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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는 예쁘다] 10
S#1. 거리1 (밤)
눈 내리는 거리. 대형 전광판 티브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상우.
화면 속 인순의 환한 웃음 아래로 이웃돕기 캠페인 자막이 흐른다.
인순 : (N) 운명은 변한다. 사람도 변하고, 계절도 변하고, 입장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S#2. 거리2 (밤)
옥외 바자회가 열리고 있다. <스타와 함께 하는 연말 연시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 따위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경쾌한 캐럴이 흐르고, 의류, 책, 음반 등등의 물건이 진열돼 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한다.
모 단체의 불우 이웃돕기 홍보 대사가 된 인순. 어깨에 띠를 두르고,
연예인으로 보이는 남녀 몇 명, 그리고, 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서 있다.
빨간 산타 모자를 쓴 인순, 인기 만점이다. 행인들과 악수하고 싸인 해주느라 바쁘다.
인순 : (모금함에 돈 넣는 행인에게)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말 연시 되세요!
S#3. 노트북 화면 (밤)
인순의 팬까페 팬레터함이다.
<언니, 저는 서초동에 사는 언니 팬이랍니다. 중학교 이학년이고요. 오늘 프로그램 진행하는 거 지켜봤어요. 진행 짱!
실제로 보니까 얼굴두 더 짱이었어요! 친절하게 싸인두 해주시구, 고맙습니다. 언니한테 앞으로 점점 더 반할 거 같아요!!
인순 언니 파이팅~~! 나중에 커서 꼭 언니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인순씨, 지하철녀 때도 감동했지만 오늘 길거리 바자회는 더 감동이었어요. 좀전에 길에서 봤어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던 천사같은 인순씨... 잊지 못할 거에요!!>
S#4. 선영 옷방 (밤)
코트를 벗고 대충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선영. 그 동안을 못 참고 옷방 한쪽에 노트북을 펼쳐놓았다.
옷 갈아입으며 눈으로는 연신 팬까페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만면에 흐뭇함이 어려있다.
선영 : (혼잣말) 장하다, 우리 딸! (흐뭇) 역시 이선영의 딸이구나,
인순 : (N) 아, 변하지 않는 게 또 있긴 하다... 내 어머니의......젊음!!
대충 옷 갈아입고 이번엔 거울 앞에 서서 들여다본다. 너무 곱고 예쁘다.
애교스레 찡그려도 봤다가, 흘겨도 봤다가, 인자한 미소를 담뿍 지어보기도 한다.
그대로 반한 듯 한참 물끄러미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눈가에 주름이 조금 맘에 걸린다.
손으로 주름을 쫙쫙 펴본다.
선영 : (살짝 한숨) 무슨 보톡스가... 약발이 금방 떨어지네..
다시 표정을 펴고 활짝 웃어 본다. 마침내 돌아서서 방을 나간다.
S#5. 선영집 거실 (밤)
소파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근수. 눈빛에 뭔가 결심이 어려있다.
방에서 나오는 선영. 잠깐 찌푸리다가 금새 친절한 얼굴이 되며 마주 앉는다.
선영 : ...그래, 할 얘기가 뭐지?
근수 : ...
선영 : 나 피곤해. 일찍 자고 싶거든? 얼른 얘기해 봐. 너두 늦기 전에 가야 될 거 아냐.
너두 피곤할텐데 가서 쉬어야지, 그지?
근수 : (피식) 늘 그렇게 맘대로 생각하시니까... 부럽습니다. 참 편할 거 같습니다.
선영 : (찌푸리는데)
근수 : 인순이 누나 과거... 알려지면 치명적이겠죠?
선영 : (흠칫)
근수 : (무덤덤히) 설마 그걸 비밀로 할 생각은 아니셨겠죠?
선영 : (떨린다) 너...
근수 : 뭐, 저야 상관 없는 일이지만... 살짝 걱정이 되네요.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요.
선영 : ...너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거야?
근수 : 저두 남의 일이 아니라서 이럽니다. (피식 웃고) 누나 일이잖아요.
선영 : (창백해져서)
근수 : 아는 사람들 입막음을 해야 제 맘두 편할 거 같다는 뜻이에요. 누나 앞날을 위해서요.
선영 : 무슨 얘기 하고 싶은 거냐구 물었어!!!
근수 : 비용이 필요해요. 나서서 막을려면 이래저래 급전이 좀 든다 이 얘기죠.
선영 : 너... 이제 보니 천하에 악질이구나?
근수 : (피식)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섭섭합니다.
선영 : 일어나! 나가! 당장 우리집에서 나가!! (일어난다)
근수 : ... (작정한 듯 무표정하다)
선영 : 안 나가? 너 오늘부로 해고야, 당장 여기서 꺼져! 다신 나타나지 마.
근수 : 말씀 안 하셔두 갑니다. 너무 흥분하지 마시구... 잘 생각해보세요.
(일어나며) 참 서운하네요. 전 나름, 누나 생각해서 조언을 드린 건데...
살인 전과 그거, 간단한 죄 아닙니다. 너무 편하게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선영 : 배은망덕한 놈! 불쌍하다고 써줬드니 어디서 협박질이야?
근수 : 아무튼 잘 생각해보세요. 며칠 있다 전화 드리죠.
이층에서 내려오던 정아. 다 듣고 파랗게 질려있다.
돌아서는 근수. 얼른 몸을 숨기는 정아.
선영 : 전화는 무슨 전화야! 이 나쁜 자식! 경찰에 신고해버릴 거니까 그런 줄 알어! 이 깡패 같은 놈아!!
너, 어디서 굴러먹던 버릇인지 몰라두...!!!
흥분한 선영. 따라가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혈압이 오르는지 머리 짚는다.
멍하니 바라보는 정아.
어느새 나가버리고 없는 근수.
S#6. 선영집 앞길 (밤)
소속사 승합차에서 내리는 인순.
희주 : 내일 아침 인터뷰 약속 잊지마세요. 아홉시에 올께요!
인순 : 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뵐께요.
기사와 희주에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가는 인순.
그 순간, 안에서 나오는 근수. 인순을 먼저 봤다. 잠깐 복잡한 표정으로 보다가 빠르게 외면하는데,
인순 : (반갑게) 근수야,
대꾸 없이 그대로 가버리는 근수.
인순 : (당황) 근수야!!
급히 쫓아가지만 이미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버렸다.
얼떨떨하게 바라보는 인순.
S#7. 선영집 거실 (밤)
들어오는 인순.
냉정을 찾으려 애쓰며 식당에서 물을 마시는 선영.
인순 : 엄마,
태연한 척 돌아보는 선영.
선영 : 어, 잘하고 왔니? 피곤하지? (물 마저 마시며 생각난 척) 아참, 근수 말이야. 오늘부터 일 안한대.
인순 : 왜요.
선영 : 글쎄, 지 사정이 있댄다.
인순 : 무슨...
선영 : 모르지 뭐. 잘됐어, 안 그래두 시킬 일이 마땅찮았는데...
너! 전화 하지마. 먼저 연락 하지 마! 알았지? 순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야!
(버럭 화가 치민다) 넌 어디서 그딴 자식을 끌구 들어와서!!
짜증스레 물잔을 탁 내려버리고 방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린다.
얼떨떨 서 있는 인순.
이층 난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아.
인순 : (멈칫 발견하고) 정아야...
그대로 후다닥 올라가버리는 정아.
의아한 인순.
S#8. 인순방 (밤)
근수에게 전화해보는 인순. 안 받는다.
전화 끊는데 예감이 별로 안 좋다.
S#9. 보도국 사무실 (다음날 낮)
재식 앞에 앉아있는 상우.
상우 : (당황하며 돌아본다) 그걸 왜 제가 나갑니까.
재식 : 새벽에 이형석이 와이프가 갑자기 애 낳으러 들어갔어. 첫 앤데 가지말라 그럴 수가 없잖아.
그리구 이거는 유상우 니가 딱 적임자야.
들어오던 진태. 끼어든다.
진태 :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취잰데요?
재식 : 인물 포커스 말이야. 연말 특집으루 올해의 인물을 시리즈루 선정했거든...
형석이가 사정이 생겨서 대신 인터뷰 좀 해오라니까 이 자식이 이렇게 뺀다?
지난 번에두 글케 빼드니... 얘 왜이러는 거냐?
진태 : 누군데요..
재식 : 지하철녀.
진태 : (하하 웃고) ... 자존심 상한다 이거겠죠. 누군 취재 하러 가구, 누군 올해의 인물이구...
재식 : 친구라며.
진태 : 친구니까 더 그렇죠. 상우 얘가 잘난 척 빼면 시체잖아요.
상우 : 허,
재식 : 그랬냐? 그래서 그때두 취재 거부한 거였어?
상우 : (기막혀) 생사람 잡지 마.
진태 : (느물거리며 웃는) 그리구... 둘 사이가 좀 수상하기두 하드라구요. 저번에... 동해안에서부터.
상우 : (휙 돌아본다)
진태 : (움찔하는 척) 아니냐? 아님 말구.
재식 : 먼 소리야, 그게.
