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사브낫바네아
창41: 37-45
10월 첫 번째 수요예배를 맞아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께 우리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시길 소망합니다. 본문은 어린 날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노예로 팔려가야 했고, 주인 보디발의 아내되는한 여인의 음흉함으로 인해 억울하게 옥에 갇혀 죄수의 생활을 해야 했던 요셉이, 드디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고, 애굽 왕으로부터 사브낫바네아라는 새 이름을 받는 말씀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배워야할 신앙 교과서이자 더 나아가 전 인류의 인생독본입니다.
1. 하나님의 섭리
'섭리'란 '다스린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생을 다스리고 주관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분야, 곧 신성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 일거수일투족, 모든 삶은 내 마음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하여 상품처럼 팔려간 일, 치욕적인 종살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된 사건, 옥중에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 해몽, 바로 왕이 꿈을 꾸게 되고 요셉이 해몽자가 된 일, 이 모두는 요셉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이 소년 시절부터 당하고 겪은 고난의 인생 여정은 세상인들이 말하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와진 고초의 세월들은 그의 복된 앞날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섭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나날 속에서 일어나고, 되어지는 일체의 일들은 내 마음에 들던지 안 들던지, 원하던지 원치 아니하던지, 전부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상상치 못하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허다합니다. "당신들의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보고 두려워 떠는 형들에게 요셉이 한 말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난이나 고통에 처함은 하나님의 사랑 섭리가 내게서 떠남을 의미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사랑의 섭리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계심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요셉은 자신에게 전개되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이지(理知)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살고 있었기에 종이면 종으로서, 가정 총무면 청지기로서 성실히 최선을 다했고, 억울하게 죄수가 되었지만 죄수로서의 생활을 분냄 없이 수용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잘못도 없이 인간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곤경에 놓였음에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형들을 원망치 않았습니다. 자기 신세를 한탄치도, 저주스럽게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고, 불합리하다고, 반항하거나 항변치 아니했습니다. 그는 당하는 대로, 처하는 대로, 만나는 삶대로 순응했고 순복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충실했고, 책임적이었으며, 희생적이었습니다. 한고비 넘기면, 또 한고비... 계속되는 시련의 까닭을 몰랐음에도 시련 경주를 잘 해냈습니다. 지금 우리 성도들 가운데 가시밭 길을 걷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장애물을 넘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대로만 헤치고 헤치며, 넘고 넘으십시오. 어려움과 괴로움을 당하는 이유를 몰라도 순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복된 곳으로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주도면밀하시고 주권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하나님의 신, 성령에 감동되어 사는 요셉은 그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 알 수 없는 환경에 처해도 정도만을 택했고, 정로로만 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확실히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때문에 섭리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우매한 짓이며, 어리석은 결과와 만날 뿐입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불합리하다고 섭리를 거역함은 인생을 더 꼬이게 하고 어렵게 만들며, 어려움을 더 증가시킴입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우리의 속담이랍니다. 큰 일, 작은 일, 세상만사가 인간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입니다. 살다보면 가끔씩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을 붙들고 하소연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솔직히 실망이 됩니다. 그러나 이 실망을 극복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적인 성공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내가 되면 나의 내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3. 사브낫바네아
'사브낫바네아', 이는 애굽의 바로왕이 요셉을 총리로 세우며 지어준 이름으로 애굽식 이름입니다. '사브낫바네아'란 애굽어로 '그 신이 말한다' '생명의 지탱자'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38절)” 이는 바로 왕이 애굽의 술사, 박사들을 모두 불러 자신의 꿈을 해몽케 했으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는데 요셉만이 해몽함으로 탄복하여 한 말입니다. 그래서 '사브낫바네아'라 한 것이며, 요셉에게 '애굽의 생명과 운명을 맡긴다'라는 뜻에서 지어준 이름입니다. 사브낫바네아! 요셉의 13년 굴욕의 삶이 끝났습니다. 노예로 끌려온 자가 당시 최강국의 총리로, 비참한 죄수에서 영광의 복된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자기 생명하나 지키기도 힘겨웠던 처지의 사람이 전 애굽인의 생명을 구원하고, 그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밑바닥 인생이 높고 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이방 왕의 입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라는 최상으로 높인 이름이 나왔습니다.“...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39∼41절)" 하나님의 눈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에게 늘 머무시며, 그를 높이시기를 즐거워하십니다. 해서 믿음 안에서 순복하며 사는 자의 최후 몫은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선 고난을 통하여 성도를 강하게 만드시고 빛나는 영예로 높이십니다. 신앙생활은 깨닫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깨달았으면 생각을 낳고 생각은 실천으로 자라야 합니다. 신앙의 세계는 수용, 순응, 순복이요, 관용이며, 소망입니다. 미래는 말도 없고, 쉴 새도 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미래를 대처하시렵니까? 성령에 이끌려 사십시오. 섭리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섭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와진 근심, 걱정, 재난, 시련, 고난은 위대한 앞날을 위한 훈련이며, 내일의 유익입니다. 인생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요, 울고 웃고의 교차이며, 오르고 내림의 반복입니다. 인생은 늘 기복이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고통의 삶이 기쁨의 삶으로 바꾸어지지 않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팔므로서 자신들의 뜻을 이룬 것 같았으나 실패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고, 요셉은 잘못 된 것 같았으나 성공의 인생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인의 처세술은 진실을 거짓과 바꾸고, 짓밟고서라도 현재보다 높아지는 것입니다. 허나 그리스도인들의 처세는 인위적 방법,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됨입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께 순복하며 사는 자는 지금 비천한 위치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존귀한 자리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