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이야기] 문화재는 무덤이다
글 : 제이풍수사
글 게시일 : 2023. 9. 20.
휴가다, 여행이다, 바캉스다 하여 세상이 술렁댄다. 더위가 없는 곳, 일상의 번잡함이 없는 곳, 뭔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찾아 떠난다. 그 중에서 진한 감동까지 얻을 수 있는 곳을 추천하고 싶다. 어디지? 무릉도원인가? 아니다.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으스스한 무덤이다. 석물을 위엄스럽게 치장한 묘도 있고, 벌건 황토가 드러난 봉분도 있고, 듬성듬성 잔디가 심어진 새끼(?) 무덤도 있다.
무덤은 그 주인이 실제로 이 땅에 살았음을 일깨워주는 최소한의 유품이다. 약간만 시공(時空)을 초월하면 나와 똑같이 삶을 버거워하며 살았을 것이나, 그를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지나쳐 버린다. 그렇다고 반갑게 맞이할 만큼 망자(亡者)도 다정스럽지 않다. 죽은 자는 지독히도 냉정하고 또 쌀쌀맞다. 그러나 무덤 앞에 서면 뭔지 모르지만 절박한 의욕이 솟아난다. 왜일까? 사람은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나 일상에선 쉽게 깨닿지 못하고, 어느 날 무덤을 찾고서야 문득 깨닿기 때문이다. 비록 무덤 주인의 얼굴도, 업적도, 삶의 애환도, 또 어떻게 죽어 그곳에 묻혔는 지도 알지 못하나, 무덤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증표이다. 나도 결국에는 땅을 요삼고, 잔디를 이불 삼아 한 줌의 흙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이제부터라도 더 열심히 살자며 마음을 고쳐 먹는다.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천만 년을 살 것같이 발버둥치지만 결국 피땀 흘려 모은 재산도 떠나야 될 순간에는 오히려 보따리처럼 무겁고 힘든 마음의 짐일 뿐이다. 어차피 빈손으로 가야 할 바에는 가지고 산 것이 적을수록 홀가분하다. 지혜와 총명을 계시 받아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도 결국 빈 손으로 가고 말았다. 참혹하게도 거기에는 예외가 없다. 따라서 무덤을 찾는 순간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다.
전북 부안에 있는 여류시인 매창(梅窓)의 무덤을 찾았을 때다. 매창은 세상의 천대 속에 살았지만 가슴 속에 아로새긴 그리움을 정갈한 시로 엮어내어 만인의 애인이 되었다. 해는 어느 덧 변산의 푸른 산을 붉게 물들이는데, 낮은 야산에는 영웅호걸과 천하를 주무르던 고관대작 그리고 질경이처럼 삶을 이어온 민초들의 무덤들로 총총했다. 그의 무덤은 언제 보아도 소담하니 예쁘다. 제물을 올리자, 봉분에 피어있던 패랭이 꽃들이 일제히 향기를 뿜어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기생이 된 매창은 노류장화의 신세를 한탄하던 중 스무 살에 유희경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 다정다감했던 시인과 오십 객의 풍류가는 세월을 초월해 정겹게 어울렸다. 시와 거문고로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놓으니, 무궁한 정취에 밤은 짧기만 했다. 머무는 곳마다 주안상이 펼쳐지고, 연정이 불타오르면 시를 써 주고받았다. 그러나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따르는 법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희경은 급히 상경을 서둘렀다. 사랑에 빠진 매창에게 전쟁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만 곁에 있어주면 그만이요, 여자의 사랑은 본래 그건 것이다. 그러나 입술을 깨물며 슬픔을 참아야 했다.
매창의 묘(전북 부안 소재)
곧 끝날 것 같던 전쟁이 칠 년이나 지속되고, 임의 편지 한 장 없자 원망하는 마음이 절로 솟구쳤다. 때론 보고 싶고, 때론 잊지나 않았나 의심도 들고, 때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피골이 상접하고 눈까지 휑하니 들어가 파릇파릇한 젊음이 일시에 삭아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미워도 했으나 혹시 전쟁통에 죽지나 않았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치고 진저리가 처졌다. 이제 매창은 유희경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 임이 떠난 자리에 그대로 놓인 원앙금침을 바라보면 혼자라는 생각에 외로움이 뼈까지 시려 왔다. 사랑할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들이 이별 후에는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고, 떨어지는 꽃잎을 보아도 뒹구는 낙엽만 보아도 한숨에 눈물뿐이였다. 매창은 텅 빈 방안에서 긴긴 밤을 거문고만 뜯으며 하얗게 새웠다.
