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노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바로 그럴 것이다. 38) 홍수 이전의 사람들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도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39) 홍수를 만나 모두 휩쓸려갔다. 그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홍수를 만났는데,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또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이렇게 너희의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43) 만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는지 집주인이 알고 있다면 그는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44)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
[복음산책] 새로운 전례주년의 첫날
오늘 대림 제1주일과 함께 교회는 새로운 한해의 전례주년을 시작한다. 전례주년의 기본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공생활, 그리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한 하느님의 인류구원역사를 “오늘”, 그리고 “여기”에 재현하고 기념하는데 있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구원사건의 신비를 1년의 전례주년 안에서 시기별로 나누어 기념함으로써 구원사건의 신비를 재현하고 이에 신자들의 삶을 질서 지우고자 한다. 전례주년은 특히 시간(時間)과 장소(場所)의 성화(聖化)를 강조한다. 매년 반복되기에 지루한 감을 주기도 하지만, 전례주년은 하느님께서 전 인류와 전 역사에 베푸신 구원의 신비를 1년이라는 주기(週期) 속에서 바로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사건으로 체험함으로써, 신자들이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찬미와 기쁨으로 아버지 하느님 앞에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러한 전례주년의 신비 속에서 매번 그 사건(구원사건과 성인축일)의 의미를 충분히 묵상하여 전례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성화하여 이 세상과 인간의 구원을 위한 참다운 ‘성사(聖事)’로서의 사도직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전례주년의 중심은 예수님의 성탄과 부활사건이다. 그래서 주님성탄대축일과 주님부활대축일이 전례주년의 두 기둥이 된다. 교회는 12월 25일 성탄대축일을 준비하기 위해 4주간의 대림시기를 지내며, 그 다음 주님세례축일까지 성탄시기를 보낸다. 주님세례축일 다음 월요일부터 연중시기를 지내는데, 이는 대략 연중 제5~7주간으로 중단된다. 그 이유는 주님부활대축일을 준비하는 사순시기 때문이다. 부활대축일은 매년 “춘분(3월21일)이 지나 만월(음력 15일) 다음에 오는 첫 주일”로 정해진다. 당해의 부활대축일이 정해지면, 거꾸로 46일째 되는 날이 사순시기(총40일)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다. 이 기간 중 6번의 주일은 사순시기에서 제외된다. 주님부활대축일부터 부활시기가 시작되는데, 이는 주님승천대축일과 성령강림대축일까지 50일간 계속된다. 그 다음 월요일부터 사순시기로 말미암아 중단되었던 연중시기가 계속된다. 우리는 편리상 사순시기 이전의 연중시기를 연중시기[I], 부활시기 이후의 연중시기를 연중시기[2]라고 할 수 있다. 연중시기[2]는 한해 전례주년의 마지막인 연중 제34주간으로 끝난다.
따라서 전례주년은 크게 그 순서에 따라 대림시기 -> 성탄시기 -> 연중시기[1] -> 사순시기 -> 성주간 -> 부활시기 -> 연중시기[2]로 구분되는 것이다. 전례주년의 모든 시기는 통상 그 날의 사건과 의미를 밝히는 특별전례와 함께 성체성사, 즉 미사로 기념된다. 미사는 “주일미사”와 “평일미사”로 구분되며, 그 미사의 등급이나 중요성에 따라 “대축일미사”, “축일미사”, 또는 “기념미사”로 불리며, 모든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구성된다. 특히 말씀전례를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교회는 주일을 3년 주기 [가해, 나해, 다해]로 정하였고, 평일을 2년 주기 [홀수해, 짝수해]로 정하였다. 이는 말씀전례의 독서와 복음을 지정하기 위한 목적이다. 따라서 모든 주일미사에는 3년을 주기로 같은 독서와 복음이 봉독되며, 가해는 마태오복음을, 나해는 마르코복음을, 다해는 루가복음을, 부활시기에는 요한복음을 위주로 선택하였다. 평일미사의 독서는 홀수해와 짝수해의 원칙을 따라 신․구약성서에서, 복음은 매년 같은 복음으로 봉독된다.
그러므로 오늘 대림 제1주일을 시작으로 우리는 2005년 “가해”와 “홀수해”의 전례주년을 시작한 셈이다. 따라서 올해의 전례주년동안 우리는 부활시기와 특별한 대축일을 제외한 모든 주일미사에서 마태오복음을 미사의 복음으로 봉독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전례주년은 매번 기다림과 준비로 특성화된 대림시기로 시작된다. 대림(待臨)은 말 그대로 “올 것에 대한 준비”를 말하며, 대림시기는 그 준비기간이다. 무엇이 온다는 것이며, 어떻게 준비하라는 것인가? 교회가 말하는 대림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하느님의 이 땅에 “벌써 오심”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성탄과 인자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의 종말설교(24-25장)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늘 깨어 준비하고 기도함”을 인자의 재림에 대한 준비과제로 제시한다. 노아의 홍수(창세 6-8장) 때나 재산을 노리는 도둑처럼 인자의 재림이 들이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재림하시는 인자 앞에는 누구나 철저히 홀로 서야 한다. 따라서 ‘늘 깨어 준비하고 기도하는 일’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각자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성탄과 재림”,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내포하고 있는 대림시기는 우리에게 과거지사의 성탄과 미래사건의 재림을 한꺼번에 묵상하도록 가르친다. 과거의 일과 미래의 일을 한꺼번에 현재의 순간으로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은 “하느님을 내 삶의 한가운데 현존시키는 것” 뿐이다. 매년 같은 일을 한다고 식상해서는 안 된다. 벌써 오셨던 하느님과 다시 오실 하느님은 한결같은 분이시나, 우리 자신이 달라졌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는 분명 작년의 내가 아니며, 어제의 내가 아니다. 거울을 앞에 놓고 자신의 겉과 속을 비추어 보라. 분명히 나의 모습을 달라졌다. 우리는 성장했고, 변했다. 그래서 올해의 대림도 그만큼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전례력의 마지막 날인 어제 연중 제34주간 토요일의 복음(루가 21,34-35)과 새 전례력의 시작인 오늘 대림 제1주일의 복음(마태 24,37-44)이 ‘늘 깨어 기도하고 준비하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하느님 안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부디 우리 모두에게 아주 특별한 대림시기가 되기를 기원한다.◆[박상대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