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적 늙은이 보고 백발을 비웃더니
그동안에 아이들이 날 웃을 줄 어이 알리
아이야 하 웃지마라 나도 웃던 아이로다
신계영의 탄로가의 일부이다 .....
세월이 나이를 소카묵고
나이가 세월을 소카묵는 자연의 마술에
내나이도 세월도 흐르고 흘러 오늘의 이꼬라지로
맹근앞에서 흘러가는 세월소리 듣는다
사람이 늙은 후에는 거울이 원수다라고 했다
한때 잘나가던 시절의 모습이
오늘까지 그대로 일것라고 거울을 보면
실망하기 일쑤이기 때문일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얼굴 비춰보니
몰골이 처량하다
만물이 변하듯 나도 모르게 늙어만 가는구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어제 보다 더욱 늙었다
천하의 백거이도 세월앞에서는
투정밖에 부릴줄 몰랐던 것 같다
미리 예고합니다
이번글은 길이가 지구를 50바퀴를 돈 길이만큼 길고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의 의미없는 딩굼같은
글이기에 끝까지 읽는것은 절대 사절합니다
그림만보시면서 옛날의 김해를 감상하시면 되구요
호기심에 끝까지 읽어가꼬
욕끼리붓는 칭찬은 사절합니다
제목은 50년전의 삼정동(김해고가 위치한곳)의 추억입니다
한림촌에서 읍내로 진출하려고
청운의 부푼꿈을 품고
삼정동(지금의 메가시티자리)에서
자취방을구하고 교과서를 지급받고
고등학생이 된다는 부푼꿈에 잠못이루고
긴긴밤을 지새우고 날이밝아오자
도로를 건너 논바닥 사이길로 학죠를 간다
지성의 상아탑이라며 나의 꿈과 희망을 걸었던
교정에 도착을 한다
그때가 1974년3월 11일인것같다
허허벌판에 외롭게 서있는 건물
아직 완성되지않은 학죠 건물은 을씨년 시러벗고
정리가 안된 울퉁불통벌판에 자갈 투성이인
운동장에서 시작된 입학식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입학식을끝내고 들어가서 공부할
교실이 아직도 공사중이어서 수업할 공간이 없다
담임이신 하점부 선생님의 설명이
대략 4키로 떨어진 한일합섬창고에서
학죠건물이 완성될때까지
그곳에서 수업을 한다고 ...
짝지는 걸상두개를 양어깨에 메고
난 책상을 머리에 이고
도랑가를 따라서 다리도 건너고
안동한일합섬 공장 창고에 도착해서
수업후에 또 다시 역활 바뀌
짝찌는 책상을 나는 걸상두개롤
짊어 지고 학죠로 원위치하고 하교를 한다
아야 뛰지마라 배꺼질라카는 노래는
후~~지에 나왔고 꽁보리밥 한숫갈에
노가다 수준의 공부는 형설지공이랄까 ...
자취하는 동네에서 학죠까지 몇달을
댕기다 혼자서 자취하는 손자가 애닮았던지
외할머니 요청으로 외갓집에서 댕기기로 하고
그곳에서 등하교를 하기로 했다
그때 삼정동에서 함께 자취를 시작한
원동에 사는 친구가 생각이난다
후~~지 알았는데 도산 도시교통공사에서
정년퇴직을 했다는 이바구는 들었는데...
내가 등학교를 하는 병원은
지금 신한은행 맞은편 병원이다
김해에서 두번째인가 개업을 한
큰외삼촌병원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자고
빈병실에서 공부를 했었다
그때 등교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동신버스
버스를 타고 지금성모병원앞
아무따네 정유소에서 하차를 한다
그때는 지금처럼 정유소가 있었던것은 아니고
좀 대주소카면 내려주던 시기라... ... ㅎㅎ
양옆는 논이고 그 중앙으로
쭉뻗은 도로를 걸어서 등교를 했었고
제일교회앞길을 넘어가는 오솔길로 할천고개넘어
지천이 딸기밭인곳을 통과해서
등교하기도 했었다 차비 애낀다꼬...
학죠의 필요충분 조건이 완성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체육시간은 수군포로
돌삐쭈내는 일로 학습을 대신하기 일쑤였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데
독일어 선생님이 부임을 안하셔서
조도제 선생님으로 부터 받은 독일어교육이 생각이 난다
국민윤리셈이신데 우신따네 겔마주셨던걸로 기억하고 있다 .
그뒤갓졸업하시고 부임하신 선생님
기억으로는 오세훈선생님이었던가?
그셈의 독일어 교육은 좀 특별했었다
영어의 알파벳정도인 아베체데~~
기본교육을 받고 난뒤
독일어 교과서 책한권을 통째로 외우면 100점준다는
말씀에 달달외워서 2층교무실에서
선생님들앞에서 다외우고 100 점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도 그럴것이 내 평생학죠 성적
100 점은 그것이 유일무이하니까...
어느정도 학교건물이 완성되고
운동장이 완성되어가던때 담임선생님이신
하점부선생님으로부터
학죠운동장에 심을 나무한그루씩
갖고오라는 말에 ...
그때가 아마 식목일이 다되어갔던것 같다
학죠에 갖고 갈 나무를 구하기 위해
큰사고를 쳤던 기억이 50년이 지나간
지금도 뇌리를 팍팍스쳐지나간다
장례식 치룬지 얼마되지않은
할아버님산소에 조경으로 조성해놓은
소철나무인가를 수군포로 퍼갖고
학죠에 기부한 기억이다
그 나무로인해 아부지한테
들은 한마디가 칠십을 바라보는
오늘날에도 귀전을 맴돈다
할배산소에 나무한그루라도
심어야할 손자가 할배산소에 심어놓은
나무를 파다가 학죠에 갖고간다니...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화를 내시지
않은 모습과 그 말 한마디가
아직도 귓전을 찡하게 울린다
그때 심었던 나무가 교문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있었던것 같은데
그나무를 본것이 거의 30년만인것같았다
큰넘(31회)졸업식하는 날이었다
그후 작은넘(35회)졸업식때가보니
그나무는 온데간더없고 운동장에는
마사토는 없어지고 잔듸운동장으로 변해있었다
이렇게 얼라때 추억과 낭만 청운의 꿈이었던
그학죠가 개교5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지금은 지역의 중심학죠로 명성을 이어가고있는
학죠가 50여년의 세월을 먹고 그렇게 안되었는치
시치미를 띄고 있는 모습을 요즘은 가끔 지나다가
치다보는데 학죠 건물에 딱 달라붙어있는 모표는
기억을 재생하는 촉매제로의 역활을 한다
그때 함께 띄놀며 노가다로 체육시간을 대신한 벗이여
세월이 우리를 이제 촌로의 문턱으로 인도를 해놨구나
그때 그시절 벗들의 모습
초선대에서 은하사까지 걸어서 갔던 붐소풍
교련복으로 폼잡고 담았던 추억의 장면들
그 소중한 추억이 담긴 흔적이 없어 안타깝지만
함께 무수한 세월을 가슴에 담은 벗들이여
건강하시고 좋은 날되시라~~
며칠전 모임에서 소주한잔 기우리다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에 놀러 오시라는
후배의 한마디에 말도 안되는 ...
참 말이 안되니 글로써 이렇게 소회를 몇자 적어본다
설마 이 진글 다 읽고
욕끼리 붓는 불상사는 없어시길 ... ...