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일지, 1
서울역 낭만시인
야근을 한다. 금요일을 제외한 월화수목을. 잠시 허공을 바라보면서 시큰한 허리를 감싸 앉았다. 멍을 때린 것도 아닌데 순간 누군가 어깨를 툭 건드린다. 고개를 돌리니 사장이 뒤에 서 있다. ‘안주임 잘 부탁합니다. 수고하세요.’ ‘아, 네’ 겸연쩍게 머리를 숙였다. 이곳을 다닌 지도 3년을 넘어 4년차로 접어들었다. 기실 이 공장은 야근을 별로 많이 하는 곳이 아니다. 사장은 돈이 들어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천정에 달린 공조기도 시찰 나올 때만 잠시 튼다. 환풍기도 돌아가기만 하면 꼭 꺼버리고 간다. 토요일과 일요일 말끔하게 코를 정리해서 구멍을 뚫어 놓는다. 그러면 뭘 하나, 월요일부터 콧구멍이 막히기 시작하는걸. 히터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꼭 온도를 내린다. 나야 원체 열이 많은지라 안틀어도 상관없다. 다만 다가오는 여름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콩알만 한 에어컨을 틀어 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가는데 이것마저 나는 틀고(ON) 사장은 껄(OFF) 것이니 말이다.
점심시간회의 때 이대리가 ‘사장님 잘 도착하셨답니다.’ ‘어디를.’ 놀라며 내가 물었다. ‘예루살렘이요.’ 아! 순간.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람. ‘예루살렘이라니.’ 출장을 그곳으로. 평소에도 아주 가끔. 열흘정도의 출장이 잦은지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뚱딴지같이 예루살렘이라니. 아, 이스라엘까지 영역을 넓혔구나. 성지순례를 떠났단다. 회의도 우리들 귀중한 점심시간 10분을 뺏어 한다. 한 달이면 120분이 날라 간다. 그러면서 퇴근시간은 칼이다. 저번에 5분인가 먼저 끝내고 청소를 하다 발각을 당했다. 노발대발 눈에서 거품이 나왔다. 그러고는 15분 더 일하고 청소하고 가라고 한다.
박근혜정부에도 십상시가 있고 노무현정부에서도 좌 희정, 우 광재는 존재했다. 콩알만 한(be as small as a bean) 구멍가게에도 좌 환영, 우 병환은 존재한다. 처음엔 나도 우 상성 인줄 알았다. 6개월 만에 주임벼슬을 달았다. 이후론 아득했다. 4년이 지나도록 감무소식이 희소식인줄로만 알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았다. 좌 환영은 올 때부터 계장을 달고 나타났다. 올해 초 대리로 진급했다. 1년차의 우 병환도 3개월에 주임을 달고 1년이 안되어 슬그머니 계장을 달았다. 벼슬이야 조도(娼妓) 사장 마음인지라 나야 간여할 마음은 없다. 2세 경영의 원활한 순환을 위해 젊은 애들을 키워야 할 것이다. 나 같은 늙은이야 젊은 아들이 부려먹기 많이 힘들다. 나라도 젊은이를 키우겠지. 근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나이 든 사람은 갈(?) 곳이 없어 오래 다닌다. 젊은이는 적당히 경력 쌓아서 더 좋은 곳으로 간다.
현장은 죽어라 일만 하는 곳이다. 30년차 이 과장은 10년 만에 차장으로 진급을 했다. 15년 된 오계장은 겨우 대리로 진급했다. 더한 경우도 있다. 36년 된 소주임은 여전히 주임이고 급여도 나보다 덜 받는다. 일하다 엄지손가락도 하나 날려 먹었다. 당연히 의료보험으로 치료비만 물었다. 이러니 산재보험은 남아돈다. 가족이라도 있었다면 항의를 해서라도 산재에 신고해서 정당한 손가락 값을 지불받았을 거다. 소주임은 아마도 혼자 산다고 들었다. 작년 연말에 그만둔 장전무도, 30년 다녀도 매일 혼나는 이차장도 모두 회사생활을 영위하기에 갑의 횡포에 눈을 감았다. 무언의 동조자들이다. 하긴 본인 몸값은 본인이 챙겨야지 누가 챙겨주나. 주임이란 직책은 게나 고둥에게 던져주는 미끼였다. 허울 좋은 명분은 직급수당 5만원에 팀장을 부여한다. 에나 콩이다. 현장에는 58년생이 5명이나 있고, 제일 어린 이차장이 53세다. 나머지는 파견직으로 필요에 따라 충당과 해고를 반복한다. 그러니 사람이 매일 바뀐다. 1년에 100여명은 왔다리갔다리 하는 것 같다. 나랑 같이 들어온 3~5년차가 전부 주임이다. 그냥 아저씨로 부르기엔 이상하니까 주임정도의 미관말직으로 회유정책을 쓴 것 같다. 2~30대 젊은이는 아침에 보이다가, 점심때면 안 보인다.
