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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군대로도, 힘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된다.” ··· 여호와의 말이다. —스가랴 4:6. 기원전 522년에 유대인의 적들이 꾸민 계략으로 금지령이 내려져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그분의 강력한 성령을 사용해 모든 장애물을 없애 주실 것임을 유대인들에게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기원전 520년에 다리우스왕은 금지령을 해제했으며 유대인들에게 공사 비용을 대 주고 관리들에게 그 일을 지원하라고 명령하기까지 했습니다. (에스라 6:1, 6-10)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둔다면 그들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학개 1:8, 13, 14; 스가랴 1:3, 16) 돌아온 유대인들은 예언자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기원전 520년에 성전 공사를 다시 시작했으며 5년이 채 안 되어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기쁨을 유지하며 여호와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에스라 6:14-16, 22. 「파23.11」 15면 6-7항 |
“군대로도, 힘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된다.” ··· 여호와의 말이다. 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 saith the LORD of hosts. —스가랴 4:6. Barnes' Notes on the Bible This is the word of the Lord unto Zerubbabel - Osorius: "As if he were to say, the meaning of the vision and scope of what has been exhibited is, 'God's doings have almost cried aloud to Zerubbabel that all these visions shall come to an end in their time, not effected by human might nor in fleshly strength, but in power of the Holy Spirit and through Divine Will.' For the Only Begotten became Man as we are, but He warred not after the flesh, to set up the Church as a candlestick to the world, nor did He, through sensible weapons and armed phalanxes, make those two people His own, or place the spiritual lights on the candlestick; but in the might of His own Spirit He appointed in the Church "first Apostles, then prophets and evangelists" 1 Corinthians 12:28, and all the rest of the saintly band, filling them with divine gifts and enriching them abundantly by the influx of His Spirit." Cyril: "Not then in great power nor in fleshly might were the things of Christ, but in power of the Spirit was Satan spoiled, and the ranks of the adverse powers fell with him; and Israel and those who aforetime served the creature rather than the Creator, were called to the knowledge of God through faith. But that He saved all under heaven, not by human arm, but by His own power as God Emmanuel, Hosea too protested, "I will have mercy upon the house of Judah and will save them by the Lord their God, and will not save them by bow nor by sword nor by battle nor by chariots nor by horses nor by horsemen" Hosea 1:7. But exeeeding fittingly was this said to Zerubbabel, who was of the tribe of Judah and at, that time administered the royal seat at Jerusalem. For that he might not think that, since such glorious successes were foreannounced to him, wars would in their season have to be organized, he lifts him up from these unsound and human thoughts, and bids him be thus minded, that the force was divine, the might of Christ, who should bring such things to pass, and not human." Having given this key of the whole vision, without explaining its details, God enlarges what He had said to Zerubbabel, as He had in the preceding chapter to Joshua Zechariah 3:8-10. 반스의 성경 주석 이것은 스룹바벨에게 주신 주의 말씀입니다 - 오소리우스: “마치 그가 말한 것처럼, 환상의 의미와 나타난 것의 범위는 ‘하나님의 행하심은 인간의 힘이나 육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뜻을 통해 이 모든 환상이 그들의 때에 끝날 것이라고 스룹바벨에게 거의 소리 높여 외쳤다’는 것입니다. 독생자께서 우리와 같이 사람이 되셨지만, 교회를 세상에 등대로 세우기 위해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않으셨고, 현명한 무기와 무장한 정강이를 통해 그 두 사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거나 등대에 영적인 빛을 두지 않으시고, 자신의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 안에 “먼저 사도와 선지자와 전도자”를 임명하셨으니 1고린도전서 12: 28, 그리고 나머지 모든 성스러운 밴드는 신성한 은사로 그들을 채우고 그분의 영의 유입으로 풍성하게 풍요롭게합니다.” 시릴: “그때 그리스도의 일은 큰 능력이나 육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이 망가졌고 적대적인 세력의 계급이 그와 함께 무너졌고 이스라엘과 이전에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섬기던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호세아 역시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그들을 구원하리니 활이나 칼이나 전투나 병거나 말이나 기병으로 그들을 구원하지 아니하리라”(호세아 1:7)며 인간의 힘이 아니라 엠마누엘 하나님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것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 출신으로 당시 예루살렘에서 왕의 자리를 관리하던 스룹바벨에게 이 말씀이 적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토록 영광스러운 성공이 그에게 예고되었으므로 전쟁이 때가 되면 조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려고, 그는 이런 불건전하고 인간적인 생각에서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 힘은 신적인 것이요, 그런 일을 이루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세부적인 설명 없이 전체 환상의 열쇠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앞 장에서 여호수아 스가랴 3:8-10에서와 마찬가지로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확대하여 설명하십니다. |
