합니다. 부자가 되려는 것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가정을 이루는 것도 사실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면 할수록 오히려 행복이 멀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잘산다'라는 말과 '행복하다'라는 말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더 높은 성취가 행복을 보장해 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얼굴에는 웃음보다 피로가, 만족보다 불안이 더 짙습니다.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으로 삶의 만족이 없습니다. 이처럼 미래가 불확실하고 관계가 불안할수록 행복은 더 절실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행복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창조 선언에는 인간 행복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행복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내지만, 불행에 사로잡힌 사람은 사소한 시련에도 무너집니다.
여러분은 염려와 두려움을 얼마나 자주 느끼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주"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대개 걱정이나 스트레스는 우리가 보거나 들은 무언가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순식간에 우리의 마음을 장악합니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이 있습니다. 그 논문에 따르면 오늘날 사람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거의 50%를 과거나 미래에 관해 생각하는 데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추적하기 위해 킬링스워스와 길버트 박사는 2,250명의 자원봉사자에게 무작위로 연락해 얼마나 행복한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현재 활동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즐겁거나 중립적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아이폰 앱을 개발했습니다. 피험자들은 18세부터 88세까지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 일, 즉 과거에 일어났던 일, 또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아니면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응답자들은 깨어 있는 시간의 46.9% 동안 마음이 현재에 있지 않고 과거나 미래를 방황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는 우리의 정신이 현재가 아닌 다른 생각에 놀라울 만큼 침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킬링스워스와 길버트 박사는
"인간의 마음은 방황하는 마음이고, 방황하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이다"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잘 지키지 않으면 과거나 미래로 방황하게 됩니다. 대개 염려나 두려움은 다른 생각의 등을 타고 우리 마음속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불과 몇 초 만에 우리의 마음을 장악하여 분노와 우울로 몰아갑니다. 미래에 고정된 생각은 걱정과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과거에 고정된 생각은 후회와 분노를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오래전 솔로몬은 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지적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장 23절)
불교 화엄경의 핵심 사상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세상만사는 마음이 지어낸다는 것입니다. 즉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등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입니다.
신라의 승려 원효가 의상 대사와 함께 선진 불교를 배우고자 당나라를 향해 떠났습니다. 일행이 신라의 바닷가 당주 경계에 이르러 큰 배를 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비가 내려 비바람을 피해 길가의 무덤(토굴) 속에 들어가 밤을 지새우게 됐습니다. 밤이 깊어 잠결에 목이 말랐던 원효는 손을 더듬어 물을 마시게 되었고, 날이 밝아 본인이 마신 물을 확인하니 그 물이 우리가 잘 아는 해골바가지에 고인 썩은 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셨던 물을 다 토해 냈습니다.
원효는 거기서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과 오늘 모두 똑같은데, 어째서 어제는 단물 맛이 나고 오늘은 구역질이 나게 하는 것인가?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물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구나. 진리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발걸음을 돌려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장 34절)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을 장악하고 있던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이동하면 우리의 염려와 두려움은 즉시 힘을 잃게 됩니다.
어떤 원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식하기만 해도 우리 문제의 90%는 해결된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현재를 떠나 다시 과거나 미래로 시선을 고정하면 염려와 두려움이 가장 빨리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순간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삶의 기적도 오직 현재에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도 지금 이 순간에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현재의 순간에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즉시 그분이 누리고 있는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로 이끄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그녀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담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전한 결과로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날 그 자리에서 과거 일에 집중하고 계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티븐 스카이라는 저술가는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20분 전에 베드로와 빌립이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니, 생각할수록 한심하군.'
예수님이 그런 생각에 빠져 계실 때 그 여인이 왔다면, 여인은 물항아리를 채워 돌아갔을 것이고 거듭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미래의 일에 몰두하고 계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배가 고파 죽겠는데 제자들은 언제 돌아오는 거야?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네. 오늘도 하늘 아버지께 밤새 기도해야겠군. 하늘 아버지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나는 정말 좋아.‘
이렇게 미래에 몰두하셨다면, 이번에도 그 여인은 혼자 항아리에 물을 채워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구주께서는 영혼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그 사람과 함께하는 현재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과 단둘이 만날 때도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생각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분노로 끌고 갈 때, 혹은 내일에 대한 염려나 두려움으로 몰고 갈 때,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기쁨, 평강,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빼앗아 가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염려입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 마음에 염려의 불화살을 쏩니다. 마귀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많은 일들을 가지고 우리를 염려하도록 유혹합니다.