송백같이 굳게 맹세하던 그날/ 서로 사랑하기가 바다같이 깊었건만
한번 가신 님은 소식조차 끊여/ 한 밤중 나 홀로 애간장만 태우오.
유희경은 십 년의 세월을 보낸 뒤에 매창을 찾아왔고, 매창도 서른 살이 되었다. 그녀는 유희경을 기다리며 승려 아닌 스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계랑아, 계랑이 있느냐.’ 백발 노인의 굵직한 목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졌다. 매창은 복받치는 흥분을 억제한 채 덤덤히 앉아 백발 낭군을 바라보았다. 눈에선 별안간 두 줄기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다시 만나 뵙게 되니 진정 반갑습니다.’
‘백 년을 못 만난들 변할 수가 있겠느냐. 십 년의 세월이 너무나 길었구나.’
매창은 유희경의 고매한 인품에 휩싸여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서울 생활 삼 년만에 해수 병이 도져 부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는 서해가 바라다 보이는 높은 산 속에 움막을 짓고는 날마다 거문고와 시로 세월을 보냈다. 사랑의 단절이 가져다 준 허탈감이 공허한 메아리로 변해 그의 귀와 눈을 사정없이 후벼팠다. 운명을 예측할 수 없으니 가슴에 맺힌 한은 그래서 더욱 길고도 슬펐다. 매창의 병은 차츰 깊어 갔고, 유희경은 선조의 국상과 광해군의 대례식 때문에 매창의 임종까지도 지켜보지 못했다.
죽음은 어차피 누구든지 한 번은 면할 수 없으니 서른 여섯 살에 죽든 칠십 살에 죽든 시간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매창은 마지막까지 임을 그리는 마음을 가슴 가득히 품었으니 누가 매창이 쓸쓸하게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죽음은 한 인간이 살아온 모든 것을 특히 사랑마저도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괴로웠다. 나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덧없는 삶과 사랑으로 애달파진 마음을 무덤을 껴안은 채 술로 달랬다. 달빛만은 먼 옛날처럼 그렇게 교교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화재도 무덤과 같이 많은 사연이 겹겹이 숨져져 전한다. 그러나 스스로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 사연을 밝혀내 주는 사람도 없으니 관람객들은 유물 앞에 놓인 명패만 일변 스치듯 보고 지나친다. 누가 어떤 사연으로 만들었는지도, 어떤 주인을 만났는지도, 또 몇 살이 되었는지도. 묵묵부답이다. 나는 문화재에 얽힌 애환을 모르고서는 도대체 뜨겁게 사랑할 감흥이 일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대 학자들의 과제는 문화재마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전설의 옷을 입혀 문화재의 영혼을 일깨우는 일이다. 이는 명승지라도 전설이나 설화가 없으면 가지만 앙상한 나무처럼 공허해 보이고, 비록 메워진 연못이라도 선녀와 나무꾼에 얽힌 전설이 있으면 오래 머물고 싶은 심정과 같은 것이다. 전설이 고운 산과 바위는 산과 바위 자체가 아니며 민족의 애절한 한이 배어 호흡하는 생명체이다.
수난의 근현대사를 통과해 오면서 우리 문화재에는 소장가의 많은 애환이 스며들었다. 내가 매창의 무덤을 찾는 이유는 형태가 훌륭하고, 치장을 잘되고, 돈이 되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매창을 사랑하는 어쩔 수 없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듯 문화재 한 점을 바라보아도, 그것을 지키고 보전하기 위해 일생을 다 바친 선각들이 있음을 알고, 또 문화재가 겪어야 했던 아픔 사연을 알게 된다면 우리 모두는 문화재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