상우 : (한숨) 아닙니다. 헛소리에요.
재식 : 갈 거야, 말 거야!!
상우 : (떨떠름하게) ... 니가 가라.
진태 : 허,
S#10. 공원 앞 (낮)
차에서 내리는 인순 선영.
희주와 코디가 의상, 화장품 가방을 들고 뒤따른다.
선영 : 요즘 애들, 발성이 정말 문제야. 왜 말을 굴려? 통 알아들을 수가 없잖아.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충고는 단 하나야. 정확하게 또박또박, 단어와 단어 사이에 간격을 두고
단어의 뜻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발음하는 거야.
인순 : ...(묵묵히 들으며 걷고 있다)
선영 : 니가 내 딸이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게! 연극배우 이선영의 딸로서 창피하지 않게! 발음 하나 만큼은 정확했으면 좋겠어.
발성학원까지 다니게 한 데는 다 뜻이 있는 거야. 남다르다는 건, 뼈를 깎는 노력이 없인 얻어지지 않아.
인순 : (작게 한숨)
그 순간, 저만치 방송국 장비와 차량이 보인다.
선영 : (움츠리며) 추운데... 인터뷰를 꼭 밖에서 하자 그러니...
인순 : (멈칫 멈춰선다)
상우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 기자와 함께 뭔가 의논 중이다. 다시 유심히 본다.
선영 : 어머, 유기자잖아?
돌아보는 상우. 눈 마주치자 일어나 목례 한다.
머쓱하게 마주 보는 인순과 상우. 좀 어색한 두사람.
S#11. 공원 일각 (낮)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아 화장 수정하고 있는 인순.
카메라가 인순 쪽으로 포커스를 맞춰보고 있다.
선영과 담소 나누는 상우.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다.
상우 : 인순이 일인데.. 당연히 제가 와야죠. 이건 내 아이템이다, 그러구 뺏었죠.
선영 : (웃는다) 고마워라... 안 그래두 우리 유기자 소식 궁금했어. 잘 있었어요?
아참, 한재은 아나운서는 잘 있나? 내가 요즘 라디올 관둬서 말이야...여전히 잘 지내지? 두사람?
인순 : (살짝 신경이 쓰인다)
상우 : (당황) 예? 아, 그... 하하, 잘 지냅니다. 항상 잘 지내죠.
인순 : ...(태연한척)
선영 : 잘해 봐요. 두사람 참 잘 어울려.
상우 : ... 예에.
선영 : 우리 딸이랑 동창인데... 유기자가 한참 오빠같다. 하긴 우리애가 날 닮아서 동안이야.
상우 : (떨떠름하게 웃는다)
인순 : (난감)
선영 : 인터뷰 시작하는 거 보다가, 난 먼저 가봐야 돼. 약속이 있거든.
상우 : 아, 그러세요?
선영 : 나중에 한 턱 낼께요. 잘 만들어줘요,
상우 : 어휴, 잘 만들긴요. (짐짓 하는 말) 인순이가 워낙 카메라를 잘 받구, 방송체질이잖아요.
전 아무 걱정 안 합니다. 스타성이라는 게 역시, 아무나 있는 게 아니드라구요.
인순 : (슬몃 돌아본다..)
선영 : (흐뭇하게 인순을 바라보며) 하긴 그래... 내 딸이지만 참 예뻐! 특히 눈! 나를 닮았어... 다들 나 젊을 때 보는 거 같대.
인순 : (작은 한숨)
S#12. 커피숍 (낮)
기다리는 소정.
추운 듯 손을 비비며 급하게 들어오는 선영. 반갑게 마주 앉는다.
선영 : 미안, 기다렸지?
소정 : 바쁘구나.
선영 : (함박 웃음) 바뻐. 요즘은 몸이 열두 개라두 모자랄 거 같애.
아참, 우리 인순이 방송 진행두 맡았어. 첫 녹화 했는데.. 나중에 꼭 봐 줘.
소정 : 아유, 하루하루 정말 잘나가는구나,
선영 : (가슴에 손 짚으며 과장스레) 기집애, 첨엔 안 하겠다구 버티드니 요샌 어찌나 적극적인지 몰라.
욕심두 많구, 딱 나야, 옛날 나.
소정 : (웃고) 어련하시겠어.
창 밖을 내다보는 선영. 표정에 살짝 근심이 어린다.
소정 : 근데... 뭐 고민 있어? 표정이 왜그래?
선영 : (한숨) ...엄마 노릇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애. 뒷바라지가 만만찮네... (피식) 고단해서 그러지 뭐.
소정 : (못마땅) 얘, 말은 바로 하자! 엄마 노릇은 무슨... 언제 엄마 노릇 했다구,
선영 : (멈칫 보면)
소정 : 너 좋아서 하는 일이지, 딸 핑계는 왜 대?
선영 : (기분 상하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섭섭해, 정말. 내 딴엔 괴로워서 그러는데,
소정 : 알았다, 알았어, 미안하다... 얼른 차나 시키자.
선영 : (눈시울 글썽하고 한숨) ... 남편이라두 있음 좋겠어. 넌 내 심정 모를 거야.
소정 : (슬몃 본다)
S#13. 공원 (낮)
카메라 앞에 앉아있는 인순. 핀 마이크를 꽂고, 질문지를 든 상우와 인터뷰 중이다.
상우 : 지금의 인기가... 혹시 거품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인순 : ...(난처하게 본다)
상우 : (머쓱 보다가) 예민한 질문이었나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께요.
인순 : (흠... 기분이 조금씩 상한다)
상우 : 요즘 이런저런 활동이 많으신데요. 인순씨 케이스에 비춰본다면...
우리 시대 대중이 가장 바라는 역할 모델의 키워드는 어떤 걸까요?
일테면 정직이라든가, 성실성이라든가, 멋있는 외모라든가, 정의감이라든가... 뭘까요?
인순 : (무슨 소린가) ...질문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저는... 대중이 바라는 역할 모... 그런 거는 잘 모르겠구요.
그냥 제가 살고 싶은대로 살고 있어요. 저는 특별히 정직하지도 않고 특별히 성실하지도 않아요.
(머뭇머뭇) 그냥 저대로 사는 거거든요?
상우 : (할 말 없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근처에서 지켜보는 매니저 일행과 카메라 조수 등등.
인순 : 계획은... (생각하다가 머쓱 웃는다) 그냥 뭐... 하루하루 멋지게 살아야죠.
상우 : ...(허탈하게 웃는다) 계획이... 멋지네요.
썰렁한 분위기.
인순 : ... 질문... 끝인가요?
상우 : 끝입니다.
카메라를 돌아보는 상우.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박수 치는 사람들. 주변 정리하는 분위기가 된다.
카메라 기자와 찍은 화면 보며 의논하는 상우.
일어나 상우에게 다가가는 인순.
인순 : (작게) 나 좀 보자.
상우 : (멈칫 보면)
S#14. 공원 일각
나란히 걸어오는 두사람. 한쪽에 마주 선다.
인순 : 너... (맘 추스르고) 질문이... 뭐가 다 그래?
상우 : 질문이 왜. 뭐가 어때서.
인순 : 인기가 거품이냐니.
상우 : 나는... (억울하다) 형석이가, 아니, 원래 담당했던 기자가 만든 질문지를 그냥 읽었어.
인순 : 거짓말 하지 마. 니가 일부러 뺏어왔다며.
상우 : 그게 아니구...
인순 : 뭐가 아니야. 너는 내가 잘되는 게 그렇게 배 아퍼?
상우 : 뭐?
인순 : 넌 어릴 때두 쪼잔하드니 커서두 여전하구나.
상우 : 허,
인순 : 실망스러워. 난 적어두 니가, 날 축복하구 축하하구, 그래줄 줄 알았어.
상우 : (화가 난다) 내가 뭘! 너야말루 쪼잔하게 이러지 마! 난 번번이 너한테 최선을 다했어! 사람 억울하게 몰아붙이지 마!
솔직히 니가 지금 정상적으루 성공한 건 아니잖아. 걱정 돼서 하는 말까지 질투루 몰아붙이지 마!
인순 : (화난다) 정상적으루 성공한 게 아니라구? 누가 뭘 그렇게 정상적으루 성공하고 사는데?
(허 웃고) 아아, 너? 너 말이야? ...그거 무슨 우월감이냐?
상우 : (차갑게) 자격지심 있는 거 알아. 하지만 사람은 잡지 마.
인순 : (굳는다)
상우 : 말이 심했다. 미안하다.
인순 : 미안하다고 말하니까 더 기분 나뻐. 그것두 니 우월감으루 보여.
상우 : (어이없다)
인순 : 나는 계속 성공할 거야. 계속계속 비정상적으루, 니 편견을 콱 깨부술거야.
상우 : 박인순,
인순 : 너는 못 됐구... 못났어.
상우 : (고함) 너두 만만찮아!! 너야말루 최고루 못났어! 열등감 덩어리야,
인순 : (열받았다) 유상우! 너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서 시비를 거는 건데? 어?
