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딸의 여름 휴가 플랜은 '제주 책방올레'...
"테마 있는 여행, 좋겠네!" 했는데 엄마 아빠도 함께 하는 거란다.
시절이 시절인만큼 조심스러워 하니 마스크 철저히 하는 등 위생수칙 잘 지키면 된다나.
일체의 여행경비 부담하는 등 마음씀이 어여뻐 흔쾌히 수락했다.
"파란 하늘아, 이게 얼마만이니?"
8월 13일 아침, 용케도 긴긴 장마 끝나는 날이어서 김해공항 파란 하늘 올려다보며 희희낙락.
8월 13일: 렌트카로 검은모래 해수욕장-혜원 책방-김녕리 해수욕장-세화 해수욕장 -소심한 책방-성산일출봉 아래 카페-광치기해변 둘러- 베스트호텔.
8월 14일: 복합문화공간 도렐카페서 아침 먹고-섭지코지-빛의 벙커에서 고흐, 고갱, 크림트 작품 감상-두모악 권영갑-쇠소깍-메종글래드호텔
8월 15일: 메종글래드호텔에서 조식 먹은 뒤 제주공항 시계탑 아래 대기중인 책방올레버스를 탔다.
우리 가족이 1착으로 도착해 인상 좋은 김준호 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발 시간이 다 돼 가자 혼자 혹은 둘의 조합으로 신청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모두 열명.
책방 투어 신청한 사람만의 차분한 분위기가 투어 내내 풍겼고,
요란하고 화려한 휴가지가 아닌 조용히 책방, 혹은 책에 젖는 시간 선택한 취향 같은 멤버들에 정이 갔다.
일행 중 남자는 남편이 유일.
서점 앞 길건너는 연꽃밭. 옆은 수박밭인 하가리 '주제 넘은 서점'
바람이 살랑거리는 쾌청한 날씨. 9시30분 출발.
팜플렛과 쿠폰, 뱃지를 나눠 준 기사님은 드라이빙 가이드랄까, 출발과 동시에 안내방송 시작.
제주는 서울 면적의 3배이고 인구는 69만 5천명인데 자동차는 58만대.
제주엔 관광버스가 1900여대 있는데 오늘 그 중 1대와 인연,
좀전 모인 제주 한라체육관은 만남의 장소와 같은 곳이란다.
'책방올레'는 여행자가 비행장에서 호텔이나 대형자본으로 된 상품 누리는 게 아닌,
현지 주민 방문하고 여행수익이 마을에 귀속돼 서로 윈윈하는 공정여행 표방의
제주 작은책방들과 착한여행사의 프로젝트다.
처음 간 <주제 넘은 서점>은 책을 여타 서점처럼 분류하지 않고 주제별로 준비 진열해 두는데
얼마전엔 '변신'이 주제였고 지금은 '시간'이 주제라며 시간과 관련된 책이 진열돼 있었다.
인생 2막을 제주에서 시작하고자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부부는 텔레비전을 치우니 책을 읽게 되더라며,
주제넘게 책방을 하게 됐는데 주제를 거꾸로 하면 제주가 된다며 웃었다.
"조금 읽어 드릴게요. 1초마다 세계에서는 결혼식이 두 번, 문자 메시지가 20만건 오가고...
1분이면 강아지를 꼬옥 안아주거나 이웃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고 작은 씨앗을 심을 수 있다...
때로는 1분이 정말 소중할 때도 있고 그냥 흘러보낼 때도 있으며 깜짝 놀랄 일도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다.
1분 사이 누군가가 떠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다..."
책방 계단 등 편하게 자리 잡고 주인 남자분이 읽어주는 그림동화를 들었다.
1인당 3매의 쿠폰을 받았는데, 한 서점에서 오천원권 한 장의 쿠폰 사용이 가능하다.
문학동네 문학상 수상작 <시간 가게>, 카프카의 <변신>에서 생각을 얻었다는 그림동화 <변신>구매.
이곳이 애들에게 좋은 환경이고 책마을을 만들고 싶은 게 책방 주인의 로망.
두번째로 간 '그리고 서점'은 버스에서 내려 돌담 따라 들어간 마을에 자리한 커다란 창고였다.
해수욕장은 인산인해인데 인적 없는 돌담길을 느적느적 걸어 서점 안으로 들어가니
가야금 소리가 그윽했다.
2층은 가야금, 뮤지컬, 한국무용, 방송댄스, 요가, 바둑 등을 배울 수 있는 이음 작은 도서관.