염려에 대해 연구한 학자가 있는데, 바로 심리학자 젤렌스키입니다. 그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염려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22%는 사소한 일들에 대한 것이며,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것이다. 오직 4%만이 우리가 대처해야 할 진짜 일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염려의 96%는 사실 쓸데없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염려를 합니다. 건강 문제로, 또 인간관계 문제로, 사업이나 경제 문제로, 자녀나 손주 문제로 많은 것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염려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장 25절)
여기서 '염려'란 헬라어로 '메림나오(merimnao)'인데, 그 뜻은 '마음이 갈라지다'입니다. 마음이 나누인 상태가 염려라는 것입니다. 한자에도 이와 비슷한 글자가 있는데, 바로 근심 환(患) 자입니다. 이 글자를 자세히 보면 마음의 중심(心)이 두 개(串)로 갈라진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염려를 '워리(worry)'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고대 영어 및 게르만계 어원인 '뷔르간(wyrgan)'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뜻은 '목을 조르다', 즉 맹수가 사냥감의 목을 물고 늘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사람이 염려에 매이면 몸과 마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7장 22절)
우리가 염려에 사로잡히면 그것은 불과 몇 초 안에 우리의 감정을 장악하여 절망, 심지어 우울로 몰아갑니다.
우리가 낙심할 때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힘내. 그냥 털어버려. 기도해. 주님을 믿어."라는 조언을 해 줍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런 조언과 격려를 해 주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방법이나 기도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셉이나 바울 같은 성경의 인물들은 염려와 두려움이 밀려올 때마다 그것을 물리치는 자신만의 '행복 버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버튼을 누르자마자, 모든 염려는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지배력을 일순간에 잃었습니다. 그들의 행복 버튼은 그토록 강력했습니다.
우리도 이 행복 버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행복 버튼은 무엇일까요? 오늘 저는 그 행복 버튼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를 염려에서 벗어나게 하는 행복 버튼은 바로 '염대기'입니다. '염대기'란 '염려 대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6절, 7절에서 그 버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가 찾아올 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염려 대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또 간구는 우리의 바람이나 요구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아뢰고, 그 상황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이심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응답만을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약속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철통같이 지켜주는 초자연적인 평강입니다. 우리가 염려 대신 기도하면, 그 즉시로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에 찾아옵니다.
저는 이 '염대기'라는 행복 버튼을 꽤 오래전부터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러 염려가 찾아올 때마다 이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면 많은 염려와 두려움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제가 삼육대학교 총장으로 부름받은 첫해인 2020년에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습니다. 수천 명의 학생으로 북적거리던 캠퍼스가 2년간 텅 비었습니다. 학기 초부터 모든 시설을 폐쇄함에 따라 그동안 수익을 내던 기관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반년이 지나자 어마어마한 재정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때 저는 '염대기'라는 행복 버튼을 누르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 앞에 오래 앉아 염려 대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이 주시는 평강이 제 마음을 채웠습니다. 객관적으로는 크게 염려할 일이었지만, 제 마음에는 왠지 걱정이 하나도 되지 않고 평안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할 지혜와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동료 행정위원들과 의논하고 정책을 만들어 추진한 결과, 그해 말에 그 많은 재정 적자가 소리 없이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이 버튼을 사용함으로써 하늘의 도우심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염대기'는 제 삶을 통해 검증된 확실한 염려 해결 방법입니다. 여러분도 염려가 찾아올 때 '염대기'라는 행복 버튼을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주시는 평강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가 행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써 우리가 행복한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행복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삶에 염려와 걱정을 던짐으로써 이 행복을 파괴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처할 수 있는 행복 버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염대기', 즉 '염려 대신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염려가 찾아올 때 염려 대신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하늘이 주시는 평강과 행복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하며 말씀을 마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오늘 귀한 말씀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신 말씀을 따라 우리 모두 염려가 찾아올 때 염려 대신 기도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몸이 아픈 분들, 마음이 상한 분들에게 하늘의 치유와 위로의 은총을 부어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복 주시고 우리나라를 지켜 주옵소서. 위정자들에게 하늘의 지혜와 판단력을 더하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치리하게 도와주옵소서.
한국 교회에 약속하신 늦은 비 성령의 부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각자가 그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가 다가오는 한 주의 삶도 선히 인도해 주시기를 비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https://youtu.be/nOr3Z7BRK08?list=RDnOr3Z7BRK08
https://youtu.be/A5269lwdknM?list=RDnOr3Z7BRK08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