왜 자꾸 내 인생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하구, 왜! 왜 자꾸 내 상처 건드리구,
상우 : 그건!! 그건 내가 널... (마음을 다 고백하려는데)
저만치서 달려오던 희주. 분위기에 걸음을 슬몃 멈춘다.
희주 : 여기서... 뭐하세요?
인순 : (멈칫 돌아보다 당황) 아,아니에요... 가요!! (쌀쌀맞게 인사) 담에 보자.
달려가는 인순.
그대로 무안하게 서 있는 상우. 얼굴이 벌개졌다. 뭐가 도대체 또 이런가... 괴롭다.
S#15. 소속사 차 안 (낮)
한쪽에 앉아있는 인순. 기분이 복잡하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곁에 놓인 다이어리를 들고 부채질 한다.
희주 : 더우세요?
인순 : 네... 겨울인데 왜... 더울까요.
기사가 천장의 창문을 열어준다.
천장 밖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인순. 맘이 복잡해서 한숨을 푹 쉰다.
어이없다는 듯 보는 희주.
S#16. 보도국 편집실 (낮)
찍어온 테잎을 편집하는 상우. 심란하다. 얼굴을 쓸어내리고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도로 넣는다.
화면 속 인순 얼굴을 뚫어져라 째려본다. 착잡해진다. 시선 스르르 떨군다.
상우 : (혼잣말) 모자란 놈.
S#17. 포장마차 (저녁)
한쪽에 조용히 앉아 술을 마시는 정아.
주위에서 수군거리며 정아를 보는 남자들.
시선에 신경 안 쓰고 조용히 소주를 홀짝거리는 정아.
들어오는 근수. 정아를 발견하고 어처구니 없다. 마주 와서 앉는다.
확 반가운 얼굴 되는 정아.
정아 : 왔어요?
근수 : (빈 소주병 본다) 이걸 혼자 다 마셨어?
정아 : 아무리 기다려두 안 오길래요. 나는 안 오는 줄 알았어요.
근수 : 왜.
정아 : 와줘서 고마워요. 아줌마! 여기 한 병 더 주세요! (남은 소주 잔에 따르면)
근수 : (잔 빼앗고) 그만 마셔. 아줌마! 됐어요!
정아 : 왜그래요? 나 얼마 안 마셨어요.
근수 : 할 말이 뭔지나 말해. 나 바뻐.
정아 : 돈이 얼마나 필요한데요?
근수 : 허,
정아 : 얼만데요? 말해봐요.
근수 : 무슨 소리야?
정아 : 다 들었어요. 우리 엄마 협박하는 거...
근수 : (굳는다)
정아 : 그렇게 살지 마세요. 언니가 오빠 취직시킬려구 애 많이 썼어요.
근수 : 너까지 훈계냐? 지겹다.
정아 : 그렇게 살지 마요!! 한 번만 더 협박하면 내가 가만 안 있을 거에요!
근수 : (웃는다) 니가 어떻게?
정아 : 비웃지 말아요.
일어나버리는 근수.
정아 : 거기 서요!
근수 : 나 바뻐. 너 같은 꼬맹이 상대할 시간 없다.
정아 : 어른인 척 하지 마! 나한테 꼬맹이라구 부를 자격 없어!
근수, 어느새 나가버리고 없다.
S#18. 포장마차 앞 거리 (저녁)
급히 포장마차를 나오는 정아.
저만치 멀어지고 있는 근수 모습. 서둘러 쫓아가는 정아.
S#19. 근수집 근처 (저녁)
어느덧 근수를 놓쳐버린 정아. 주위를 둘러본다.
낯설고 지저분한 동네. 엉거주춤 서서 어쩔 바를 모르고 있다. 어디로 갔지?
저만치서 덩치 크고 불량스런 남자 두명이 걸어온다.
흠칫 창백해지는 정아. 지레 겁 먹고 덜덜 떤다.
무심히 지나가는 남자들.
맥이 탁 풀리는 정아. 한쪽에 보이는 축대 혹은 계단에 털썩 주저 앉는다. 속도 안 좋고 마음도 안 좋다.
저만치 숨어서 그런 정아를 지켜보고 있는 근수.
울먹울먹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정아.
한참 그대로 지켜보는 근수. 마침내 다가온다.
근수 : 너...
정아 : (흠칫)
근수 : 너, 왜 자꾸 나 따라다녀?
그 순간, 근수의 옷에 구토를 왈칵 해버리는 정아.
놀라는 근수. 당황하는 정아.
정아 : ...미안해요,
그러나 한 번 더 토해버린다. 기가 막히는 근수.
S#20. 선영집 앞 골목 (밤)
정아를 업은 채 언덕길을 터덜터덜 올라오는 근수.
정아 : (혀 꼬부라져서 작게) ... 아빠.
근수 : (멈칫)
정아 : 아빠... 가지 마요...
어느 순간 흑흑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정아.
기가 막히는 근수.
울음이 점점 더 커진다.
근수 : 야,
정아 : (서럽게 엉엉 울고 있다)
근수 : (한숨) 미치겠군. 다 큰 기집애가... 키는 꺽다리 주제에...
무거운 듯 다시 힘겹게 들춰 업고 가는 근수.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마음이 짠해온다.
이윽고 집 앞에 도착한 두사람.
계단에 그녀를 내려놓고 벨을 누르는 근수.
근수 : (잠시 복잡하게 바라보다가) ... 들어가라.
정아 : (그대로 울고 있다) ...
매몰차게 돌아서서 골목을 뛰어내려가는 근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S#21. 정아방 (밤)
침대 맡에 쓰러져 있는 정아를 심란하게 내려다보는 선영.
선영 : (고함) 누구랑 이렇게 마셨냐니까!!
정아 : ...
선영 : 대답 안해? 어?
몸을 웅크리며 그대로 침대에 기어올라가는 정아.
선영 : (철썩 때리며) 대답 안하냐구! 바로 말 못 해?
들어오는 인순. 당황한다.
정아 : 나가주세요. 저 잘 거에요.
선영 : 허,
인순 : 정아야...
정아 : 둘 다! 나가요!!
이불 뒤집어 쓴다.
기가 막혀 바라보는 선영.
선영 : 어디서 술을 퍼마시구 와서... 요새 얘가 안 하던 짓을 한다.
인순 : (당황)
선영 : 낼 아침에 보자! 두구 봐, 너!!
쌩하니 나가버리는 선영.
가만히 정아 곁으로 다가가는 인순.
고개를 돌려버리는 정아. 무안한 인순.
인순 : ...정아야,
정아 : (대꾸 없다)
인순 : 야, 나는 이상하게 니 침대가 더 좋드라. (조심스레 침대로 기어올라가는)
정아 : ...
인순 : (곁에 눕는 척 하며 작게 귓속말) ... 무슨 일 있어?
정아 : 나가요!
인순 : (멈칫)
정아 : 나, 언니 보기 싫어요. 당분간 내 방에 오지 마요!! (이불을 끌어올려버린다)
인순 : (떠밀려 넘어지며 당황하는데)
S#22. 인순방 (밤)
심란하게 들어오는 인순. 자리에 눕다가 스르르 일어난다.
장근수 번호를 찾아 전화 걸어본다. 안 받는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S#23. 근수집 근처 골목 (낮)
휴대폰 통화하며 집 앞으로 올라오는 인순. 전화 안 받는다. 화가 치민다.
S#24. 근수방 (낮)
문을 휙 여는 인순.
지저분한 방 한쪽 구석에 곰인형을 베고 잠들어있는 근수. 대낮인데도 방안은 어두컴컴하다.
인순 : 장근수!
근수 : (부스스 일어나며 귀찮다는)
인순 : 나가자. (먼지 콜록거리며) 방을 도대체 얼마나 안 닦은 거야?
근수 : 인간이 참 간사하군. 언제부터 깨끗한 데 살았다구 그러시나.
인순 : 무슨 일 있지? ...엄마랑 도대체 무슨 일 있었어? 왜 안 나온단 거야?
근수 : (피식 웃고) ...니네 집에서 나보구 뭘 하란 건데?
인순 : (할 말 없다) 그거 때문에 싸웠니? 엄마랑?
근수 : 바쁘신 분이 별 걸 다 신경 쓰셔.
인순 : 일이 없어서 화났냐구!
근수 : 허, 내가 그럴 사람으루 보이나.
인순 : 그럼 뭐야.
근수 : 꺼져. 나 피곤해. (눕는다) 잘 거야.
인순 : (화난다) 일어나!!
근수 : 지겹다, 니 잔소리. 아직두 내가 니네 집 밥 빌어먹는 어린앤 줄 알어?
인순 : 도대체 뭐가 문제야?
근수 : 너 요새... 사람들이 너 좋다니까 깨춤을 추면서 사는 거 같은데...
(피식) 그러다 큰코 다친다. 아직두 인간을 그렇게 모르나? 왜그렇게 순진해?
인순 : ...
근수 : 너는 안돼. 너는 뭘해두 박인순이구, 아무리 잘난 척 뻐기구 다녀두 사람 죽인 죄인이야. 내가 이걸 몇 번을 말해야 되냐.
인순 : 니가 뭐라구 말해도 나는 이제 상관 없어. 나는 그런 말 상처 안 받아.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알아?