식물성 이미지의 '그리고 서점' 젊은 주인남자는 연혁과 활동 등을 영상으로 보여 주었다.
공교육의 여백을 채워나가려 하고, 책방이 동네 문화 사랑방 역할 되게 하는 점이 미더웠다.
책방주인이 커피를 내릴 동안 책방 구경을 하거나 책도 골랐는데, 두 권의 책을 샀다.
<82년생 김지영>은 물에 잠겨 있었는데 목욕하면서도 읽을 수 있는 특수 재질의 책이란다.
동네에 문방구가 없어서 책방 한 귀퉁이에 문구류를 진열해 놓았다는 '이음 문방구'.
아이들이 책을 읽었을 때 포상으로 문구를 고르게 한다고.
'이음'은 경계없는 마을 학교로 애월 교육협동 조합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점'의 북큐레이션 기준은 읽었던 책 중 좋았던 책, 읽고 싶은 책, 잘 팔릴 것 같은 책.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현욱의 <새는>, 구본형의 <사자같이 젊은 놈들>을 꼽았다.
애월에는 연예인이 많이 살고 많이 다녀가는데 서점은 안 오더라는 책방 주인 말씀에 함께 웃었다.
점심은 곽지 해수욕장의 아무 식당에서나 각각 드시라며 가는 중에도 드라이빙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는 계속 됐다.
"제주도 사람들은 울담에서 태어나 밭담에서 살다가 산담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집을 둘러싼 건 울담, 밭을 둘러싼 건 밭담인데 밭담은 유네스코에서 보존가치를 인정했습니다.
밭담의 용도는 바람과 동물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제주에서 산은 한라산, 삼방산, 송악산 세개고 나머지는 오름인데 368개입니다."
곽지 해수욕장에 도착해 저마다 먹고싶은 식당을 찾아 갔는데 우린 왕새우구이가 먹고 싶었으나
우리 고양이 심바 이름과 같은 심바카레 집으로 갔다.
"아니, 우리 심바가 언제 카레집을 냈지?" 하면서.
심바는 식당 안을 어슬렁거리는 북실북실 귀여운 개였다.
점심을 먹고 책방올레버스가 안내한 곳은 성이시돌 목장.
푸른 하늘과 흰구름 배경의 목장과 풀 뜯는 말들을 보니 시선이 멀리 가고 마음의 뜰도 확장되는 듯...
이국적, 자연적인 풍경이 마음을 끌었다.
"제주도엔 원래부터 말이 많았나요? 아니면 삼별초 진압의 몽고와 관련 있나요?"
무심코 물었는데 드라이빙 가이드가 역사실력이 놀랍다며 치켜세웠다.
고려 충렬왕때 여몽연합군이 삼별초 진압하려고 와보니 제주가 말키우기 좋은 곳이더라는 것.
고려의 몽고지배가 86년인데, 제주는 말 때문에 15년 더 주둔했다고 한다.
최영 장군이 몽고인 진압하러 왔지만 제주에 사는 몽고인 2~3세로 인해 쉽게 진압이 안됐다며
지금도 제주엔 몽고인 후예가 있고, 물허벅 같은 게 몽고 문화라고 해박한 드라이빙 가이드의 설명.
목동의 쉼터같은 '테쉬폰'이라는 이 오랜 건축물 앞에서
오늘 같은 더위에 웨딩촬영 하는 커플이 있었다.
성이시돌 목장에서 내려와 책방올레 버스가 멈춘 곳은 책방 '소리소문'.
어쩜 하나같이 책방 이름을 이렇게도 잘 지었는지!
주제 넘은 서점, 그리고 서점, 기억상점, 아무튼 책방, 오줌폭탄, 책방 오늘, 삼춘 책방, 소심한 책방,
시옷 서점, 그건 그렇고, 어떤 바람, 달리 책방, 독서의 입구...등
각 책방마다 이렇게 잘 팔리는 책을 15위까지 적어 놓았다.
'그리고 서점'의 1, 2위는 <어른이 되는 시간>과 <혼자가 혼자에게>였던게 기억난다.
작은 공간 여럿에 책을 진열해놓은 것과 서점 벽을 책장을 찢어 도배한 것,
좁은 공간에 책방 주인의 출판물과 기사를 전시해 둔 것, '아무튼'시리즈를 진열한 둥근 자개상,
그리고 애교 많은 마당의 검정 고양이가 책방 '소리소문'의 특이점.
'소리소문'에서는 <아무튼 스웨터>와 <아무튼 문구>두 권을 골랐다.
