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전도사로 30년의 세월을~~
흔히 하는 말로 인생살이를 온 몸으로 사는 경우를 산전수전을 다 겪는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공중전까지 추가한다죠!
한 분야에서 십년의 세월을 보내는 이들이 흔치 않는, 예전에는 평생 직장의 개념으로 살아왔지만 년봉 제도가 정착된 이후부터 직장인들도 자신의 값어치를 인정해 주는 직장을 찾아서 다니는 세태입니다.
담임 목회자로 살아가면서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담임 목회를 하신 선배분들을 대하면 자연스럽게 그 인내심과 끈기 그리고 영성의 권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한 자리를 지킴의 소중함을 본 교단은 헌법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단적으로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 시무하는 목사와 장로를 원로로 추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흔히 수십년을 목회하고서 은퇴를 하게 되는 경우, 타이틀을 “성역 00년 감사 예식”이라며 떠들썩하게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은퇴식도 빈익빈 부익부인 장면들을 접하게 됩니다.
규모를 갖춘 교회를 섬긴 목회자들의 경우에는 화려하게 퇴장을 하지만, 작은 교회를 섬긴 목회자의 경우에는 변변한 은퇴식 조차 없이 무대에서 사라지는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제가 소개하려는 목회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월송교회에서 30년을 담임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5년 전에 은퇴하신 남(南) 모 전도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남 전도사님을 뵌 적도, 통화한 적도 없지만 같은 교단, 같은 노회 소속의 목회자임을 우연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담임 전도사로 한 교회에서 30년을 시무하신 분이라는 전언을 들으며,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한 호기심으로 후임자인 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南 전도사님이라는 분에 대하여 단편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9년 전인 1955년도에 춘천시 서면이라는 시골 마을에 세워진 월송교회는 전형적 산골마을에 자리한 교회입니다.
이러한 시골 교회에 젊은 부부가 전도사로 부임을 하게 됩니다.
태생이 타 지방이었던 이분은 원래 광부로 강원도와 인연을 맺었다 합니다.
그러다가 비교적 늦은 30대에 신학도로 부름을 받았고, 통합측이 아닌 타 교단에서 공부를 했다 합니다.
아마도 90년대 초반 시절, 산골 마을에 세워진 교회의 교역자가 없던 상황에 지인분의 소개로 월송교회에 부임을 했던가 봅니다.
30대 후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부임을 했던 이분들은 당시 마을을 섬기는 일꾼됨을 자처한 것 같습니다.
후임 목사님의 말로는 마을에 일이 생기면 삽을 들고 앞장을 섰다 하니, 그야말로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머슴같은 목회자였나 봅니다.
또한 사모께서는 주일이면 교우들의 식사를 준비하여 대접할 정도로 내외간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온 몸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그분들이 떠난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을 언급하는 주민들이 있을 정도라 하니 잔영(殘影)의 폭을 가늠할 만합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정도의 세월 동안 미자립 시골 교회당을 온 몸으로 건축하고서 자기 자리를 지켜내었던 선배 목회자의 발자취와 삶의 족적을 접하며 목회 후배의 입장에서 본 받을 만 한 분이라는 생각으로 소개합니다.
남금준 전도사님의 남은 인생길이 <나의 달려 온길 돌아보니/ 곤히 지친 내 인생 여정에/ 주께서 친히 내 손 붙잡아 주시며/매걸음마다 늘 인도하셨네/
험한 세월 다 지나 보내고/따뜻한 품에 날 안아주실/주님 얼굴 뵈올 주의 날까지
나는 신실하게 이 길을 걸어가리(나 달려갈 길 끝날 때까지/2절 가사)라는 은총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남 전도사님 가정을 위하여 모금을 하여 총 105만원을
주중에 송금했습니다.
본 교회에서도 30만원을 보탰습니다.
이외에 총 5분의 마음이 모인 금액입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