근수 : (피식)
인순 : 이게 마지막이란 얘기하러 온 거야. 너 봐주는 거 마지막이야. 니 인생 니가 스스로 망치지 마...
회사에 부탁했어. 운전 기사, 앞으론 니가 맡아.
근수 : ...됐거든. 나는 너 공주님으루 떠받들구 다닐 자신 없어.
인순 : 너... 왜이렇게 됐니?
근수 : 부탁인데... 제발 내 앞에서 그 착한 척 좀 안 할 수 없나? 누나랍시구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두 웃긴데,
무슨 꼭 날 때부터 귀족인 척 하고 있잖아... 하하, 웃기긴 웃긴다. 코메디야 완전.
인순 : 됐어... 이제 끝이야.
근수 : ...
인순 : 다신 연락 안할테니까, 너두 찾아오지 마.
싸늘하게 돌아서 나가는 인순.
몸 돌리고 눈 붙이는 근수. 잠시 후 곁에 놓여있던 물컵을 집어들어 벽에 집어던진다. 산산이 부서지는 유리컵 파편.
그 사이에 그대로 죽은 듯 누워있는 근수.
S#25. 경준 학교 교정 (저녁)
퇴근하는 경준. 나란히 나오는 미진.
미진 : (슬몃) 요새는 걔가 잘 안오네요.
경준 : ?
미진 : 인순이 말이에요. 걔 진짜 성공했드라구요? 잡지랑 텔레비전에 뻔질나게 나오데요. 연예인 다 됐어요.
경준 : (미소)
미진 : 근데 그래두 되나요?
경준 : 뭐가요?
미진 : 저기.... 그게 그렇잖아요. 그래두 돼요?
경준 : ?
미진 : 하긴 뭐 병역기피자두 아니고, 탈주범두 아니고 ...치를 거 다 치렀으니까 안될 건 없지만...
경준 : (굳는다) 혹시라두 어디 가서 그 얘기 하지 말아주세요.
미진 : 네?
경준 : 인순이 전력... 사람들한테 말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지 않을 분인 거 알지만요... (씩 웃는다)
미진 : (떨떠름) 아,예에...
경준 : 즐거운 얘기 아니니까요. 가능하면,
미진 : (OL) 어휴, 사람을 뭘루 보시는 거에요. 제가 그런 얘기 할 사람으루 보이세요?
경준 : 가끔은... 그렇게 보입니다.
미진 : 예?
경준 : 잘 부탁드립니다. (정중하게 고개까지 숙인다)
미진 : (당황하는데)
S#26. 주점 (밤)
동네의 허름한 주점 혹은 칵테일 바.
바에서 아가씨들과 나란히 서서 칵테일을 만들던 미화, 들어오는 누군가를 향해 어서오세요! 하다가 멈칫 놀란다.
미화 : 아니, 이게 누군가? 지하철 아줌씨! 인순씨!
인순 : (들어와 바에 앉는다) 놀리지 마.
미화 : 야아... 너 멀리서두 광채가 번쩍번쩍 난다? 딴 세상 사람 같애.
인순 : 잘 있었냐?
미화 : 먼 일 있어? 인상이 왜 우거지셔?
인순 : 무슨 일은... 야, 나두 한 잔 만들어주라.
미화 : 야... 너 그 옷, 그거 좋은 거지? 응? 명품이냐?
인순 : 옷? 어? (내려다보다 짐짓 으쓱 웃고) 좋-은 거지요! 잘 어울리냐, 어?
미화 : (부럽다) 기집애... 나는 인제 너한테 연락두 잘 못하겠어, 야.
인순 : 왜.
미화 : (피식) 니네 매니저두 싫어하는 거 같구, 넌 맨날 바쁘구.
인순 : (당황) 나 안 바뻐. 내가 뭐 무슨 대 스타두 아닌데.
미화 : 대 스타더만. 니 싸인 받아달래는 사람 많어.
인순 : 에이...이 사람아. 무슨...!
미화 : 에이는 무슨 에이.. 나는 요새 가끔, 니가 내 친구 맞나 싶어. (흐흐 웃는다)
인순 : (점점 기분 울적해진다)
미화 : (맥주잔을 내려주며) 뭐 마실래? 맥주? 소주? 칵테일 만들어주까?
인순 : ...미화야,
미화 : 왜.
인순 : (쓸쓸히) 고맙다.
미화 : 뭐가.
인순 : 니가 먼저 나가서, 맨날 내 면회 와줬잖아. 나, 니 덕분에 명절에두 하나두 안 쓸쓸했어.
미화 : (피식) 너 어디서 벌써 한 잔 마시구 왔냐?
인순 : (각오 다지며) 젤 좋은 걸루 한 잔 주라! 내가 오늘 크게 한 턱 쏜다!!
S#27. 경준집 입구 (밤)
과일, 과자, 식료품을 이것저것 사들고 들어오는 인순.
저만치 40대 후반 아주머니 한 사람이 잠든 아이를 업고 걸어간다.
유심히 보는 인순. 아이가 낯이 익다.
인순 : 은석아?
돌아보는 아주머니. 수더분한 인상이다.
당황하는 인순.
아주머니 : 누구...세요?
인순 : 아, 저기...저는 은석이... 아빠의 제자... 그런데 누구세요?
아주머니 : 아...혹시 그... 인순양?
인순 : 맞는데요.
아주머니 : (웃는다) 나는 은석이 큰고모에요. 지방 살다가 엊그제 서울루 이사왔어요. 요기 아랫 동으루요.
인순 : (놀라) 아, 그러세요? (꾸벅) 첨 뵙겠습니다.
아주머니 :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유명한 사람 만나니까 영광이네요.
인순 : 어어휴, 무슨 영광은요.
아주머니 : (장바구니 내려다보며) 놀러왔어요?
인순 : 예. 은석이 먹을 것 좀 사가지구 왔어요.
아주머니 : 예에... 고맙네요... 그럼 저 주구 가세요.
인순 : 예?
아주머니 : (장바구니 받아들며) 애두 자구...
인순 : 깨면 보구 가죠 뭐.
아주머니 : (단호하게) 은석이 아빠하구 약속했어요. 인순양 오면 집에 안 들여놓겠다구요.
인순 : 예?
아주머니 : 소문 난다구 다신 오지 말래요. 문도 열어주지 말라고 그러데요. 이웃에서 본다구요.
우리 은석이 아빠 미래두 생각해줘야죠... 아가씨가 자꾸 이럼 안돼...
인순 : (충격)
아주머니 : 아가씨두 인제 얼굴 알려진 사람인데... 이런데 들락날락 그럼 못 써요.
인순 : 저어...
아주머니 : (작정한 듯) ... 잘 가요, 그럼.
쌀쌀맞게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아주머니.
얼떨떨 보는 인순.
인순 : 저...저기요!!
쫓아가보지만 이미 들어가버리고 없다.
무안한 인순. 불끈 화가 치민다. 다시 쫓아간다. 아파트 건물 입구에 대고 듣든 말든 고함 친다.
인순 : 선생님한테 전해주세요!! 알았다구요!! 다신 안 온다구요! 다시는! 평생! 안 올 거라구요!!!
S#28. 경준집 근처 언덕길 (밤)
하이힐을 신고 언덕을 내려오는 인순. 속도 상하고, 발이 불편해 몇 번이나 구두를 벗었다 신었다 하며 힘들게 걷는다.
언덕 아래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 불빛들을 잠시 내려다보는 인순.
인순 : (N) 잘했어, 박인순! 잘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멋진 하이힐을 거저 신겠어? 발이 쪼끔 아프더라두... 참아보자구!
(각오) 잘하고 있어! 잘할 수 있어!!
절뚝거리며 언덕을 꿋꿋이 내려간다.
S#29. 보도국 사무실 (다음날 낮)
들어오는 상우. 기분이 안 좋다.
상우 : (테잎을 책상 위에 탁 던진다) 문화부가 동네북이야 뭐야.
재식 : (상우 책상으로 와서) 너 요즘 왜 그러냐? 왜 사사건건 날이 바짝 섰어?
상우 : (좀 추스르고) 전 뭐가 되냐구요? 공연 주최 측엔 어제 뉴스에 나간다구 했는데, 공수표만 날렸잖아요.
재식 : 일 하루 이틀 하냐? 그런 얘긴 미리 왜 했어?
상우 : (혼잣말로) 급하지두 않은 기획 뉴스는 다 내보내고, 서러워서 참... 태업을 하든가 해야지.
재식 : 대충 해라. 편집부두 죽을 맛일 거야. 빼고 싶어 뺐겠냐.
상우 : (주섬주섬 서류 챙겨 가방에 넣고 나간다)
재식 : 태업 한다며? 또 어디가?
상우 : (퉁명스럽게) 리허설 찍을 게 있어요.
S#30. 방송국 앞 (낮)
소속사의 승합차가 도착한다.
희주와 함께 차에서 내리는 인순. 화장품 가방과 의상을 든 코디가 뒤따른다.
희주 : 어디 아프세요?