어떤 책을 큐레이션 해 놓았는지 살펴보면서 책방주인의 취향과 성향 짐작해보는 재미가 있다.
'소리소문'에서 책을 산 뒤 책방에 오래 머무는 딸 몰래 밖에 나와 나무 그늘에서
남편과 이야기 나누는데 웬 젊은 여성이 다가와 먼저 간다고 인사를 했다.
종일 한 차로 움직였지만 서로 통성명 같은 건 하지 않은,
마치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말없이 서로를 알아보고 친밀했던 정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느낌.
어디서 온 누구인지 모르는 선한 인상의 젊은 여성은 기다리는 회색 자동차에 올랐다.
"아아, 엄마는 책방올레에 가고 아빠와 애들은 딴데 갔다가 여기서 만나기로 했구나."
남편과 고개 주억거리며 유독 우리한테 달려와 인사하는 그 마음을 고이 챙겼다.
첫날 들른 혜원책방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책방인데 주인 없는 무인 책방.
책을 고르면 계좌로 값을 지불하는 구조인데 성가신 마음에 책 구매는 못했다.
'소심한 책방' 찾아가는 길의 이정표.
수상한 소금밭이 수상하기 그지 없고, 소심한 책방은 정말 소심하게도 표기해놨다.
돌담 저 끝에 '소심한 책방'이 있다.
골목길에서 엉성한 돌담 사이의 계단 두 개를 올라서면 '소심한 책방' 입구다.
왼쪽 벽에 집과 책이 그려진 분홍색 네모 상자가 책방 간판.
그림 동화 코너에서 얼마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인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백희나의 <알사탕>과
<읽는 개 좋아>를 샀다. 읽었지만 20만부 팔렸다는 <알사탕>은 집에 없어서다.
<알사탕>은 지난해 일본그림책 대상 번역그림책 부문과 독자상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참 맛있는 <알사탕>을 입안에 넣고 오래 녹여 먹어야징.
카페와 제과점, 전시장과 여러가지 기념품을 파는 공간으로 변모된 폐교 명월국민학교.
넓은 잔디운동장에 여러가지 체험시설도 있고 주차하기도 좋아 방문자가 많았다.
폐교에서 저마다의 시간 보내고 버스에 올랐을 때는 기나긴 여름해가 많이 이울었다.
버스는 협재해수욕장 거쳐 아침에 출발한 제주 공항으로 가지만 우린 오늘 제주에 도착한 큰딸과
만나기로 한 협재해수욕장에서 책방올레를 마무리했다.
책방
책방이 없는 동네는 영혼이 없는 동네다
(책방 소리소문에서)
첫댓글 이런 투어가 있군요. 가보고 싶은 투어네요. 엄마 못지 않은 딸입니다.
멋진 여행입니다.
눈으로 함께 따라다니며 구경 잘 했습니다^^
부모 본을 보고 자식이 자란다는 말이 맞습니다.
둘째 딸의 기특한 발상이 감동적이네요.
꼭 한 번 체험해 보고 싶은 투어입니다.
근데 어쩌지?
딸이 없어서리~~
육아로 지친
저와 제 절친이 갈 곳으로
1착
정했음..^^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며늘애와 책을 좋아하는 딸내미와 함께 가고싶네요. 상상만 해도 행복해집니다.
세상 어느 투어보다 부럽고 알찬 투어입니다.
덕분에 책방 여기저기 구석구석 잘 봤어요^^
3박 4일 알찬 여행을 하고 오셨네요~^^
제주는 어쩜 모든것이 제주스러울까요?
돌담길, 건물들, 간판들, 전봇대에 붙은 소심한 안내판. 저 파랗디 파란 하늘까지도..
8월 13일 저도 공원 한 구석에서 분명 하늘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저 하늘은 아니었거든요.
주제 넘은 서점 뒤로 보이는 하늘에 풍덩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겠어요.
서점이름들도 다 개성있고 재치넘치고,
서점 구경에 그치지 않고 책 한 두권씩 사는 늘해샘도 늘해샘다워요.
제주 책방 올레 투어 참 좋네요.
부산에서 제주 책방 갈래?팀을 만들어서 같이 가도 재밌을 듯..
어여 코로나가 물러가야 할터인디...
이번 겨울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제주에서 2주 보내고 오려고 생각중인데, 가게 되면 저도 제주 책방 가봐야겠어요.
고랑은 몰라 마씀. 경 호곡 말곡.
그죠?^^
와아~ 늘해샘다운 여행이어요ㅡ
덕분에 정겨운 책방 구경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