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정도는 실천하는 것
우리가 현재 여기에 있는 것은
육체적 조상과 양친 덕분이고 양친에 효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세상의 수행과 저 세상의 수행을 비교하면,
이 세상의 수행이 훨씬 편합니다.
저 세상은 파동이 정묘(精妙)한 세계입니다.
생각한 것 사고한 것이 즉각 되튀어 돌아옵니다.
이 때문에 차원이 낮으면 상당히 반성하기 어렵고,
고계(苦界)에서 탈출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파동이 거칠기 때문에,
생각한 것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기 까지,
어느 일정한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가 나오지 않는 동안에,
이것은 안된다고 반성하면,
그것에 대한 정정(訂正)이 가능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 그 나타나는 결과가 늦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초조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파동이 거친 만큼 수행은 하기 쉽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10년은 저 세상의 50년, 80년에 필적합니다.
그 정도로 이 세상의 수행은 편하고,
그 위에 이 세상의 수행의 결과가,
또다시 저 세상에 돌아갈 때의 자신의 생활상황을 결정하기 때문에,
양친에 대해 감사, 효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자의 혼(의식, 마음)은,
이처럼 양친으로부터 받은 육체라고 하는 배를 타고 인생항로를 출범합니다.
혼 그 자체는, 과거세, 또는 저 세상의 생활을 체험해 왔고,
육체에 타기 이전의 혼에도 개성적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혼의 선천적 인과(因果)라고 말합니다.
육체라고 하는 배에 탄 혼은,
당초 10%의 의식밖에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목적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관(五官)에 좌우되어, 자아아욕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팔정도는 이러한 각자의 10%의 의식에 대해서,
나머지 90%의 잠재의식,
즉 각자의 과거세,
저 세상의 생활의 기록을 생각해내서,
인간으로서의 목적을 자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석가가 오랜 고행의 결과이며,
팔정도를 매일 실천함으로써,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경전을 올리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란 감사의 마음이며,
감사의 마음이 솟아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입니다.
경(經)은 실천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팔정도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신양성서 야고브의 편지에도
『너에게 신앙있고, 우리에게 행위있다,
너는 행위없는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우리는 행위에 의한 신앙을 너에게 보여준다』고
예수도 아무리 신앙이 있어도, 기도해도,
행위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팔정도를 실천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이 신불의 마음에 조화되고,
조화된 마음은 그것이 그대로,
이 세상의 천국, 불국토를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전생윤회는 자연의 법칙이지만,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에 의해,
종내는 윤회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정각(正覺)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다.
(주; 이 세상에서는 수정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무거운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여움으로 남을 때리려고 할 때,
팔을 드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그 순간에도 생각을 하여 중지할 수가 있는데,
저승에서는 무거운 육체가 없는, 빛의 몸이므로,
생각하는 순간과 행동하는 순간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저승에서는 기도가 없다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저승에서는 원하는 순간 이루어지니까....)
마음의 지침 - 다카하시 신지-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