인순 : 머리가 좀... 엊저녁에 잠이 안 와서 맥주를 좀 마셨거든요. 쪼끔 마셨는데, 이러네요. (한숨)
희주 : 그래두 웃으세요.
인순 : 예?
희주 : 저기, 다들 인순씨 알아보잖아요. 가능하면 밖에선 웃으세요.
몇몇 사람들, 지나가며 힐끔힐끔 본다. 아는 척 인사도 한다.
애써 활짝 웃는 인순.
희주 : 요새는 휴대폰 땜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찍힐지 모르구요, 혹시라두 찡그리거나 짜증내는 표정 같은 거, 짓지 마세요.
이 동넨 말이 금방 퍼져요. 막 과장돼서요...
인순 : (긴장) 예에.
희주 : 웃으세요. 활짝! 지금은 이미지 구축이 제일 중요한 때라고, 사장님이 말씀 하셨잖아요.
인순 : 거참... (작게) 못할 짓이네.
어색하게 활짝활짝 웃는 인순.
그 순간, 저만치서 카메라 기자와 함께 나오는 상우. 눈이 딱 마주친다.
활짝 웃던 웃음을 스르르 거두는 인순. 어색한 두사람.
가까워지는 순간, 뭐라고 인사하려는데,
가볍게 미소만 지어보이곤 인순을 지나치는 상우. 몹시 바쁜 듯 보인다.
취재 구성안 같은 것 들고 카메라 기자와 토론 중이다.
맘이 허전해지는 인순. 돌아보면 어느새 차에 카메라 장비를 싣고 저만치 떠나버린 상우.
S#31. 고급 레스토랑 (낮)
선영, 고모 부부를 불러 식사 대접 중이다.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화려한 실내 분위기에 주눅이 잔뜩 든 고모 부부. 식당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차림새다.
와인 한 잔씩 따라 주고 가는 웨이터.
선영 : 진작 모셨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해요.
옥선 : 아유, 아니에요.
고모부 : (쭈삣쭈삣 둘러보면서 와인을 단숨에 벌컥 마신다)
옥선 : (찌르며) 당신은 그걸 글케 원샷 하믄 어뜨케.
고모부 : (찌푸린다) 그럼 어때.
옥선 : 이게 막걸린 줄 알아요?
선영 : (헛기침) 실은... 당부 드릴 말씀두 있구해서...
옥선 : 뭔데요.
선영 : 인순이 말인데요. 전에 한 번 제가 말씀 드렸던 걸루 아는데... 인순이 옛날 그 사고 말이에요.
옥선 : 왜요.
선영 : 혹시 누가 뭐라구 하면요. 그런 일 없었다고, 동명이인이라고 말씀해주세요.
고모부, 옥선 : (휘둥그레지는데)
선영 : 이름두... 바꿔버릴까 고민 중이에요. 이미 알려진 거 바꾸는 게 쉽진 않겠지만 예명 같은 걸 만드는 건 어떤가 싶구요.
앞으로 활동범위를 점점 넓혀가야 하는데, 한점이라두 걸림돌이 생겨선 안된다는 판단이에요.
제 말 무슨뜻인지 아시겠죠?
고모부 : 감옥에 갔던 거, 딱 잡아떼라 이겁니까.
선영, 준비해온 봉투를 꺼내 건넨다.
선영 : 얼마 안되지만... 그간 돌봐주신 사례루 생각해주세요. 얼마 못 넣었어요.
고모부, 받아넣으려면 얼른 봉투를 빼앗는 옥선.
옥선 : 아니, 이건... 뭐... 감사히 받겠는데요... 이름까지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선영 : 저어... (머뭇하다) 근수라는 애 아시죠? 장근수.
옥선 : 근수요? 근수가 왜요?
선영 : 어릴 때 같이 자랐다 그러길래... 잘 아실 듯 해서요. 그 녀석... 어떤가요? 됨됨이 말이에요.
옥선 : 아유, 그 자식은 인간 말종이죠. 길에서 주워다 키워줬드니, 은혜두 모르구... 인순이 감옥가구 내빼버렸어요.
우리 엄마가 참 가슴 아퍼 했죠. 인순이 땜에 속 앓구, 그 녀석 집 나가서 또 속 끓이구...
선영 : 왜 내빼요?
옥선 : 뭐, 변호사 비용 댄다구 울 엄마가 정신이 하나두 없으니까, 서운했다 이거겠죠.
원래 싹수가 그랬어요. 나쁜 녀석들하구 허구헌날 어울려 다니구,
와인을 따라 또 한잔 단숨에 들이키는 고모부.
얼른 말리는 옥선.
옥선 : 고만 마셔요, 좀!!
고모부 : (실랑이 하는) 이 사람이 왜 이래? 먹으라구 있는 술인데!
선영 : (근심 어린 얼굴로 곰곰 생각에 잠겨있다)
S#32. 취재 차량 안 (낮)
카메라 기자와 나란히 앉아 있는 상우. 무심한 듯 구성안을 열심히 체크하고 있다.
카메라 기자 : (보다가) 어이, 유기자.
상우 : (못 듣는다)
카메라 : 유상우,
상우 : (멈칫) 예?
카메라 : 집안에 뭐... 안 좋은 일 있어?
상우 : 예? 아닌데요.
카메라 : 요새 표정이 왜그래? 수다쟁이가 말두 통 없구.
상우 : (짐짓 씩 웃는) 어어휴, 수다쟁이라뇨...
(시선 내리고 다시 구성안 들여다보는 척) 무슨 그런... 모욕스런 말씀을... 제가 원래 과묵합니다.
다시 금새 울적해지는 상우.
진동으로 울리는 상우의 휴대폰. 전화 받는 상우.
상우 : 네에,
선영(E) : 유기자, 나에요. 이선영이에요.
상우 : (멈칫) ... 안녕하세요.
선영(E) : 혹시 저녁 전이면... 같이 식사나 할래요? 내가 한 턱 낸다 그랬죠?
상우 : !
S#33. 커피숍 (저녁)
들어오는 인순, 한쪽에서 손 흔드는 선영.
와서 마주 앉는 인순.
인순 : 많이 기다리셨어요?
선영 : 아냐, 금방 왔어. 어때? 오늘 잘했어?
인순 : 뭐, 그냥... 대충요.
선영 : 대충 하믄 되나. 제대로 해야지.
들어오는 상우.
선영 : 어, 여기에요! 유기자!
당황하는 인순. 멈칫 하다 다가오는 상우.
선영 : 앉아요. 춥지?
상우 : 아닙니다.
인순 : (의아한)
선영 : 내가 불렀어. 내가 우리 유기자, 밥 한 번 살려 그러는데 그렇게 기회를 안 주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기자님이시잖니.
상우 : (민망한데)
선영 : 차 시켜요. (종업원 부르며) 차 마시구 식사하러 나가자. 맛있는 집 예약해놨어.
상우 : 저, 죄송해서 어쩌죠? ... 급한 일이 생겨서요. 아무래두 금방 일어나야 되겠는데요. 들어오는데 호출이 와서요.
선영 : (쯧쯧 혀차고) 방송 쪽 직업이... 이래서 안 좋아. 식사 하나 제대로 못해.
상우 : (웃는다)
종업원 다가온다.
인순이 커피, 하고 말하려 하면
선영 : 유자차 둘 하구, 유기자는?
상우 : (눈치) 저두 유자차요.
인순 : (민망)
선영 : 유자차 셋. (인순에게 작게) 밥 먹기 전에 커피는 안 좋아.
상우 : (시계 본다) 하실... 말씀이,
선영 : (찌푸리며) 많이 바쁜 가봐... (한숨 쉬고) 후우, 사실 이게... 이런 식으루 대충 하면 안되는 얘긴데...
이런 얘긴 사실 밥 먹으면서 해야하는데...
인순 : ?
상우 : 무슨...?
선영 : (결심) 우리 인순이 전과 사실 말인데... 유기자 그거 비밀루 해줄 수 있죠?
상우 : (멈칫)
인순 : (당황)
선영 : 그거 당부하고 싶어서 보자고 했어요. 혹시 어디서 말 나오면 얘한텐 치명적이거든. 알다시피 지금이 중요한 때잖아.
인순 : (얼굴 벌개진다)
상우 : ...
선영 : 비밀 지켜줄 거라고 믿을께요. 동창이니까 친구 앞날을 위해서 그 정도 예의는 다해줄 수 있죠?
내가 쓸데 없는 걱정 하는 거 아니죠?
상우 : ...
인순 : (무안하다) 엄마,
선영 : 기자라서 괜히 더 걱정 되구 그랬어요. 나 그럼 유기자만 믿어요. 잘 부탁해요.
인순 : (창피하고 속상한데) ...
상우 : (씁쓸한 미소)
S#34. 인순방 (밤)
어두운 방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인순. 이래저래 맘이 괴롭다. 뭐가 다 이모양인가 싶다.
휴대폰 집어든다. 유상우 번호를 찾는다. 누를까 말까 망설인다.
복도를 쿵쿵 올라오는 발소리. 문이 휙 열린다.
불을 탁 켜는 선영.