워치타워의 가르침은 그들의 조직이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모든 활동들이 이 사회의 규범의 제한을 받고 있다. 그들의 사교활동은 이 워치타워 사회내로 제한되며 비록 바깥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들의 교제를 제한함으로써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방인(?) 친구는 사실상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들이 제명, 이탈 또는 탈퇴를 하였을 경우 그들의 회피(shunning)제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고립된 상태가 된다. 진실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나 가족으로 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오직 '나홀로' 무인도에 갇히게 된다. 워치타워 조직은 이 점들을 이용함으로써 그들의 증인 사회를 떠나면 인생이 실패한 것 처럼 주장하며 더는 가야할 곳이 없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데 이용하고 있다. PIMO 라면 이 문제들을 사전에 대처할 수 있다. 그들은 몸만 증인 사회내에 담그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탈관념이 된 상태이므로 원하는 방향으로 직업이나 취미생활을 통하여 친구를 만들고 서서히 워치타워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다 사실 이런 방법이 모든 제도권의 일반 종교인들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종교를 버리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탈증인(POMI)들은 이 문제들에 대처하는 것이 비교적 어려울 수 있는데 무엇보다 먼저 탈관념이 필요하다 비록 그들이 증인 사회에서 고립되었지만 정신적인 면의 일부 내지 거의가 증인 사회내에서 주입된 관념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탈관념할 필요가 우선적으로 제기된다. 증인 사회에서 그들의 사회에 모든 것을 올인 시키는 데에는 단순히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개념이 주입되어 있기 때문에 이 조직에 대한 개념이 매우 잘못된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는데 워치타워는 조직의 개념을 그리스도인이 충성을 바쳐야 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하위에 둠으로써 형식적으로는 그들이 모든 형제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지 모르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권위와 동등한 위치에 머무르게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러한 월권적 권위를 강조하는데 뒷받침되는 성경 본문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구약과 신약의 예를 각각 인용함으로써 알아보자. |
<1981년 5월 15일자 파수대(영문) 기사 '조직' 시리즈의 첫 기사>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여호수아 24:15 1 오늘날 선택이 관련된 가장 큰 두개의 조직이 있읍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필요성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욱 긴요합니다. 이천년 전에 한 역사적인 인물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온 우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었읍니다. 2 이 사실에 대한 증인이고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던 두 사람 곧 전에 세무 공무원인 ‘레위 마태’와 의사인 ‘누가’가 이 사실을 확증하는 증언을 합니다. 그 당시 온 우주의 주목을 받고 있던 그 역사적 인물은 중동 지방의 예수 그리스도였읍니다. ‘레위 마태’는 ‘사단’ 마귀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조직된 세상에 대한 ‘사단’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주저함이 없이 ‘사단’의 제안을 거절하셨읍니다. (마태 4:8-10)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미 속해 있는 조직을 버리고 ‘사단’의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셨읍니다. |
언급된 성경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과 거짓 신들 사이에서 개인적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파수대의 이 기사에는 바로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오늘날 선택이 관련된 가장 큰 두개의 조직이 있읍니다. |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적인 선택을 조직의 선택으로 전환시킨다.
증인들의 사고의 틀은 고대에 여호와를 선택하는 문제가 오늘날 어떤 조직을 선택하는
문제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이 기사의 두 번째 단락에서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충성에 대한 다음 세 가지 답변이
나오는데 이 답변은 조직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답변이다.
이렇게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신세계 역)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시험해서는 안 된다’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해야 하고, 그분에게만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이 답변이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답변임에도 불구하고 이 파수대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림으로써 조직에 대한 충성이라는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미 속해 있는 조직을 버리고 ‘사단’의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셨읍니다. |
성경 본문의 예수의 대답은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충성이지 조직적 관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조직에 대한 충성을 동일시함으로써 증인들의 사고의
틀을 조직에 대한 충성이 매우 성서적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게 시도한다.
이제 흔히 제기되는 질문인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의 배경이 된 신약 성서의 본문
을 살펴 보자.
(요한복음 6:67, 68)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여러분도 가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습니다.
이 신약 본문에 나타나는 예수와 시몬 베드로의 대화를 인용하여 1988년 3월 15일호
파수대 18면(영문)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셨으므로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조직에 충성스럽게 머물기로 결정했습니까? |
인용된 어구의 고딕체인 "어디에도"는 성경 본문에 "누구에게"로를 조직 개념으로 바꾼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충성을 조직에 대한 믿음과 충성으로 동일시 하도록 보이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워치타워는 그들의 주 해설서인 파수대를 통하여 그릇된 논증을 조작함으로써 워치타워의 권위를 한껏 높이려고 한다. 사실상 이러한 방식의 권위를 만드는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1세기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죽고 세월이 흐르자 교회는 자체의 권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에 가장 두드러진 점은 성경 해석의 권위를 몇 사람의 종교 지도자들에게로 국한시켰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워치타워도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당시에 교회의 의미가 두 가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하나는 에클레시아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두 번째는 이 기본적 의미가 발전 확대되어 교회에서 지배권을 행사하는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교회의 이름으로" 어떤 명령이나 지시를 내릴 때 사용된 교회라는 단어가 바로 그런한 우두머리를 지칭한다. 오늘날 워치타워의 "조직"이란 명칭도 원래의 의미는 전세계적인 여호와의 증인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그 의미가 발전 확대되어 성경을 해석하고 증인 사회의 성원들을 지배하며 처벌하는 권위를 가진 소수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렇게 역사는 종교적인 면에서도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가 아니라 누구에게로 가야하는가?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