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7일(월)
* 시작 기도
주님...
구약시대 유대인들에게 율법과 제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는 너희들이 이것으로 나를 한 번 찾아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이들은 자신만만하게 나섰지만 단 한 사람도 찾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이미 알고 계셨기에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벧 1:20절).
그 구원자인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오늘도 이 종은 그 은혜 앞에 섭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밤새 오염된 나의 심령을 주의 보혈로 덮으사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뉴스를 통하여 들리는 소식이 가슴 아픈 소식만 들립니다.
주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 덮어주옵소서.
새 날과 새로운 한 주간을 주셨으니 아들을 힘입어 아버지 품에서 안식을 누리는 영생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1:19-30
제목 : 부끄러운 이순신식 신앙,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1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나의 묵상
베드로가 환상을 통하여 이방인인 로마 사람이자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할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입이 다물어지고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영생 주신 것을 믿었다.
한편 스데반의 순교 사건으로 인하여 사방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대상은 유대인들이었다.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에서 온 몇 사람이 안디옥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였다.
이에 주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함께 하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주께로 돌아왔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하였다.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면서 모든 사람을 말씀으로 굳건하게 세우며 항상 주님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권하였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선한 사람이었고 나아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
한편 바나바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소로 가서 사울이라 하는 바울을 만났다.
그를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교회에 머물면서 1년 동안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 결과 제자들 곧 예수를 주로 믿는 형제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때 예루살렘에서 몇몇 선지자들이 안디옥에 왔다.
그들 중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언하기를 온 세상에 큰 기근이 닥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글라우디오가 황제가 되었을 때 실제로 기근이 발생하였다.
무엇보다 안디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기근으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형제들을 돕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은 자기들의 힘에 닿는 대로 돕기로 하고 부조를 모아서 바나바와 사울이라 하는 바울 편으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냈다.
오늘 본문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발생 근거를 제시한다.
안디옥이라는 이방 땅 곧 소아시아 지역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이나 이방신을 섬기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는 이들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세의 율법에서 말하는 할례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믿는 자들끼리 형제 자매라 부르는 것이 사뭇 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26절에 언급된 제자들은 다른 말로 형제들, 구원받은 사람들, 주의 도를 좇는 사람들 그리고 성도들로 불리어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에게 모든 희망을 두고 그리스도만을 좇아 따르는 자들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바나바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이 그들의 삶의 모습을 가르치면서 예수를 믿는 형제들은 세상의 악한 일을 멀리하여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가르쳤을 것이다.
그 자신이 바로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기에 말이다.
그리하여 악에서 멀리 하고 선을 장려하며 유대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이 기근으로 인하여 심한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자기들도 어렵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힘에 닿는 대로 부조를 하여 돕는 일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디옥에 사는 불신자들이 예수를 믿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조롱하고 야유의 의미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이름이지만, 이들은 그 이름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오히려 후대에 그리스도인 곧 존귀한 이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떤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가?
돌아보면 아니올씨다, 이다.
사실 나는 모태신앙인이기 때문에 전도나 예수를 전하는 일에 대해서 정말 못하는 자였다.
이런 모태신앙인을 일컬어 못해신앙(모태신앙)이라는 언어유희로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내가 세월이 흘러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내 안에 계시는 예수를 증거하는 일이 힘들기만 하였다.
그런 결과 나는 이순신식 신앙을 보일 뿐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적군의 화살을 맞고 죽임을 당할 때, 뱉은 말이 곧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였다.
그래서 나도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외쳤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혀가 뻣뻣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맹추가 따로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복음이 들려졌다.
무엇보다 생명을 주는 복음이 내게 들려진 것이다.
나는 복음이라는 총알을 장전하고 언제 어디서든 복음의 총알을 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나의 자랑이 아니다.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자랑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나가서 착한 삶으로 나타내 보여야 한다.
그것이 빛과 소금의 모습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나의 의를 드러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없음’이요 ‘헛됨’이며 ‘무력한 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주일 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오두막’이라는 기독교 영화를 보았다.
삼위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하는 이유를 아주 잘 보여준다.
우리 육신의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님을 어린 딸 미시의 죽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신하는 아버지 맥을 통하여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다.
사랑하는 막내 딸 미시가 납치당하여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라는 자가 도대체 왜 침묵하였는지에 대한 갈등과 혼란스러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결국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연합으로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나고 두 손 들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게 되는 영화다.
나는 그렇게 연약한 자이다.
그렇게 연약하여 수시로 넘어지는 자인 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선악으로 판단하며 내가 선악의 주체가 되어 하나님처럼 하나님 노릇을 했던가?
나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처럼의 죄에 수시로 빠지는 것은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자기 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간 나의 그런 자기 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자임을 고백하고, 그저 빈 손 된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며 나갈 뿐이다.
나는 성공과 획득의 추종자였던 가인이었지만, 이제는 없음과 티끌인 아벨이 되어 내가 얻어낼 세상의 명예나 높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부터 얻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로 살아간다.
안디옥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소중한 이름으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오늘 이 시간 나 역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하루도 살아갈 것을 소망한다.
내 안에 사시는 예수를 자신 있게 자랑하는 자로 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모세와 같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왕자로서 모든 학문과 언어를 통달케 하셨으나 그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리하여 형제들에게로 가서 출애굽을 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극구 거절할 뿐이었습니다.
비록 입이 둔하고 뻣뻣할지라도 그 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나의 연약함을 앞세우지 말고 그 안에서 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가야 함을 배웁니다.
그런데 나 역시 그렇게 나를 바라보면서 부끄러워 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이순신식 신앙인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 못내 부끄럽습니다.
이제라도 주님께서 이 종을 불러주시고 참 복음 곧 통합복음을 알게 하셨사오니 그 복음이 나의 총알이 되어 언제 어디서든 발사할 수 있게 해 주심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하루도 우리 주님과 연합하여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날 되게 하옵소서.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수해로 인하여 이재민이 많이 발생하였고 인명피해 또한 만만치 않사오니 이들을 주님의 은혜로 만져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