선영 : 좋은 소식이야!!
인순 : 예?
선영 : 씨에프 들어왔어! 저번같은 공익광고 아니구, 요번엔 제대로야. 물론 니 이미지에두 좋구.
인순 : 무슨...... 광곤데요.
선영 : 케익. 연말이라 케익 선물하는 사람들 많잖니...
이런저런 사회 저명인사랑 스타들이 번갈아 나와서 케익을 놓구 새해 소원을 비는 거래.
인순 : 케익...요?
선영 : 그래! 어려운 거 하나두 없구 그냥 잠깐 나가서 찍구 오믄 돼. 단발인데 조건두 아주 좋아. (신이 났다)
인순 : (그런 선영의 모습을 복잡하게 잠시 바라본다)
선영 : (돌아서다 무슨 생각난 듯 불안하게) 아참... 혹시 근수 소식... 모르니? 연락 안 왔어?
인순 : (멈칫) 연락... 안 왔어요.
그 순간, 울리는 선영의 휴대폰. 흠칫 놀라 창백해지는 선영.
스르르 휴대폰을 내려다보면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전화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유병국>
미소가 스르르 번지는 선영. 부랴부랴 나간다.
의아한 인순.
S#35. 상우방 (밤)
착잡하게 팔 괴고 누워있는 상우. 누운 채 휴대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다.
심드렁한 표정. 뉴스에 관심 없다. 맘은 딴 데 가 있다.
시끄러운 듯 휴대폰을 휙 꺼버리는데 그 순간, 문자 메시지가 딩동 울린다.
무심하게 들여다보는 상우. <내일 시간 어때? 만날 수 있어? 박인순>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나는 상우.
S#36. 까페 (다음날 낮-저녁)
찻잔 놓고 마주 앉아있는 인순과 상우.
어색한 인순. 뭔가 결심한 듯 담담한 상우.
인순 : 저기...
상우 : (무표정하게 본다)
인순 : (어색하게) 바쁜데... 불러냈지? 일 아직 안 끝났나?
상우 : 끝났어. 나가는 길이야.
인순 : 아, 그렇구나...
상우 : (가만히 본다)
인순 : (어색해서 괜히 친절하게) 야, 참, 너 어제 말이야.
상우 : 어제 뭐.
인순 : 우리 엄마... 말인데.
상우 : 니네 엄마가 뭐.
인순 : (무안한데) ...미안하다.
상우 : (가만히 보다) 니가 왜.
인순 : 엄마가 스타일이 좀 그래.
상우 : 나두 알아. 근데 그게 왜 니가 미안할 일인데.
인순 : 어? 어, 그거는... 왠지 그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상우 : 너 언제부터 예의 차리구 살았냐, 박인순.
인순 : (좀 기분 상하는) 너 왜 자꾸 툭툭 그렇게 말해? 나는 지금 사과하는 거야.
상우 : 니가 왜 사과하냐구 묻잖아!
인순 : (화난다) 내가 사과하면 안돼? 니가 그런 얘기나 떠벌이구 다니는 사람으루 본 거잖아! 우리 엄마가 널!
상우 : 너두 그렇게 봐?
인순 : 뭘.
상우 : 너두 날 그렇게 보냐구.
인순 : 그건...모르지...만, 아무튼... 뭐.
상우 : (기막힌다)
인순 : (시선 피하며) 어쨌든, 왠지, 사과를...
상우 : (OL) 사과는 내가 해야지 니가 왜 해!!
인순 : ?
상우 : 내가 너한테 못되게 굴었잖아. 못나게 굴구!
인순 : (?? 생각) 아아, 그날 내가 한 얘기? 너 아직두 그걸루 꽁한 거야? 허,
상우 : (결심한 듯) 박인순!!
인순 : 왜!
상우 : 사랑한다.
인순 : (헉 놀라는) 뭐?
상우 : 내가! 널! 사랑한다구!
인순 : (멍한데)
상우 : (말해놓고 자기도 쑥스러워 얼굴 벌개졌다) 돌이켜봤는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넌 항상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었어.
상처주구 비겁하게 굴었던 거, 용서해라. 니가 전에 어떤 일을 겪었든, 나 이제 그런 거 하나두 상관 없어!
음악이 멈춘다. 세상 전부가 멈춘 듯 고요하다. 긴 침묵이 흐른다.
인순 : (당황) 난...
상우 : (긴장) ...
인순 : 난... 아니거든?
표정 딱 굳는 상우.
스스로가 한 말에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인순.
인순 : 그리고 난, 너두 알겠지만,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무튼... (얼버무린다)
그리고... 나는 넌 별로야. 남자로! 너두 나 별로였잖아, 여자로는? 근데 왜 이제 와서...
상우 : 이제 와서 이러는 거 아니야!
인순 : 어쨌든 우리는... 애인이 되기는 너무 늦었어. 그리구... 지금 와서 이러니까 니가 참 나뻐 보여.
상우 : (버럭) 그건 아니야! 아니라고 했잖아!!
인순 : 설사 아니라구 해도... 나는 사실 요새 누구랑 연애할 시간 같은 건 없어. 바빠.
(짐짓 거들먹) 어쨌든 우린... 서로 이런저런 조건두 맞지 않잖아? 난 극복할 자신 없어.
니가 날 너무 많이 아는 것두 싫고, 니가 날 너무 모르는 것두 싫어. 널 만나면 왜 그런지 늘 기분이 나빠! 그러니까 나는...
굳어가는 상우 표정.
슬픈 상우 표정을 보자 왠지 맘이 쿵 내려앉는 인순. 그러나 기왕 뱉어놓은 말이다.
인순 : 싫어.
긴 침묵이 흐른다.
상우 : (애써 담담하게) 좋아. 알겠어. 잘 알아들었구... 미안하다. 기분 나쁘게 해서.
표정이 흔들리는 인순. 이게 과연 내 진심일까?
덤덤한 척 물 마시는 상우.
S#37. 까페 앞길 (낮)
까페를 나오는 두사람. 서먹하다.
상우 : 잘 가라... 그럼
인순 : 그래. 너두. 또 보자.
상우 : 갈께.
애써 태연한 척 씩 웃는 상우. 돌아서서 간다.
그 뒷모습을 왠지 안타깝게, 허둥대며 바라보는 인순.
S#38. 상우집 거실 (저녁)
기운 없이 울적하게 들어오는 상우.
거실에서 나오는 재은과 진태.
깜짝 놀라는 상우.
식당에서 나오며 맞아주는 명숙.
재은 : 선배!!
상우 : 어떻게 된 거야? (의아하게 보면)
진태 : 놀러왔지 뭐.
명숙 : 내가 오라구 그랬어. 저녁 같이 먹자구.
상우 : (어이없다)
명숙 : 우리 한재은 아나운서가 전화를 했길래... 그냥 오라구 그랬어. 내가 마침 미더덕찜을 했는데, 좋아한다 그러잖니.
진태 : (작게) 나는 끌려왔다.
명숙 : (보라색 들국화 꽃다발 가리키며) 이렇게 이쁜 꽃을 사왔어. 이게 내가 젤 좋아하는 꽃인데, 어쩌믄 내 맘을 딱 알구...
재은 : 저두 제일 좋아하는 꽃이에요. 저하구 취향이 똑같으세요.
상우 : (난감한데)
명숙 : 언제 들어오나, 전화하려던 참인데... 어서 저녁 먹자.
S#39. 상우집 식당 (저녁)
둘러 앉아 저녁 먹는 네 사람. 상우, 진태, 재은, 명숙.
분위기가 훈훈하다.
재은 : 입사해서 처음에, 제가 정말 어리버리 했거든요. 적응두 안되구... 그래서 사내 독서 동아리에 든 거에요.
거기서 유선배랑 송선배를 만난 건데... 저한테 무척 잘해주셨어요. 덕분에 금방 회사에 적응했죠.
두 분, 저한테 정말 은인이세요.
명숙 : 아아, 그렇구나.
진태 : 웬일이야, 한재은. 그런 말 평소엔 한 마디두 안하다가,
재은 : 어우, 그런 얘길 쑥스러워 어떻게 해요. 이럴 때나 하는 거죠.
진태 : 니가, 그러니까 니네 부서에서 왕따를 당하는 거다. 니가 왜 자꾸 우리랑 노냐? 무슨 저의가 있지 않고서야...
상우 : (묵묵히 밥 먹는다)
재은 : 미더덕찜이 너무 맛있어요. 어쩜 이렇게 솜씨가 좋으세요.
명숙 : 아이구, 고마워요. 별루 맛은 없는데... 맛있게 먹어주니 내가 기분이 좋네.
상우야, 넌 왜 통 안 먹냐. (억지로 밀어준다)
상우 : 먹고 있어요.
진태 : 너 어제 그거, 아직두 안 풀렸냐? 왜그래 새삼? 한 두 번 겪는 일 아닌데.
재은 :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상우 : (피식 웃고) 밥 먹고 나가자. 요 앞에 골뱅이 잘하는 집 있어.
명숙 : 나가긴 어딜 나가? 술 마실래믄 집에서 마셔.