며칠 전, ISO인증 9001, 국제규격 표준화 작업을 위해서 현장에 달린 형광등 교체작업이 이루어졌다. 백열등보다 밝은 형광등은 자체발광이 없어 쉽게 열 받을 일이 없다. 나처럼 열이 많은 다혈질은 깜박거리는 형광등이 필요하다. 에디슨이 달걀의 부화를 위해 몸소 품으시고 밤낮을 밝히는 해와 달을 조롱하시더니 마침내 산업혁명은 이 땅의 노동자를 주야로 돌게 하셨다. 콘크리트장벽으로 둘러친 공장 구조는 밤낮을 구분 없이 어둡게 하시고 낮을 밝히는 전구는 벌건 대낮에도 항상 켜져 있어 밝고 빛나게 만드셨다. 조도(照度,룩스lx)가 밝은 것으로 교체를 단행하신다. LED 조명은 혁신이다. 밝기가 빛난다고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없애버리니 출입구에 있는 눈알을 빼시고 가운데만 밝히고 나머지는 객석처럼 어둡게 영화관을 만드셨다.
눈알에서 모래알이 굴러다닌다. 이빨 빠진 엘이디는 새벽의 미명아래 밤잠설친 수은등처럼 뿌옇게 동굴을 비춘다. 입구엔 불빛이 사라졌다. 라벨작업을 하는 중앙에는 두 개의 엘이디가 빛나고 나머지 곳은 짝 잃은 돌싱처럼 외눈만 껌뻑거린다. 벽면을 장식한 5%절감표어가 뱀허물처럼 흐느적거린다. 생산성을 위한 작업원 들의 시린 시력은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눈에 들어간 듯 서걱거렸다. 참다못한 2층 팀장인 나는 사장에게 항의를 한다. 하루 종일 현장에서 일하자면 현장이 너무 어둡다. 전체를 동등하게 밝혀 눈의 균형을 잡아 달라. 얼굴이 붉어진 사장은 꼬투리를 잡는다. 자제를 제때 공급해 주지 않아 다른 박스에 제품을 담아 둔 게 있다. 마침 새로 박스가 와서 교체작업 중이었다. 왜 엉뚱한 박스에 담아 테이프를 낭비하느냐고 따진다. 그럼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방치해 두느냐고. 새로운 박스도 거의 2주 만에 도착했다.
따진다고 지랄이다. 나는 공손하지도 겸손하지도 못하다. 일전에 사장은 사업차 몽골을 방문한 적이 있다. 말이 사업차고 교회에서 가는 봉사활동의 일환이며 여름휴가였다. 사명감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로 유서도 없이 떠난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할 뻔했다. 전갈의 눈물에 하마터면 개구리가 될 뻔 했다. 현장은 어두워 눈알이 맴맴 인데 머나먼 곳으로 순례의 행진을 떠나는 사장의 뒤통수에 감자를 먹이고 싶은 심정은 왜일까. 예수님은 분명 가까운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굳이 비행기 값 들여서 그 먼 곳으로 가실까. 매일 출근하기 전 기도를 드린다. 공장 잘 돌아가게 해달라고. 그리고 도착하면 이내 평정심을 찾는다. 이러지 말자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몇 번이고 읊조린다.
며칠 전엔 동창모임이 있었다. 역시나 중견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인 친구가 있다. 이 녀석은 통이 크다. 모임의 술값과 고기값을 통째로 지불한다. 그뿐인가 2차,3차 모조리 그 친구가 다 낸다. 친구들은 고마워 죽는다. 이렇게 술을 사주기 위해 그 친구는 불행하게도 한국 사람을 종업원으로 두지 못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한다.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야 남는 돈으로 친구들 술 사준다. 연 매출액이 1,000억쯤 된다. 이래저래 한국 사람들이 갈 곳이 없다. 친구 녀석은 동남아 사람 먹여 살리고, 우리 사장은 몽골가고, 인도 가고, 예루살렘만 가니 현장에 있는 소는 누가 키울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