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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탄탄한 문중으로 건당할 밖에 속가·친인척들로부터 생활비 받기도
“나이 들면 갈 곳이 없으니 어쩌나. 문중이 탄탄해서 돌봐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쳇말로 잘 나가는 사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가진 것이라곤 바랑 하나 뿐이니 일찌감치 제 살길 찾아둬야지.”
어느 사찰의 ‘뒷방’에 거주하는 한 스님의 말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큰절에서 살고 있으나, 이른바 ‘비주류’에 속하는 이 스님은 나이 들어 거처할 곳이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이 스님의 고민은 특정한 몇몇 스님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조계종에 스님들의 노후 문제를 해결할 어떤 시설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수의 스님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거리다. 조계종 중앙종회 사회분과위원회가 2001년 밝힌 자료에 따르면 스님 2명 중 1명은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스님들은 선방이나 강원 등에서 인연을 맺은 도반 스님들에게 지원금을 받거나,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시주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출가 전 인연을 찾아 속가나 친인척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아 사용하는 스님들도 적지 않다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에 공감하는 스님들 사이에서는 “젊은 시절에는 그래도 출가 의지를 살려 나름대로 활동 폭을 넓히면서 생활하지만 중년이 지나면서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오고 있다. 스님들의 걱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이 들어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면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에 처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다가, 병까지 얻으면 말 그대로 대중들에게 골칫거리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으니 노후 문제가 ‘화두’가 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스님들의 노후 문제는 ‘출가자가 수행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원칙론을 들어 흘려 넘길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평생을 수행에 전념해온 스님들이 나이 들어 몸을 의탁할 곳이 없어지면 대중들의 처소에 머물게 되더라도 질병을 호소하기가 어렵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스님들이 노후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선택하는 것 중 하나가 사설사암을 창건하는 일이다. 조계종의 경우 종단에 등록하지 않은 사설사암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스님들의 노후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종단 안팎의 분석이다.
사설사암을 종단에 등록하더라도 본인이 생존하는 동안은 권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사찰 창건 자체로 자신의 노후 문제는 해결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사설사암은 개인적으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스님들 사이에서는 “젊어서 포교한다고 뛰어다니다가 늙어서 오갈 곳도 없어 고생하느니, 작게라도 내 절 하나 만드는 게 남는 일”이라는 말이 오가기도 한다. 한 스님은 “결국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야 할 스님들이 스스로 노후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 하에 삼보정재를 사유화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사설사암 증가 현상을 비판하고, 종단 차원의 대책 부재를 질타했다.
사설사암이 개인의 치부 성격이 강한 노후대책이라 비판을 받는 가운데, 토굴 만들기 역시 스님들의 노후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스님들의 설명이다.
토굴은 일반적으로 스님들이 스스로의 수행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하는 개인 수행처로 알려져 있다.
물론 자신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이어가기 위해 토굴을 마련하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설사암과 다를 바 없는 호화 토굴을 비롯해 생계형 토굴도 적지 않다는 것이 종단 관계자의 분석이다. 종단 안팎에서 비난 대상이 되고 있는 호화토굴은 사설사암과 함께 치부에 가까운 것으로 사실상 스님들의 노후문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른바 생계형 토굴은 노후 문제에 맞닿아 있다. 출가본사나 문중이 선방 수행자들의 수행을 지원할 만한 여력을 갖추고 있지 않는 한 개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적은 비용으로 자신만의 수행 및 생활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토굴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토굴이 공간 확보 측면에서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으나, 나이 들어 병이라도 날 경우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토굴 생활을 하는 스님들 사이에서는 “어느 토굴에 있던 어떤 스님이 제주도 가는 밤배를 탔다”는 은어가 있다. 이 말은 평생 토굴과 선방을 오가며 수행에만 전념하던 스님들이 나이 들어 병을 얻을 경우 자신을 회향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자살을 택한다는 설명이다. ‘한 밤에 제주도로 향하는 배를 탔으나, 배가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에 내려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제주도 가는 밤배’란 은어의 통용은 스님들의 노후복지 현주소를 극명하게 전달하는 사례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충청도 한 지역에 토굴을 마련해 독살이를 하고 있는 M스님은 “큰절에서 방 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현실을 설명했다. 불교계에 명성이 자자한 큰스님의 상좌인 이 스님은 스스로 토굴을 선택한 경우다. 이 스님은 노후복지와 관련해 “스님들의 생각만 바뀌면 별 문제 될 것 없다”며 “주지 스님들이 삼보정재를 보면서 내 것이란 생각을 없애고 전체를 하나로 보는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 한 제도적 장치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찰의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주지 스님들의 생각 자체에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보통 스님들이 겪는 노후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지적이다.
종단 현실에 정통한 한 대학교수는 “선방이나 강원에서 혹은 행정직에서 이른바 불교의 공적인 일로 일생을 보낸 수행승들이 노후에도 수행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복지시설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젊어서 잘 수행하고 포교하면 노후에 그 근력에 맞게 부처님 모시고 세월을 마칠 수 있다면 지금처럼 종교권력에 끼어 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실적으로 승려노후복지가 전무하다시피 하니, 불교계 내부에서의 권력 투쟁도 빈발하게 발생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사회는 평균 수명이 76세로 늘어나면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지 이미 오래다. 이에 따라 나 홀로 살아가는 독거노인도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사회 현실이 승가에서도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스님들이 노후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자식이 부모 모시기를 꺼리는 사회 일반의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스승을 부처님 모시듯 한다”는 승가전통이 와해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회가 무너진 효 사상을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시점에서 이를 계도하고 바로잡아야 할 불교계가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것이다.
조계종은 종헌에 ‘승려의 노후생활 보장과 건강유지를 위해 승려노후복지원을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노스님들은 거처는 물론 의료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젊은 시절 이 절 저 절 다니며 선방에서 지냈고 몸과 마음을 불교에 바쳤으나, 세월 속에서 남는 것은 늘어난 나이와 병든 몸 뿐”이라는 노스님들의 자조가 오늘도 곳곳에서 한숨에 섞여 나오고 있다.
종단 안팎에서 스님들의 노후복지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현 시점에서 스님들은 “노스님을 어른으로 모시고 존경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되살리는 일이 제도 보완에 앞서 이뤄져야 할 과제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심정섭 기자3D3D3Dsjs88@beopbo.com">3D3Dsjs88@beopbo.com">3D3Dsjs88@beopbo.com">3Dsjs88@beopbo.com">3D3Dsjs88@beopbo.com">3Dsjs88@beopbo.com">3Dsjs88@beopbo.com">sjs88@beop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