상우 : 에이,
명숙 : 골뱅이 내가 무쳐줄께. 내가 더 잘 무쳐. 끝내주게 팍팍 무쳐줄께.
재은 : (깔깔 웃는다) 어머님, 너무 재밌으세요.
명숙 : (흐뭇하게) 별 게 다 재밌네! 아이고, 사람이 어쩌믄 일케 이뻐. 나두 이런 딸 하나 있음 원이 없겠네. (재은 등을 쓰다듬고)
상우 : (죽이 맞는 두사람을 난감하게 본다)
S#40. 호프집 (밤)
상우, 진태, 재은, 둘러앉아있다.
어느새 한쪽에 곯아떨어진 진태. 맥주 여러 병이 비어있다.
재은 : 첨 만났을 때요, 선배 저한테 뭐라 그랬는지 생각나요?
상우 : 뭐라 그랬는데.
재은 : 너는 세상에 어떤 뉴스를 전하고 싶으냐? 그래서 제가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하구 있었드니 선배가 그랬어요.
너는 그런 목표두 없이 방송사에 왜 입사 했냐,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 좀 가져라...
상우 : 내가 그랬냐.
재은 : 어우, 잊어버렸나 봐. 내가 그날 분해서 한숨두 못잤는데요...
실은 그날부터 내가 선배를 제일 존경하게 된 거에요.
상우 : 내가 미쳤구나.
재은 : 예?
상우 : (심드렁) 먼 놈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냐. 내 인생두 못 책임지는데.
재은 : 허, 선배가 왜 선배 인생에 책임을 못져요.
상우 : 너는... 니 인생에 대해 책임 질 수 있냐?
재은 : 그럼요.
상우 : 좋겠다, 너는! (흐흥 웃고 소파에 기댄다) 책임져서 좋겠다.
재은 : 선배 취했나 봐.
상우 : (쓸쓸한 미소)
재은 : 선배...
상우 : (심드렁하게)
재은 : 크리스마스에 뭐해요? 저랑 일본에 놀러 가실래요?
상우 : 일본?
재은 : 네, 외삼촌이 삿뽀로에서 리조트 사업을 하세요. 놀러오라구 하두 그래서...
상우 : ...
재은 : 두,둘이만 가는 거는 아니구요. 진태 선배... (코고는 진태를 돌아본다) 가족이랑... 시간 되면 같이 가자고...
상우 : (보다가) ...그러자.
재은 : (확 밝아진다) 정말요?
상우 : 진태네 안 되면 우리 둘이라두 가지 뭐.
재은 : (감격해서 말을 잃었다)
상우 : (다시 몸 일으키며) 한 잔 하자.
결연히 잔을 든다. 건배하는 두사람.
기쁨에 젖은 재은.
S#41. 상우집 외경 (밤)
S#42. 안방 (밤)
스탠드만 켜진 방안. 침대에 나란히 누운 병국과 명숙.
명숙 : (흐뭇한) 내 팔자에 언감생심, 아나운서 며느리를 보게 생겼어요. 어찌나 우리 상우를 좋아하는지...
병국 : (기분 좋다) 그렇게 맘에 들어?
명숙 : 아유, 그러믄요. 내가 맘에 들구 자시구 할 거 있나요. 나야 황송하지.
아주 야무지구 싹싹해요. 같은 여자가 봐두 매력이 넘쳐요.
병국 : 당신 눈에 매력 없는 사람이 어딨나.
명숙 : (흐흐 웃는다) 당신은 근데 요새 어딜 그렇게 늦게까지 다녀요? 일찍 들어와서 같이 좀 봤으면 좋았잖아요.
병국 : (대꾸 없이 눈을 슬몃 붙이는데)
명숙 : (슬몃 보다가) ...저기 이선영이라는 배우 알아요?
병국 : (흠칫)
명숙 : 연극 배운데요... 아, 저번에 상우가 연극표 한 번 줬었죠? 거기 나오는 주인공 여자요...
병국 : 내가 그런 여잘 어떻게 알아?
명숙 : (멈칫)
병국 : (무심한 척 돌아눕는다) 그런 건 왜 물어?
명숙 : 아니, 나는... 순옥이가 하두 이쁜 척을 하면서 그 여자랑 자기가 닮았다는 거에요.
내가 보기엔 하나두 안 닮았고만... 순옥이가 워낙에 왕비병이 있어 가지고...
병국 : (스탠드 휙 끈다) 쓸 데 없는 소리 고만하고 잠이나 자. 다 늙은 여편네들이 이쁘구 말구가 어딨나!
명숙 : (불안하다)
S#43. 병국 회사 인테리어 매장 (낮)
이런저런 전시용품들 보인다.
커다란 보따리 안고 들어오는 명숙.
직원 : 사모님 오셨어요? (달려가며 굽신 인사)
명숙 : 오랜만이에요. (되려 더 굽신굽신) 일하는 데 방해된 거 아닌가 몰라요.
직원 : 아유, 무슨 말씀을요.
명숙 : 이거... 떡하구 과일하구 음료수 쪼끔 샀어요. 직원들 나눠드세요.
직원 : 잘 먹겠습니다. (받으며) 사장님 밖에 나가셨어요. 일 보시구 바로 퇴근하신다 그러셨는데요.
명숙 : 그래요? 휴대폰이 꺼져있어서... (하다가 왠지 좀 불길해지는)
S#44. 근처 거리 (낮)
곰곰 생각하며 걸어오는 명숙. 버스 정류장 쪽으로 종종거리며 다가간다.
멈칫 뭔가 이상한 예감. 돌아본다. 통유리 전통 찻집의 유리창 안으로 병국을 본 듯 하다.
오던 길로 되돌아 간다. 유심히 바라보는데... 병국이 맞다.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모습.
몸을 숨겨가며 얼떨떨 바라보는데...
S#45. 전통 찻집 (낮)
창가에 앉아있는 두사람.
선글래스 끼고 모자 쓰고 나름 얼굴을 가린 선영, 마주 앉아 한껏 기분이 좋은 병국.
다기를 들고 찻잔에 차를 따라준다.
병국 : 이건 중국 소수민족의 찬데... 보이차라구...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데는 특효지요.
마셔보세요, 걱정 근심이 사라집니다.
선영 : (수줍게 웃고) 설마요. (한 모금 마신다)
병국 : 허무하구 걱정 되구, 그럴 때 무조건 저한테 전화하세요.
차 한 잔 하면서 웃고 떠들다 보믄... 사실, 인생 뭐 별 거 있습니까.
선영 : 맞아요... (한숨) 제가 너무 예민해요. 조그만 일 하나에두 며칠을 끙끙거리거든요. (울적한 시선)
병국 : 예술가니까요.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모르긴 해두, 우리 같은 일반인이야 상상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가지셨으니까요.
선영 : 아유, 뭘 그렇게까지...
병국 : 걱정거리가 뭔지 몰라두, 제가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맘 놓으세요.
선영 : 고맙습니다. 너무 초조하구 불안했는데 한결 맘이 놓여요. 정말 친오빠 같으세요.
병국 : 아이구, 영광입니다. 아참, 공연 한 편 보러가실래요? 마침 좋은 공연이 있길래... 시간 어떠세요?
선영 : 지금요? (멈칫 하다 미소) 그,그럴까요?
S#46. 찻집 앞길 (낮)
창백한 얼굴로 두사람을 바라보는 명숙.
이윽고 안에서 나오는 두사람.
얼른 몸을 숨기는 명숙.
웃으며 병국의 차에 오르는 두사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전혀 실감이 안 되는 명숙.
S#47. 공연장 (낮)
나란히 앉아 연극을 보는 병국과 선영.
S#48. 무대 (낮)
창고를 개조한 허름한 공연장 무대.
춥고 배고픈, 그러나 열정만은 가득해 보이는 예닐곱 명의 비보이들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한창 리허설 중이다.
뛰어 다닐 때 마다 나무판자 소리가 투박하게 들린다.
카메라, 무대를 배경으로 리포팅 중인 상우를 비추고 있다.
상우 : (무대를 가리키며) 허름하기 짝이 없는 이십여 평 남짓한 이 공간이,
바로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린 프린지 축제에서 세계를 열광시킨 한국 비보이들의 산실입니다.
카메라, 계속 비보이들의 춤을 보여주고 있고 그 위로 상우의 목소리 이어진다.
상우(E) : 최근 문화 상품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비보이 댄스가 차세대 한류 상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S#49. 광고 스튜디오 (낮)
테이블 위에 블루베리 케익이 하나 놓여있다.
벽과 테이블로 구성된 심플한 배경. 근처에 카메라와 조명 등 장비들이 보인다.
촬영 전의 어수선한 분위기. 감독과 스탭들이 삼삼오오 몰려서서 콘티 들여다보며 의논 중이다.
무대의 테이블 앞에 서서 중얼중얼 카피를 외우고 있는 인순. 빵칼을 들고 케익을 자르는 시늉.
인순 : 와, 이건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 케익이에요!!
작위적으로 환히 웃는 표정 지어보인다. 그러다 물끄러미 케익을 내려다본다.
