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4 화
뒤돌아서지 않겠네(롬6:12-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선물)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일하는 사람에게 급여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어느 기관에서 혹은 누구를 위해 일하든지 그에 합당한 월급을 받는다. 죄의 종이 되어 육체의 정욕을 좇아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급여는 결국 사망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영생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급여가 아니라 선물인 까닭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을 위해 우리가 일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생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만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상)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자 함이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다는 말씀은 삼위 하나님의 유기적 관계, 즉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복종과 통달하심의 관계를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이다. 삼위 하나님이 서로 분리될 수 없듯 사람 역시 하나님과 분리될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지어졌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을 통해 들어 온 죄가 이 깊은 관계를 떼어 버렸고 그 결과 사망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망으로 걷고 있는 사람을 그저 두고 보시지 않으셨다.
삼위 하나님은 결코 분리 되실 수 없지만 사망으로 치닫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 성부 하나님과 분리되는 고통까지 감수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된 있을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인 것이다!
그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얻게 된 것이 바로 영생이다!
영생은 그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수직선 위의 삶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형상으로 회복된 삶을 이르는 것으로 깊고 풍성한 사귐의 관계가 있는 삶을 이른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도 알아가는 단계에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만큼 설레임과 기쁨 그리고 소망이 있는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삶, 그 삶이야 말로 셀레임이 있고 환희가 있으며 참 소망이 있는 영생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신식이며 단단한 수도꼭지라도 물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수도꼭지에서는 물을 구하기 힘들 듯, 이 땅의 삶이 화려하고 영원할 것 같아 보이나 결국은 사망이라면 그 길을 계속 가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망의 길에서 건짐을 받아 의롭게 여김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선물로 받은 우리가 다시 육체를 좇아 사망의 길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이 세상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사람 날 몰라 줘도
뒤돌아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지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서지 않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