S#50. 제과 실습실 (회상)
교도소 내 제과 실습실.
수인복 위에 앞치마를 두른 인순. 손수 만든 케익을 내려다 보며 서 있다.
강사 : 세상은 절대로 만만치 않아. 너희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사회의 냉대는 무조건 각오해야 한다.
줄지어 서 있는 젊은 여자 동료 수감자들. 각자의 케익 앞에 서서 강의를 듣는다.
강사 : 남들 보다 열 배, 스무 배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로, 노력과 정성을 다해라.
사람들이 너희들을 받아들일까 말까는 오로지 너희들 하기에 달렸어!
자, 그럼 오늘은 케익 장식하는 법을 배우겠다. 각자 앞에 놓인 튜브를 들고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영어로 써보자.
튜브를 집는 인순. 한없이 진지한 시선으로 장식 없는 흰 케익을 내려다본다.
S#51. 제과점 앞 (회상- 1회 중에서)
가방 들고 제과점을 쫓겨 나오는 인순.
남자1 (E) : 미안합니다. 우린 신원이 확실한 사람만 씁니다.
남자2 (E) : 전과 있는 거 왜 진작 말 안 했어?
여자1 (E) : ...너, 혹시라두 나쁜 맘 먹지 마. 우리두 살기 힘든 사람들이야...
터덜터덜 걸어가는 인순 뒷모습.
S#52. 분식집 (어린시절, 낮)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빵과 도너츠, 꽈배기 등을 쌓아놓고 맛있게 먹는 어린 인순과 어린상우.
어린인순 : 너는 찐빵이 그렇게 좋아? 맨날맨날 먹어두 안 질려?
어린상우, 끄덕끄덕한다. 목이 막히는 듯 물 한 모금 마신다.
어린상우 : 안 질려! 나는 나중에, 빵집하는 여자랑 결혼 할 거야.
어린인순 : (어이없어 웃고) 피, 그래라.
어린상우 : (놀리듯) 넌 이런 거 못 만들지? 니네 할머니 같은 여자랑 결혼해야지, 히히.
어린인순 : (역시 놀리듯 괜히) 니네 집에 맨날 빵 얻어먹으러 놀러가야 되겠다.
어린상우 : 그러든지!
어린인순 : (샐쭉하게) 니가 만들믄 되잖아. 뭐하러 부인을 시키냐?
어린상우 : (둘러댄다) 야, 빵은 원래, 만드는 사람은 맛이 없어.
어린인순 : 하긴! (웃고) 울 할머니두 빵은 하나두 안 드셔.
어린상우 : 야, 너는... (슬몃 시선 내리깔고) 어떤 남자랑 결혼하고 싶은데?
어린인순 : 나는... (잠깐 생각) 절대로 결혼 같은 거 안 해. 할머니랑 둘이 살 거야.
순간, 표정이 안 좋아지며 컵을 엎지르는 어린상우. 바닥에 굴러떨어지며 깨지는 컵과 쏟아지는 물.
놀라서 후다닥 일어나는 어린인순, 어린상우.
S#53. 광고 스튜디오 (현재)
인순,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다. 씁쓸한 미소 짓다가 다시 표정 추스르며 대사 연습.
인순 : 와, 이건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 케익이에요!!
S#54. 비보이 공연장 앞 (낮)
취재 마치고 철수하는 상우와 카메라 기자.
낡은 창고 혹은 소규모의 공연장이다. 바람이 씽씽 불고 있다.
공연장 앞도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휴지조각이 날리고 이런저런 무대 관련 구조물들도 버려져있다.
주차 공간 한 켠에 폐타이어가 가득 쌓여있다.
차량에 장비를 싣고 있는 상우와 카메라 기자, 조수 등등.
상우 : (카메라 기자에게) 담배 한 대... 빌리죠.
카메라 : (무심히 한 대 건네주다가 멈칫) ... 담배 안 피잖아? 옛날에 끊었다 그러지 않았어?
상우 : 라이터두 좀...
조용히 라이터와 담배를 받아들고 구석으로 가는 상우.
의아하게 보는 카메라기자.
사람들 보이지 않는 곳으로 걸어오는 상우. 씁쓸한 기분이 아직 좀처럼 안 풀린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데, 기름이 다 됐다. 아무리 해도 불이 안 켜진다.
상우 : (성질이 확 솟구친다) ...되는 게 없냐,
짜증 내며 일회용 라이터를 던져버린다.
그 때, 차를 빼달라는 소리와 함께 후진하는 취재차량. 상우가 뒤에 있는 것도 모르고 슬슬 뒤로 빼고 있다.
어느 순간, 상우를 발견한 카메라기자.
카메라기자 : 조심해!
쌓여있던 폐타이어에 차 뒤꽁무니가 쿵 하고 쳐박힌다. 그 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타이어들.
그제서야 돌아보는 상우. 놀라서 재빨리 몸을 돌리지만... 이미 늦었다.
달려오는 카메라 기자.
카메라기자 : 유상우!!!
S#55. 광고 스튜디오 (낮)
조명이 환히 켜져있다.
케익 앞에 환히 웃으며 서 있는 인순. 그런데, 칼을 들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놓쳐버렸다.
바닥에 떨어지는 제과용칼. 그 순간, 손가락을 살짝 베이고 말았다.
놀라서 얼른 감싸쥐는 인순. 피가 조금 난다.
달려오는 사람들.
희주 : 괜찮으세요?
인순 : 예에...
희주 : 피나네! 어떡하지? 병원 안 가두 되겠어요?
인순 : 괜찮아요. 아주 쪼끔 벴어요. 밴드만 붙이면 될 거 같아요.
희주 : 잠시만요. 구해올께요.
인순 : (휴지로 감싸쥐고 찡그리는데)
다가오는 젊은 남자 한 사람.
기자 : 안녕하세요, 박인순씨.
인순 : 예?
기자 : 이형석입니다. 며칠 전에 상우가 찍은 그 인터뷰, 원랜 제가 담당이거든요?
인순 : 아아, 들었어요! 부인이 아이 낳으셔서...
기자 : 예. (머쓱 웃고) 상우가 저보다 더 잘했드라구요. 말씀두 잘 하시구...
인순 : 어후, 그날... 엉망진창이었는데...
기자 : 엉망은요. 방송 날짜가 조금 뒤루 밀려서, 이런저런 활동 스케치를 인터뷰 중간에 붙일까 하구요...
오늘 씨에프 찍으신다길래... (손을 힐끔 본다) 다치셨어요?
인순 : (머쓱) 예, 쪼끔요.
기자 : 오늘 무슨 날인가 보네... 상우두 다쳤다 그러는데.
인순 : 예? 어디를요?
기자 : 글쎄요. 방금 송선배하구 통화를 했는데... 취재하다 사고가 난 모양이에요. 뭐가 떨어졌대나...
정신을 잃구 병원으루 옮겼다니까 아마 좀... 다친 모양이에요. 안그래두 걱정 돼서 나중에 다시 전화해달라 그랬어요.
인순 : (멍해지는) 뭐가 떨어졌는데요.
기자 : 모르겠는데요.
인순 : (불쑥) 걔는! 걔가 원래 그래요. 운동신경이 없거든요.
기자 : 예?
인순 : (흥분) 덩치는 큰데요. 입으루만 잘난 척 하고 행동은 느려터졌어요.
운동 신경 예민할 것 같죠? 전혀 아니에요. 그런 척만 하는 거에요. 달리기두 저보다 못해요.
얼마나 몸이 약해서 빌빌거렸다구요. 걔는 손만 대면 다 부서져요.
어릴 때 별명이 마왕 손이었어요. 손 대면 사고가 나서요. (하하 웃는)
기자 : (멍하니) 예에...
인순 : (내가 지금 뭐라 그러고 있지?) 아, 저, 그...그러니까 제가 지금... 광고를 마저 찍어야 되는데... 제가...
기자 : (보다가) 아,예...그러시죠.
인순 : (태연한 척 다시 테이블로 가는)
기자 : (다이어리 꺼내며) 광고는 처음...이세요?
인순 : (점점 창백해진다. 그립고 걱정 된다) ...
기자 : ?
인순 : 저어...혹시...어느 병원인데요?
S#56. 거리 (낮)
대로변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인순. 걱정스런 표정으로 걷다가 어느덧 조금씩 달리기 시작한다.
인순 : (N) 달리기 중 가장 어려운 달리기는... 과거로부터 도망쳐 달리는 것!
S#57. 대로변 (낮)
병원 부근 팔차선 대로. 구급차 한 대가 요란하게 지나간다.
깜박거리는 건널목 급히 건너고 있는 인순.
인순 : (N) 팔차선 대로 중간 쯤 건넜을 때, 빨간 신호등이 들어오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달리기다...
신호가 빨간 불로 바뀐다. 어느새 차들이 오가기 시작한다.
들입다 달리기 시작하는 인순, 우왕좌왕 차가 꼬여 엉망이 된다.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난다.
마침내 길을 무사히 건넜다. 허둥지둥 목례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인순.
저 멀리 병원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인순 : (N) 바보 같은 자식...! 운동 신경두 없는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